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은:내가 무슨 어린애인 줄 알아? 장갑도 끼고 있잖나. (투덜거리며 당신의 옷자락을 놓는다. 두어번 툭툭 쳐서 주름 피곤 성당 내부로 시선 돌렸다.) 여기 혼자서 지낸다면 외롭겠소. 춥겠고... 온기 하나 없으니... 나 원 참. (발걸음 이끌어 당신에게서 떨어져 신도석을 향했다. 미사를 드리는 곳이지, 이곳. 아주 이전에는 이곳에 앉아서 미사를 본 적은 있었는데. 그마저도, 신에 대한 믿음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장의자들은 이미 망가지거나 쿠션이 파지거나 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때는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앉아 미사를 올렸겠지요.
당신이 바로 세계를 멸망시키는 주체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눈 부비적...) 하... 주님...
다비드 로템:추운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던데. (뒤늦게 너 따라 신도석으로 향한다. 앉지 않고 바라보기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이 리은:... 외롭지 않느냔 말이었는데도. 사람의 온기는 느끼고 사는가, 해서. (눈 감고 미간 꾹 눌렀다. 피곤한가. ... 아니면... 아니. 생각하지 말자. 한 손으로 신도석의 나무 부분을 쓸었다.) ...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며 지냈소. 다른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여서,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일들을 했고... 난, 그것으로 행복했어. ...살아가는게 행복하더라고. (신도석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해방으로 걸음한다.) 살아있기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
다비드 로템:(그에 대한 답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린다.) ...모르겠네. 사람의 온기는 언제나 느끼지. 이곳은 성당이잖아. 멸망을 앞둔 인간은 언제나 절대적인 존재를 찾는 법이고... (그럼에도 쓸쓸한 시선이 네 손끝을 따라잡는다.) 행복했구나. (마치 그 사실을 확인받듯 되풀이한다. 네가 고해방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표정을 짓지만 붙잡지는 않는다.) 살아있기에 행복해질 수 있다, 라... (마치 이전에는 그걸 몰랐다는 것처럼 답하네. 그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조용히 납득하고 휴게실로 발걸음 돌린다.)
한 때 당신이 들락거렸던 고해실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장소입니다.
고해방 안쪽의 벽면과 의자는 거의 허물어진 상태입니다.
탁자처럼 튀어나온 나무 판자 위에는 아슬하게 성경책이 놓여 있습니다.
성경책을 살피면 군데군데 듬성듬성 빠진 페이지들이 있습니다.
이 리은:(눈동자 도르륵 굴렸다. 당신이 간 것을 확인하더니)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밤이 되니 다비드는 익숙하게 당신을 휴게실로 이끕니다.
난로가 있는 휴게실에서 밖에 홀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휴게실 안은 조악하지만 나름 사람이 살 만한 모양새가 구축된 상태입니다.
오랫동안 쓴 듯한 매트리스 위에는 허름한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습니다.
다비드 로템:매트리스는 너가 써. (어디선가 캔스프와 통조림 꺼내와 네게 건네준다.)
그는 당신에게 물자를 내주는 것을 굉장히 기꺼워하며 망설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앞으로 근 사흘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물과 음식밖에 남지 않았고,
지금으론 다비드가 주는 물자에 어느 정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리은:... 혼자 쓸 생각은 들지 않소만... (주는 것들을 받아들고 손 끝으로 톡톡 쳤다. 장갑 탓에 별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이런 것을 내어주어도 괜찮은고? (난로 근처로 뽀르르 가서 앉았다. ... ... 추위 많이 타는걸...)
다비드 로템:그러면 같이 써? (깜박) 그럼. 더 줄까? (난로 근처로 가는 너 가만히 보더니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이 리은:응. 뭐가 문제지? ... ... ... (잠시 뜸... 있다가 헛.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그러니까... 혼자보다는 둘이 이, 있으면 따뜻하다는 말이지...! (낮게 욕 뱉으며 앞머리 헝클었다. ... ... 됐어... 잊으시게.) 이거면 충분하오. 이 세상에 이런 것들을 선뜻 내어 주는 이가 있음에 감사하는게지.
다비드 로템:....네가 바라는 거라면야.... 어려울 것도 없지만... (욕. 할 줄 아는구나. 혹시 사과해야하나 싶어 빤히 본다...) 아픈 건 아니지? 얼굴이 붉다. (그러더니 찻잔에 찻잎을 타 네게 건넨다. 향을 맡아보면, 국화차다.)
이 리은:... 바, 바라는... ... 바라... 바라는... (말이나 마구 더듬는다. 이렇게 휘둘리는 기분이 들어서야 나 참. 괜스레 헛기침이나 하곤) 누군가의 숨소리를 들어야 제대로 자는 편이라 옆에 있는 것으로 족하오. 같이 눕는 것은 알아서 하시게. (차 받아서 가만히 향 맡았다. 조금은 진정이 되나.) 왜? 아프면 간호라도 해주나? (호오- 불고는 한모습 아주 살며시 홀짝...) 아뜨...
다비드 로템:(말을 더듬을 줄도 알...고. 그러는 네 모습 빤히 바라보던데, 이윽고 빛바랜 웃음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온다.) 간호사 자격증 뭐 하나 없는 사람이 해주는 간호도 괜찮다면야 당연히 해줄게. 첨언하자면, 내 기도는 이제 큰 효력이 없어. 원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리은:(당신의 웃음소리에 무어라 궁시렁궁시렁 거리며 찻잔이나 만지작거렸다. 누구든 그러잖아. 당연한거 아냐? 같은 자기 합리화에 가까운 말들을 중얼거리며 하다가 시선이나 슬며시 돌렸다.) 간호는 마음이 중요한 법이외다. 난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오. 상대를 위할 수 있는 마음이면 믿음과 다를 것이 무어요? ... 네 기도가 효력이 있든 없든, ... 네가 나를 위해 노력을 해주었다는 것이 중해.
당신은, 진심으로 그가 상대를 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나요?
이 리은:(말 내뱉고 보니 실로 우울감이 드는 듯 했다. 마치 예전의 자신의 그림자가 다시 저에게 드리워지는 듯 해서.)
정신
기준치: |
80/40/16 |
굴림: |
4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퍼뜩 과거 당신의 집에 불을 질렀던 다비드를 떠올립니다.
당신의 몸에 칼을 찔러넣는 다비드와 깨진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 떨어진 칼이 겹쳐보입니다.
다비드가 또다시 당신을 죽이려 든다면 어떡하나요.
