지금 여러분이 듣고 있을 곳에서 가장 가까운 안전 지대는 캘버리 교도소에 위치해 있습니다.
좀비의 특성을 감안해 생존자 여러분은 최대한 해가 지고 움직여 주십시오.
낮에 움직이는것은 위험합니다.
그곳의 좌표는 xxx.xxx.xxx.
다시한번 반복합니다.
생존자 여러분은 캘버리의 안전지대로 와주십시오. 그곳의 좌표는…
뚝.
당신은 몇번도 더 들은 라디오의 방송을 끄고,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쉬어가기로 한 폐공장의 창고 한 구석은 어둑합니다.
유일한 광원인 벽 꼭대기에 위치한 환풍구에서 정오의 햇빛이 비치고,
당신의 옆에선 카제가 피곤한 얼굴로 잠들어 있습니다.
유여화:하아...
….
2021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동일한 질병 증세를 보였습니다.
곧 학자들에 의해 이 질병이 전례없는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임을 알아냈고,
파이로젠 바이러스라 명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미디어는 이 바이러스를 좀비 바이러스라고 불렀고,
최초 감염자가 발생한 시점부터 이를 좀비 사태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곧 좀비들에게 몇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바이러스는 체액으로 전파되며 대표적인 감염경로는 좀비에게 물리는 것이다.
둘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24시간안에 좀비로 변한다. 그 증거로 완전히 좀비가 된다면 눈동자의 동공이 희뿌옇게 탁해진다.
셋째. 좀비는 시력이 퇴화하지만 청력이 발달해, 빛이 없는 밤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바이러스는 곧 전 지구를 장악했고,
인류의 70%이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정부는 힘을 잃고, 집단 자살이 성행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생존할 길을 찾기 마련입니다.
좀비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연합정부가 설립되었고,
이 기관은 생존자들을 위한 ‘안전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좀비사태가 발발한지 1년 7개월 12일째.
당신과 카제는 이 절망적인 세상속에서 안전지대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당신은 잠든 카제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카제의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인상을 찌푸리고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듣기 판정합니다.
유여화:뭐라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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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75/37/15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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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7/15
굴림:
73, 81, 95
+2:
보통 성공
+1:
보통 성공
0:
보통 성공
-1:
실패
-2: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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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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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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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7/15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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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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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판정결과:
실패
유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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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7/15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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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75/37/15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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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75/37/15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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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75/37/15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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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75/37/15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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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75/37/15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유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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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75/37/15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카제가 중얼거리는 말을 주의깊게 들어보았습니다.
“...약속일세…”
뭘 약속한다는 걸까요,
카제의 표정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습니다.
유여화:뭔 약속...
악몽이라도 꾸나 표정이 안 좋네...
(그저 카제의 얼굴을 보며 피곤한 얼굴로 혼잣말을 한다
아이고 피곤타
얼마 지나지않아,
카제는 잠에서 일어납니다.
식은땀을 흘리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유여화:일어났냐?
사카노 카제:...그래, 지금이 몇 신가?
카제는 당신에게 대뜸 시간을 묻습니다.
지금 시간은 아침 11시 48분, 곧 정오가 될 시간이네요.
유여화:글쎄... (주위를 둘러보고는) 뭐, 곧 점심시간이지 않을까 싶네?
카제는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당신에게 말합니다.
사카노 카제:이제 내가 보초를 서지. 쉬도록 해.
유여화:먹을 게 있다면 점심시간이고 아니면 아니고, (큭큭 웃으며) 그래~ 수고하고. (카제가 기대어 잠들어 있던 곳으로 가 털썩, 주저앉는다)
(살짝 눈을 감은 채로) 근데, 아까 무슨 꿈을 꾸는 것 같던데? 약속이라나 뭐라나 그런 말도 하고 말이야.
사카노 카제:그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별 것 아닐세. 이상한 꿈을 꿨어. (내려다보며) 어서 잠에 드는게 좋을테야. 여정이 기니까.
유여화:뭐, 그건 맞는 말이지만..~ (계속 눈을 감은 채로 대화한다) 그래도 좀 궁금해서 말이야, 무슨 약속인지. (슬쩍 실눈으로 카제를 바라보았다가 도로 눈을 감는다) 들려주기엔 곤란한 꿈인가?
이렇게 우리 둘만 다니는데, 꽤 심심하잖아.
사카노 카제:(한동한 조용해 있다가) 상황이 이러하고, 우리가 본 것도 많으니 꿈자리가 뒤숭숭한 것도 그럴려니 하지 않은가.
카제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더 물을까 싶었지만,
유여화:(말하지 않을 셈이군.... 더 묻는 건 실례일까.)
여정의 피로 때문일까요.
당신은 카제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는 금세 잠에 들었습니다.
6월 8일 5:32 pm
사카노 카제:…일어날 시간일세. (너를 흔들어 깨운다.)
당신은 카제의 손길에 눈을 뜹니다.
눈을 뜨자 보이는 환풍구 너머의 하늘은 뉘엿하게 해가 지고 있습니다.
곧 좀비들은 활동을 멈출 테지요.
유여화:....아, 이제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이네.
사카노 카제:간단하게 뭐라도 먹고 출발하지.
유여화:좋지~ (끄응, 간단하게 기지개를 한 번 펴고는) 나 잘 때, 별일 없었지?
뭐, 없었으니 날 깨우지 않았겠지만.
사카노 카제:아무렴. 아무런 일도 없었네. (가방에서 초코바 두개, 생수를 꺼내어 하나를 건넨다.)
유여화:하아... 질린다, 질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얌전히 초코바와 생수를 건네받는다.) 이럴 때 정말 옛날이 그립단 말이지..~
배고파~ 맛있는 거 먹고 싶어~ 이런 걸로 (자신의 중식칼을 바라보며) 맛있게 요리한 음식~~
사카노 카제:그런가? (익숙하게 초코바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하다.) 요리할 재료들은 아예 없지 않은데 말이지... (조금만 걸어가도 나타날 시체들더미를 떠올리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가?
유여화:재료들이 있으면 뭐해, 도구가 없잖아, 도구! 칼만 있으면 안 되니까 말야. (초코바를 먹긴 하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깨작거린다) 먹고 싶은 음식? 그리 물으니 딱히 생각이 안 나네. ....음, 그냥 식사를 하고 싶어. "식.사"말이지. (초코바를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이런건 식사가 아니지~ 그냥 섭취지.
두 사람들은 작은 대화들을 나누며 식사가 아닌 식사를 끝냅니다.
사카노 카제:그건 그렇지. (어느새 마지막 남은 초코바 조각을 입에 전부 밀어넣었으며) 돌아다니다 보면 무언가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안전지대를 향하는 길목에 마을이 나온다고 하니까. (먼저 일어나서 가방을 챙기고) 다 먹었으면 일어나게.
유여화:아이고, 항상 의욕적이시네요. (비꼬는 기미 없이, 이 상황이 아주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푹, 쉬고는 카제를 따라 일어난다.) 그래, 빨리 마을에라도 도착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없겠지만. 다 그곳으로 갔겠지?
사카노 카제:내가 그런가? (눈을 두어번 깜박인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나도 변하고 있나보군. (가방을 들쳐맨다) 그러길 바라야지, 얼마나 갔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갑세.
당신과 카제는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창고를 떠납니다.
