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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 이 리은 & 다비드 로템 - 월하미인月下美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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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SYK 2023. 8. 3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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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C PC
이 리은


다비드 로템
시나리오 시나리오 링크 엔딩
월하미인月下美人    
플레이 날짜 플레이 시간 트리거 요소
2023년 8월 30일, 9월 4일, 9월 14일, 9월 21일, 9월 27일, 10월 3일, 10월 5일 34  

 

 
 
 
 
 
옛날 옛날, 먼 옛날.
 
해가 뜨지 않는 나라.
 
천년의 왕국.
 
신의 가호가 함께하는 나라.
 
은의 나라.
 
그 외로도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천년의 역사 동안 해가 뜨지 않으며 오로지 밤만이 계속되고 있으나
 
신의 축복과 가호를 받아 신비하게도 모든 농작물이 매년 풍작이고 꽃이 피고 기후는 온화한 그런 나라.
 
이런 나라야말로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들은 오늘도 신을 칭송하며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
 
그런 나라에서, 은하수가 펼쳐진 하늘 아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언덕에 당신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안아 들고 눈물을 떨구고 있습니다.
 
그 얼굴은 희뿌옇고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당신 얼굴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따뜻한 온기만은 또렷합니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 그 사람은 당신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속삭입니다.
 
“그대. 부디 다음 생에는 날 만나지 말아.”
 
그 한마디를 기점으로 당신은 눈을 뜹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옵니다.
 
대체 뭐였을까요.
 
아무리 기억을 하려고 해도 점점 머리만 아파올 뿐입니다.
 
오늘도 눈을 떠 창 밖을 바라보면 휘영청 뜬 보름달과 함께 저 마을에서 걸어둔 등이 수많은 빛덩이를 만들어냅니다.
 
당신은 오늘도 이 나라에서 눈을 떠 살아가는 백성 중 하나.
 
외국에서 넘어온 당신에게 맡겨진 일은 왕성의 안에 있는 신녀궁의 호위무사 입니다.
 
신을 모시며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모든 사람은 말합니다.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에게 내려진 축복은 셀 수 없을 것이라고.
 
...
 
이런.
 
이제는 꾸물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신녀궁으로 갈 준비를 해볼까요.
 
하인이 정복과 세숫물을 당신의 방문 앞에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다비드:(잠에서 깨면 미간 찌푸린 채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짓누른다.) ...뭐야? (아는 사람이었을까. 아는 사람이었다면 왜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의문이 들었으나 창백하다 못해 희멀겋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풀리지 않는 눅눅함만 품고 이제는 익숙해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방을 둘러본다면 [거울], [화병], [선반] 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비드:(옷 입으며 거울도 본다. 샥삭.)
 
깨끗하게 당신을 비추고 있는 거울입니다.
 
색 다른 두 눈, 햇빛을 실로 만들어 늘어놓은 듯한 머리카락.
 
깔끔한 모습이군요.
 
다비드:여기는 항상 닦아두는가 보군... (옷매무새 마저 정리하고 시선 화병으로 옮긴다.)
 
희고 크며 탐스러운 꽃이 꽂혀있는 화병입니다.
 
이 꽃은 이 나라의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항상 있죠.
 
이 나라의 국화이며 상징물 입니다.
 
물론 신녀궁 호위무사인 당신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댕청~)
 
당신이 가지고 있는 꽃은 이전에 신녀가 직접 선물한 꽃 입니다.
 
가장 예뻐 보였다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당신에게 준 선물이죠.
 
열린 창가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이 아름답습니다.
 
다비드:(보름달처럼 흰 꽃을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꽃잎 손가락으로 가볍게 쥐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더니 선반으로 다가선다.)
 
여러가지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당신이 즐겨 보던 것들을 포함하여 여러 권이 있군요.
 
그 중 [건국 신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비드:(마침 눈에 띄어서 건국 신화를 꺼내들고 슥슥 읽는다.)
 
-건국신화 요약본-
 
옛날옛날, 이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병과 기근에 시달리고 괴물들은 판을 치며 모든 인간이 고통에 떨었습니다.
 
어느 날, 괴물들이 사람들이 살고 있던 나라를 덮쳤고,
 
그 중의 한 아이가 신의 음성을 들어 신이 내려준 꽃이 가진 힘으로 사람들에게 평화와 안식,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신의 사랑을 받는 신녀로 칭송했으며 그 아이는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나라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흔하게 알려진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모르는 이는 적어도 이 나라 안에는 없을 겁니다.
 
다비드:(익숙한 내용을 되새기면 다시금 시선이 흰 꽃으로 향하게 된다. 얼마 안 가 기다리고 있을 이가 떠올라 책을 제자리에 꽂고 방을 나섰지만.)
 
밖으로 나가면,
 
당신의 기억 속, 하늘에 뜬 해가 아닌 은은하게 빛나는 달이 당신을 반깁니다.
 
담장 너머에서 당신의 집을 훔쳐보는 아이들의 머리가 보이고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금방 저들끼리 웃으며 도망가는군요.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당신은, 이 나라가 마음에 드나요?
 
다비드:...아, (미처 인사를 나누기 전에 도망간 아이들의 흔적을 멀거니 바라본다. 퍽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당장 확신하지 못하는 존재를 믿으며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림자 한 치도 허락하지 않는 수많은 빛덩이들. 처음에는 이질감이 적잖게 있었지만, 그조차 달가웠으니 여태껏 머문 것 아니겠나. 부지런히 신녀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완벽히 이상적인 이 나라.
 
그렇기에 이질감마저 들지도 몰랐으나, 이마저도 기꺼운 곳.
 
다리를 하나 건너고, 언덕에 있는 소나무를 지나고, 다리를 또 하나 건너면.
 
이제는 익숙한 신녀궁입니다.
 
왕의 궁궐의 가장 안쪽에 거의 숨겨져 있는 것 마냥 존재하는 작은 궁이죠.
 
온통 하얀 것이 주변에서 동떨어진 것 마냥 이질감까지 듭니다.
 
언제나처럼 호패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곳과 다르게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향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다비드:(사랑받는 사람이라면서 왜 이렇게 외진 곳에서 지내는 거람. 늘 해오던 생각 갈무리하며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깊은숨 들이마시고 주위를 둘러본다.)
 
나무와 꽃들이 우거지고 정원을 뛰어다니던 작은 동물들이 당신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저 멀리 옥색의 기와로 만들어진 작은 궁이 보이는군요.
 
다비드:(동식물이 평화로이 공존하는 장소. 순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늦었을까 싶어 빠른 발걸음으로 궁으로 간다.)
 
가까이 다가가면 커다란 창문이 나 있습니다.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보고 있던 리은이 당신을 보고 고개를 들어 손을 흔듭니다.
 
당신이 신녀궁에 올 때마다 항상 저 장소에 앉아 기대어 밖을 보고 있었지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똑같은 일상 입니다.
 
평화롭고 지루한 평범한 일상 말입니다.
 
다비드:(한박자 늦은 뜀박질... 창문에 다가서서 너 마주한다.) ...기다렸어?
 
리은:(창틀에 손 올리고 톡톡 두들기고 있다가 살풋 숨 뱉는다. 천이 살며시 흔들렸을까.) ... 언제나처럼 기다렸지. 매번 이 자리에서. 잘 잤는가? ... 오늘은... 좋은 꿈 꾸었어?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 나라에는 꿈이 없다고 하는데…글쎄요.
 
이 나라에 도착한 그 날부터 꿈을 꾼 적이 없습니다.
 
완전히 뚝 끊어진 것처럼 이 나라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꿈을 꾼 기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당신에게서 꿈을 앗아간 것 같이.
 
다비드:
SAN Roll
기준치: 87/43/17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습니다.
 
다비드:(흰 천이 흔들리는 자태에 시선 잠깐 두고,) ...지루했겠네. 나들이라도 다녀오지. 숲 속 친구들이 너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이 나라사람들의 특색이라고만 들었지, 제가 이제껏 꿈을 꾼 적이 없던 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고개가 기울어진다.) 좋은 꿈은 아니었던 것 같아.
 
리은:숲 속 친구들? 아아, 풀어둔 아이들 말이구료. 나들이를 나가려고 해도 그대 없이는 움직이지 말라거나 한창 따라붙는 수다쟁이들이 있어서 말이외다. 요새는 여기저기서 잠드는 바람에 걱정 끼치기도 미안하고. (턱 괴었다. 당신을 뚫어져라 보는 듯 했다. 눈이 커졌었나. 다른이들과 다름 없이 그게 무어냐는 말이나 할 것이라 생각을 했건만.) ... ... 밖의 나라 이들은 꿈을 많이 꾼다지? 밖의 이라서 그대도 꾸는 것일까, 싶군. ... 어디 피곤치는 않고?
 
다비드:풀어둔, 아이들이라... 내가 조금 더 일찍 올걸 그랬네. 지금이라도 나랑 같이 걸을래? 근데... 네가 여기저기서 잠든다고?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되묻는다.) 피곤하기야, 너만 하겠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랴... 신의 음성을 들으랴. 그러고 보니 오늘은 새롭게 전해 들은 말이 없나?
 
리은:하얀질풍 알렉산더 2세(리은이 가장 아끼는 토끼 이름이다.)가 여 앞에서 애교 부리고 갔으니 그것으로 족하오. 기도 시간은 좀 남았으니, 산보도 좋겠소. (문으로는 나가기 귀찮으니 창문으로 나가겠다는 것처럼 부스스 일어나서 치맛자락 잡고 의자에 한 발 올렸다가... 내렸다.) 요새 자꾸... 잠이 쏟아지는 것이 말이오. 수면 시간이 훌쩍 늘었소. (한참을 침묵하다가 느리게 고개 저었다.) ㄴ가 하는 것은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기도 뿐이오. 신의 음성을 들은 것은 아아주 오래 전에 한번 뿐이야. ... 그래도... 기도에 화답해서 꽃을 피워주시니 되었소. (창문으로 나가게 도와줘. 라는 것 마냥 당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 더 기도하면 사람들의 수명도 길어질까?
 
다비드:하...얀질풍 Alexander(본토발음)2세가 누구, ...야! (의자에 발 올리면 반사적으로 손을 뻗는다. 꼴에 호위무사라고 버릇된 모양이지.) ...그거 병 아니야? 기... 기면증, 맞나? (물끄러미) 꽃이라고 하니 떠올랐는데 예전에 네가 주었던 꽃 있잖아. 크고... 흰. 이름이 뭐였어? (내밀어진 손 조심스레 잡았다. 신발은 챙겼어? 덧붙이고,) 그럴지도 모르지. 네가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기도를 드렸고, 사람들은 정말 잘 지내고 있으니까... 왜, 그랬으면 좋겠어?
 
리은:... 저기 뛰어 다니고 있는 까만 토끼. ... Alex...(발음 따라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혀가 꼬여서. 산... 산더...? 홀로 중얼거리기나 했다. 야, 소리에 움찔.) 뭐어, 그럴지도 모르고. 자려고 제대로 누우면 꼭 잠은 오지 않소. 눈을 떠도 찌뿌둥 한 것이. (신발? 도리도리 고개 저었다. 치마 살며시 걷어서 제 버선발 보여주곤 괜찮아. 라며 덧붙인다. 신발 좀 없다고 문제 되겠느냐는 투다.) 월하미인. 신이 내게 그리 말했으니 그것이 이름일 것이오. 이름처럼 아름답지 않은고. 축복을 내리는 꽃이외다. (조심조심 의자에 올라서서 창틀에 올라 앉았다. 이게 뭐라고 이리 힘들담.) 다들 너무 일찍 세상을 뜨지 않나. ... 조금 더 이 생을 즐길 수 있다면 좋을 것을. 모든 것이 나만 두고 가버리는 기분이란 말이오. (아, 이건 투정인가.)
 
다비드:(움찔하면 눈 살짝 키우고,) 미안, 놀랐어? (이내 목소리 낮춘다.) 샤샤.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그렇게 줄여부르기도 하더라. (버선발 보이는 것에 시선 가늘어지더니) 내가 안 괜찮아... 아까 수다쟁이들이 네 모습을 보면 나한테 뭐라 할 거란 말이야. 업힐래, 안길래, 아니면 신발 가져와서 신을래? (월하미인. 낯선 이름에 눈 두어번 깜박.) 내가 귀한 걸 받았군. 월하미인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줄 수 있어? (힘겹게 올라 앉는 모습 빤...) ...지금 다른 사람들의 수명 걱정할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다가 너가 먼저 떠나겠다. 네가 외로움을 타는 걸 안다면 신녀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겠어.
 