이 리은:(제 목덜미를 무심코 더듬는다. 기억에 각인된 심장의 고통이, 온 몸의 고통이 발작하며 비명을 지르는 기분이다. 죽기 싫다. 죽기도 싫고, 다른 사람을 해치기도 싫고, 애착하는 이들과 함께 지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 추운 곳은 자신 홀로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까. 몸을 웅크렸다. 죽기 싫다. 그러니 순순히 죽어주지 않을 거야.) ... 춥다. 그냥 다시 따스해지고 싶었던 것 뿐인데. (지금의 자신은 이전의 얼기설기 붙여서 만든 꽃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다비드 로템:(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가 없다. 춥다는 말에 난로를 더 따뜻하게 할 수 없나 확인하더니 매트리스 위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너만 괜찮다면 같이 자자. 붙어있으면 두명은 누울 수 있겠지.
이 리은:(난로의 소리를 들으며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서 일어났다.) ... ... 자면서 움직임은 없으니 편히 있어도 좋을거요. (주기도문을 외울까, 애국가를 외울까. 그런 시덥잖은 것들만 생각하며 머리 환기했다.)
다비드 로템:거기 두면 내가 치울게. (뒤늦게 한 침대에서 누구랑 같이 자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다.) ...먼저 누워있을래? (이게 맞나?)
이 리은:(다시 뽀르르 가서 매트리스에 가서 잠시 고민했다가 슬며시 앉았다가 재빠르게 성호 그었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아니 그래도. 이 순간 만큼은 좀 찾아도 괜찮지 않나? 어떻게 외간 남자랑 누워서 잔다는 생각을? 머리 싹 비우고 탈싹 누워서 제 옆자리를 톡톡 쳤다.) 나 몸 식소. 빨리 오게.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3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매트리스 바닥에 깔려 삐져나온 종이를 발견합니다.
다비드 로템:기다려봐라. (매트리스에서 몸 돌리고 찻잔 씻는다. 달그락 달그락...)
이 리은:(작게 자장가나 흥얼거리며 힐끔 눈치 본다. 당신이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매트리스 바닥에 깔린 종이를 슬며시 가지고 와서 봐본다.)
당신은 기이한 살해 내지 죽음의 방법을 발견합니다.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
76/38/15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다비드는 도대체 뭘 하고 살았던 걸까요?
다비드 로템:(식기 다 치우고 네 옆에 가서 앉는다.) 진짜 같이 누워?
이 리은:사람은 자고로 등 따시게(전혀 그렇지 못하지만) 자야 하는 법이랬소. ... 나 지금 엄청난 결심을 했는데... 무용하게 만들지 말고 ... 빠, 빨리... 와...
다비드 로템:대체 무슨 결심을 (옆에 누워서 조심스레 널 품에 안는다. 작은 온기가 제법 낯설다.) 이제는 안 추워?
이 리은:(이런 널 견딜 결심, 이것아.) ... 다른 사람한테는 별 것 아닌 결심.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의 온기에 저도 모르게 조금 파고들었다. 고개 들어서 마주할 생각을 못하겠다.) 이제는 퍽 따숩소. ... 같이 있을 수 있으니, 좋군.
다비드 로템:(무지한 얼굴) 그런 결심도 다 있구나. (가슴께가 간지럽다. 딱, 한사람 분의 온기가 이토록 따사로울 수 있구나, 싶어서. 물끄러미 제 앞의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본다.) 아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일들을 했다고 말했지. (뜸...) 어떤 일들을 했어?
이 리은:여러가지 일들이 있는 법이지. (두어번 꼼지락 거리다가 이내 당신에게 기대곤 눈꺼풀 감았다. 무어라고 해야 할까... 제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침음 잠시 내었다가) 만나게 되는 아이들을 가르쳤어. 하나하나 품에 안고 노래를 불렀고... 다친 이가 있다면 야매 지식이지만... 치료 해주었고... 사람과 사람의 연을 이어주는 일을 하며 지냈소. (막상 나 자신은 그 누구와도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지만.) 사람이 사람 답게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리 거창한 것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나. 난 그들에게 타인을 아끼는 법을 알려주었을 뿐이니 그 이후는... 알아서들 하겠지.
다비드 로템:(설명하는 네 말에 귀 기울인다. 망막 위로 그 광경이 선명하게 새겨지는 듯해서... 웃음을 지었나? 어차피 네게는 보이지 않을 표정이다.) 좋은 일들을 했네... 멸망이 도래한 세상에서. (그래서 아쉬워?)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람답게 행복해질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할래?
이 리은:(반대되게 표정이 흐려졌다. 그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이는 무엇을 품을 수 있나. 되는대로 집어 담는 것이다. 그들의 웃음, 눈물, 아픔과 고통 모든 것들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 뿐이니 별 것은 아니라고 답하겠소. 해야 하는 일이지 않나. (올곧고 온전히 사랑 받을 수 없음은 아쉽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지 않나. 언제나 그리 해왔고, 앞으로도 그리 할 것이외다. 물론 난 제멋대로인 사람이니 내킨다면, 이라는 가정이 붙지만.
다비드 로템:(그래서였나보다. 품에 안고자 한 이 작은 몸이 이다지도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차디찬 공기 중으로 자꾸만 흩어지는 열기에 살갗이 그을리는 이유가.) 그들에게는 별 것이 아닐걸. 해야 하는 일이더라도... 누군가가 너에게 강요한 것은 아닐 테고. (....) 그래, 너라면 그렇게 답했을 것 같아. (문득 시선들어 창밖을 응시한다.) 눈이 많이 내려. (나지막이 소리 내더니, 천천히 눈을 감는다. 열기에 숨이 막힌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중얼거림 끝에는 마치 이 재앙을 종결시키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듯도 합니다.
어쩐지 공포가 미미하게 당신을 음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곧고 온전히 사랑 받을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이 리은:(다른 이들의 모든 것을 품고 나아가며 깨진 틈 사이로 감정이 세어 나온다. 이마저도 내가 품어야 하는 것이라면 기껍게 그리 하겠다마는, 자기 자신의 감정도 갈무리 못하는 이가 무얼 온전히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이 모든 것에 한 단어를 가져다 붙였다. '그럼에도.' ) 나는 그저 내가 뱉은 말을 지키려 노력을 할 뿐임에도, 그럴까? 강요한 것은 아니나,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내뱉은 모든 것의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의 도리. 다른 이가 하지 않는다 하여도 같이 그만둬버리면 나 또한 똑같은 이가 되고 마오.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 앞이 검다.) 아침에는 그치겠지. 그리하면 떠날 수 있을 거야.
그도 그럴게, 계속해서 쉬지 않고 눈속을 거닐었잖아요.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의 온기가 제법 따뜻합니다.
오늘이야말로 쉘터로 출발하기에 적합한 날씨네 요.
내일 당장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건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죠.
이 리은:(제 눈을 비볐다. 역시 남아 있을 리 없지. 빈자리 손으로 두어번 쓸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널 사랑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이곳에 남을 이유는 되지 않기에.) ... ... 에고. 오늘도 날이 퍽 춥겠소. 다가올 봄의 매화 향이 퍽 짙겠구료. 그럼 이제 슬슬 가야지. 인사를 못한 것은... 아쉽게 됐지만...