어둠이 깔리고 달빛이 내려앉고, 넓은 공장 부지는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따금 이 공장 유니폼으로 추정되는 옷을 입은 좀비들이 앞을 보지 못한 채 목적없이 배회하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과 카제는 숨을 죽인채 살금살금, 폐공장지대를 빠져나옵니다.
행운 판정합니다.
유여화:쯧쯧.. (배회하는 좀비들을 보고 안타까운 듯, 혀를 찬다.)
운
기준치:
55/27/11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이 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턱, 하고 카제가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카제의 손짓에 따라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당신의 발 아래에 빈 과자봉지가 널부러져 있습니다.
유여화:으잉?
와 고마워 진짜로 날, 아니, 우리를 살렸네
사카노 카제:(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히 전진한다.)
그렇게 숨죽여, 폐공장지대를 빠져나옵니다.
당신과 카제는 지도를 보고, 언제나와 같은, 긴 여정길을 걷습니다.
뻥 뜷린 흙길과 초원은 이따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합니다.
오늘은 달이 밝아 다른 조명 없이도 길이 잘 보입니다.
유여화:오늘은 달이 밝네~ (하늘을 보고 웃으며) 운치 있고 좋다~
사카노 카제:(네 말에 따라 달을 올려다보며) 세상이 이지경이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지.
(지도를 한번 내려다보고) 곧 마을이 나오겠군. 동이 트면 다시 좀비들이 움직일 테니, 도착하면 쉬어서 가겠나?
유여화:그래, 그래야지. 해가 뜨면 너무 위험하니까.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인다) 얼마나 더 가야해? 곧? 곧이 몇 분 정도?
사실 이런 상황에서 하기엔 정말 쓸떼없고 실없는 소리라는 건 아는데 말이야... (주위를 둘러보며) 마을까지 가는 데 얼마 안 걸린다면,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주위도 둘러보고, 그러면서 말이야~
지금은 그나마 안전한 편이잖아. 너무 안전지대, 안전지대만 바라보며 전진하는 건 좀 지쳐서.
사카노 카제:...아마 얼마 안 남은 것 같군. (팔을 들어올려 무언가를 가리킨다. 손가락 끝에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 말에 고개를 돌리고) 그건 안될 것 같네. (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했다.) 쓸데없고, 실없는 건 아닐세. 다만,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
당신들이 걷는 도로가 흙길에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로 바뀌고 난 얼마 후,
[이스트베일에 어서 오세요], 라고 적힌 핏자국이 말라 붙어잇는 간판이 새벽어스름너머로 보입니다
유여화:아니, 상황이야 언제든 안 좋지. 좀비 바이러스가 터지고 나서 좋았던 적이 있어? 사람이 숨도 좀 돌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며 팔을 쫙 펴보인다) 좀비도, 적지 않아? 날도 어둡고. 그러면 이런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지금이 좋지 않아? (잠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내 숨을 크게 내쉬고 말한다) ...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알지... 그냥 지쳐서 어리광 한 번 피워봤어. (간판을 바라보며) 이스트베일, 그래, 도착했네.
사카노 카제:지금 이 순간 저기 수풀에서 좀비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어떤가. (멀지 않은 곳에 고갯짓하고) 물고기가 물 밖에서 숨쉬는 것을 보았나? 지금 인간들은 밖으로 내던져진 상황이고 우리는 바다를 찾으러 가는 거지. (간판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마을을 바라보며) 가겠나?
유여화:그래, 그래~ 우리는 바다를 찾으러 떠나는 거지~ 지금은 겨우 강에라도 도착한 거고 말이야, 그렇지? (지친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나있다) 그래도 1년 7개월이면 물고기 다 말라 죽었겠어. (카제의 고갯짓을 따라 그 수풀을 보고) 튀어나올 수도 있지, 그래.... 경치 좋다~ 하고 넋놓고 있다가 황천길여행 갈 수 있겠지. 그래도 내 말은, 좀 지쳤으니 쉬엄쉬엄 하자는 거였어. 지금의 넌 너무... 철저하달까? 에너지를 항상 양껏 쏟아붓고 있는 듯해서. 그러면 빨리 지쳐버린다니까~ (손을 휘 내저으며) 뭐, 싸우자는 말은 아니야. 알지? 이걸로 체력낭비 하지 말자구. (가겠나?라는 당신의 말에) 무슨 말이야 그게, 당연히 가야지! 저기서 또 쉬어야지.
사카노 카제:(잠깐 침묵 속에 내려다보고 있다 한마디 건넬 뿐이었다.) 그대의 여정에 마음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네. (고개를 끄덕인다. 내려다보는 표정에는 그저 피곤함, 그리고 늘 함께 하던 옅은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그래, 말라 죽기 전에 갑세. (어느순간 부터는 있지도 않는 에너지를 매번 만들어내는 기분이었지만. 눈을 느릿하게 깜박여) 내가 그대와 싸우는 것 같았나?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마을로 옮긴다.)
유여화:아니, 그냥 계속 이걸로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았어서 해본 말이야. (터벅터벅, 당신과 함께 마을을 향해 걸어가며) 마음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니, 하하. 혹시 나랑 다니는 거, 후회하는 건 아니지? (고개를 처들어 당신을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사카노 카제:말이야 우리가 몇시간을 걸었는데 길어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앞을 보고 걷다가 네 말에 내려다보고 고래를 젓는다.) 그럴리가. 내가 그러는 것처럼 보이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마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때 주민들이 살았을 마을의 거리는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있습니다.
이젠 사람이 살지 않을 빈 주택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고,
거리에는 드문드문 보이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덩어리들과 쓰레기들이 널려있습니다.
유여화:음... (빤히 바라보다) 아니. 그렇게 보이진 않아. 왠지 누구든지 상관 없었을 것 같은 느낌? (큭큭 웃으며 말하고는 마을을 둘러본다) 아~ 역시 다 떠났네. 남은 건 건물과 냄새나는 썩은... 옛주민과... (얼굴을 찌푸리고 말을 만다)
사카노 카제:(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옆에 있는 이는 너고,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조심하는게 좋겠어. (멀리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인영들을 바라본다.)
당신과 카제는 이따금 보이는 좀비들을 피해 거리들을 걷다,
주변에 좀비들이 없는 집 한 채를 발견합니다.
저 집이라면 좀비들과 싸우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여화:(카제의 팔을 툭툭 치며 소근거린다) 저기, 저기 괜찮은 것 같지 않아? 쉴 곳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좀비조차.
사카노 카제:그런것 같네. (따라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히 들어가지.
당신과 카제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평범한 단독주택의 가정집 안은 이미 생존자들이 다녀갔는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니 거실이었을 공간에 널부러진 도끼와 세개의 방, 그리고 주방이 보입니다.
[도끼]와 [세개의 방], 그리고 [주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여화:(도끼를 먼저 살펴본다!) 대체 어떤 집이였길래 도끼가 세 개나 있어?
꽤나 큼직한 손도끼 입니다.
평소라면 나무를 다듬는 데나 쓰였겠지만 세상이 망해버린 지금은 그 쓰임새가 좀 달랐겠지요.
도끼날과 손잡이엔 핏자국이 검붉게 말라붙어 있습니다.
유여화:흐음.... (도끼를 슥 내려놓고) 날카롭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이런 건. 그래서 버리고 갔나?