리은:... 괜찮소. (입술을 삐죽인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았지만.) 샤샤... 어떤 방법으로 줄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퍽 귀여운 이름이 되었소. 이제는 샤샤라 불러야지. (음? 요리조리 방 안을 보다가 친발이 저만치 문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꼼질거렸다.) 마지막 말고도... 어떻게든 잔소리를 듣겠구료. 신발 신고 내 발로 가겠소. 힘들면 그 때에 업어주시게. (뜻이라. 잡았던 손을 가만히 빼내어 당신의 손바닥에 글자 천천히 적어내었다.) 달 밑의 미인이라는 뜻이오. 달 밑에서 보면 누구든 넋을 놓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가진 이에게도 붙는 이름이오만... (음? 손이나 팔랑인다.) 지금 내 나이만 생각하면 지금도 떠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니 걱정일랑 붙드시게. ...그리고, 이 말은 좀 좋게 들리진 않겠지만... 그들이 아무리 날 사랑해준다고 해도 나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그대랑 이 궁의 수다쟁이들 뿐이오. 매번 그대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돌아와주긴 하니 이 또한 좋아.
 
다비드:(표정 보이지는 않는데 천 너머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가 제법 퉁명스럽다. 음.) 원래 애칭은 이름을 가진 사람보다는 그를 부르는 사람을 위한 거니까. (그러면 기다리겠다며 고개를 느긋하게 끄덕인다. 생각해 보니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신녀를 안고 궁안을 활보했다가는 제 목에 칼날이 들어올까 싶었다. 제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흰 손가락 끝을 좇고,) 달 밑의 미인. (기억에 새겨두려는 듯 조용히 되읊는다. 의미를 알고 나니 제법 잘 어울린다 싶었지.) 이곳을 떠날 생각은 전혀 없고? 아니면 궁에 사람들을 더 들인다거나... (이 나라나 네 사정을 정확히 모르니 허울 좋은 말 내뱉는다.)
 
리은:이름이라는 것은 부르는 이가 불러지는 이를 어찌 생각하는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라고 보오. 의미를 담아 불러주어야 어떤 존재든 그 의미를 가지는 법이지. (샤샤, 애정 담아서 불러줄터요. 희미한 미소 지어냈다. 시선 끝에 움직이는 검고 작은 인영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다시 조심조심 바닥으로 내려가 옥색 꽃신 하나를 찾아냈다. 곧이어 문을 열고 신 내려두더니 요리조리 신어냈다. 앞 코를 두어번 콩콩. 언제나처럼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가자, 라며.) 내가 이 곳 아니면 어딜 가겠소. 내가 다닐 수 있는 곳은 여기 신녀궁 안 뿐이야. 그 너머의 궁조차 갈 수 없는데 어딜 가겠는고. 신께서 노하셔서 천벌 내리실 것이외다. 사람이 많은 것은 내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 (하늘 잠시 본다. 달을 보았던가.)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칠석제구료. 가장 큰 축제니 볼 거리도 많겠지. 그대도 다녀와. 즐길 것은 즐겨야 하지 않겠나.
 
다비드:그럴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네 이름 말이야... (운 띄었다가 네 목소리에 따라 시선이 검은 털뭉치로 향한다. 한쪽 입꼬리 슬 올라갔던가. 이내 창틀에 비스듬히 기대어 너를 기다린다. 네가 나오면 새로운 꽃신 흘끔 봤다가 다시 번듯하게 섰지만.) 먼저 걸으면 한발 뒤따라 걷지. (여전히 시선 너에게서 떼지 못한 채.) 못 갈 곳도 없지. 너네 신은 그런걸로 천벌을 내려? 더 넓은 세상에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한다면 더 기뻐할 것 같은데. (뜸) 휴가를 준단 소리인가? 가면 좋긴 하겠다만... 내가 가면, 너는?
 
리은:으응, 내 이름이 왜? 내 이름이 무어? (아끼는 것이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뿌듯하게 보여주었다. 예쁘지? 그치? 곧이어 치맛자락 내려두고 느린 걸음 했다. 뒤에서 걷겠다는 말에 무어라 덧붙이지는 않았다. 다른 이였다면 몇 번이고 투덜거렸겠으나 네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아니 그런 것이겠지. 듬성듬성 놓여있는 큰 돌을 징검다리 밟는 이처럼 폴짝 뛰어본다.) 이곳의 신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존재가 아니라 신을 숭배하는 존재에 가깝소. 그대 나라에서는 아닌 듯 하오. 이 차이가 내 흥미롭소만...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 (끔박.) 어차피 궁 안에 사람도 없을 터이니 난 얌전히 기도나 드리고 있음세. 그대가 들고 올 이야기들을 기다리면서 말이야.
 
다비드:별건 아니고, 알려준 적 있나? lee는 내가 살던 곳에서 바람이 불어 가는 방향...이라는 단어를 뜻해. (응, 예쁘다. 저러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마음 한 켠에 걱정 밀어두고 뒤따라 걸었다. 딱, 네가 넘어지면 붙잡을 수 있는 거리.) 그들도 신을 숭배하지 않나? 네 존재유무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만... 그러니까, 기도 같은 것도 한 사람보다 다 같이 드리는 게 더 효과가 좋지 않냐는 말이야. (눈동자 데구르르. 본인은 하루도 못 견디고 뛰쳐나가겠지만. 네가 이 생활에 만족한다면야, 더 가타부타할 것도 없다.) 먹거리나 선물이라도 사줄까.
 
리은:바람이 불어 가는 방향이라... 바람... 나는 가끔 바람이 되고 싶던데. 이름에 좋은 의미 담겨 있구료. (정말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이 가는 길이 되고프군. 제 처지에 할 수 없는 것들만이 가득하여서 귿로 지워냈다. 품고 있어봐야 답답하기만 하지. 그럼에도 좋군. 폴짝 갔다가 빙글 돌고, 옆에 있는 꽃 보았다가 춤을 추는 것 마냥 정원 누빈다.) 다 신앙의 크기보다는... 자신의 자리가 있는 법인게요. 다른 이들의 기도에서는 꽃이 피어나지 않잖소. 단지 그것 뿐이야. 내 이전의 신녀들도 다 이리 했다고 들었는걸. 내 뒤의 이들이 있을까, 가 문제지만. (끔박.) ... ... 선물이 좋겠소. 하루 종일 이야기도 해주어야 해. 아, 번제 행사 전에만 와주시오. 많은 이들 앞에 나가야 하니 그대가 필요해.
 
다비드:(뱃사람들 사이에서는 바람을 받지 않는 쪽을 뜻하기도 하지만, 덧붙이려다가 입 다문다. 의미를 담아 부르면, 그 어떤 존재든 그 의미를 가지는 법이라고 하니까.) 이곳에 얌전히 있겠다더니 제법 앙큼한 바람을 품고 있네. (헛웃음 내뱉더니, 네 보폭의 길이를 가늠하고 따라 발걸음을 늦춘다.) 이전의 신녀들이라면... 건국신화에 나온 그 아이를 포함한 그들인가. 음? 네 뒤의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 (이어 고개 주억거린다.) 그럼 떠나기 전에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알려줘. 네가 잠들지만 않는다면 밤 새서도 이야기 해줄 수 있다만... 그건 수다쟁이들이 원하지 않겠지. 행사 시간에 맞추어서 갈게. 이번에 드릴 예물은 무엇이야?
 
리은:(작게 흥얼거림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 냈다.) 이곳 이들은 꿈을 꾸지 않소. 막연하게 잠을 잘 때 꾸는 것 뿐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고 싶다거나... 혹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 같은 것들 말이야. 너무 찰나의 순간을 살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지 않소? 조금 더 인간적이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이 또한 앙큼한 생각인가? (농조나 냈다.) 건국신화... 그 신화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소. 끽 해봤자 500년 됐나? 다른 이들은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같이 전해져 내려오는 다른 예언 하나가 말이야... 이 나라에 신녀는 총 열 셋이라는 것 뿐이오. (멈추어서 하늘이나 보았다. 가끔 생각한다. 이 나라의 이후에 대해서.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는 생각이지만.) 번제 때 꽂고 나가고 싶으니 비녀가 좋겠소. 신도 좋고... 그냥 날 보면 떠오르는 것이면 무어든 좋아. 내게 해주고픈 이야기도 선물이 될 수 있겠지. (하하) 글쎄... 이번에는 뭘까. 그건 직접 보면 알게 될 터이니 그때까지는 비밀이야.
 
다비드:(잠시 한 손으로 턱 괴고 단어의 의미를 정리한다.) 이 나라에서도 '꿈'이라는 단어가 그런 식으로 쓰이는구나. 그나저나 그건 네가 정의하는 '인간 된 삶'인가? 무언가가 되고, 무언가가 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 삶? (뜸) 글쎄, 이 또한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했기에 말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그런 것을 바라?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는 꿈을 꾸는 것들 말이야. (문득 아까 침소를 나서며 보았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것에 담긴 감정의 깊이를 제잣대로 가늠해보려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그 예언은 처음 들어봐. 혹시 네가 그 열세 번째 신녀... 그런 거야? (확인 차 되묻지만 그 얼굴에 큰 근심은 없다. 그야,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숨 쉬는 생명체들 대부분은 미래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지 않던가.) 비녀나 신... 일단 알겠다. 직접 가서 뭐가 있는지 봐야겠네. (끙.... 이야기꾼의 말재주는 없는데. 그런 말이나 덧붙이고,) 별개 다 비밀이군. 내가 따로 준비할 건 없는 거지?
 
리은:한 단어에 여러가지 뜻이 있는 법이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불가해한 미래를 살아가며 어느 날에는 울고, 웃고, 화내고... 좌절하기도 했다가 일어나고 서로 싸웠다가 화해하는 그런 생동감 있는 이들 아니겠소? 무언가가 되고프다, 하고프다 같은 소망이 없는 삶은, 산다고 해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보아. (숨을 들이킨다. 뱉을 수 없었다.) ... 글쎄. 내가 직접 그들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모르겠다만,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하였소. 내가 지금까지 봐온 모든 이들은 그랬거든. (쪼그려 앉았다. 피어난 꽃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음. 꼭 열세 번째지. 걱정이 없어 보여서 괜히 심술만 나는군. (물론 농담. 후후 웃기나 했다.) 몸만 와도 좋으니 시간만 맞추어 오시게. 그 때에는 하늘에 은하수도 떠서 아주 예쁘거든. 구경하다가 길 잃지 말고.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도중, 신녀궁의 궁녀 중 하나가 품에 월하미인을 가득 안고 다가옵니다.
 
신녀궁 궁녀: 기도 시간입니다, 신녀님. 슬슬 환복하셔야 해요.
 
리은이 가만히 꽃을 보고 있다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리은:에고. 미안하오. 괜찮다면 이걸, 저기 밖에 있는 이에게 가져다 줄 수 있겠소?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터라서.
 
다비드:(입술 떼었다 새로운 인기척에 도로 다문다. 꽃을 달라는 듯 궁녀에게 손을 내밀며) 저기 밖 누구?
 
리은:신녀궁 밖을 나서면 밖에 궁인이 하나 기다리고 있을거요. 매번 같은 아이가 온다 들었소. 딱 보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터이니 걱정은 마시게.
 
당신은 궁녀가 건네어 준 흰 꽃을 한아름 안아듭니다.
 
꽃에서는 청아한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다비드:(안아 든 꽃을 흘끔 보더니 신녀궁을 나선다.) 금방 다녀올게.
 
칠석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날은 모든 백성들이 신의 기적을 찬미하며 풍등을 걸고 가장 큰 축제를 여는 날입니다.
 
축제는 3일동안 진행이 되며 일년에 단 한번, 신녀가 백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신을 향한 번제를 드릴 겁니다.
 
리은이 유일하게 신녀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입니다.
 
신녀궁에서 호위로 일하는 당신이 지금 할 일은 품에 안고 있는 꽃들을 밖에 있는 궁녀들에게 전해주는 일 입니다.
 
애초에 이 신녀궁은 정해진 이들만 출입이 가능하고 허락이 되지 않은 이들은 출입이 엄격히 금지가 되어 있으니까요.
 
잘 닦인 돌을 밟으며 신녀궁의 문을 열고 나갑니다.
 
언제나처럼 밖의 궁녀에게 꽃을 전하려 하면... 궁녀 하나가 등불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보며 있다가 당신을 보자 가볍게 고개를 숙입니다.
 
다비드:(따라 고개 슬쩍 숙이고는 꽃을 건넨다.)
 
궁녀는 꽃을 받아들고 다시 꾸벅 인사를 합니다.
 
궁녀: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전에 계시던 분은... 음... 조금 일이 있으셔서 못 왔다고 신녀님께 말씀 해주세요. 새로 배정이 된 세아 라고 한다구요.
 
다비드:전에 계시던 분? 그래. (신녀궁으로 돌아가려다가 멈칫) 아, 혹시 신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비녀의 색이나 모양...같은 것 알고 있나?
 
궁녀: (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네? 어... 죄송해요. 전 신녀님에 대해서 몰라요. 뵌 적도 없어서... 신녀궁에서 일하시는 언니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건너건너 들어보면... 옥색이나 파란색을 좋아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음...) 저도 질문... 하나 드려도 괜찮을까요? 엄청 이상한 것이긴 한데...
 