마지막으로 다비드는 어디에 있는가 살피면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별 인사 내지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려고 해도 다비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리은:... 마지막까지 섭섭하게 구는군. 매정하긴. (입술 쭉 내밀고는 짐 챙겨서 밖으로 걸음했다.)
눈이 한가득 쌓인 길을 푹푹 밟으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성당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그나마 눈보라가 휘몰아치지 않으니 이동이 편한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생명은 거의 남지 않았을 텐데.
이 리은:
듣기
기준치: |
80/40/16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 리은:...? 다비드? (끔박이며 고개를 돌려서 당신을 보고 아주 이전에 했던 것처럼 손 두어번 흔들었다. 굿바이- 라는 것마냥)
제대로 복장을 갖추지도 않아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가 눈에 띕니다.
이 리은:뭐, 뭐야? (순간 당황한 탓인지, 눈에 발이 제대로 걸려서 휘청. 조금은 꼴 사납게 뒤로 넘어졌다. 에고... ) 왜 그러고 오시오? 대체 왜 이러고 와, 미련하게!
다비드 로템:아, (뒤늦게 손 뻗어 너를 붙잡다가 그대로 같이 눈 속으로 엎어진다. 한참 거친 숨을 고르다가,) 가지, 마... (낮은 음색으로 중얼거린다. 눈이 왔다면 파묻혔을.) ....행복해질 기회를 주겠다며.
이 리은:(제 위에 있는 당신을 당황스럽게 보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한 손을 뻗어서 당신의 뒷머리를 감싸고 다른 팔로 상체를 받쳐 일어났다. 당신의 이마에 제 이마를 꿍!) 그렇다고 이렇게 얇은 것이나 두르고 와?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던건 너였잖아! (버럭 성을 냈다. 그럼에도 곧이어 누그러졌다.) ... ... 나는, 네 행복이 뭔지 몰라. 그것을 모르는 상태로 네게 행복을 줄 수 없네. 뭐가 그리 간절하길래 그래?
다비드 로템:(아!)(미동도 없으나 네 말 듣고는 눈썹이 축 처진다.) ...미안. (무어라 더 설명하기에는 변명 같아서....) ...내 행복을 뜻한 게 아니야, 리은아. (긴 숨 내쉰다.) 돌아가면 설명해줄게. 그러니 같이 돌아가자.
이 리은:사과 하지 말고! (속 터진다는 듯, 뒤로 누워버려 다시 눈 속으로 푹 파묻혔다. 양 손으로 제 얼굴 가리고 답답한 것을 참는 듯 앓는 소리나 낸다.) 네 행복이 아니면 누구의? ... ... 매번... 넌 어떤 것도 설명을 해주지 않고... (화끈거려오는 눈가에서 겨우 손을 뗀다. 이 감정은 서러움인가.) ... ... 내가 돌아가는 것은 누군지 모르는 이들에게 행복해질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이 이상 춥지 않았으면 하고... ... 설명을 듣기 위해서야. ... 알겠지? (넌, 매번 날 서럽게 만들어. 망할 녀석. 당신의 얼굴 감싸고 눈썹이나 어루만졌다.) ... 몸 좀 챙겨, 바보 녀석아.
다비드 로템:그러면 가만히 있어?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양팔로 널 번쩍 들어올린다. 그러고 있으면 춥잖아.) ...모르는 게 약이라고, 앎은 곧 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 말 기억해? (네게 손 뻗지도 못한 채 그저 안타까운 낯으로 가만 시선에 담는다. 이내 느릿하게 고개 끄덕이기만.) ... ...바보를 챙겨주는 것도 네가 말한 해야할 일 중에 하나인가? (그대로 너 품에 안고 발걸음 떼어 성당으로 돌아간다.)
이 리은:그런 말이 아니라아... 엄마야!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하지 않고 있던 탓에 눈 동그랗게 떴다. 빠르게 두어번 깜빡이다가 달아오르는 얼굴을 겨우겨우 제 소매의 옷부분으로 가려낸다. 왜 매번 나만 이렇게 당황스럽지? 불쑥, 불퉁한 생각이 튀어나온다. 왜 너는 여유로워? 미간이 심술로 좁혀졌다.) ...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지 해할 일은 아니야. ... 그 바보가 챙기지 않으니 어쩌겠나. 나라도 챙겨주어야지.
다비드 로템:...좀 가만히 있어, 그러다가 떨어진다. (그런 네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침묵이 제법 길어진다.)
어쩐지 당신을 잡을 때보다 더 복잡한 낯이군요.
어제 밤보다도 혼란스럽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분위기는 더더욱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어느 새 빨개진 당신의 뺨과 손을 본 다비드가 당신의 손을 힘주어 붙잡습니다.
굳게 닫힌 성당의 입구에서 분명히, 똑똑하게 들린 것은 노크였습니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어버린 사람처럼.
이 리은:(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일이지? 파악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문쪽만을 보았다.) ... 내가 나가볼게. ... 여 있으시오.
다비드 로템:...안돼. (단호한 목소리.) 여기 나랑 있어.
그 순간에도 노크 소리와 함께 음성은 계속 들립니다.
???:아무도 없으신가요? 문이 잠겨 있어서요. 발자국이 여기 나 있는데.......
앳된 음성은 그리 장성한 사람 같진 않습니다.
???:먹을 게 없어요. 혹시 저희 좀 도와줄 수 없으신가요?
이 리은:... 어린아이 같은데. ... 너 문까지 잠궜어? (점점 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입이 작게 벌어졌다.) ... ... 무슨 이유인지 설명을 해준다면, 그리하지. ... 설명 해주지 않으면 난 저들에게 갈 거야.
다비드 로템:... ... (마른 세수 여러번.) ...너 혼자서 다녀오는 거라면... 대신, 성당 안으로 들여보내지 마. (그러더니 예배당 모퉁이 쪽으로 고갯짓한다.) 저쪽으로 가면 물자 창고가 나와.
이 리은:(한참을 말 없이 본다. 원래 이런 이였던가? 아니었을텐데. 당신이 잡은 손을 살며시 빼내어 양 손으로 당신의 얼굴을 감쌌다. 두어번 쓸다가 눈꼬리 휜다.) 그리하지. 투정 들어주어 고맙소. 내 금방 다녀올게. 미안해. (총총 물자 창고로 가본다.)
물자 창고로 향하면 아직까진 충분한 물자들이 몇 남아있습니다.
이 리은:
자료조사
기준치: |
75/37/15 |
굴림: |
2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마치 금방이라도 떠날 사람이 모아두었을 법한 물건들이 알차게 담겨 있습니다.