유여화:흐음, 그렇다면야... (쥬드 쪽을 보며) 음식이라던가, 그런 거 가지고 있는 거 있어요?
쥬드:과일이 조금 있는데... (가방에서 무화과를 꺼내고) 어떻습니까?
유여화:(장난하나? 과일은 며칠이면 썩어문드러지잖아) ... 그거 말곤요?
쥬드:(좀 의심스러운 얼굴로 본다) 당신들은 음식이 있습니까?
유여화:(어이없음) 우리요? 있죠, 당연히.
쥬드:그 말을 어떻게 믿죠?
유여화:? 믿기 싫으면 믿지 마세요? (우린 오래가는 음식 가지고 있으니 손해볼 거 없으니) 같이 다니자고 동행을 제안한 건 당신이 먼저였으니까요.
(카제도 갑자기 이상해져서 가뜩이나 피곤한데 급짜증이 난다. 벌떡 일어나서 카제를 본다)
쥬드:믿기 싫은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다른 이를 신뢰하는 걸 어려운건 당연한 겁니다. 난 당신에게 내가 가진 음식의 일부도 보여드렸는데요. 당신은 아무것도 안 보여줬잖아요? (일어난걸 보곤) 가고 싶으면 가세요, 이제 대낮이라 도로에 좀비들이 활보할거지만.
유여화:예, 안 그래도 이새(짜증이 올라와 말이 좀 격해졌지만 금세 멈추고) 아니, 카제가 해가 뜨는데도 하도 가자고 고집을 부려서 나왔던 참이였거든요.
이제 충분히 쉬었나? (일어나서 카제를 본다)
사카노 카제:(두사람을 번갈아보다 여기 남아있는 건 그 누구에게도 안 좋을 것 같아 일어난다.) ....그러도록 하지.
유여화:좋아, 그러면 우리는 떠나고 당신은 여기 남아있거나 뭐 혼자 알아서 하거나. 그러면 되겠죠? (가방을 뒤적여 마트에서 챙겼던 바를 하나 들어 까딱, 흔들어 보인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던 증거는 여기에 있구요. 난 선량한 사람이라 이런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안 하거든요.
쥬드:(먼저 의심받은 건 이쪽이라 왠지 억울하다) 증거를 먼저 보여주던가... (바를 보고 눈을 밝히지만 중얼거린다.) 저도 거짓말 한 적은 없습니다만, 조심히 가시길 바랍니다.
쥬드:(네가 정성스레 간호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사람을 데리고 이동하긴 힘들 것 같은데… 일단 이 친구가 좀 괜찮아질 때 까지 기다려야겠네요.
유여화:좋아!!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어요 (당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뭐, 버릴 수는 없으니.
... 아니면 학교를 좀... 둘러볼까요? 뭐 건질 거라도 있는지?
쥬드:아까 좀비랑 피튀기는 싸움을 하고도요? 이곳에 먹을거라도 있을까.... (잠깐 고민하고) 뭐... 둘러보는 건 말리지 않겠습니다만, 이번에는 동행하지 않겠습니다.
유여화:아까 내가 다 썰었잖아요? (하지만 같이 가지 않겠다는 당신의 말에 도로 자리에 앉는다) .... 뭐, 혼자라면 나갈 생각은 없고. 그러면 여기서 시간을 때워야죠.
쥬드:(딱히 별 말하지 않고 적당히 멀어진 곳에서 자리잡고 앉는다. 쓰러진 카제와 여화를 번갈아보다 나지막히 말한다.) 당신은 카제를 어디까지 믿습니까?
유여화:...? (갑자기 진지한 질문에 살짝 놀란다) 이렇게 갑자기요? 아하하, 무슨 진실게임도 아니고. (그저 큭큭 웃기만 하다 카제를 흘긋 본다) .... 글쎄요. 가족이나 애인처럼 깊은 관계도 아니고. 그렇지만 당신보다는 카제가 더 믿음직하죠? 아무래도 옆에서 본 날이 더 많으니까~ (고개를 까딱, 옆으로 비틀어 당신을 보고) 그런건 왜 묻죠? 너무 심심해서?
쥬드:(그저 어깨를 으쓱이곤) 이렇게 쓰러진 사람의 둘숨날숨만 보고있기엔 좀 지루한 편이긴 하죠. (뒷통수를 벅벅 긁적이곤) 뭐,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이런 때일 수록 끝까지 믿을 건 나 하나 뿐입니다. 내가 왜 혼자가 되었겠어?
유여화:아, 뭐, 쟤가 우리 뒷통수 때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할 녀석인가? 그런 뜻인가요? (하하, 가볍게 웃으며)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내가 사람 보는 눈 좀 있는데 쟤는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아요. 그리고 저렇게 널부러져 있는데~ 배신을 해도 우리가 하지 않겠어요?
그는 당신의 말에 딱히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곤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누운 후 눈을 감습니다.
그래요, 이런 상황일수록 서로를 의지하여 역경을 헤쳐 나가야죠.
유여화:(아니 이렇게 내가 당번이 되나)
카제의 상태를 살펴보니 아까에 비해 열이 내리고 한결 편해진 얼굴입니다.
카제가 어느정도 괜찮아진 것을 확인하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옵니다.
당신은 밤새 걸은 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좀비와 싸워야 했습니다.
피곤한게 당연하죠.
닫힌 교실 문을 열고 좀비가 들어오진 않을테니,
유여화:(좋아요 그렇다면 나도 잔다,,,,)
옆에서 잠을 청하는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당신은 책상을 이어붙여 카제 근처에 눕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그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잠에 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유여화:(아무 생각 없다.... 얘가 언제 일어나려나... 하는 정도의 생각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당신 역시 스륵, 잠에 듭니다.
…….
당신은 잠결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목소리는 쥬드와 카제의 목소리 같네요.
희미하게 눈을 떠보니 교실엔 두 사람이 없는게 복도로 나가 대화를 하고 있는것 같아요.
[듣기] 판정합니다.
유여화:
듣기
기준치:
75/37/15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쥬드:… 그렇지 않으면 말해버릴 거야, 네가….
뭘 말한다는 걸까요?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게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유여화:(머야... 나 빼고 싸우네)
(흠.... ) (일어나서 살금살금 복도 쪽의 벽으로 가서 엿듣는다)
당신이 둘을 말리러 나가봐야할까 하고 생각 한 순간.
탕!!!!!!!
타앙!!!!
탕!!!!!
유여화:??
어어?
하고, 귓가를 찢는 총성이 울려퍼집니다.
유여화:(좀비가 총을 쐈을 리는 없고 둘 중 하나가 쐈다는 건데 밖에 좀비가 나타났나??? 내가 도와주러 가야겠다!! 라는 생각에 미치자 벌컥, 교실 문을 열었다)
당신이 황급히 교실 문을 열고 나가자 보이는 것은 새벽어스름이 깔린 복도에 총을 든 카제와,
...얼굴에 총에 맞아 눈도 채 감지 못한 채 즉사한 쥬드입니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 카제의 눈동자가.
사카노 카제:…….
유여화:(저기요????) (흠칫)
너, 지, 지금.... 쏜거야? 사람을???
아, 그런데, 대답을 들을 시간이 있을까요.