다비드:옥색이나 파란색... 알겠다. (응?) 뭔데?
 
궁녀는 주변을 마구 둘러보고 소근소근 입을 엽니다.
 
궁녀: 이건 제가 들은 이야기지만요… 신녀님은 정말 인간이세요? 별 것은 아닌데… 저기 수라간에서 일하는 언니의 어머님께서 그러셨대요. 어머님께서 아주아주 어렸을 때에도 신녀님은 똑같은 모습으로 칠석제를 올리셨다구요. 어머님의 어머님께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댔어요. 다들 쉬쉬 하고는 있는 것 뿐이지 궁금해 하고 있는걸요.
 
궁에서 이런 소리를 하면 큰일이 날 텐데.
 
어린 것인지 아직 뭘 모르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눈으로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다비드:어... 어? (깜박....) 난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근데 신녀는 늘 얼굴을 가리고 다니니까 이전 신녀들도 그랬더라면 너희의 선조들이 봤던 모습에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 개인적인 생각이다만 인간이라고 믿는 게 너희에게도 좋지 않을까.
 
궁녀: ... 그렇지만... 이전 신녀분들은... (눈 요리조리 굴리는 듯 하다가 방긋 웃고 꾸박 고개를 숙였다.) 이상한 질문이었는데 답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궁녀는 곧이어 품에는 꽃을, 손에는 등불을 들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집니다.
 
다비드:(왜... 어땠는데....)(궁녀가 사라진 곳 멍하니 보다가 신녀궁으로 돌아간다.)
 
돌아간다면 리은은 기도실로 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이런저런 투정을 하고 있군요.
 
당신이 온 것을 알았는지 휙 고개를 돌려서 투정을 늘어놓습니다.
 
리은:이거 보시게! 내 머리에 요것들! (잔뜩 꽂힌 비녀 보여주기) 이걸 그대로 하고 가면 내 목이 똑 하고 부러지지 않겠소?
 
다비드:오... 그, 뭐냐. 그거 같다. 핀쿠션. (신기...) 근데 너 조금 전에 축제에서 비녀 하나 더 사 달라고 했잖아?
 
리은:피, 핀 쿠션이 뭐요? 바늘 꽂아두는 뭐 그런거? (맹...) 이건 제사나 기도 때 하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은 평소에 하는 것이외다. ... 하나만이야. 하나만. 그대도 내 목의 안전을 위협하지 말게.
 
다비드:응. 뭐 그런 거. (아 이거 웃기군... 축제때는 가벼운 비녀 찾아봐야겠다 생각하고) 그럼, 너 목 부러지는 순간 내 목도 떨어질 텐데. (농조) 준비는 다 했어?
 
리은:(투덜거리며 일어나다가 입술 삐죽였다.) 그런 일 없으니 그대 목은 계속 붙어 있겠소. (조금은 낮은 목소리였나. 곧이어 끌리는 치맛자락 꼭 잡고는) 응. 우리 수다쟁이들이 다 해주었지. 옷이든 뭐든 무거워서 나 원 참. 이거 봐. 가락지도 이따시만큼 있어. (손에 낀 가락지들 보여주며 느리게 문 나섰다.) 그래, 밖에서 만났던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 듯 하였소?
 
다비드:내가 신녀가 아니라 보석상을 모셨던 건가. (웃음기 담긴 얼굴. 명백하게 놀리는 투다.) 아, (그새 까먹은 듯) 전에 있던 사람은 일이 있어서 못 왔다고 세아라는 궁녀가 꽃을 받아갔어. 걔가 너 인간 맞냐고 물어보더라.
 
리은:가끔 왜 이렇게 얄미운지 도통 모르겠군. (흠흠...) 이 궁에 일이 무어가 있다고 오지 못했을꼬. 걱정이 되는구료. (걸음 멈췄다.) ... 그래서 뭐라고 답했는데?
 
다비드:인간은 불가해한 미래를 살아가는 거라며. 정 걱정된다면 다음에 만나면 한번 물어볼게. (빤) 그런 소릴 들었는데도 의연하네... 인간이라고 믿는 게 좋지 않겠냐, 그랬던 것 같은데. 너 진짜 인간 아니야?
 
리은:불가해한 미래를 살아간다고 해도, 갑자기 변화가 생기면 당황하기 마련이지 않나. (간극)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이구료. ... 글쎄. 그 또한 생각하는 이 나름이지 않아? 적어도 나는 자기 자신이 요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소만. 그럼 다녀오겠네. 나 없다고 외로워하지 마시게.
 
당신이 따라오지 못하게 문을 닫은 리은의 그림자가 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곧 사라집니다.
 
다비드:매번 답하려고 하면 사라져.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팔짱끼고 문앞에서 대기한다.)(서성서성...)
 
리은은 언제나 홀로 기도실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기도를 올립니다.
 
신녀궁 가장 안쪽에 있는 그 건물은 리은 홀로 들어가며 그 시간 동안, 당신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호위무사라고 해봤자 평화로운 이곳에서 할 일이 많지 않으니 말입니다.
 
[신녀궁], [정원], [연못], [서재] 를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다.
 
다비드:하는 일 대비 얻는 게 많은 직업이긴 한데 이럴 때는 적적하단 말이지... (중얼대며 신녀궁 둘러본다.)
 
리은이 지내는 아주 작은 궁입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이질감까지 들 정도로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처럼 보입니다.
 
신녀는 일생을 이곳에서 지낸다고 하지요.
 
화려하지는 않으나 고급진 것들로 이루어진 궁은 작고 단아합니다.
 
대부분 리은이 생활하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침상], [창문], [책상]을 볼 수 있습니다.
 
다비드:(꽃을 담아 그 처럼 수려한 화병같다는 감상 한번. 그것이 이질적이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여태껏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여기기 때문만은 아닐 테다. 갈피 못 잡은 시선을 이끌어 침상에 둔다.)
 
비단 자수가 놓여있는 이불이 깔끔하게 정리가 된 침상입니다.
 
불투명한 천이 천장에서 내려와 커튼처럼 가려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옆에 있는 협탁에는 수면향이 올려져 있습니다.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리은은 평소에도 종종 잠에 든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다비드:(수면향 킁킁.... 이걸 맡으면 정말 잠이 와?)
 
그런 이가 수면향을 사용하던가요?
 
긴장이 풀릴 것만 같은 향이 희미하게 납니다.
 
다비드:(의료 지식은 전무하다. 금방 흥미 잃고 창문을 본다.)
 
매번 이곳에 기대고 있던 리은이 당신을 맞이하는 곳입니다.
 
휘영청 뜬 달과 함께 정원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동그란 창문이 저 하늘에 뜬 달처럼 보입니다.
 
저 밖에서 신녀궁의 궁녀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리은이 말하길... 수다쟁이들, 이었던가요.
 
다비드:(마저 둘러보고 정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하며 책상 본다.)
 
책상 위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꽃과 나비가 새겨진 촛대… 아니, 야명주가 박힌 등입니다.
 
촛불보다 밝게 빛나는 것이 꽤나 값진 모양입니다.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은 문득 기억합니다.
 
이 신녀궁에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불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비출 때에는 반드시 야명주가 들어간 등을 사용하고 있어요.
 
신녀궁 밖만 나가도 불을 사용하는 등이 있고, 화로가 있건만.
 
다비드:
기준치: 80/40/16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두 개의 서랍 중 위에 서랍 하나가 삐져나와 열려 있습니다.
 
매번 잠구어 두어서 열리지 않던 것입니다.
 
서랍을 열어보면 안쪽에는 [비단에 쌓인 무언가] 가 들어있습니다.
 
다비드:(주변 흘끔 둘러보고 비단을 풀어서 살펴본다.)
 
푸른 대를 가진 매화나무 형상의 비녀 입니다.
 
푸르고, 붉은 보석이 박혀서 빛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아주 오래된 것 같으나 사용감은 거의 없고 소중하게 보관이 된 모양인지 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다비드:....비녀 많아 보이는데 더 사줘도 되나.... (다시 소중하게 비단에 감아서 서랍에 넣어둔다. 다른 서랍은 열리나?)
 
다른 서랍은 잠긴 것인지 열리지 않습니다.
 
다비드:이러니까 정말 도둑이라도 된 기분이네. (정원으로 간다.)
 
수많은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입니다.
 
여러가지 나무들이 자라있고 척 보아도 아름답고 운치 있습니다.
 
슴과 토끼를 풀어놓은 것만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 없군요.
 
바이올렛, 무궁화, 코스모스 등의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7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순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일어난 뒤로부터 두통이 불현듯 당신을 집어 삼키는 기분입니다.
 
귓가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거 아시오? 이곳에 핀 모든 꽃들의 꽃말은 영원이래. ... ... 웃기지도 않지."
 
다비드:(인상 찌푸린다. 순간 네가 다시 곁으로 온 줄만 알고 주위를 둘러보나... 아까 이야기를 하던 궁녀들이 아직도 있나 두리번 거린다.)
 
저 멀리서 신녀궁의 궁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들끼리의 이야기에 집중해, 당신이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하네요.
 
다비드:무슨 이야기들 하고 계셨나? (스윽)
 
신녀궁 궁녀1: 아이고, 놀래라. 갑자기 오셔서 놀랬어요!
 
신녀궁 궁녀2: 별 것은 아니고, 아까 전에 궁 밖에 다녀오셨잖아요. 꽃 주러. 그때 그것 때문에 밖에가 엄청 시끄러웠던거 이야기 하고 있어요. 들으신 적 있나요?
 
다비드: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무슨 일이야?
 
신녀궁 궁녀1: 원래 꽃을 받으러 오는 애가 갑자기 어느 날 미쳐서 자기가 받았던 꽃들을 가지고 사라졌었대요.
 
신녀궁 궁녀2: 월하미인은 신녀님이 직접 기도를 드려서 피우는 것이라 엄청엄청 귀한 것인데... 그걸 가지고 날랐으니 얼마나 궁이 뒤집혔겠어요? 찾은 것도 궁 외진 곳에서 비명소리가 막 나서 찾았대요.
 
신녀궁 궁녀1: 그걸 찾은 사람들이 그러는데- 불타고 있는 꽃더미 앞에서 그 궁녀가 울고 있었다나? 비명을 지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비명 소리는 들리고 있었대요. 그래서 다들 꽃이 비명을 지른다~ 하는데 솔직히 말이 안되잖아요!
 
다비드:허어... 신녀는 이 이야기들 다 알고 있어?
 
신녀궁 궁녀3: (조용히 있다가 도리도리) ... 아뇨. 모르세요. 안그래도 요즘 꽃이 점점 지고 있다는 소리들이 들려와서 그것 때문에 불안해 하시는 것 같거든요. 건강도 갑자기 안좋아지셨는데 쓰러지시면 어째요? 조금 있으면 칠석제기도 하고... 게다가 이래저래 챙겨주던 애가 사형을 당했다고 어떻게 말해요...
 
다비드:(깜박...) 사형을 당했어? 꽃을 훔쳐 갔다는 게 사실이어서?
 
신녀궁 궁녀1: 훔쳐간 것도 훔쳐간 것이지만 전부 태워버렸잖아요. 그것 때문에 저기 나라 끝자락에 있는 마을에 괴물들이 몰려와서 사람들이 죽었다고 들었어요.
 
다비드:꽃을 훔친 것도 태운 것도 이번이 처음일 텐데, 그것 때문에 괴물들이 출몰 했다는 건 지나친 비약 아니야? (흐린눈...) 더 이상한 일들은 없고?
 
신녀궁 궁녀2: 뭐어, 불안의 싹은 자르자는 의미겠죠. 이 나라에서 꽃이 가지는 의미는 크니까요. 아아주 옛날에 신이 꽃을 내려주지 않았을 때에는 저희 나라도 괴물들의 침략이 많았다고 하니까... (흠흠 소리를 내며 머리를 굴리다가) 무사님. 이건 엄청 이상한 소리지만... 그 꽃이 말하는 것 들은 적 있으세요? 그 애가 사형 당하기 전에 옥에서 그랬댔어요. 그 꽃이 있어서 사람들이 죽는거라구.
 
다비드:여기 사람들은 마냥 행복하고 순탄한 일상을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순간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까지 해서 신녀가 꽃이 사람이 된 건가, 하는 생각 잠깐. 곧 머릿속에서 지웠다.) 꽃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은 아직 없는 것 같은데 내 방에도 몇송이 있으니 나중에 돌아 가면 확인해보지.
 
신녀궁 궁녀1: 다들 행복하고 순탄하죠. 그걸 깨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가끔 행복이 깨지기도 하지만요. (하하) 이제 슬슬 밖에 궁에 다녀와야 해서 먼저 실례할게요. 번제 준비가 있거든요.
 
궁녀들이 당신에게 손을 흔들고 떠납니다.
 
그 중 하나가 남아 우물쭈물 하다가 당신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는군요.
 