......혹시 다비드 스스로가 떠나기 위해 채워둔 걸까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가방이야말로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기 딱 좋은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문득 물자 창고 내부 이질감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특정 벽면이 이상하리만치 상자로 쌓여 가려져 있네요.
이 리은:(먹을 것만 주면 안되나? 요딴 생각하며 가방 요리조리 보고 있다가 음?) ... 이게 뭐람. (상자 치울 수 있다면... 치워본다.)
이 리은:(이잉... 나 힘 자신 없쏘......)
근력
기준치: |
40/20/8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상자가 무너져 와르르 소리가 날 뿐 벽면이 드러나긴 합니다.
그렇게 드러난 벽면에는 기이한 광경이 담긴 상태입니다.
1, 2, 3, 4, 5, 6, 7, 8, 9, 10.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
75/37/15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 리은:
지능
기준치: |
90/45/18 |
굴림: |
6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숫자들이 어쩐지 날짜를 의미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빼곡한 숫자들은 일 년, 이 년, 아니 십 년 그 이상을 의미하는 듯도 싶습니다.
문득 가장 진하고도 깊게 적힌 문장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당신은 우연히 열려 있는 입구를 발견합니다.
이 리은:(... 괜찮아. 진정하자. 떨리는 손 갈무리했다. 작게 숨 내뱉고 입구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입구로 들어서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배당 2층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통로 쪽에 작은 문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이 리은:(네가 보고 싶다. 지금 이곳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저 네게 달려가서 두 손 꼭 잡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순진하게 굴고 싶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 앎은 죄악이니. 그럼에도, 인간의 본성은 죄악이니까. 네가 아주 오래 전에 했던 말을 곱씹었다. 뛰는 심장의 박동을 모른 척 고개 돌리고 문틈 사이로 안에 본다.)
문틈 사이로 빼곡하게 쌓인 책들이 존재합니다.
몇 년, 몇 십 년 동안 쌓였다고 말하지 않고서는 납득이 안 될 개수.
이 리은:(책 외에 무언가 있는지 확인하고 없다면 조용히 안으로 들어간다. ... 책을 두고 그냥 지나친다면 이리은이 아니라 이 알렉산더 어쩌고지.)
이 리은:
언어(외국어) Roll
기준치: |
30/15/6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
이 리은:(나... 공부 열심히 했나 봐...)
내용이 해독하기 어려운 것들 뿐임을 알게 됩니다.
다만 어쩐지 신화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
75/37/15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유일하게 알아볼 만한 마지막 모국어로 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쌓인 책들 사이로 양피지 귀퉁이가 삐죽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 리은:하나 둘 셋, 하면 순순히 나와라. 지금 기분이 쬐까 안좋거든.
하나,
둘,
셋
근력
기준치: |
40/20/8 |
굴림: |
57 |
판정결과: |
실패 |
되겠냐.
이 리은:내 주먹에서 비롯되는 수가 있다... 하... 왜 하나같이... (왜 하나같이 속 시끄럽게 만드느냔 말이야. 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이거나 저거나 다 짜증난다.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면 그대로 방 나간다.)
방에서 나오면 드는 생각은, 이 세상의 재앙의 실질적 원인은 결국 당신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 떨어져 있던 칼.
죽음이 칼이 아닌 다른 것에서부터 비롯되길 마련이다.......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종이를 펼치면 그곳엔 빼곡하게 적힌 ‘멸망을 끝내는 법’이 나와 있습니다.
이 리은:
지능
기준치: |
90/45/18 |
굴림: |
5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은 이것이 언젠가 보았던 글씨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찰나에 떠오르는 것은 무수히 많은 죽음의 방법이 적혀 있던 종이.
일 년 내지 십 년 그 이상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던 벽.
무수히 많은 죽음의 방법은 본인에게 행한 일이었던 걸까요?
그래, 다비드에게 부여된 것은 어쩌면 영생일까.......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
74/37/14 |
굴림: |
6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어 눈에 들어온 것은 가장 마지막 부분에 적힌 한 문장입니다.
이 리은:끝까지 내 모든 감정을 이리도 차갑게 기만하는군.
단 한순간이라도 진심인 적이 있었나? (눈가가 시렵다. 뜨거워진다. 심호흡 두어번 했다. 심호흡으로 진정이 되질 않아. 그 좁은 곳에서 제 머리 쥐어잡고 비명에 가까운 고함 내질렀다. 겨우겨우 참아오던 모든 것이 터진 기분이다. 아니, 그런 기분이 아니라 분명 터진 것이 분명하다. 모양만을 유지하던 꽃병이 산산조각났다.) ... 너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는데. 다름이 없구나. (그리 정의했다.)
이곳에는 당신과 다비드 밖에 없으니 누가 연주 중인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느 새 사라진 상태입니다.
또다른 재앙이 그 사람을 찾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이 리은:(쉬어지지도 않는 숨을 고른다. 미친 사람 마냥 웃어대다가 그대로 뚝 그쳤다. 대신 눈물이 맺혀서 굴러 떨어졌다. 차라리 네 입으로 듣고 싶었다. 물론 이리 알게 된 것은 자신의 죄악이지만, 나는... 나는 말이야, 다비드. 단 한순간도 널 잊은 적이 없다. 미워하기는 커녕, 증오하기는 커녕, 원망하기는 커녕 그저 애틋하기만 하였는데. ... 이전과 다름 없이 널 품고 그저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손에 꼽으며 살았는데. ... 매번 넌 날 이렇게 무참히 난도질을 해.) ... 보고 싶다. (허탈해졌다. 이대로 가자.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마냥 맑은 얼굴로 문 밖의 이들이 갔냐고 묻고... 네 말은 들은 뒤에 가만히 떠나자. 난, 그저 네 발뒷꿈치를 적시는 시냇물이면 되었는데. 눈가를 간지럽히는 올리브 나뭇가지 하나면 되었는데.) 일전에 말이 맞군. 사람이 가지는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는, 저주임은 분명하지. (눈물 닦아내고 제 머리 정리했다. 조용히 언제나와 같은 걸음으로 당신에게 돌아간다. )
예배당으로 나가면 역시나 오르간을 연주하는 다비드가 있습니다.
서툴고 떨리는 손으로 하나 하나 건반을 누릅니다.
새하얗게 불타버린 재가 휘날리는 것 같습니다.
그 풍경을 앞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모를 만한 뒷모습입니다.
다시는 나오지 못할 심해 속에 혼자 갇힌 것처럼.
가만 당신이 지켜보고 있노라면 시선을 느낀 것인지 고개를 돌리지 않은 다비드가 묻습니다.
다비드 로템:여전히... 모두의 행복을 바라?
어둠 가운데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하는 오색의 찬란한 빛이 반사된 얼굴.
다비드 로템:나는 그래.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너를 올곧이 바라본다. 그러는 두 눈이 서서히 커진다. 조금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서서 네 눈가 손등으로 건드린다.) 울었어?