어둑한 복도 너머로 총성을 들은 좀비들의 무리가 복도 양쪽에서 당신과 카제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옵니다.
한마리, 두마리…
눈으로 어림잡아도 스무마리는 넘어보여요.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 고개를 돌렸지만
운동장쪽에서도 좀비들이 학교 건물로 달려오는게 보입니다.
도망가긴 이미 늦었어요.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기할까요?
그런데 돌연 카제가 당신의 손목을 잡아끌고 캐비넛으로 달려가,
당신을 캐비넛 안에 밀어넣고 문을 잠굽니다.
당신은 뭐라 저항할 새도 없이 카제에 의해 캐비넛에 갇혔습니다.
유여화:야!! 뭐야??!
(캐비넛을 쾅쾅 친다)
문을 열려고 해보았지만 문 손잡이에 빗자루를 끼웠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열리지 않습니다.
캐비넛에 가로로 작게 난 틈을 통해 웃는 카제의 얼굴이 보입니다.
사카노 카제:…여기 있게나.
그렇게 말한 카제가 꺼내드는 것은,
어제의 그 곰인형.
당신이 뭐라 말을 할 찰나도 없이 어느새 복도를 가득 메운 좀비들 사이에 카제의 모습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좀비들의 외마디 비명소리들 사이에 노랫소리가 복도에 이질적으로 울려퍼집니다.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치네.
유여화:.....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사건들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앉아 소리를 듣는다)
동쪽하늘 에서도, 서쪽하늘 에서도.
반짝반짝 작은별…
노랫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좀비들이 소리를 따라서 일제히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제 복도에서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새벽의 캐비넛 안은 춥고 어둡습니다.
유여화:야!!!! 돌아와!!!! (소용없을 걸 알면서도 캐비넛을 쾅 치며 소리친다)
당신을 비웃듯이 침묵이 대답합니다.
카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리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넛의 문이 열리며,
당신 앞에는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카제가 서있습니다.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당신을 바라보는 카제를 마주하자,
당신의 머리에 이스트베일의 그 서재에서 보았던 문장이 스쳐지나갑니다.
유여화:(아니 미친 살아있어??)
[좀비는 감염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성] 판정합니다.
유여화:
SAN Roll
기준치:
58/29/11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
이성 -1
아,
이제 갑자기 이상하게 굴던 카제의 그 모든 행동이 이해되었습니다.
당신의 눈 앞에 있는 카제는, 감염자입니다.
도대체 언제부터일까요?
카제는,
이제 곧 좀비로 변해버리는 것일까요?
유여화:너, 그, 머시기, 하..........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는 카제를 보며 "그 메모"의 순서를 떠올려본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곧이라는 거겠지.)
.... 언제냐?
사카노 카제:....글쎄.... 물린 게 언제를 묻는 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가와 코피를 한 손으로 닦아내고 쓰러진 쥬드를 보다 그의 짐을 뒤지기 시작한다.)
카제는 말없이 죽은 쥬드의 짐을 뒤져 식량과 약 등을 챙깁니다.
이젠 시체의 짐을 뒤지는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그게 설령 자신이 죽여버린 생존자라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인간성을 잃어가는 카제가 낮설게만 느껴지는건
비단 그가 감염자라서, 라는 이유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유여화:당연히.. 그걸 물은 거기는 한데... 쥬드 씨는 왜 죽였어??? 대체 그가 뭘 했는데?
너 진짜.... 네가 아닌 것 같아. 좀.... 무서워.
사카노 카제:이 내가 무섭다고... (질문에 이렇게나 대답을 해주고 싶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의 입은 무거웠음으로. 남은 식량을 챙겨 가방에 넣고 널 바라보며 네 질문에 다른 질문으로 대답했다.) 나를 죽이고 싶나?
아니면 떠나고 싶어?
유여화:..... 네가 나를 죽이고 싶지는 않고? 아니, 근데 쥬드 씨는 왜 죽였냐니까?? (떠나고 싶냐는 당신의 물음은 살포시 무시한다)
사카노 카제:내 머리는 지금 딱히 그대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지는 않고 있네만. (슬슬 동이 트려는 하늘을 바라보고) 가면서 이야기 해주겠네. 아쉽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네.
유여화:아니, 명령이라니, 무슨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당신의 말에 슬프지만 동의하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챙긴다)
사카노 카제:원래 인간의 몸을 지배하는 것은 뇌가 아니던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짐을 챙겨 교실을 벗어났다.) 좀비를 따돌리긴 했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게나.
유여화:............. 그래, 알겠어. (너도 조심해, 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려다 만다. 너는 조심할 필요가 없지.)
6월 12일 6am
학교를 빠져나오자 동이 트고 주위가 환해지고,
쭉 이어지던 아스팔트 도로 대신 초원에 난 흙길이 보입니다.
원래 도로였을 길위에 자동차로 지나간 듯 풀들이 눌린 흔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캘버리에 가까워 진 것 같아요.
길을 걸으며 한참을 말이 없던 카제는 마침내 입을 엽니다.
사카노 카제:...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우리의 가방을 뒤지고 있었네.
유여화:아... 그렇군. 역시 믿을만한 인물이 아니였나보네.
사카노 카제:저지하려고 했더니 내가 감염자라는 걸 그대에게 말한다고 하더군. (내려다보곤) 이제 이해가 가나?
카제는 당신에게 그저 기다려달라고만 말하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오늘 일이 아니었다면 당신에게 감염자라는 것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겠죠.
유여화:..... 아, 그래. 협박했다는 거구나.
나한테 영원히 감염되었다는 걸 말하지 않고 혼자 사라질 속셈이였나봐?
그러면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너를 찾아 헤매다 또 널 욕하다 혼자 캘버리에 도착하든 나도 좀비에게 물려서 디엔드가 나든 그렇고?
사카노 카제:그럼 같이 사라질 생각이라도 있나? (무슨 당연한 걸 묻는 듯한 투다) 다 말하지 못한 건 미안하네. (잠시 생각하고는) 내가 왜 글을 쓰냐 물었지. 난 그걸 완성하기 전까지 그대에게 그 어떤 것도 말해줄 수 없다네.
...당신은 문득 쥬드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 말은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당신은 아직도 카제를 믿을 수 있나요?
유여화:..... 너, 네가 죽인 그 쥬드 씨가 너 정신잃고 쓰러져서 내가 쩔쩔맬 때, 날 도와서 널 안전한 그 학교로 옮긴 거 알어? (카제를 보지 않고 똑바로 앞의 길만을 보며 계속 말을 잇는다) 너 정신 차릴 수 있게 약 구하러 갈 때도 함께 갔어. 나 혼자 나갔다면 나 죽었을 지도 몰라. 뭐,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워낙 잘 써니까. (피식, 혼자 실없는 웃음을 짓고 잠시 말을 멈춘다.) ... 그래서 난 쥬드 씨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너 쓰러졌을 때, 내가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 그냥 모른 척 뿌리치고 제 갈 길 갔을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그 때 우리 짐을 다 뺏고 도망갔을 수도 있지. 내가 너 신경쓴다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도 나 잘 때 우리 짐을 뒤졌다고 네가 말했어. 짐 빼앗아서 혼자 튈 생각이었겠지?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골골대던 네가 일어난 거고. 그래서 싸우다 뭐.... (쐈다, 죽였다, 라는 말은 하지 않고 짧게 침묵한다) ... 어쨌든. 우리 함께 다닌 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였잖아. 어제 쥬드 씨가 물었어. 내가 너를 믿냐고, 정확히는 아직도 너를 믿을 수 있냐고. 그 때 난 그렇다고 답했어.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그런데 이젠 잘 모르겠네. 네딴엔 나를 위해서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잠시 말을 끊고, 고민하다 결국 말을 내뱉는다.) 너나 쥬드 씨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기도 해.