신녀궁 궁녀3: 엄... 그러니까... 언니들은 말을 저렇게 하지만... 전 조금 무서워요. 요즘 신녀님 기도 시간이 많이 느시구... 건강이 안좋아지셔서요. 악몽도 꾸시는 것 같구... 무사님이 나중에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꽃 없어도 다 잘 살 수 있다구요.
 
다비드:(잡힌 옷자락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그래, 너도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일들에 너무 무서워하진 말아. 신녀한테는 잘 전해줄게.
 
궁녀는 방긋 웃으며 다른 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다비드:(생각 정리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연못에 당도한다.)
 
맑디 맑은 물을 품은 연못입니다.
 
안에서는 비단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정자] 와 [털뭉치] 를 볼 수 있습니다.
 
다비드:(정자를 본다.)
 
연못 위에 지어진 정자입니다.
 
이렇게 절경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연못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물결이 일렁이며 당신을 비추고 있습니다.
 
멍하게 보고 있노라면, 당신의 귓가에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이곳에만 있는 것에 대한 불만? ... 글쎄.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있으면 그것대로 문제인데. 죄인에게 옥을 나갈 권리가 있던가."
 
다비드:(아까 들었던 이야기들이 어지간히 신경쓰였는지 주변에 꽃이 있나 둘러본다.)
 
주변에 꽃이라고는 평범한 꽃들 뿐입니다.
 
다비드:정신이 나갔나보군. (덤덤하게 중얼거리곤 털뭉치를 본다. 이건 어디서 난 거야?)
 
꼼질꼼질 움직이고 있는 검은 털뭉치 입니다.
 
당신의 기척을 눈치를 챈 검은 털뭉치가 고개를 듭니다.
 
까맣고 조그마한 토끼입니다.
 
입에는 작은 토끼풀을 물고 당신을 올려다 봅니다.
 
다비드: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샤샤?
 
검은 토끼... 하얀 질풍 알렉산더 2세... 그리고 샤샤.
 
토끼의 배 밑에 작은 구슬 하나가 깔려 있습니다.
 
다비드:...저... 샤샤. 그 배 좀 뒤집어 볼래? (그 앞에 쭈그려 앉기)
 
토끼는 입을 오물거리며 당신을 보고 있다가 옆으로 홀랑 넘어갑니다.
 
말 잘 듣는 토끼네요.
 
다비드:(한손으로 토끼 쓰다듬으며 구슬 주워서 살펴본다.)
 
구슬은 희고 동시에 여러 빛을 띄고 있습니다.
 
누군가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비드:(구슬 품에 잘 넣어두며 토끼 내려다본다.) 너는 세상적인 고민거리 같은 건 없겠지? 비록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나지막히 내뱉으며 자리 털고 일어나 서재로 간다.)
 
책으로 가득 차 있는 서재 입니다.
 
리은이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책장이 아주 많고 모두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다비드: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벽쪽에 있는 책장 하나가 벽과 살짝 떨어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다비드:? (책장으로 다가선다.)
 
책장은 이상하리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건국신화가 적힌 책들로 빼곡합니다.
 
바닥에는 긁힌 자국도 있고... 움직일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비드:그, 500년...이라고 하지 않았어? (책의 수만 봐서는 몇 쳔년은 되었겠다. 책장 움직여본다.)
 
책장에 손을 대자 생각 이상으로 가볍게 움직입니다.
 
다비드:(내가?이렇게 힘이 좋았나?)
 
책장 뒤에는 [작은 문] 이 있으며 금줄이 걸려 있습니다.
 
다비드:(이거 못 참지... 금줄 치우고 문 열어본다.)
 
금줄을 치우고 문을 여는 동시에, 보이는 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중간중간 야명주가 박혀있군요.
 
안쪽부터 청아한 향기가 느껴집니다.
 
다비드:(두리번 거리다가 계단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려고 할 때, 밖에서 신녀궁 막내 궁녀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여섯살 남짓한 어린아이 입니다.
 
다비드:(멈칫)
 
막내 궁녀: 거기 들어가시면 신녀님한테 아아주 혼나요, 무사님. 그보다 신녀님이 부르셔요. 걷기 힘드신 것 같은데 전 부축을 못해드려서요.
 
다비드:너는 여기가 어딘지 알아? (일단 백스텝 해서 돌아온다.)
 
막내 궁녀: 저기 안에요? 저는 몰라요. 움... 다른 언니들은 아시지 않을까요? 신녀님두 여기는 많이 안들어가세요. 뭔가... 중요한 것 보관하는 곳 아닐까... 싶은데...
 
다비드:음.... (느릿하게 고개 끄덕...) 알려줘서 고마워. 신녀는 아직 기도실에 있나? (그쪽으로 발걸음 옮긴다.)
 
막내 궁녀: 네에. 앉아서 쉬구 계세요. 제향을 조금 많이 피우셔서 힘드시대요. 몸에 안좋다구 그렇게 이야기를 드렸는데. 음... 전에두 그것 때문에 그랬나... (졸졸 따라가다가 멈칫.) 전 신녀님 약 가지러 갈게요. 먼저 궁에 가 계세요! (뽈뽈... 밖에 있는 의약당으로...)
 
다비드:제향? (뒷모습 흘끔이다가 홀로 궁으로 간다.)
 
다비드: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기도실 근처에서 작게 콜록이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곧 사라집니다.
 
몇 걸음 더 걷자, 기도실 앞에 있는 마루에 앉아있던 리은의 모습이 보입니다.
 
화려한 비녀와 장신구 모두 빼어 옆에 두고 기둥에 기대어 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그새 잠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비드:(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화려한 장신구들 손에 쥐어본다. 제 손에는 마냥 가벼울 뿐인 장신구들. 전부 내려놓으니 영락없는 인간이구나, 너도.) 왜 불편하게 이러고 있어. (깨울까 고민하다가 아까 궁녀의 말을 떠올리고는 널 조심스레 안아 들고 아까 보았던 침실로 돌아간다.)
 
침실로 돌아가는 도중 품 속에서 작게 움직인 리은이 일어났는지 제 고개를 당신에게 툭 기대었습니다.
 
리은:승차감 좋군. 계속 이러고 있을까?
 
다비드:해외에서 온 가마는 좀 다른 느낌인가보군. (저벅저벅) 너 편한대로.
 
리은:다른 가마를 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소매 자락으로 입 가리고 두어번 작게 콜록) 무사님, 피곤하신가? 심심하고 외로운 신녀님이랑 이야기 좀 더 해주시게.
 
다비드:(잠깐 발걸음이 멈춘다.) 너만하겠어. 어린 궁녀가 약을 가져다주겠다고 하더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리은:난 뭐... 괜찮소. 이야기 하다가 졸리면 졸리다고 말을 할 터니까. (약? 별 말 없이 꼼지락거렸다. 나 안아파. 라며.) 무언가를 계속 해오는데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고 내치는 것마저 못하게 되었다면, 그대는 어쩌고 싶소?
 
다비드:너 아까도 지금도 기침을 그렇게 하던데... (안 아픈 게 맞냐는 듯 시선 가늘어진다.) 그 말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그만두고는 싶은데 어떠한 까닭으로 못한다는 소리야? (고개 기울이고 그런 적이 있나 기억 되짚어본다. 아.) 난 다른 사람한테 불평불만 털어놓으면 좀 낫던데.
 
리은:언제부터 들었대? (당신 가슴께 옷자락 살짝 잡았다가 슬쩍 고개 돌렸다. 딴청을 피우는 듯 했고) 다른 사람한테 불평불만을 털어놓으면... 으음, 그러면 좀 나을까. (무언가 곰곰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내가 아주 예전부터 계속해서 기다리던 아해가 하나 있소. 아해는 매번 매번 나한테 와주는데... 더 이상 볼 면목이 없단 말이지. 말을 해도 매번 잊고 다시 와. 기다리지 않게 된다면 오지 않을까, 해서 나름 정을 떼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어서. 하늘도 참 무심해. (제 딴에는 나름 불평인 듯 했다)
 
다비드:그걸 숨기려고 했어? 정원 끝에서도 들리더라. (시선 여전히 네게 고정된 채다.) 계속 아무 얘기도 안 하며 속에서 곪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러더니 묵묵히 네 말에 귀 기울인다.) 말에 모순이 있네. 계속 기다린다면서 왜 오지 않았으면 해? 기다린다는 건 보고 싶다는 뜻 아니야?
 
리은:내가 아프다고 하면 걱정할 것 아니오? 우리 막내한테 어디까지 들었는가. (뚫어질 것 같은 시선에 침음 슬며시 흘렸다.) ... ... 이야기를 하면 드디어 미쳐버렸구나, 같은 취급이나 받을 것 같았지. 안그래도 적적한 곳에서 그런 시선까지 받기는 슬프지 않은고. (으음...) 많이 보고 싶지만... 만나지 않는게 그 아해한테 더 좋은 길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도통 좋을 것이 없어. 아해에게나, 나에게나.
 
다비드:걔는 네가 제향을 많이 피워서 힘들다고 하던데. 그거 태우는 거라서 많이 맡으면 암 걸리는 거 아니야? (어디서 주워들은 내용 술술) '드디어'? 마치 미쳐버릴 징조라도 있었던 것처럼 말하네... 근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어느정도 미쳐있지 않나. 그게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은데... (뜸) 그건 이해하기 어렵네... 네가 말하는 아해는 어떤 애이길래?
 
리은:제향이 독하긴 하지만 딱히 그것 때문은 아니외다. 혹여나 향 들이마실 생각은 마시게. ... ... 그보다 암이 뭐요? (맹...) 사람이 거의 날 때부터 요만한 작은 곳에서 나가지 못하고 계속 계속 있는다면 미친다고들 하더구료. 무어... 그대가 그리 말해주면... 그런거겠지. 그럼 그대도 어딘가에 미쳐있는가 보아. (농조나 냈다.) 그러게. 무뚝뚝하지만 다정하고... 햇살을 닮은 아해요. 아주 자유로웠어. 제멋대로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이 그 아해만의 빛이라고 내 보아. ... 선하기 그지 없는 아해였지.
 
다비드:그러니까 아픈 건 맞다는 소리네... 나한테는 들이마시지 말라고 하면서 너는 그렇게 들이마셔? (집요한 눈빛 따라붙는다.) 암을 몰라? (그러고 보니 여기는 그런 병이 없었나?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눈 도르륵 굴린다.) 몸 속에서 괴물이 크는 병?... 치료법이 마땅하지 않아 사망률이 제법 큰 병이라고 들었어.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 너를 계속 여기에서만 지내게 하는 거야? (사실 본인이 그 상황이었다면 아주 예전에 미쳤을 것 같다.) 그럴지도... 그런데 미친 사람은 스스로가 미친 걸 모른대. (네 설명 들으면 자연스레 낯선 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그 애를 좋아했어?
 
리은:그렇게 되는가...? (옷자락 잡은 손에 힘 살며시 주었다.) ... 화내지두 말고 혼내지도 말아. 그냥... 기침을 하다가 피가 좀 섞였을 뿐이니. 지금은... 괜찮소. 정말로. (힐꼼. 천 밑에서 눈치 보았다.) 몸 속에서 괴물이 크는 병이라. ... 아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이제 가물가물한 것이. (음?) 다들 알고 있으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외다. 나도 이제 내 발로 나갈 생각은 도통 없으니 아무렴 좋지 않은고. 신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하면 아아주 큰 일이 나는 법이 아니겠소? (한참을 입 다물었다.) ... 좋아했지. 지금도 참 좋아해. 무엇이랑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나한테 중요했고, 앞으로도 그러겠지.
 
다비드:뭐 그런 거 가지고 화내고 혼ㄴ... (멈칫) 피가 나온 거면 심각한 거 아니야? (너 침대에 앉혀두더니 한쪽 무릎 꿇고 시선 맞춘다. 숨 길게 늘어뜨리더니 조곤조곤 묻는다.) 의원은 만나봤어? 괴물들은 대체로 조용해서 잠아 먹히기 전까지 모를 수도 있단 말이야. (깜박....) 나는 네 신의 음성 같은 거 들어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어. 하지 말라는 일, 해야 하는 일... 그런 걸 어떻게 구분해. (이윽고 빈 공간에 침묵이 내딛는다. 이어지는 네 말에 답하기까지 그만큼의 침묵이 더 얹혀진다.) 그런데 왜 만나면 안 돼?
 
리은:속이 좀 뒤집혀서 그랬던 것 같소. (침대에 앉아서 가만히 당신 보았다. 올곧은 시선에 답하는 것처럼 가만히 응시하다가 눈꼬리 휘었다. 한 손 뻗어서 이마 쓸어주더니) 의원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소. 이리 계속 가다가는 명줄이 짧아지겠다고는 했지. 이에 대해서 크게 생각은 않아. 본래 이 나라 이들은 명이 짧지 않나. 나는 아주 오래 살았으니 이제 큰 미련은 없으니 마지막까지 내 할 일이나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 슬퍼하지 말자. 흐린 미소 냈다.) 내가 한 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니겠나? (그러게... 말을 끌었다.) 더 이상 아프게 하기 싫어서려나. 자유로운 이 답지 못하게 엮인 실이 못내 못마땅해서일지도 모르겠소.
 