이 리은:바란다고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난 신이 아니야.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고,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 같은 엔딩은 쓸 수 없네. (무엇을 하든 그저 멍한 눈으로 먼 바닥만을 본다. 당신 올려다 보며 손을 잡아 내리더니 어떤 것도 담기지 않은 그려진 미소 띄웠다.) 네가 신경을 쓸 일은 아니야. (단호했다.) 이제 와서 신경이라도 쓰여?
다비드 로템:...그렇다고 그걸 한순간에 포기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그제야 네 목소리의 온도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허리 굽히고는 집요하게 그 낯 살펴본다.) 응, 제법 많이 신경쓰인다. 이것도 다른 사람한테는 별 것 아닌 결심인가?
이 리은:지금도 포기는 하지 않았어. 저울질 하는 중이지. 매번 끝도 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답하는 삶이지 않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이런 모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고통 속으로 잠식하게 만들어버리더라. (한 마디 한마디가 다시 칼날이 된 기분이다.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조금 더 부드럽게 웃었던가. 손 뻗어서 당신의 앞머리카락 쓸며 눈을 들여다 보았다.) ... 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결심이지. ... 왜 신경을 쓰나? 내 감정에 앞서서 묻질 못했는데... 날 신경 쓰는 것은 내 숨을 거두었었다는 죄책감인가? 아니면 나를 향한 기만이야? 난... 그냥 널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좋았는데... 넌,... (단 한순간이라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 ... 그런 적 없잖아. 망할 박애주의자. ... 망할 녀석 같으니.
다비드 로템:무엇을 선과 같은 선상에 두고 저울질하고 있는 거야. 대체 왜... (기이하지, 네 미소가 마냥 기뻐 보이기 보다는 부서진 꽃병의 균열처럼 보였으니. 온전한 검은 시선에 스스로의 모습이 다시금 비친다. 어느 하나 결단하여 나아가지를 못해 결국 둘으로 나뉜 색다른 눈동자 둘. 그곳에 혼란이 담긴다. 죄책감이었나? 아니면 기만이었나. 무엇하나 쉬이 정의하지 못하겠다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나도 기뻤어. 좋았고. (
왜? 어쩌면 저주받은 삶을 끊어줄 구원자를 만났으니, 그 앞에 천한 고개를 조아리고 한없이 가벼운 무릎을 꿇은 채 사랑을 구걸 했어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와중, 네 마지막 말에 퍼뜩 정신이 든다.) 내가, 박애주의라고? (구멍 숭숭 뚫린 허약한 이성에 찬바람이 들어찬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리은?
이 리은:대체 무엇과 선을 저울질 하느냐고? 너에게 선은 절대적일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 선이란 절대적이지도, 가장 우선 순위도 아니야. 지금 너의 모습이 무엇으로 보이는지 아나? 내 이전 부모와 아주 똑닮았다, 로템. 선의에 중독되어 그것만을 좇는 이들과 다름이 없어. 모든 것을 내던져서 선을 위하는 그 선행중독자들과 다름이 없다고. 지금의 넌 선을 숭배하고 있는 거야. 신이 아니라. (조근조근 내뱉었다. 엄지손가락이 조금 파고들어 당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넌 이 리은이라는 자를 만나서 기쁘고 좋았던 것이 아니야. 널 이 세상에서 끊어줄 이를 만난 것이 기쁘고 좋았던 것이지. … 결론은… (하. 또 다시 감정의 편린이 눈물샘을 비집고 나온다. 나는 너를 위해 울지 않을 것이다. 신이 있다면 들으십시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불변하는 과거이므로 결단코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 자신을 죽여버리는 독초였으니 뽑아서 불사르려 합니다. 처음부터 추호도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않습니다. 그저, 이것은 앞으로의 맹세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내걸며 나는 말한다. 열 세 번째의 아이는 유다의 이름을 달고 있는 이입니다. 은화 삼십 냥으로 구주 예수를 팔아버리고 목을 맨 이는, 이미 죽어 없습니다. 나는 이제 스스로, 나 자신의 신이 되려 합니다. 함께 하겠다 다짐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 홀로 나아가겠다 다짐하는 것. 손을 내렸다. 더 이상, 네 온기에 닿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넌… 누구든 좋았던거야. 그 누구든 상관 없었던 거라고. … 그게 누구든 사랑하는 박애주의와 다를 것이 무어야? 누구든 널 죽일 수 있다면 좋았을걸. 달라? 구태여 그것이 나일 필요가 없었어. … 넌… 너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다정했을 것이고… 난 단 한순간도 내 자신으로 보인 적이 없는 거야. 이전에는 마녀였고, 지금은 널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끝내줄 이인가? (회한과 분노로 요동치는 그릇을 다잡고자 이를 악물었다. 심장이 절절 끓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따위 고통만 줄 것이라면, 몸에서 떼어버리고 싶을 만큼.) 제대로 봐! 난 그 어떤 것도 아닌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하나의 인간이라고! (버럭 소리쳤다. 악바리를 쓰는 것마냥 제 심장께 쥐여 잡았다. 추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 사랑? 사랑이 무어냐 물었어? (너야. 너라고. 그래, 이전의 나에게 사랑의 형태를 묻는다면 너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답을 내놓겠다.)
… 나를 죽이는 것. 나의 자아를 궁극적으로 죽여버리는 것. 그것이 나의 사랑이다. (사랑이란 자아의 궁극적 죽음이다. 사랑이란 또 다른 타인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를 위해 자아를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랑을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의 사랑이었다.)
다비드 로템:...내가 선을 숭배하고 있다고... (마른침을 삼킨다. 광막한 공허에 내던져진 빛바랜 미아들끼리 공과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헤픈 일인지 모르지 않기에, 그저 수긍했다. 반쪽짜리 시선이 공허를 향한다.) 멸망, 죄악, 고통, 죽음... 허황된 모든 것의 반대말을 선, 그 공의롭고 인자한 단어 하나로 축약할 수 있다면 그러도록 해. 그게 죽도록 밉고,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울 수도 있지. 그렇다면, 그러면 말이야. (다시 고개를 떨구면 시선에 들어차는 것은 인간 하나뿐이다. 거시 세계에 닿으려 수없이 비상과 추락을 번복해도 미시 세계에서 결단코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은-) 아직 멸망이 끝나지 않은 이 세상의 원인이 되어버린 내가, 내가. 내가... 무엇을 어떻게 더 할 수 있지? (목을 조르고, 심장에 말뚝을 박고,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뼈 마디 하나하나를 부러뜨리고 근육을 끊어 놓은 것으로 안된다면,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느냔 말이지? 가롯 유다도 이것보다는 쉽게 죽음길에 올랐는데, 나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여 이제는 영원히 바닥을 기어 다니며 인간들에게 재앙이나 퍼뜨리는 순수악에 가깝지 않던가... 스스로의 모멸감 견디지 못하여 이제는 우상이라 불리는 이 선에 얽매여 비천한 삶을 영속하고자 했는데, 이것이 또 다른 죄악이라고 한다면. 나는... 입술 달싹이지만 속에 있는 것을 차마 내뱉지 못한다. 제 삶의 무게를, 제 죽음의 무게를 너에게 짊어지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기 존재하지 않는 네 목소리 칼같이 제 폐부를 가르고 들어섰다. 아.) ...다 봤어? 그 기록들을? (비로소 몇십년간 멈추어있던 톱니바퀴들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건 명백한 제 실수다. 더 철저히 숨겼어야 했는데. 이미 새살 돋아 메꾸어진 흉터 사이로 피가 다시금 흐르는 듯했다. 차라리 거짓을 고했다면 이지경까지는 안 왔을까. 이 또한 '선'이라는 껍질을, 본인만의 가치를 추구한 탓인가?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멈춘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온전히 이 조야한 심부를 멈출 수 없는 것 또한 알았다.)