(상처 받았으려나? 차마 네 얼굴을, 표정을, 마음을 보지 못하겠다. 꿋꿋하게 앞만 바라보고 계속 걸어간다.)
그러니까, 지금 글을 다 완성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있잖아. 이 사태까지 왔는데도. 그러니까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내가 알던, 내가 믿던 사카노 카제가 맞는지, 네 말대로 정말 뇌가 널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듯한... 뭐 그런 느낌인데.... 하아, 나도 내가 뭐라는지 모르겠다. (머리를 벅벅 긁고는 중얼거린다.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일까? 생각이 복잡하고, 말도 잘 정리되지 않는다.)
사카노 카제:어렴풋이 알고 있었네. (쓰러진 중에도 희미하게 정신줄을 붙잡고 있긴 했으니. 더군다나, 제 큰 몸집을 너 혼자 옮기긴 어려울 것도 짐작했었다.)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그와 정이라도 쌓았나? (제가 말수가 적으니, 첫인상부터 말이 많아보이던 그가 어쩌면 그 짧은 시간동안 너와 내가 이때까지 나누었던 말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도 당연할 것이, 네가 들려주는 그 모든 것을 다 침묵 속에서 경청한 난 후에도 네게 돌아온 대답은 짧았으니까.) 사람의 속은 지내온 인생동안 쌓은 벽이 가득해 미궁 같아 가름하기 어려워. 늘 그랬지. (들려오는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수십년의 세월을 보낸 주름진 나무 와도 같이.) 그렇다면 내가 그를 쏘았듯 그대가 나를 쏠 수도 있단 말이겠군.
유여화:... 정.... 이랄 것 까지는.... 겨우 하루이틀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까. 나 그렇게 쉽게 정주는 사람 아니거든? (묵묵히 네 말을 듣다 한숨을 쉰다) 사람의 속은 가름하기 어렵다니, 부인할 수는 없지만 유독 너는 더 심한 것 같다? (마지막 당신의 말에 황당한 듯, 학교에서 벗어나 걸으며 처음으로 당신의 얼굴을 보고 말한다) 미쳤어?? 난 못 쏴. 난 못한다고. ...... 하하, 이래서 혹시 숨긴 거야? 그래, 숨길만하다. 다 까발려져도 답이 안 나오네.
사카노 카제:맞는 것 같은데…. (중얼거리고) 그걸 이제 알았나? (꽤 오랜만에 제대로 마주한 것 같은 표정에 들어나는 감정이라곤 그저 조금 피곤함, 그것 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긍정적인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들어나진 얼굴로 네게 대답했다.) 그건 아닐세. 내가 말수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일부러 거짓말까지 하며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
유여화:아니거든?! 나 지금 쥬드 씨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거든?!?! (충격을 받아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게 가깝겠지만) 그럼, 뭔데? 대체 왜 "글"을 완성하기 전에는 말해줄 수 없다는 거야? 이해가 안 가네. (다시 당신을 홱 돌아보며) 걸어가면서 써봐, 그 글이라는 거.
사카노 카제:아까는 그를 꽤 두둔하는 것 같더만. (너라면 충격 때문이던 정 때문이던 눈물을 가득 쏟아낼 줄 알았다.) 그러고는 싶네만... 걸어가면서 까지 쓰기에는 내 기력이 남아돌지 않네. 더군다나...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모르지 않는가.
유여화:뭐, 그렇지만..... ...... 그냥 지금 말해주면 안 되나? 나중이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 같은데. 아니면 날 설득해봐.
사카노 카제:그대의 말대로 나중에 말해도 똑같을 것이네. 지금 말해달라는 것은 조급함 때문인가? 아니면 그 다른?
유여화:..... 영원히 알지 못하게 될까봐? (예를 들어 네가 몇 분 뒤에 좀비가 된다던가,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사카노 카제:그건 아닐테니 걱정말게. 때가 되면 알려주겠네. 아주 늦지 않은 시기에. 왜, 이야기들이 전해지지 않고 속에만 쌓아두면 도깨비가 된다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나? (사실 이미 속에 도깨비 여러마리 쌓아둔 것 같긴 했지만,) 이미 좀비들로 우글거리는 세상 속에 도깨비 마저 풀어놓을 수 없지 않겠나. (답지 않게 농담을 내던졌다.)
유여화:..... 원래 사카노 카제의 몸은 도깨비 농장 아니였나? 원체 말이 없어서야. (가볍게 웃으며 농담을 받아친다. 분위기가 아주 조금이라도 풀어지는 것 같다!)
사카노 카제:그 도깨비들이 탈출하지 않도록 노력해보겠네. (따라 조용히 웃음을 내뱉는다.)
각자 다른 생각과 불안감을 품고, 당신과 카제는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한참을 걸어 정오가 될 때 쯤,
저 멀리 언덕 위로 십자가가 보여요.
언덕을 오르니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교회가 나옵니다.
아까 본 십자가는 교회 지붕에 달린 것이었나 봅니다.
가까이 가 보니 좀비들을 막기 위해 창문에 나무 판자를 덧댄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꽤나 오래 전의 것인지 먼지가 끼어 있어요.
카제는 지도를 들여다보더니 당신에게 말합니다.
사카노 카제:곧 캘버리가 나오네. 잠깐 이곳에서 쉬다 해가 지면 이동하도록 합세.
유여화:그래...~ (아마 여기서 글을 쓰겠지. 그러면 곧 무슨 일인지 알게 될 거야. 아까는 조르듯이 재촉했지만, 막상 진실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글, 여기서 쓸 거지?
사카노 카제:그래, 어서 끝내야 그대에게도 알려줄 수 있지 않겠나.
유여화:어어, 그건 그렇지... 그래. 그러면 나는.... 그동안 쉬고 있을 수밖에 없겠네. (무력하다... 이런 기분 언짢아.)
사카노 카제:아니면 혼자 교회 안을 둘러보지 않겠나? (조심스래 교회의 정문을 열고,) 창문으로 막아두어 밖에서 들어왔을 것 같지는 않네.
교회의 정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예배당 끝에 걸린 십자가입니다.
인기척이 하나 없는 예배당 안은 고요합니다.
유여화:그래.... (십자가를 멍하게 바라보다 천천히 예배당도 둘러본다.) 내가 종교는 없지만... 왠지 좀비 하나 없이 조용하고 잔잔하게 십자가를 보고 있을 수 있다니, 하하. (구경하던 눈은 당신에게로 향한다) 교회 안에서 머물 거지?
사카노 카제:지금은. (그리고 예배당 앞에 짐을 풀고 책과 펜을 꺼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기시감이 느껴져 물었다.) ...혹시 쥬드가 내 글을 읽었나?
유여화:..... 글쎄?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 짐 뒤졌다면서, 그러면 읽지 않았을까?