다비드:(네 손길에 제법 얌전히 있는가 싶더니 손 뻗어 네 이마에 대고 손가락 튕긴다. 딱.) 아주 오래 살아 봤자 얼마나 더 살았다고? 너도 내 또래면서... 명이 짧다고 이제 창창한 20대가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되진 않거든? (그래도 영 미심쩍은 듯 미간이 좁혀온다.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에 다시금 두통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머리보다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것도 설명이 필요할 듯한데... 네가 한 일이 뭔데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
 
리은:우. (반사적으로 어깨를 웅크렸다. 제 이마를 반사적으로 문지르다가) 흥. 어떤 것이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법이오. 그 속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노인이 될 수도 있지! 내가 언제 20대라고 그랬담? (다시 손 뻗어서 엄지로 당신의 미간을 꾹 눌렀다.) 으응, 완전 나쁜 일이오. 아아주 나쁜 일이지. 나 이제 피곤해졌으니 무사님은 돌아가시게나. 한잠 푹 자야겠으니까.
 
다비드:아니야? (진짜?)(밀리지 않고 그자리에서 그대로 바라보기만.) 뭔데? 왜? 아니, 왜? (뭔가 쏘아붙이려고 하다가 눈 지긋이 감더니 한손으로 얼굴 쓸어내린다. 곧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일 오면 마저 얘기해 줄 거야?
 
리은:꽃다운 나이로 있고 싶으니 20대로 하지. (이런 소리나 했다. 당신 올려다 보고) 내일 축제 즐기고 오면 조금은 더 이야기 해줌세. 선물 사오는 것 잊지 말고. (잠시 뜨음) ... ... 역시 기도를 하면서 생각 해봤는데, 비녀보다는 등이 좋겠소. 소원 적어서 띄울 수 있는 것 말이야.
 
다비드:(이제는 대놓고 째려 본다. 지금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 줄 것 같지 않아 제 관자놀이 꾹꾹 누르기나....) 알았어, 선물... 신녀가 기도 하는데 그런 생각해도 돼? (이쪽 나라 기도는 제가 아는 기도랑 개념이 다른 건가 싶었다.) 그럼 쉬어라. 내일 올게.
 
리은의 배웅을 받으며 신녀궁을 나섭니다.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귓가에 작은 속삭임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외다. 어쩌겠어. 너희들은… 내가 채 외로움이 가시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것을. … 오로지 나만 두고… 나만… 나만을 이곳에 남겨두고. … 그대라고 다르지 않아. … 아니지. 그대는 매번 다시 돌아와주니… 좀 다른가."
 
다비드:(발걸음 멈춘다.) 뭐라고 했어?
 
리은:(문가에서 들어가려다가 고개를 기웃.) 나 아무 말도 안했소만. 왜 그러시오?
 
다비드:내 외로움이 해소되지 않을 거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 (제 귓가 만지작...) 정말 미친 건가? 요즘 자꾸 환청 비스무리한 게 들려.
 
리은:... 무슨(헛숨 삼켰다가)... 소리를 그렇게 하는고. 요즘 기 허해진거 아니오? 나중에 의약당에 따로 말해서 보약이라도 챙겨줌세. 다 큰 사내가 기가 허하면 되겠소? 건강이 제일이야.
 
다비드:아직 꽃다운 20대이다만.... (손 휘적인다.) 허구한 날 기침하면서 피 뱉는 사람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어서 들어가.
 
당신의 말에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리은이 실내로 쏙 들어갑니다.
 
이제야 돌아갈 수 있겠습니다.
 
다비드:(신녀궁 한번 보다가 다시 발걸음 돌려 침소로 돌아간다.)
 
돌아오니 어쩐지 집이 텅 빈 느낌이 듭니다.
 
이전과 다름은 어떤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어쩐지 평소보다 지치는 느낌이 들어요.
 
다비드: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럴만도 하다 싶었다. 가슴 짓누르는 의문들 뒤로 하고 주위 둘러본다.)
 
꽃병에 있던 꽃이 약간 시들한 것이 보입니다.
 
당신이 나서기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다비드:(꽃이 시드는 건 당연한 일인데, 어쩐지 이번은 유독 기분이 언짢다. 비단 꽃 때문은 아니지만. 물을 갈아 주며 꽃을 유심히 바라본다.)
 
흰색의 탐스러운 꽃이 바람도 없는 방 안에서 살랑이며 꽃잎을 흔듭니다.
 
어쩐지 계속 그리 보고 있다보면...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 꽃, 어쩐지 보고 있으니 묘하게 기분이 나쁩니다.
 
분명... 분명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이 기분이 이어지는 것도 좋지 않으니 일찍 잠에 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비드:(진짜 피곤하긴 한가보다. 옷 갈아입고 씻은 뒤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습니다.
 
곧이어 수마가 몰려오고...
 
살랑이는 바람에 눈을 떠본다면,
 
당신은 오늘도 희뿌연 달이 뜬 언덕 위에서 눈을 뜹니다.
 
다리가 두 개 있는 언덕에서 올곧게 하늘을 향하는 소나무, 그 밑에 선 이.
 
흰 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섞여서 바람에 흔들립니다.
 
품에 한아름 안고 있는 월하미인에서 청하한 향이 퍼져나옵니다.
 
이번에는... 저번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비드:(느릿하게 눈 뜨면 색다른 눈 둘에 희멀건 달이 한가득 담긴다. 얼마 안 가 본인이 잠든 곳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알아차리기도 전에 달음박질로 소나무 밑에 선 이에게 달려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잖아.)
 
손을 잡자 그 사람은 느리게 당신을 돌아봅니다.
 
얼굴을 가린 천 밑으로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 그대. 기억해? 매번, 매번 이 언덕에 설 때마다 나는 이다지도 비참해지더라. ... ... 매번, 그대가 날 떠나가서 말이야.
 
다비드:미안해. (기억도 나지 않으면서 대체 무엇이? 그저 지금은 젖은 뺨이 마냥 안쓰러웠다. 결국은 손 뻗어 엄지로 눈물을 살 쓸어낸다.) 미안.
 
???: (손길 가만히 받으며 있다가 어깨 늘어뜨렸다.) ... ... 이번에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이마저도 괜찮아. 기억하는 것은 나 혼자면 족하오. 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대를 잃고, 그대는 다시 내게로 돌아옴의 반복이지. 그러니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소. 그대의 잘못은 하나도 없어.
... 그대가 매번 아플 것을 알면서 떠나지도 못하고 나 자신을 작은 새장에 유폐한 것은... 모순적이게도 나라서. 날개 끝이 잘린 새 마냥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오로지 나면 족해.
날아가시게, 그대. ... 그대는 자유로운 사람이잖아. 바람과도 같은 사람이잖아. ... ... 부디 그래주어.
 
당신은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던가요.
 
입은 움직이지만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다비드:(여전히 제 머리로는 당장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뿐이다. 하지만 꿈은 질문하고 대답을 하는 곳이 아니다. 막연하게 무언가를 바라고 또 소망하는 곳이지. 이루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동시에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당신의 시야가 점멸하고 눈을 뜹니다.
 
저 멀리서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달빛이 쏟아지며 눈 앞이 흔들립니다.
 
다비드:(매번 시야가 점멸하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이 제법 우습다. 마른 세수 한번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칠석제가 열리는 첫 번째 날 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시내에서는 벌써부터 흥겨운 음악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군요.
 
[시장], [마을], [신녀궁] 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다비드:(신녀궁 흘끔 보고는 시장으로 향한다.)
 
화려하게 꾸며진 시장입니다.
 
벌써부터 가게들이 붉은 홍등을 내걸고 왁자지껄 시끄럽게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한껏 고운 옷들로 단장하고 삼삼오오 모여 행복하다는 듯 웃음을 내고 있군요.
 
이 세상에 어떤 걱정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당신 주변을 빙빙 돌았다가 웃으며 저 광장으로 달려갑니다.
 
다비드:(잠시 멍때리고 그 모습 바라보다가 뒤따라 광장으로 걸어간다.)
 
광장으로 가면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크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가슴에 모두가 흰 꽃을 달고, 흥겨운 노래에 맞추어 빙글빙글 도는 것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작은 아이가 당신의 소매를 잡아 당기며 흰 꽃을 내밀었습니다.
 
아이: 이거 가슴에 다셔야 해요. 다들 신녀님이 준 꽃을 종이로 만들어서 달고 있어요.
 
다비드:그래? 고마워. (무감하게 받아들고 가슴 언저리에 꽃을 단다.)
 
아이는 곧이어 웃으며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 저 또한 신나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어쩐지 익숙한 듯 한데...
 
다비드:(같이 추지는 않아도 괜찮겠지... 다시 발걸음 옮겨 시장을 둘러보다가 약과가 보이면 몇 사간다.)
 
약과의 값을 치르고 예쁘게 포장이 되어 있는 약과를 받습니다.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딱히 무언가 떠오르는 것은 없습니다.
 
노래 자체가 익숙하긴 하지만... 글쎄요.
 
[잡화점], [천막], [골목] 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비드:(약과를 챙기고 잡화점으로 간다.)
 
여러가지의 물건들을 파는 잡화점 입니다.
 
지금은 한쪽에서 축제 용품들도 판매를 하고 있군요.
 
인상 좋은 주인이 환영하며 맞이합니다.
 
주인: 어서오세요! 아주 예쁜 물건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선물도 좋고 아니면 개인적으로 쓸 것도 좋죠! 이쪽은 축제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이고... 뭣하면 추천도 해줄 수 있어요!
 
다비드:뭐가... 많네요. (주위 두리번...) 선물로 줄만 한 것을 추천 해줄 수 있나요? (신녀에게 줄 거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입 다물었다.) 축제에 관련된 것이면 좋겠네요.
 
주인: 선물로 줄만한 것이라... 축제에 관련이 된 것이면... 누구에게 줄 것인지는 상관 없나요?
 
다비드:꽃다운 20대 여자애요.
 
주인: 꽃다운 20대 여자애요? 그러면 예쁜거 선물 해주면 좋죠! 축제에 관련되고 예쁜 것이면...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저기 안쪽에...
 
주인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꽃모양으로 만들어진 등 하나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주인: 요거 어때요? 물에 띄워서 보내는 등인데 축제 마지막 날에 아주 인기가 좋아요. 신녀님 번제가 시작하기 전에 다들 요거 띄우면서 소원을 빌거든요. 그 소원들이 기가 막히게 다 이루어진다잖아!
 
다비드:...아, 마침 등을 원했던 것 같은데. 딱 좋네요. 이걸로 할게요. (만족한 듯 그제야 얼굴색이 환해진다. 값을 지불하고,) 그나저나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라... 여기 사람들은 이쪽 생활에 만족하여 바라는 것들이 크게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주인: 감사합니다~. (받은 돈을 이래저래 정리를 하다가) 물론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바라는 것이 크게 많지는 않죠. 아픈 사람 없지, 다쳐도 금방 낫지, 언제나 양껏 먹을 수 있고 원하는 것 다 할 수 있고. 여기 사람들은 소원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빌어요. 누군가랑 더 이어지고 싶다, 친구가 되고 싶다던지... 뭐 그런거. 인연의 실이라고 그러던가? 빨간 실을 사가는 사람도 많은데 그 이유가 다 연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미신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사람 둘이 서로를 소중하게 아끼고 품는 것이라고 그랬는걸요! 기적이지, 기적!
 
다비드:(꽃모양 등을 신경 써서 챙겨넣는다. 이어지는 주인장의 말에 잠깐 뜸 들이곤,) 확실히.... 그래, 타인의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또다른 공백.) 그것도 주시겠어요, 빨간 실?
 
주인: 뭔가 이어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봐요? (붉은 비단실이 곱게 정리되어 있는 실타래 약간을 내밀었다.) 새끼 손가락이나 검지에 서로 엮으면 다음 생에도 이어진다죠? 그건 덤으로 줄게요. 즐거운 축제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 신녀님 번제도 꼭 보고요. 보통 번제에는 동물들을 태우는데 우리 신녀님의 번제는 그런거 태우지 않거든요. 타는 것도 없는데 불은 희게 타오르고 향도 참 좋아.
 
다비드:네, 있어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덧붙이다가 비단실 보면 눈 동그래진다.) 이렇게 얇은 걸로 인연이 이어져요? (뭔 포승줄 같은 걸 상상한 건지...) 툭하면 끊어지는 거 아냐? 여하튼... 고맙습니다. (그럼 뭘 태우길래. 또다른 궁금증 일었으나 넣어두고 등과 실을 챙겨서 잠깐 주위 둘러보더니 천막으로 향한다.)
 