...나를 죽일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다정할 수 있다고... 그건 필요에 따라 순결을 팔고 애정행각을 연희하는 창부랑 뭐가 다르지? (그래, 그조차도 기껍다. 네 속에서 새어 나오는 감정들 그 무엇 하나 불쾌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제대로 보고 있어. 이전에 너에 관한 것들은-네가 멸망의 주체가 되어 죽음으로 이 세상에 구원을 줄 수 있다는 말을 순순히 믿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믿어주지 않겠어? 너는 선한 일을 행하는 데 있어 전혀 기쁘지 않은 것을 너는 인간됨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감히 사랑이라 부르고자 해. 그러니까 나는, 너를- (한차례의 공백. 숨이 바닥난 탓이다.) 한순간, 단한순간 너를 사랑했던 까닭에. 이지경이 되었어. 하지만 사랑했던 순간을 후회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라서...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당장 무릎을 바닥에 처박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판에, 반석 위로 작은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나에게 있어 사랑은 죄야, 리은아. 불태워 죽일 마녀고, 이제는 망령된 소망이지.
이 리은:... 그것이 아니면 붙잡을 것이 없어서 필사적으로 그것만을 붙드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영혼. 차라리 신을 믿는 것이 나았을 것임이 분명해. 그것은, 형태가 없는 신과도 기준 또한 애매모호하여. ... 이 세상에 선은 존재치 않는다. 그저 악이라는 것이 존재할 뿐이지. 선과 악은 그저 인간이 정한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난 도리를 따르는 것이지 선을 따르는 이가 아니야. ... 선행은 달콤함이고, 악행은 감미의 청산 한 방울이다. 오로지 선만이 존재하는 인생은 무의미해. 아니, 인간답지 못하다. (주먹을 쥔다. 끼고 있던 장갑 밑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흰 장갑이었다면 붉게 물들었을 것이 분명한.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육신의 아픔보다는 이미 가슴팍이 너덜해져서 다 찢어져 바람에 나부끼는데 무어가 더 아프겠어. 머리는 그 어떤 때보다 또렸했다. 또렸했고... 선명했다. 머리 속에 안개가 끼어 있을 때를 맑다고 정의하던 때와는 다르다. 입 안에서 졸여지다 못해 타버려 쓴맛이 나는 캐러멜이 물린 기분이다.) 나는 네가 아니기에 어떠한 답도 줄 수 없다. 구원은 타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것이니까. 그러나, 로템. 멸망이 끝나지 않은 이 세상의 원인이 되어버린 네가 수십번의, 수백번의 죽음을 거치면서 해야 했던 행동... 나였다면, 자기 자신을 용서했을 거야. 그리고, 기다리겠지. 네가 뱀이 되었다고 하여도. 모든 것은 우연적이었고 돌연적이며 모든 것은 숙명적이야. ... ... 인생은 암야의 장단 없는 산보이기에. 불가해한 세계의 횡포에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삶의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날 보았을 때 네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었었어야지. 네가 그리도 말하던 신에게 용서를 구했었어야지. ... ... 그럼... 그분은 모든 것을 용서했을 거라며. ... ... 네가 내게 했던 말이잖나. (처절한 외침이었다. 아니, 속삭임에 가까웠다.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딪은 발로부터 성당의 한기가 스멀스멀 타고 올라온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가 날 울게 만든다. 주님. 이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대체 몇 달란트를 내면 되는 것일까요. 한 인간에게 세상의 멸망을 매달아 추를 내린 신은 필시 완벽한 불공평을 내밀고 있음은 분명했다. 신이 이런데, 인간인 나는 얼마나 불공평한 사람이겠는가.) ... 봤지. 네가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 네가 말한 죄악을 내 속에 박아 넣었네.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웃을 수 있었어. (텅 비어버린 눈으로 눈물 닦을 생각도 못하고 인영을 담는다. 그 시선 안에 있던 것은, 제 앞에 있는 이인가, 아니면 그 너머의 십자가인가.)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네가 말하는 창부와 다름이 없다. 난 그들이 더럽다거나 혐오스럽지 않아. 그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약하고 안쓰러운 생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죽을 수 없다. 눈을 감을 수 없다. 살아 있을 수 없다. 지난 생의 억울함을, 세상을 위해 죽었으니 세상이 그것에 대해서 답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일까.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 입가에서 나오는 입김, 분명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다지도 애틋했는데.) ... 믿는다. 나는, 단 한 순간도 네 입에서 나온 것들을 믿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까. (장갑낀 손으로 눈을 마구잡이로 닦아냈다. 네가, 나를 사랑했었다고. 웃음 짓는 당신이 밉다. 네가 밉다. 사랑의 종말이다. 마녀는 짐작했다. 마녀는 알 수 밖에 없었다. 다비드. 다비드. ... 다비드. ... 아, 나의 용사. 아니, 이 세상을 구했던 이야.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마녀다. 영원을 떠돌아주마.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며, 어느 순간에는 모든 이들이 말하는 마녀가 되어주며, 손가락질 받아도 그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정의하며. 다음 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세상이 멸망해 사라질 그 때까지. 또 다시 나는 빠르게 무너진다.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기다린다. 또 사랑하고 사랑하고, 지겹도록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그렇기에 빠르게 무너지는 것이다. 너 또한 마찬가지야.) ... ...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사랑 때문이야. 사랑을 했기 때문이야. ... 사랑하기 때문이야. (사랑을 한 것들은 금방 변모한다. 사람을 완전히 휘저어 본 형태도 남지 않게 하는 미쳐버린 감정이야. 날 죽일 것이다. 이 감정은 필시 날 죽일 것이고, 수천번의 검을 꽂아 넣음에도 난... 이 세상에서 살아가겠지. 하지만 이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라. 마녀와 용사인걸. ... 마녀와, 뱀이 되어버린 용사인걸. 제대로 무언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미련한 감정이네.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언젠가 끝나버리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갈망, 열망... 식어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 저주. 결국 그 모든 것에 대한 욕망, 원망, 일그러진 감정들이 만들어낸 가장 궁극적인 형태.) ... ... 졸이다 못해 태워서 쓴 맛만이 나는 캐러멜 같아. (손을 떨군다. 힘 없이 어깨를 늘어뜨린다. ... 있잖아, 너는 날 만난 것을 후회해? 묻고 싶었다. 차라리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었을 텐데.) 네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도 품지 않은 껍데기인 입 발린 말인가? ... 아니면, 내 감정인가?