사카노 카제:누군가가 건드린 흔적이 있네. (뜻을 모른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문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유여화:그래? 나는 안 봤어. 좀비가 건드렸을 리는 없으니 쥬드 씨가 봤었겠네. (별 생각없이 말한다) 그정도로 완성되기 전엔 누구도 읽어선 안 되는 극비문서야?
사카노 카제:(시선이 가늘어졌다. 그런다 한들 제가 미리 그를 죽였을 리도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문제 없는 거 보니 괜찮은 거겠지. (그리고 자리 잡고 글을 써내려간다.)
당신은 카제를 방해하지 않기로 하고 예배당 안을 돌아봅니다.
예배당의 정면에는 [단상]이 있고,
위에달린 [십자가]를 중심으로 양 옆에는 [피아노]와 [계단]이 보입니다.
유여화:(피아노를 살짝 뚱땅거려본다... 이정도로는 좀비가 처들어오지 않겠지)
그랜드 피아노의 뚜껑을 열어 건반을 두드리면,
오래된 것을 증명하듯 건반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녹슨 피아노 소리가 울립니다.
피아노 위엔 사람들이 사용했을 찬미가와 달력이 놓여있습니다.
날짜마다 엑스표가 쳐진 달력은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의 것입니다.
달력을 넘기자 달마다 교회의 중요 행사들이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좀비사태가 터진 이후부턴 각 날짜칸마다는 엑스표시가 쳐져 있는게,
마치 이 교회안에서 생존한 일수를 센 것 같습니다.
엑스 표시가 끊긴 날짜는 xx월 xx일,
좀비사태가 일어나고 대략 한달 후 입니다.
이 칸은 엑스 표시 대신 동그라미가 쳐져 있네요.
유여화:(왜 동그라미지.... 카제에게 보여주려다 방해하지 않기로 했으니, 다시 조용히 혼자만 생각한다) 동그라미는 좋은 의미 아닌가? 으음, 안전지대로 갔나...
(시선을 돌려 십자가를 바라본다)
알 수 없는 기분을 뒤로하고 예배당 중앙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높고 까마득해요.
십자가에 손을 대어보니 어라,
뭔가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유여화:엥? (소리의 근원을 찾는다)
십자가의 뒷면에 손을 넣어보니 차갑고 울퉁불퉁한 감촉들이 느껴지는게…
열쇠묶음 입니다.
교회의 열쇠들을 여기에 두었나 보네요.
유여화:십자가는 교회에서 중요한 물건 아냐? 그런데다 열쇠를 둬도 되나... (하지만 열쇠묶음을 챙겨 짤랑짤랑, 들고 놀며 단상 바닥을 보며 느리게 걷는다)
나무로 된 단상은 가슴께까지 오는 높이입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 단상 위에는 성경이 놓여있습니다.
먼지를 걷어내고 성경을 들어올리자 사이에 펜이 끼워져있습니다.
펜을 따라 성경을 펼치자,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렸을 때 사용했을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시편 38장 22절
당신은 이 문장으로 이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드린 예배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멸망이 도래했으니 구원을 바라는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유여화:(아 단상을 잘못 이해했다 단상 위를 걸었다니 미쳣나봐) 흠흠.... 하지만 이런 재앙을 냅둔 것도... (긁적, 열쇠를 짤랑이며 계단으로 가본다)
좁은 나선계단입니다.
위층의 다락방으로 향하나 봅니다.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는 [기도실]이라는 팻말이 있습니다.
유여화:(안전하면 저기에나 틀어박혀 있을까... 기도실로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가자 문 하나가 있고,
그 문엔 기도실 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문이 안에서 잠긴 건지, 잘 열리지 않습니다.
열쇠가 있어야 할것 같아요.
유여화:이걸로 열 수 있지~ (열쇠 짜잔)
당신은 아까 얻은 열쇠들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보았습니다.
몇번의 시도 끝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엄청난 악취가 느껴집니다.
당신은 이 악취가 슬프게도 익숙합니다.
지독하게도 맡아온, 시체가 썩는 냄새입니다.
이성 확인합니다.
유여화:
SAN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변동 없습니다.
당신은 눈살을 찌푸리고 소매로 입을 틀어막은 후 어둑한 기도실 안을 돌아보았습니다.
좁은 기도실 안을 열명 정도 되는 사람들,
아니, 이제는 썩어 백골이 되어가는.
시체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시체들의 정 중앙에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피워낸 향로가 보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삶을 이어가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이곳에서 단체로 생을 마감했나 봅니다.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구원을 바라면서 말이에요.
그들의 마지막 기도대로,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았을까요?
유여화:아... 그 동그라미가 단체자살한 날인가...
......... 쩝, 그렇다고 죽을 필요까진....
(짧게나마 묵념을 하고 기도실을 빠져나온다)
당신은 카제에게 돌아왔습니다.
몸을 웅크리고 미친듯이 노트에 무언갈 적어내려가는,
이젠 익숙한 그 뒷모습이에요.
유여화:(그래.. 열심히 적어라....) (익숙하고 슬픈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바닥에 드러눕는다)
한참을 제 일에 열중하던 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을 향해 다가섭니다.
그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지어져있습니다.
사카노 카제:완성했네, 유여화. 드디어 완성했어.
유여화:어어 그래 (뭔가 되게 대작을 완성한 소설가같이 말하네~라고 생각한다)
(몸을 일으키고) 고생했어. 그럼 이제 읽어봐도 돼?
사카노 카제:(네 앞에 앉고는 노트를 건네준다.)
노트 안은, 예전에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글들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유여화:(긴장된 표정으로 노트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화학 공식인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무슨 내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여러 언어로 적힌 글 들 중에.
'치료제'라는 말이 유독 많이 보입니다.
유여화:(아.. 화학공식하니 생각난다... 내가 읽었었네..ㅋㅋ...)
치료제? 이거 뭐야? 치료제를 만드는 방법인가?
사카노 카제:그래. 정확한 건 연구자들이 밝혀주겠지만.
유여화:어어 진짜야??????? (농담식으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깜짝 놀란다)
사카노 카제:우리가 함께 지나온 곳들 중 연구실이 있지 않았나. 그 곳을 지나온 후, 꿈을 꾸었다네. 지나치게 현실적인 꿈을. 남자가 나와 거래를 하자고 했어. 치료제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네.
유여화:어... 그래... (꿈이라는 소리를 듣자, 당신이 그저 망상을 하고 있는 거란 생각을 한 채로 계속 당신의 말을 듣는다)
사카노 카제:믿지 않는 듯한 반응이군.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 계속 머릿속에서 그가 알려주는 것을 써내려갔어. 이 노트에. 완성되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는 것이 조건 중에 하나라 그대에게 말을 하지 못했네. 미안하네.
유여화:... 꿈이라고 하니까. 아무리 현실적이라고는 해도..... ...나도 미안. (믿지 못해서ㅡ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럼 이걸 완성했으니 캘버리에 들고 가서 증명해보면 되겠네. 카제, 너도 치료하면 되고, 그렇지? (밝게 웃어보인다. 그래, 이렇게 해결방법을 찾은 거야.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사카노 카제:그들이 감염된 이를 받아주겠나? 모든 사람들은 그대와 같지 않아. (노트를 돌려받아 가방속에 고이 넣으며) 총구를 겨누는 것은 쉽지.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더욱 쉬울테고.