천막 주위에는 작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습니다.
 
대충 들리는 이야기로는... 점집... 같아요.
 
다른 사람이 없기에 편히 들어갈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비드:(미신은 잘 안 믿는데... 궁금해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둡고 좁은 공간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향이 나고 있어요.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모를 수 없습니다.
 
매번 맡던 향인걸요.
 
월하미인의 향입니다.
 
천막 안에 앉아있던 얼굴을 가린 이가 당신에게 손짓합니다.
 
다비드:...리은이냐? (슬금... 다가간다)
 
점집 주인: 이런. 아쉽게도 전 신녀님과 같은 이름의 이가 아닙니다. 신녀님은 밖으로 나오시지 못하고 계시잖나요. 무어가 궁금해서 오셨나요? 과거? 미래?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흠... 다른 사람들처럼 인연의 실이 묶인 이에 대해서?
 
다비드:아, 실례했습니다. 분위기가 비슷해서. (품에서 좀전에 산 비단실을 꺼낸다.) 전 아직 인연의 실을 누구한테 묶지 않았는데도 상대가 있나요?
 
점집 주인: 그러고 보니... 신녀님도 얼굴을 가리고 계시지요. 아주 옛날 말에 따르면 신녀님은 검은 머리에 옥색 눈을 가지고 계시다고 했답니다. 물론 다 옛날 이야기지만요. (오. 비단실에 시선 잠시 두었다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요.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실입니다. 인연이라고 하죠. 연이라는 것은 쉬이 끊을 수 없어요. 질기기 그지 없지요. 당신은... (말 없이 잠시 보다가) 아주 오래되었네요. 시간 상으로도 그렇고, 한 이와 아주 단단히 묶여 있어요. 왜 이렇게까지 묶인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분명 이 세상에 나고 죽는 동안 상대와 만나지 않은 적이 아주 적을 정도로요. 계속해서 반복되는 삶이군요. ... 좋다면 좋고, 저주라면 저주일 인연처럼 보여요. 당신은 이것을 끊어내고 싶은가요?
 
다비드:아주 옛날이 혹시 20년 전입니까? (농조에 가까운 말이었으나 이어지는 말에 표정이 점점 무거워진다. 이어 조금 침체된 목소리.) ... ...이해가 잘 가지 않아요. 그렇게 질기기 그지 없는 연을 비단실 따위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고. 본국에 계시는 제 가족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끊어내고 싶을리가 없잖아요. 애초에 쉽게 끊기지 않는다고도 했고. 축복이자 저주인 인연이라고 한다면 전 축복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점집 주인: 20년이라... 그것도 이 나라에서는 꽤나 오래된 시간이겠네요. 사람의 삶이 몇 번이고 되풀이 될 시간, 이라고 해볼까요. (가만히 이야기 듣다가) 사람들이 그것을 완전히 잘라버리는 법을 터득한 지금은, 그 비단실처럼 연약하게 표현이 되기도 한답니다. 모순적이며 이중적이겠어요. (피워둔 향에 손으로 부채질 하여 연기 피워 올렸다. 향 끝에 시선을 고정하는 듯 했다가) 그것으로서 아주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는 매번 생각을 한답니다. 오랜 기간을 봐와서인지, 이제는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더군요.
 
다비드:(이제야 고작 스무 살 조금 넘긴 이로써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지. 인상 옅게 쓴다. 결국은 이방인이기에 내뱉을 수 있는 질문을 내던진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전생을 기억하기라도 하나요? 애초에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났을 때, 새로운 삶의 전후가 같은 사람인 걸 어떻게 확신하죠? (눈 데구르르) 완전히 잘라버리는 법이 뭐길래. (앓는 소리 한번.) 여기에 오면 궁금한 것을 풀어주시는 줄 알았는데 궁금증이 더 생겨버렸어요. 그 마음은 누구를 향한 겁니까?
 
점집 주인: 꿈조차 잡아먹혀 사라지는 이 곳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하네요. 적어도 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그래요.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눈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창이라 하였으니까, 분명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자신의 검지와 중지를 가위처럼 들더니) 그 사람을 지우고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이죠. 쉬우며 잔인하지 않나요? 지난 이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의 강렬한 이로 색을 덮어버리는 것. 과거의 이는 기억 속에서 불태워버리는 것. 많은 인연은 그리 지워져요. (하하, 낮은 웃음소리 냈다.) 의문은 답을 찾는다고 해도 또 다른 의문을 만들어내며 무한정 꼬리를 무는 법이랍니다. ... 제 마음은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라고 해둘게요. 그렇지만... 그래요. 저기 마을에 살던 작은 아가씨가 많이 생각나던 요즘이더군요. 아주 작은 회양나무 같은 분이었는데 이제는 어찌 지내고 계실지.
 
다비드:(가늘어지는 눈살)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인장께서도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당연하게도 신녀궁에 있을 이 또한 떠올린다. 짧지 않은 시간 함께 하면서 단 한 번도 그 이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아챈 적이 없었던 걸까. 본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심장에 말뚝을 박는 건 상처를 꿰매는 일보다 훨씬 더 쉬운 법이긴 한데... 그 말에 공감하지 못하겠는 건 제가 아직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이없는 표정 지어낸다. 애초에 제가 왜 여기 왔겠냐며.) 회양나무 같은 분, 이라... (버릇처럼 입에 담던 말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 한 명 있었다.) 나중에 잠깐 마을에 들를 예정인데 당신의 그분께 안부라도 여쭈어봐드릴까요?
 
점집 주인: 제 얼굴이 궁금하시기라도 한가요? 함부로 보여드리지는 않습니다만... 이러면 궁금증이라도 풀리시려나요. (쓰고 있던 천을 살짝 걷어서 붉은 눈을 휘었다. 곧이어 다시 천 내리더니) 수많은 인연을 만나보세요.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잖나요. 당신은 더 넓은 세계를 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좋은 인연도 있을거고 좋지 못한 인연도 있겠네요. 흠... 그렇지만 가끔...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줄 수 없는 법도 있지만... (말 흐리다가 그저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것이라는 짤막한 말 덧붙였다.) ... 기억하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괜찮으시다면야... 부디 그래주세요.
 
다비드:(저와 다른 색의 눈 마주한다.) 봐도 모르겠네요. (결론!) 제 주인이 허락한다면 그러도록 하죠. (뚱...) 그 말 자식들이 부모에게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인 거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러도록 할게요. 그 아가씨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점집 주인: ... 허락의 유무가 무관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하지만, 부디 좋은 출발이 되었으면 하네요. 아쉽게도 전 자식이 없는지라. (흠...) 아쉽게도 이름은 모르겠어요. 묻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당신도 분명 보자마자 알 수 있을게 분명해요. 보게 된다면 생각나는 이름 한번 불러주세요. 무엇이든 이름을 불러주어야 의미를 가지는 법이 아니겠나요.
 
다비드:...언제 제 미래까지 읽으셨어요? 아. (본국의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만...) ...끝까지 의문투성이네요. 일단 알겠습니다. 아, 복채은 얼마 드리면 됩니까? (지갑 주섬주섬)
 
점집 주인: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나 내고) 복채는 괜찮아요. 재미있는 운명을 봐서 오랜만에 즐거웠거든요. 아, 그래. 하나 더 충고를 덧붙이자면... 가지고 있는 구슬 있지요? 항상 지니고 다니세요. (음.) 이제 정말 끝. 즐거운 칠석제 보내도록 해요.
 
다비드:(왜 혼자만 재밌어 하는데? 볼맨소리 내려다 혀끝에서 멈추고 고개 슬 끄덕이며 점집에서 나온다.)
 
점집에서 나오니 상쾌한 공기가 당신을 맞이합니다.
 
다비드:(상쾌한 공기 뒤로 하고 골목길로 들어선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붉은 등이 아닌 흰 등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없네요.
 
아무래도 모두 큰 길에 나가서, 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비드:(뭐 볼 건 없나 두리번......)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의 귓가에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아니, 정확히는... 울음 섞인 목소리.
 
"어디에 있어...? 손 놔버려서 미안해... ... 나 무서워..."
 
흐린 울먹거림이 이어지다가 곧 사라집니다.
 
다비드:....혹시 나 정말 식스센스라도 트는 건가.....?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제법 심각해진 표정 된다. 조금 더 서성이다가 골목길에서 나와 마을로 간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장터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마을 입니다.
 
사람들이 약간 모여서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언덕을 올라가 장터를 바라보니 빛무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대 모여 일렁이고 있습니다.
 
마을에 있는 모든 이들은 고운 옷을 입고 가슴에는 흰 꽃을 달고 있어요.
 
아이들이 모여서 깔깔 웃으며 노래를 부르며 어른들의 주변을 뛰어 놀고 있네요.
 
[노인], [폐가]를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비드:(그 광경 잠시 시선에 담는다. 저기에 함께 할 수는 없겠다 싶어 노인에게 다가선다.)
 
마을의 유일한 노인 입니다.
 
평균 수명을 몇 배를 넘고도 살아있는 유일한 이죠.
 
아니, 나라에도 몇 없지 않을까요?
 
마을 사람들 다같이 그를 모시고 있긴 하지만 달가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앉아 축제에 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습니다.
 
노인이 당신을 보고 고개를 까닥이며 가벼운 인사를 합니다.
 
노인: 어서오시게, 젊은이. 좋은 하루 보내고 있나?
 
다비드:(뜻모를 동질감... 얼굴색 조금 더 밝아진다.) 안녕하세요. 네, 어르신께서도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노인: 물론이지. 오늘은 꿈도 좋았어서 기분이 참 좋아. 칠석제 노래도 들을 수 있고. ... 아아, 그래. 이 인사를 하는 것을 잊었어. 모두 기분 나빠하는 것이라서 말이야. (당신 올려다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좋은 꿈 꾸었나?
 
다비드:어르신도 꿈을 꾸시나요? (흥미 생긴 표정 짓고는 그 옆에 앉는다.) 아, 여기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죠... (그런데 그 질문이 기분 나빠할 정도던가?) 요즘 잠자리가 이상하긴 해요.
 
노인: 다른 이들은 꿈이 대체 뭐냐고 비웃기만 하거든. 매번 같은 꿈을 꾸는데... 이번에만 달라서 말이야. (시선 돌려서 당신 가만히 본다.) 자네도 꿈을 꾸었나? 잠자리가 이상하다니... 털어놓을 이가 없다면 내게라도 이야기 해보게.
 
다비드:같이 나누시죠. 어르신께서는 어떤 꿈을 꾸셨어요? (꿈 되새기는 듯 눈 지그시 감는다. 어둠 속에서 망막 위로 더욱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웠던 사람이 울고 있었어요.
 
노인: 어째 꿈 속의 이들은 하나같이 다 슬픈 모양이야. 으음... 그러니까...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다리가 하나 있었네. 두...개 인가? 아무튼 하늘에는 은하수가 떠 있었고... 그 밑에서 한 여자가 누군가를 안고 있었어. ... 그리고... 아주 서럽게 울던데... (흐릿한 기억 더듬는 것처럼 미간을 잠시 찡그렸다가) ... 그 안고 있는 이는 매번 달랐네. 어떨 때는 아이였고, 청년이었고... 매번 그걸 한참 보고 있다가 깨어나는데... 이번에는 말이야... (흐린 미소 냈다.) 그저 함께 손 꼭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네. 그게 못내 좋았을 정도야.
 
다비드:.... (가만 경청하고 있으면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그러고보니 다리 하나, 언덕에 있는 소나무. 그리고 또다른 다리 하나를 건너 당도하는 곳은, 뻔하지 않아?) ...정말 신기하게 제가 꾸었던 꿈과 내용이 흡사하네요. 어르신께서도 예지능력을 가지고 계신 건지...
 
노인: 그러한가? 예지능력... 보다는... 글쎄. 난 꽃이 꿈을 먹어버린다고 말해. 자네도 날 미쳤다고 해도 좋긴 하지만... 이건 무를 수 없는... 내 경험이야. 원래 모두가 꾸어야 했을 것을, 그것이 먹어버리는 것이지.
 
다비드: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느정도는 미쳐있다고 생각합니다, 만... (느리게 눈 깜빡인다.) 꽃에 연관된 사건이 많네요. 혹시 그 꽃이 월하미인인가요?
 
노인: 듣기에 나쁘지는 않는 말이군. 내 입장에서 인 것이지만... 어디서 그런 말 하면 돌 맞소, 젊은이. (하하, 힘 없는 웃음 냈다.) 그래. 신녀님께서 주시는 꽃 말이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오싹해지지 않는가? 가지고 있는 것도 기분이 좀 그래서... 이번에 받은 꽃도 앞집에 아픈 아이가 있다길래 줘버렸지. 매번 그러고 있어. ... 그렇다고 신녀님이 나쁜 사람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닐세.
 