다비드 로템:그런가. (또다시, 웃음이다. 때로는 그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싶어.) ...네 말과 그 속에 담긴 네 감정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만큼 추한 건 또 없다고 생각하는걸... 이거 정말 꼴이 말이 아니군. 네가 보기에 지금 내가 많이 추한 것 같아?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입안이 쓰다.) 그럼에도 나는 선을 믿어, 이 리은. 그건 네가 보여주었던 거라서.... 네가 그 아이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것도, 노래를 불러주었던 것도. 너는 그것을 위선이라고, 그저 도리를 따르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마땅히 행하여 따라야 할 바른 길조차 비틀어내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네가 행했던 모든 일들이 오로지 너의 선택이자 결단이었다고 생각해. 세상의 그 어떤 악, 불행, 그리고 고통도 감히 간섭하지 못하는, 네 자유이자 의지였다고... 나는 네 그런 점을 사랑했어.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아 이제는 걸레짝 보다 못한 한 몸덩이 이끌어 오르간을 앞에 두고 앉았다. 이 건반들처럼 세상또한 분명토록 흑백으로 나뉘어있었으면 좋았을까. 하지만 이조차 선악을 제잣대로 구분 지으려는 인간의 교만이자 나약함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내 불행이 타인의 불행보다 더하다고 저울짓 하는 것과 같이 우매한 것이 또 있을까, 싶었지만-) ....어렵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고 싶지 않아. 내가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나면? 세상의 사람들은... 너는, 이토록 고통받고 있잖나. 그거야말로 기만이지. (양손을 모아 그 위로 얼굴을 묻고 눈 내리 감았다. 아주 잠깐의 평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그렇게나 작을 수밖에 없었다.) 다 말해주지 못한 건 진심으로 미안해. 이제는 영생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이 삶이 아직 처음이란 말이야.
맞아, 나는 그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세상을 구한 용사도, 십자가에 올라 희생된 성자도.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던 이에게는 거창한 독백이나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따윈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초라하게 몸 숙이고 숨죽여 속삭일 뿐이다.)... 고마워. (인자하신 나의 주님. 애초에 행복하고 싶어서, 편안해지고 싶어서 여태껏 버텨온 삶이 아니지만, 지금은 나에게 위로 한마디 건네줄 친구를 보내주어 이토록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네요. 이조차도,) 사랑했기 때문이지.... 사랑하기 때문이라서. (사랑은 명멸하는 감정이 아니다. 믿음이 한순간의 감정이 아닌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방향성이 될 테다. 그 끝에 남아있는 것이 일그러지고 일그러져 만들어낸, 그저 태워서 쓴 맛만 나는 캐러멜이라 한들. 매 순간 멸망을 맞이하는 세상에 영원토록 살아갈 나는, 기뻐. 사랑했기에. 죄를 지었기에. 선한 일을 행하면서도 전혀 기쁘지 않았던 예전과는 달리, 나는 지금 이 순간은 오롯이 악을 행할 수 있음에 눈물이 나도록 기뻐. 미련하면 뭐 어떠한가. 애당초 인간은 미련하다지 않았나.... 언젠가 연소하여 사라질 것이면 뭐 어떠한가... 이 순간 사랑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데. 사랑은. 마녀와 뱀이 되어버린 용사 둘이, 제대로 무언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이 둘이. 몰락을 앞둔, 이 아득하게 넒은 세상에서 결단하여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잖아.) 일말의 측은지심. 그 정도면 족해.
이 리은:(웃음을 본다. 그저 미어질 뿐이다. 어째서 이 차갑기 그지 없는 세상에서 너는 너고, 나는 나인가.) 스스로를 품으며 위로하는 것과 같아. 과하면 추하나 적당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니까. 스스로를 품을 수 있어야 타인을 품을 수 있음에, 불쌍히 여기어 거두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이 그리 할 수 있어야 한다 했네. 추하기 보다는 안쓰럽고 안타깝다. (눈가가 뻑뻑하다. 시려웠고 따가웠음에도 그 낯을 다시 가리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물로 적시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이 고장났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 모두 나 자신을 위함이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 너는 그것을 선이라고 말할 생각인가? 결과적으로 타인을 위한 것이 되었으니까? 네가 날 어떻게 보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 ... 네가 날 그리 정의를 했다면, 나는 네 안에서 선한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니까. 나는, 나의 자유 의지로만 움직이나 이는 나의 욕망이기도 하네. 욕망에는 자유 의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욕구본능만이 자리한다고 하네만... ...난 이 또한, 선함이 될 수 있는지 도통 할 수 없어. (매번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지금 이 선행을 하는 것은 대체 어떤 이유냐고.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과거의 자신의 업을 지우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그들을 위하고 싶어서? 모든 것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가? 나는 날 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동시에 행복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 ... 행복한 사람은 선하나, ... 선한 이는 행복할 수 없다고 하지. ... 넌 행복하지 못한 이를 사랑했었군. (불행한 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조용히 그리 읊었다. 한 발짝 떨어졌던 것을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반 발짝 더 다가갔을까. 앉은 당신을 가만히 내려 응시한다. 이 세상은 흑백논리로만 판별할 수 없음을 알며 그렇기에 세상은 문제로 넘쳐난다. 인간의 오만함의 극이다. 대체 왜 창조주는 인간을 이리도 나약하게 만들었는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네 자신에게 그리 엄격해서 무어가 좋지? 스스로를 용서하고 나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라는 것이 아님을 알잖아. 무거운 마음으로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 타인이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너는... 사는 내내 평안했었으면 했는데. (그게, 내 마지막 말이었잖아. 그렇게 지켜주기 어려웠나? 제 목숨을 중히 여기지 못하고, 난도질 할 정도로 넌 괴로웠나? 이 자리에는 모두 상처를 입은 이들밖에 없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가장 잘 알 일이다. 눈을 감았다. 떪고, 새콤한 과일. 동그란 구멍. 과일이 썩으면 벌레가 꼬이듯, 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아주 당연하게 나라는 존재는 또 네가 생각의 중심이 되어버린다. 이런 내 모습에도 지쳤다. 빌어먹을 정신머리. 분명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한 것이겠지. 이건 몇 번 후드려 패면 돌아오려나. 제 장갑을 벗어냈다. 붉게 까져 손톱의 모양이 파인 손바닥 잠시 보다가 당신의 머리 위에 올려둔다. 느리게 쓸었다. 제기랄. 입술을 문다.) ... ... 지나간 일 사과 해서 무어해. ... 정말 이제는 아무래도 좋아. ... 아무래도 좋게 됐어.