유여화:하지만 우리가 치료제 만드는 법을 가지고 있잖아? 거래를 하면 되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사카노 카제:(그게 얼마나 소용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물렸다.) 원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24시간이 지난 후 좀비로 변한다고 했지만, 그가 치료제의 공식을 완성하기 위해서 100시간으로 늘려주었어. (손목시계를 보고) 이제 16시간이 남았네.
유여화:(사실 꿈에서라고 했으니 믿기지 않지만... 사기라도 거래만 하면 장땡이지 않나?) ? 어? (아니, 100시간으로 늘어났다면 그 꿈이 진짜라는 증거 아닌가? 비현실적이기는 해도 좀비도 현실적이진 않으니.) 아니, 그러면 빨리 가야지!!! 빨리 안전지대로 가자고.
사카노 카제:(잠깐 고민하다) 아쉽지만... 내 몸이 이꼴이라 지금 나간다면 또 쓰러질 것 같네. 조금 쉬었다 가겠나? 해가 지면 출발할 수 있도록. 캘버리까지는 하룻밤만 걸어가면 될 걸세.
이미 각오했던 일이라서 일까요, 당신을 바라보는 카제의 표정은 평온합니다.
유여화:그럼 아슬아슬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
힘들 만도 하지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로 그 ‘치료제’를 적어내리느라 카제는 몇날 며칠을 밤을 샜으니까요.
말을 마친 카제는 예배당 중앙에 옷가지 몇개를 펴고 그 위에 쓰러지듯 눕습니다.
유여화:대신 사라지지는 말어? 어디로 가지는 말란 말이야.
사카노 카제:갈 힘도 없네. (눈을 감은체로 대답한다) 잘 자게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밤인사를 건네고 잠을 청한다.)
유여화:그래, 잘 자고 힘내서 가자. (힘내서 가자는 말을 힘줘서 말한다. 꼭, 자신과 안전지대로 가야만 한다는 듯이)
카제는 눈을 감고 기절하듯 잠에 빠졌습니다.
예배당 안은 고요하고,
공기중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창틈사이로 비치는 오후의 나른한 햇빛에 의해 십자가의 그림자가 예배당에 길게 깔리면서,
십자가의 음영은 공교롭게도 잠든 카제를 가로지르네요.
잘 자라는 당신의 인사 때문일까요,
아니면 마침내 노트를 완성해서 일까요.
곤히 잠든 카제의 모습은 그 어느때보다도 평온해보입니다.
당신과 카제가 함께 할수 있는 남은 시간은 앞으로 16시간.
내일 당신이 잠에 들땐 카제가 없이 혼자 잠들어야 하겠죠.
당신은 언제나처럼 잠든 카제의 옆에 누웠습니다.
……
언제 잠이 든걸까요. 눈을 떴을때 가장 먼저 보이는건 당신을 내려다보는 카제입니다.
사카노 카제:잘 잤는가?
해가 지는 시간인지 아직 잠이 덜 깨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주변은 온통 붉은 빛으로 일렁입니다.
사카노 카제: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네. 출발합세.
유여화:나름? (깨어있는 당신을 보고 안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얼른 가자고. 가서 거래를 하자.
당신과 카제는 끼니를 해결하고, 함께 걷는 마지막 여정을 떠났습니다.
밤이 되고, 별이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자동차나 건물의 불빛도, 공장의 매연도 없는 밤하늘은 맑고 선명합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 보면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은 매우 아름다워요.
안전지대가 정말로 가까워졌는지,
이따금 지나치는 표지판들은 캘버리 교도소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둘은 언제나처럼 한참을 걸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 카제는 당신의 옷깃을 당기며, 지평선 너머로 손짓합니다.
6월 13일 6am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선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있고,
그 반대편으로는 캘버리 교도소, 당신들의 목적지인 안전지대가 보입니다.
이 긴긴 여정의 끝이 보여요.
작게만 보이던 캘버리는 이제 꽤나 시야에 가까워졌습니다.
유여화:하 드디어
사카노 카제:(손목시계를 확인하고) 한 시간 정도 남았군. 시간에 맞게 도착해서 다행이네.
유여화:보여? (카제를 돌아보며) 드디어 다 왔다고! 빨리 가자, 거래해야지. (계속 거래 이야기만을 반복한다. 불안해서인지, 죄책감인지, 알 수 없는 부정적 감정이 든다)
사카노 카제:(한발짝 뒤에서 네 뒤로 해가 뜨려는 하늘을 바라본다.) 잠깐, 숨을 돌리지 않겠나? 주위를 둘러보고. 고지가 코앞이니,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않겠나. (마지막 100시간 내내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네 말을 너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유여화:시간 없다면서?? 갑자기 왜 이래? 빨리 가야할 때 천천히 가자고 하고. 안전지대 도착하면 숨 돌려. (굳은 얼굴로 눈은 오직 교도소만을 향하고 있다)
사카노 카제:그들이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대도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면? 이 노트가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네.
유여화:그러니까 거래하는 거지. 뭐, 교도소니 너 하나 가둘 공간쯤이야 넘쳐나지 않겠어?
사카노 카제:그대는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군. 생존자는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감염자’를 보실 경우 속히 처단하라. 연합정부 소속 안전지대에서 그리 말했지. 지금가면 거래를 하기도 전에 사살 당할 것이 뻔하네.
유여화:......그건 잊고 있었네. (그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다.) .... 하아...... (하늘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그래서, 나만 그 종이를 들고 교도소로 들어가?
사카노 카제:그래, 그래야 할 걸세. 난 그대가 바라던 대로 조금 천천히 시간을 보낼테니. (너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고는) 함께 하겠나? 그날처럼 달이 밝지는 않지만, 이곳도 나름 운치가 있지 않는가?
유여화:그래... (더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기분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좀비화는 멈출 수 없는 사실이니.) ... 근데, 치료제 적는 거엔 왜 그렇게 열을 냈어? 어차피 감염이 되었다면, 나몰라라 할 수도 있잖아. (하늘을 보던 고개를 살짝 돌려 당신을 바라보고) 그 거래, 왜 했어?
사카노 카제:(거래 때문에 감염됐다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그대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나? 한번의 선택으로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데. (딱히 인류애가 넘쳐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유여화:나? 아닐 것 같은데. (딱히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타입은 아니다.)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않아? 오히려 나보다 더할 것 같은데. 여전히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사카노 카제:의외로군. 그렇게 세상의 모든 찰나를 아끼는 것 같은 그대가? (문득 하늘 위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본다. 그러면 바람의 호선을 두 눈으로 쫓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도깨비가 되어선 안돼. 그러니 바람과도 같이 흘러가게 냅두어야하네.
유여화:(무슨 말인가...) 그 말은 치료제는 반드시 알려져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뜻인가? (게슴츠레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는다) 그래... 이런 미친 세상도 끝날 때가 되었지.
근데, 그런 세상을 위해 희생되는 사람이 내 주변사람이면 안 돼. 난 못 견뎌. 난 평생 죄책감에, 너와 함께 여기로 오던 그 시간들에 그림자를 물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무르기만 할 거야.
사카노 카제:해석하는 건 독자의 마음이네. (늘 그러하듯, 네가 이해하지 못할 이야깃거리만 잔뜩 늘어놓았다.) 어떤 죄책감? 그대는 폭풍에 흔들린 나뭇가지에게 감히 흔들렸다고 죄를 묻나?