다비드:여기 있는 사람들이 돌을 던진다구요? (못 던질 것도 없는데 큰 타격이 없을 것 같아서. 고개가 기울어진다.) 그런가요? 지금 당장 제 방에도 하나 있는데... 여전히 꿈도 꾸고 있고, 기분이 오싹하기보다는. (환청을 듣고 있지. 그런 의미에서인가? 뒷말은 삼킨다.) 저도 신녀님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으로서 그분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뜸...) 이런 말 실례일지도 모르겠는데,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
 
노인: 보통은 자신보고 어느정도 미쳤다, 소리를 하면 기분이 나쁜 법이지 않나. 좀 과격한 표현이었을지 몰라도. (작게 침음 흘렸다.) 가까이서 뫼시고 계시군. ... 이런. 눈이 침침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였어. 미안하구려. 나이... 나이... 제대로 센지 오래 되어서... 여든... 하나 되던가...
 
다비드:아하.... 제가 살던 곳에서는 미쳤다는 게 열정을 뜻하기도 해서 그런 걸지도. (내뱉은 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건 타인의 몫이기도 하지만. 높은 숫자에 눈 살짝 키운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역사라던지... 이전의 신녀들 등등 잘 알고 계시겠네요.
 
노인: 그건 또 신기한 해석이군. 다른 나라에서 왔나? ... 조금 더 눈이 잘 보였으면 좋았을텐데. (이전 신녀라는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역사라면야... 이 나라는 도통 바뀐 것이 없어서 특별히 말을 해줄 것이 없다마는... 이전 신녀... 이전... 신녀... 몇 대 신녀가 궁금하길래 그러나?
 
다비드:조금 먼 곳에서 왔어요. 혹시 검은 머리에 옥색 눈을 가진 신녀도 아십니까?
 
노인: 아주 옛날의 신녀님이 그랬다고는 들었는데... 다 전해지는 이야기인지라 정확히는 모르겠군. 적어도 내가 직접 본 신녀님은... 지금처럼 하얗기만 한 분이 아니었어. 분명 검은 머리카락이 요로코롬 섞여 계신 분이었는데. 작년 번제 때 뵌 신녀님은 죽을 때가 다 된 노인마냥 머리가 온통 하얀색이지 않으셨나. ... 그새 다른 분으로 바뀌셨나... 애초에 이 나라 사람들이 오래 사는게 드무니...
 
다비드:혹시 동일인물이거나 같은 사람이 환생같은 것을 한 건... (이어가는 목소리가 점점 흐려진다. 잠시 뜸 들이고,)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뭐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계속 망상을 하게 되네요. (당신은 왜 여태껏 살아있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짧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쪼록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길. 이번 꿈자리는 조금 더 평안하길 바라죠.
 
노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다비드:(폐가로 걸음 옮긴다. 여기면 조용하겠지.)
 
다리를 하나 건너고 소나무가 심어진 작은 언덕을 지나, 다시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곳입니다.
 
드문드문 벽과 건물의 흔적만 남아있네요.
 
흔적을 본다면 꽤나 넓은 기와집이 있던 모양입니다만, 지금은 완전히 으스스한 모습이 되어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비드:(다리 하나, 소나무가 심어진 언덕, 그리고 다리 하나. 무언가에 홀린 듯 안쪽으로 들어선다.)
 
다비드: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당신의 뒤를 따라온 것인지 아이들이 저들끼리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비드:(환청은 잘 듣는데)(뒤돌아본다)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서 가장 큰 아이 뒤에 와르르 숨습니다.
 
큰 아이는 당신을 보고 헛숨을 삼키더니 겨우 말을 꺼내는군요.
 
아이: 으... 어... 음... 시, 신녀궁... 에서 오셨어요...?
 
다비드:(다가서지는 않고 그 자리에서 지켜본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아이: 함부로 들어가시면... 처, 천벌 받아요... 거기! 옛날 신녀궁... 이, 있던 곳인데... 여기 왔던 사람들 다 화, 환청 들으면서... 미쳐버려서 출입금지... 된 곳이라... (딸꾹)
 
다비드:아... (알 수 없는 기시감은 그 때문이었나?) 환청은 이미 듣고 있고 요즘은 조금 미친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괜찮지 않을까?
 
아이: 에? 아니... 네에...? 어, 엄마아아...!!!
 
아이가 냅다 비명을 지르며 다른 아이들과 함께 저 멀리에 있는 어른들에게 달려갑니다.
 
별다른 방해 받지 않고 살펴볼 수 있겠어요.
 
폐가 안에서는 은은한 향이 나고 있는 듯 합니다.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인사할 틈도 안 주는군. (다시 몸 돌려 폐가 둘러본다.)
 
눈을 깜빡임과 동시에 폐허였던 곳에 색이 입혀지며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쬡니다.
 
흰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나무에 올라가 밖을 보는 작은 소녀와 담장 너머에서 올려다 보고 있는 소년이 보이는군요.
 
검은 머리칼의 소녀는 입을 엽니다.
 
“있지, 그대. 다음에도 또 와 주는가?"
 
이에 소년이 답하려 입을 열려 할 때 다시금 깜박.
 
눈을 떠보면 당신은 그저 이전과 다름 없는 폐허에 서 있습니다.
 
이성 -1
 
다비드:이제는 환청이 아니라 환각도 보는가? (부정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평화로운 풍경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이곳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그 따스한 햇살이 그리웠던 탓이겠지. 걸음 옮겨 낡은 벽을 쓸어본다.)
 
다비드: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62
판정결과: 실패
(이젠 앞도 안 보이는 듯.)
 
당신이 손으로 쓸어내린 벽 근처에 무언가 희미하게 적힌 것이 보입니다.
 
다비드:(눈 부비작 거리고 뭔지 다시 본다...)
 
아주 오래 전에 적힌 듯 희끗한 글씨 입니다.
 
'칠석제 마지막 날에 해 지고... 그 애가 오는거 잊지 말기.'
 
다비드:(느릿하게 눈꺼풀 내리감는다. 숨 내쉼과 동시에 눈을 뜨면 여전히 폐허 속이다. 살갗을 관통하는 적막감이 선명한 것을 보아하니 백일몽은 아닌가 싶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더 볼 것이 있나?)
 
쓸쓸함만이 감돌고 있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볼 것은 없을 듯 합니다.
 
다비드:이러다가 늦겠네. (아까 사두었던 비단실, 등, 약과 등등 확인하고 신녀궁으로 발걸음 돌린다.)
 
언제나처럼 신녀궁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은 신녀궁에 사람이 거의 없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칠석제나 보러 간 모양이네요.
 
신녀궁의 문을 여니 안에서 침상을 정리하던 막내 궁녀가 당신을 보고 꾸벅 인사를 합니다.
 
막내 궁녀: 오늘 안오실거라구 생각했는데... 안녕하세요. 신녀님은 기도 드리러 가셨어요. 조금 기다리시면 오실거예요.
 
다비드:안녕... 그런데 오늘 내가 왜 안 와?
 
막내 궁녀: 그야 다른 분들은 다 번제 드리기 전에 오시니까요. 궁에서 잘 못나가니까... 뭔가 즐길 시간도 없잖아요. 무사님두 그러실거라 생각했죠오. (힐꼼) 재미있으셨어요?
 
다비드:아, 내가 일찍 온 모양이구나. (뜸....) 내가 그들 틈에 낄 수는 없잖아. 그래도 충분히 즐겼으니 되었어. 신녀궁에서 별 일은 없었지?
 
막내 궁녀: 아직 첫날이니까 다들 안올거라고 신녀님두 그러셨는데, 이번에는 신녀님두 틀리셨네요! (으항항) 물론 아무 일 없었어요. 요기 앉아계세요. 제가 바루 신녀님 모셔 올게요.
 
다비드:그래? 표정이 궁금해지네... (얌전히 앉는다.) 부탁할게.
 
막내 궁녀가 나가자 어쩐지 피로가 슬며시 몰려오는 기분입니다.
 
사람들을 이래저래 상대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비드:(오랜만이긴 했지. 벽에 머리 기댄 채 눈 감는다.)
 
무거운 눈꺼풀을 감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당신의 눈 앞에 환한 빛이 비추어집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오는군요.
 
"... ... 거기... 하니?"
 
다비드:...? (눈꺼풀 들어올린다.)
 
당신의 앞에는 흰 담장과 그 너머의 나무 위에 올라 앉은 검은 머리카락의 아이가 보입니다.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네요.
 
리은:거기서 뭐하고 있어?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니까... 당신은 기억을 되짚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이 나라에 잠깐 왔고...
 
그리고... 잠시 마을에 들러서...
 
정차 없이 걷다가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대체 이 기억은 뭔가요?
 
어릴 적에 당신이 이곳에 온 적이 있던가요?
 
분명 '당신' 에게는 없는 기억일 터입니다.
 
다비드:
SAN Roll
기준치: 86/43/17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하락 없습니다.
 
다비드:...잘 모르겠어. (시선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나무 위에 앉은 이에게로 옮겨진다.) 너는 거기서 뭐하는 거야?
 
리은:이상한 이구료. 예 아무 일 없이 오는 사람이 없는데. (빤히 보고 있다가) 사람 구경 중이오.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대가 이번에 마을에 왔다는 아해 아닌고? 이야기 쬠 들었는데... 진짜루 눈 색이 곱소. 가까이서 볼 수 있으면 좋았겠다.
 
다비드:왜 밖에 못 나가...? 나도 이렇게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한걸음 다가선다.) 그 말은 또 처음 듣는걸... 내가 올라갈까?
 
리은:그야아... 신님이 나가면 이놈~ 한다고 했으니까 못나가지. 궁녀 언니들도 나가지 말라고 하던데. (끔박이다가 주변 슬 둘러보고) 들키면 엄청 혼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사람두 없으니... 괜찮겠지! 내가 잡아주께. 기다려 보시게. (낑낑... 나무에서 내려가기...)
 
담장의 뒤에서 애쓰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기와 너머로 아이의 머리가 올라옵니다.
 
리은:자아- 이러면 손 잡을 수 있소? (담장 위에 올라가서 손 내밀었다.)
 
다비드:신님? 내가 아는 신님은 그런 걸로 화내지 않으시던데... 어, 진짜? (뿅... 튀어나온 머리 빤 보더니 손 잡았다.) 나는 다비드라고 하는데... 너는 이름이 뭐야?
 
리은:우리 신님은 속이 좁은게야. 아니면 소유욕이 이따시만하거나. (손 꼭 잡고 당신을 힘주어 끌어 올렸다. 우이익...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아는... 리은! 이 리은이야아. 다비드... 다비드... 서역에서 오셨소? 에그, 그래서 다들 야단이었구먼. 멀리서 왔는데 내가 다과라도 물려주까?
 
다비드:음... 그래, 질투하실 수도 있지. (순간 손목이 부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볍게 담장 올라가 그 너머에 도착한다.) 리...온? 은? (은자 발음하기 힘든 모양....) 특이한 이름이네. 나 여기 온 거 들키면 안되지 않아...?
 
리은:도통 이해를 못하겠소. 이전 신녀들도 다 예 밖에 나가지 않았다는데... 난 답답하단 말이오. (뿌듯하게 엣헴. 하더니 꼬물꼬물 저도 담장 내려가려다가 멈칫.) ... ... 자, 잡아주라아... (나무는 잡을 곳이라도 있지... 담장은 없으니 무서웠다.) 안되긴 하지만 어차피 지금은 사람도 없소. 오늘 칠석제 첫째 날이라고 다들 나갔는걸. 나만 두고! 나만! (볼 빵빵하게 부풀렸다. 흥!이야 완전!)
 
다비드:그냥 나오면 안 되는 거야? 그냥 신님이 이놈~하는 소리 한번 들으면 되잖아. (단순) 내려올 줄도 모르면서 막 올라오면 어떡해. (양팔 벌린다. 뛰어내리면 잡아 주겠다는 듯.) 칠석제가 뭔데? 너 혹시... 왕따야? (이런말이나)
 
리은:그치만... 이놈~ 하는건 무서운데... 한 번만 나갈까? 그냥 딱 한번만 나갔다가 올까? 나도 칠석제 가구 싶은데... (단순한 말에 고민되는 듯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거리고 있다가 조심조심 뛰어 내리려 하는 순간에 이익!) 왕따 아니야! 바보! (폴딱 뛰어서 당신 팔에 안착했다. 당신 볼을 쭉 당긴다. 우씨.) 완전완전 큰 축제라고 했소. 신녀한테 감사하다고 여는거요. 요망한 입을 어쩌면 좋을까!
 