인간은 그런 존재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존재지만, 누군가가 그 이름에 의미를 담고 이를 불러준다면 그 누구든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 (배역이 없다면 뭐 어때. 만들면 그만. 너는 이미 내 인생이라는 희극 속에 이름을 남겼으니, 내가 네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주면 그만이다. 다시 손 내밀면 그만이다. 어둠 속에 있는 뱀이 속삭인다. 너는 네 인생의 주역이잖아. 그것만으로 넌 이 세상에 특별한 존재다.) 빌어먹을. 대체 왜 감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 ... 내 말들을 듣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세상 이 잡듯 뒤져도 너 밖에 없을걸. (짜증 섞인 투덜거림을 낸다. 너 진짜 짜증난다. 사람 속을 이렇게 뒤집어 엎어놓고...) 난... 사랑을 믿지 않아. 내가 믿는 것은... 그 사람이 보여준 것 뿐이니까. 사랑, 그게 보일 리가 없잖아. (말을 끌었다. 필시 보이지 않는 길잡이는 되겠으나, 사랑같은 낯간지러운 단어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는 단순히 어린아이와도 같은 투정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한번 부정한 것은 다시 긍정하기 싫으니.)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아나, 로템. (햇빛을 머금은 금발을 만지는 것을 퍽 좋아했다. 창공을 담은 눈동자와, 햇살을 굳혀 만든 듯한 눈동자를 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거야. 그리고 사라지는 것이지. 넌 잔인하다. 내게 있어서 너보다 잔인한 이는 없을걸. 그래. 안녕 내 사랑. 잘 가 내 사랑. 난 이 말을 동시에 쓸 줄은 추호도 몰랐다. 쓸 수 있다는 자체를 몰랐어. 그것도 너한테. 잘 가라, 끝 사랑.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 넣고 떠나는 너 또한 인내로 품을 수 있을까. 분노한다는 것은 필시 일정 이상의 두려움을 안고 있는 감정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분노했다. 날 망치는 감정이었기에.) ... 일말의 측은지심. ... 그래. 기껍게 내리도록 하지. 설산에 핀 동백은 제멋대로의 자비를 내리니. ... 이번 생에는 사람의 생을 내 손으로 거두고 싶지 않았는데. ... 이번에도 다름 없이 난 살인자가 되겠군.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바다를 가지게 되는 일이라 했다. 사랑이 두려워 도망가고 싶은 때도 있었으나 바다라는 것은 평생 퍼내도 다 퍼낼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퍼내기보단 이에 충실하자 생각한다. 그렇기에 들여다 보았다. 이마에 부드러이 입 맞춘다.) 떠나서도 감당하도록 해. 지긋지긋하고 때로는 역겨울 정도로 집착적인 저주니까. ... 다 네가 알려준 것이고, 네 업이야. (숨 들이켰다. 나는 이 바다를 떠나기로 하였다. 단지 그것 뿐이다. 넌, 언제나 존재하겠지. 이를 부정치 않는다. 이것이 나의 측은지심이다.) ... 사랑한다, 그대. 평생을 품어 귀애하지.
(참으로 속이 탔다. 이 순간, 나는 비로소 너의 끝을 깨달았다. 너는 이제 내 곁을 멀리 떠난다. 무릇 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널 데리고 올 방법은 없고, 손 잡아볼 방법도 없다. 이로서 느끼니 참 스프고 애달프다. 앞전에 겪은 일들과 비교해도 비교할 것이 없을 만큼 슬프다. 나는 분명 저승에 가서도 너와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널 생각하면 심장은 울었다. 사랑하는 너는 신실했고, 선을 위했으며, 그렇기에 빛날 수 있었고 올곧았다. 사람의 목숨이 어찌 이리 가느다랗단 말인가.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음이 실로 애통하다. 이마에서 내려가 콧등에 입 맞췄다. 사랑한다. 그리 속삭였다. 눈꺼풀에 입 맞췄다. 애착한다. 그리 속삭였다. 네 입을 제 손으로 가리고 그 위에 입 맞췄다. 널 실로 귀애하였다. 잊지 말아. 불변하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다. 이는 불변할 진실이니까.) ... 그대, 부디 평안하기를.
다비드 로템:이런... 백 년을 헛살았나. (그렇다고 딱히 후회나 절망을 담은 표정은 아니다. 스스로를 품은 것은 몰라도 타인을 품은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결과가 타인을 위한 것이었던, 이유가 너 자신이 되었던 그 행동에 선함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 (미래의 어느 관점에서 본다면 존재하지 않고, 과거의 어느 관점에서 본다면 형태가 없어 애매모호한 그것. 그러니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에-초침이 경계선을 넘어감으로써 결국 멸망에 치닫는 세상에-너는 사랑하여 결단하고 삶이 존속하고 있다고 믿었다. 보이지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해 그저 믿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말했듯 인생에는 선만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본질은 죄악에 가깝다고 했으니 선악이 공존하듯 욕망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도 있지. ...그래도,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는 웃는 것이 좋잖아. 홀로 잠드는 것보다는 함께 온기를 나누는 것이 좋잖아. 그래서 그렇게 믿기로 했어. 난 그게 좋아. 그래서 사랑했고.
...또, 평안해. 그래. 네 마지막 말이었으니. ....이제라도 지켜야지. 죽도록 아팠으니 이제는 나아가야지. (대체 왜 창조주는 인간을 이리도 나약하게 만들었는가? 인간은 평생 알 수 없을 거다. 어둠 속에 있는 뱀의 속삭임에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걸. 이 한 찰나를 넘어 다음 세계로 가게 된다면, 그때가 되면 알 수 있을까. 글쎄...) ...내 생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네.
(비로소 웃음이 멈추었다. 그렇다고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이리도 살고 싶게 만들면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함께 하여 불행할 수 밖에 없는 네가 맞닿는 순간 순간이 아쉽다. 그러니 잊을 일은 없을 테다. 진리를 사랑하여 그것에서 자유를 얻었던 이니까.... 영원토록, 그대. 부디 평안하기를. 천수를 누리다 우리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 안에 담긴 것이 진정 사랑인지, 연민인지…
신이 있다면 누군가는 대답해줄 난제와 의문입니다.
오르간 앞에 앉아 고요하게 눈을 감은 다비드를 흔들어보면,
자신을 도무지 죽이지 못했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