유여화:널 버리고 나만 살아났다는 죄책감? 따지고보면 우린 전우잖아. 하하. (당신의 말을 듣고 조용히, 차분하게 말한다) 그 흔들린 나뭇가지가 고이 품었어야 할 둥지를 떨어뜨렸다면야. 죄를 물을 수도 있지 않겠어?
사카노 카제:나라면 묻지 않겠네. 그 아무것도. 애초에 떨어진 둥지는 나뭇가지의 잘못이 아니며, 그대가 말한대로 우리가 전우라면 이 이야깃속에 둥지는 없다네. 돌풍에 휘둘리는 비탈길의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존재하지.
유여화:그래... 그렇겠지. 근데 어쩌나, 나는 물을 것 같아, 나 자신에게. 왜 흔들렸을까, 왜 그 가지를 더 단단히 붙잡지 못했을까, 왜 돌풍에 꺾여 무심히 떨어지는 그 가지를, 땅에서 그저 썩어가는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는가. (차분히 말을 잇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미세한 떨림을 가지고 있다) 나는... 원래 그래. 내 성격이 그래. 이럴 줄 몰랐다면, 날 잘못 안 거야. 그럴 만도 하지. 같이 있던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으니? 짧다고도 못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내가 오히려 죄책감을 안기는 꼴이 되나? 미안해.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쉰다)
사카노 카제:이해하네. 기만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 속에 이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였으니, 네가 그런 성격인 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둔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더라도 너는 네 감정이 표정 아래로 투명하게 보였다.) 그대라면 나뭇가지가 아니라, 계절을 맞아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고도 마음을 쓸 것 같았다네. 그러니, 숨을 돌릴 수 있는 거겠지. 변해가는 세상을 보며 다시 돌아올 것들을 기대하며,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게 그대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 생각하네.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큰 자산이 될 거야. (한숨이 일광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이렇게 고심하는 것을 보아하니 차라리 매몰차게 말을 끊어내고 그때 헤어지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군. 바람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를 늘 들고오지. 그래서 바람吹이라고도 부르는 걸지도 모르겠네. 그러니 오늘 내가 그대에게 전해준 이야기들은 바람이 싣고 온 도깨비라네. 부디 그 귀신들이 그대를 오랫동안 괴롭히지 않길 바라네.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니까. (바람을 닮은 이야기꾼은 그의 삶을 차지한 타인의 이야기만큼, 삶에 주체성이 없었다.)
유여화: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한다니.... 새로운 인연이야 있겠지만, 그게 네가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 누구든 누군가를 대체할 수는 없어. 그래, 인연에는 헤어짐이 반드시 있으며, 헤어짐 뒤엔 새로운 인연이 온다고들 하지. 근데 너랑의 끝이 이럴 줄은 몰랐네. 안전지대까지 잘 왔다고, 잘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을 손에 푹 묻고 세수하듯 씻어내린다) 곧 죽는다는, 그런 너를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그저 무력하게 보고만 있으려니 참 미치겠네. 바람, 그래.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찰나의 순간이, 경험이, 삶을 바꿀 수도 있는 거 알지? 그래, 지나가는 바람.... 하지만 그 바람을 맞던 순간, 살갗의 느낌, 청량한 느낌은 영원하겠지. 종종 생각이 날 거야. (똑바로 당신을 올려다본다. 눈에는 체념과 슬픔이 어우러진, 복잡한 기분이 느껴진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문득 생각이 나고, 그리울 거라고.
그리고..... (희미한 웃음을 보이며) 잘 가라고. 고생 많았다고.
저 먼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밤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해가 뜨고,
주변이 차츰 따듯한 빛으로 물들어갑니다.
이 순간이 영원하다면 바랄 것이 없겠어요.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흐르고,
동이 튼 주변이 환합니다.
유여화:... 이제 몇 분 남았어?
사카노 카제:특별한 찰나들을 만들어주어서 고맙네. 그대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으며, 덕분에 이 귀한 광경을 좀더 뜻깊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네 질문에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건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대의 말대로 어제의 태양으로 오늘의 일출을 대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번복되는 찰나를 소중히 하다보면 남는 것이 훨씬 더 많겠지. 그러니 그리워해. 그리워 하다보면 잊혀질 감정들은 잊혀지고, 남을 감정들은 남지 않겠나. 다만 그리움을 죄책감으로 착각하지는 말게나. (그의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고맙네. 그대도 고생이 참 많았어. 잘 가게.
유여화:내가.. 뭘 했다고 고생이 많아... (노트를 받아들고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한다) .... 정말 치료제의 득을 볼 생각은 없어? 아니, 내가 치료제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지만, 너 좀비되어도 어딘가에 숨겨뒀다가 치료할 수는 없을까? 하하... 정말 이대로 갈 생각이야? 내가 잘 가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봐.
사카노 카제:(딱히 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대라면 뭘 못하겠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에 내가 괴물이 되어 이미 그대와 같은 사람들을 물어 뜯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괜찮다면 시간이 흐른 후 횡폐한 무질서의 땅에서 나를 찾아. 기다리고 일을테니. (손목시계를 바라보고) 어서 가게. 더 있다간 험한 꼴을 보이겠군.
유여화:아니 땅이 얼마나 넓은데 어떻게 찾아? 찾지 말라는 뜻이야? 그 교회, 네가 글을 완성했던, 우리가 마지막에 쉬어갔던 그 교회 안에서 문 잠그고 있어. ... 시간이 된다면 말이야.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정말로 구원해준다면, 최소한 그가 자신을 가둘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으면. 그래서 먼 훗날 내가 찾을 수 있도록.)
그는 지킬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 돌아가요, 유여화.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유여화:(간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가야지...)
(마음이 약해질 수 있으니 돌아보지 않으려 한다.) 하.. 내가 아까는 잘 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카노 카제:그대가 찾는다면 다시 볼 수 있을 걸세. (멀어져가는 네 뒷모습에 전한다.) 바람은 구애받지 않으니까.
안녕,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당신은 등을 돌려 안전지대를 향해 달음박질합니다.
당신은 숨을 몰아쉬며 눈 앞의 까마득히 높은 콘크리트 벽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옵니다.
잠시후 높은 철문이 당신 앞에서 열리는 순간,
등 뒤에서 타앙,
하고 가슴을 찢는 날카로운 총성이 들려옵니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쿵, 하고 문이 닫히고..
비로소 당신은 안전지대에 도달했습니다.
수많은 생존자들이 당신을 반겼지만 당신 곁에 카제는 없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것이 좀비 사태 이후 처음이건만, 어쩐지 허전하게 느낍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당신이 안전지대에 합류하고 수 주가 지났습니다.
연합정부는 노트의 내용이 치료제를 만드는 공식이라는 것을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몇몇 학자들이 이 공식을 본 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오늘, 처음으로 노트의 공식을 사용한 실험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치료제의 이름은 노트의 작성자인 사카노 카제의 이름을 따서 Zephyr이라고 불러질 예정이라고 하네요.
그 과정 동안 수십개의 사본이 만들어지고
오늘에야 비로소 당신의 손에 노트의 원본이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겨를이 없어서 펼쳐보지도 못했던 노트는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타 처음보다 더욱 낡고 너덜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