다비드:그럼 같이 한소리 들어줄게. 같이 가자. (으악! 폴짝 뛰어내리면 안전하게 잡고는 휘청거린다.) 왜, 왜? 왕따면 친구라도 해주려고 했지!! 여기 사람들은 신녀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 (어라? 이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나? 애초에 이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리은:진짜지? 약속했소. 약속한 거요! (표정 환하게 변해서는 휘청거리는 당신의 목 꼭 안고 아하하, 경쾌한 웃음 냈다.) ... 치, 친구는 없지만 왕따는 아니오. ... 그러니까아... 음. 친구는 좋아. (입술 삐죽) 나라가 풍족한게 다 신님 덕분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런거요. 신님께 기도를 열심히 드리고 백성을 위한 신녀님이니 사랑 받아 마땅하다... 뭐 그런 이야기겠소. 정작 신녀님은 축제도 못보는 곳에서 갇혀 있는데도. (투덜거리다가 눈 깜박였다.) 있지이, 그대도 신녀님 좋아해?
 
다비드:가만히 있어봐, 그러다 정말 떨어져. (끄응... 팔에 힘 실는다. 그래봤자 그렇게 무겁지도 않았지만.) 그게 그거 아니야? 그으래... 그러면 친구정도는 해줄게. 약속이라도 해? (그제야 온전히 널 시선에 담는다. 녹음이 가득한 두 눈이 꽃을 닮았다, 그런 생각 잠깐.) ...특이한 발상이네. 나라면 그냥 나혼자 기도 드리고 신님께 감사를 드릴 것 같은데. (빤.) 응...? 나? (신녀를 아느냐 묻는 게 먼저 아니야? 아니면...) 응, 좋아해.
 
리은:나, 나아 놓지 마! 떨구면 미워할거요. (괜히 당신 안은 손에 힘 꼭 주었다. 몸이 살짝 경직이 되었던가.) 웅. 약속이야. 새끼손가락에 걸구 약속이야. 난 친구 계속계속 그대밖에 없을거란 말이오. (마주보았다. 색 다른 눈이 그렇게도 곱더라. 가까이서 보니 훨 좋다.) 좋은 날은 다 같이 즐겁자는 것이겠지 뭐어. 즐거울 수 있다면 명분은 뭐라도 좋은게요. (시선 맞추었던 눈꼬리 휘어 웃었다.) 그럼 나도 그대가 좋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간질간질한게 말이야아-. (쑥스러운지 몸 살짝 꼬았다.)
 
다비드:네가 먼저 놓치지만 않으면 계속 붙잡고 있을걸? (그 말에 힘 실어주듯 너 안고 있는 팔이 제법 단단하다.) 그런가? 네가 그렇다면 그런가 보지. 즐거울 수 있다면 뭐라도 좋은 거야. (시선 마주하면 짧은 간극이 잇따른다.) 나도 그래. 간질간질하고, 어딘가 모르게 따뜻하고. 웃었으면 좋겠고, 더 함께하고 싶고. (그제야 입매가 매끄러운 호선을 그려낸다.) 이거 꿈이구나, 리은아.
 
리은:아주 믿음직한 말이군. 순진한 아해 골려 먹으려고 한 말이면 아주 나쁘지만 이번만 믿어주지. (말은 그리 했으나 몸에 힘 풀어져 편하게 기대는 것이 분명 믿는다는 뜻이었을 것은 분명했다.) 다같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매일매일 웃고 지내구 아프지도 않구... (말 끝 흐리다가 숨을 삼켰다. 웃는거 예쁘네. 가만히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좋아하는 이라면 정말로 복 받았구나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음? 꿈이라니? (옆으로 고개 기울였다.) 아까 뺨 꼬집은거 안아팠어? 그럴리가 없는데... ... 충격 요법이 필요한가...
 
다비드:난 거짓말 잘 못해. 그런데 정말 골려 먹으려고 한 말이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계속 이대로 있을 셈인가? 팔에 힘 푸는 대신 조금 더 가깝게 널 품에 안는다.) 신녀님이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게 다정하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왜 그런 표정이냐는 듯 가만 바라본다.) ...그야... 안 아팠던 것 같은데? (심각...) 뭘 하려고...?
 
리은:흐음...-. 골려 먹으려고 한 말이었으면... 뭐... 어쩌겠소. 나 혼자 뭐 아쉽고 그런거지. (쪼기 가자. 라며 정자 가르켰다. 품에 기대서 입술 삐죽. ... 아쉽구 마는거지... 그치... 마는거지... 꼬물꼬물 거리다가) 그럴리가 없는데...! 아무 감각이 없는거 아니오?! (쬠 진심이다. 힘이 약한 것 뿐이었지만.) 궁녀 언니들이 알려준 비기! 정신 번쩍 든대! 나두 쓰는건 처음인데... (힐꼼힐꼼 당신 눈치를 보다가 당신 볼에 쪽) 어때? 정신 들어?
 
다비드:진짜? 나라면 정수리에 주먹꿍 했을 것 같은데- (뭐야? 날 가마로 보고 있는 건가? 그런데 고분고분 또 듣는다. 총총...,) 그런 소리 가끔 듣긴 한데 너가 힘이 없는 거 아니야? (너 안고 정자쪽으로 걸어가서 조심스레 내려둔다. 그리고,) ....
광수예요
...꿈 맞잖아.
 
리은:다른 사람 때리면 안돼. 아프잖는가. 말로 해결해야지. (후후.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떨어질까 꼭 잡고 있다가) 아니야아~! 나두 힘 있단 말이오. 그대가 감각이 없다는 소리를... ... 아니 그걸 왜 듣고 살아?! (따발따발 잔소리 하려고 하다가 엣. 멈칫. 가만히 앉아있던 것에서 슬쩍 제 다리 올려서 무릎 그러 안았다.) ... ... 그대 꿈에서는 이런 일이 많나보지?
 
다비드:말로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가끔은 주먹보다 말이 더 아프거든. ...글쎄? 내가 표현을 잘 안 하나? (아직 온기가 옅게 남은 제 뺨 만지작거리다가 네 옆에 앉는다.) 많은 것보다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꿈이라고 치부하지. 너는 안 그래?
 
리은:말로 해결되지 않는다구 폭력을 쓰면 싸울지도 모르잖아. 궁녀 언니가 그랬소. 폭력은 폭력을 불러. 아무리 아파도 안좋은 고리는 끊어야 한다구. (으이구. 둔한건지 나원참. 소리나 내며 슬며시 옆으로 톡 넘어가 당신에게 기대었다.) 나도 그렇긴 하지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거요? 왜애? (시선 내리 깔았다.) 가벼운 애정 표현이라고 그랬는데.
 
다비드:너 말로는 한번도 싸워본 적 없는 사람같이 말하는구나. 나는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 간단 말이야. (둔하다는 말에는 딱히 부정 안 했다. 소통하는 방법은 제대로 배운 적도 없으니.) 그 가벼운 애정 표현도 안 하고 안 받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지... (본인포함.)
 
리은:잘 모르겠는데... 대화를 해본 사람도 거의 없고 한다고 해도 여기 궁 안에 사람들 뿐이라서 구태여 말로 싸울 일도 없단 말이외다. (완벽한 우물 안 개구리. 잘 모르겠다는 듯 한쪽 눈썹을 올리기나 했다. 마음의 상처? 아픈걸까?) 표현은 좀 하고 사시게. 뭐든지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르는 법이오. 독심술을 쓴다구 해도... 말로 직접 듣는 것과는 천지 차이야아.
 
다비드:여기 궁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너에게 잘해줘? 끔... 뭐든 싸우지 않는 쪽이 아프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어질지도 모르는 인연을 막고 싶지도 않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상처받고 또 사람을 통해 치유받는다고 배웠거든. (그렇게 말하는 이쪽도 우물 안의 개구리다. 그런즉,) 본인 스스로도 표현해야하는 그 감정을 모르면 어떻게 해?
 
리은:물론이지. 나한테 나쁘게 대하는 이는 어디도 없소. 물론 기도 시간을 빼먹으면 꾸지람을 약간 듣긴 하지마는... (이어질 인연이라... 갸웃거리며 머리 굴렸다. 저에게는 도통 모를 이야기라서.)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상처를 받고... 사람을 통해 치유를 받고... 알지이...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난 적이... 도통 없어서... (말 끝을 흐렸다. 입이나 다물었다. 어차피 난 사람 만날 일 더는 없으니 상처 받을 일도 없겠네. 그리 중얼거릴 뿐이었다.) 앗, 어려운 질문이잖소, 이거. 감정을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다고 해도 느끼는 것이 있기는 한 것 아니오? 그러면 느끼는 것을 입 밖으로 내면 되는게요. 그럼 자연스럽게 깨달을 때가 오지 않을까 하여.
 
다비드:난 가끔 그런 꾸지람에서 상처를 받는데. (어린 아이들은 대개 그렇지 않냐며.) 아니면 네가 그들을 그만큼 좋아하는걸까? (순간 고민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 새장을 벗어나 멀리 날아간 어린새. 무어가 더 나을까 저울질 하는 건, 역시나 저의 몫이 아니다. 종내에는 질문의 회로를 틀어낸다.) 너는 새로운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어? (중얼거리는 모습 내려다보다가 작은 정수리 가볍게 쓰다듬는다.) 그으런가... (영 확신없는 표정.) 그러면 먼저 말해볼래? 너가 지금 느끼는 감정.
 
리은:구치만 그건 내가 먼저 잘못을 했으니까 합당하게 돌아오는 것 아니오? 잘못을 하였으면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함은 당연지사라 하였는데두. (어릴 적에 저가 들었던 소리를 그대로 내었다. 난 그런 것으로 상처 안받아. 라며 깜빡.) 꾸지람은 날 그만큼 염려하고 있다는 뜻이니 그마저 기껍소. (말간 웃음이나 내었다. 애정에 대해서 구분하기에는 너무 어렸으니까. 당신이 틀어놓은 물꼬를 따라 생각의 회로를 틀었다.) 웅. 밖에 나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날 좋아해줄 터이니까 나가보고 싶소.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뭐 어떤가! 날 변함없이 좋아해주는 이들이 있는데.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다. 그들이 애정이 리은이라는 자에게 오는 것인지 신녀에게 오는 것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무지함이었다.) 내가 먼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 (입 다물었다. 다리나 달랑달랑 흔들다가) 두근두근? 새로운 만남에 의한 설렘이라거나... 나중에 같이 가준다는 칠석제에 대한 기대감이라던가... 마냥 그대랑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구료. (제 양 팔을 쭉 폈다.) 이~따시만큼 두근두근해!
 
다비드:벌을 받는 거구나.... (대상 불분명한 중얼거림. 직후 눈 감았다가 뜨더니 가벼운 목소리 낸다.) 꾸지람도 매일 듣는다면 분명 귀찮아질걸! 그래도 네가 상처받지 않는다면 되었지. 너 제법 어른스럽다? (의외라는 것 마냥 끝말에 물음표가 붙는다. 명백하게 놀리는 투다. 이따금의 공백.) 사람들이 왜 너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기도. (무지 속 때묻지 않는 순수함. 선한 홍조가 피어오른 볼, 핏기 어린 입술. 그 모든 것 품은 무해한 낯. 밝은 색감의 생동성, 그리고 어린애의 동력... 세상은 대체로 이러한 것들을 모아 사랑스럽다, 라고 묘사하지 않는가. 그러니 진심 어린 소리 내기를,) 어여쁘네. (그리고 답해준 것에 화답하듯 눈접어 웃었다.) 나도 너와 함께 해서 좋아, 리은아. 손 잡아도 돼?
 
리은:왜애? 누가 이놈~ 하고 했는가? (말가니 보기나 하다가 헛.) 그이... 그... 아니다아하? 하낫두 안귀찮... 안귀찮다, 뭐! (사실 매일 기도시간 빼먹고 있으니 이제는 슬슬 귀찮았다. 요상한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 괜시리 투덜투덜거렸다.) 맞아! 나 이제 어른이오. 다 컸어! (3초 뒤에서야 놀리는거야?! 그치?! 라며 바락 씅질냈다. 그래봤자 찡그린 만두에 지나지 않겠지마는.) 우... 흠... 흠흠... ... 그으... 렇게 말해준다면야아...~ (단순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당신의 웃음이 마냥 좋다. 손 뻗어서 당신의 손을 가만히 잡아본다.) 웅, 그럼! 얼마든지! 그대라면 언제든 잡아두 좋소!
 
다비드:부모님이랑 같이 지내면 자주 듣지. (허구한 날 집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돌밭에 구르고오니 당연한 걸지도) 그러면 앞으로 매일매일 잔소리 더 들어도 돼? 이제 '제법' 다 큰 리은아. (그걸 못참고 잇새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찡그린 만두 미간 문질문질.... 맞잡은 손에 힘 실었다.) 그러면 이제 나랑 밖으로 나가볼래?
 
리은:오... ... 부모님이 이놈~도 하오?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자기는 없으니까. 땡글하게 보고 있다가) 그대 아주 장난꾸러기구먼! 생긴 것과 다르게 말이오. (응하하!) ... .. ... 아니... 아냐아... 타, 타협이라는 것이 필요할 듯 하여... (미간 문질문질 당해서 펴졌다. 당신의 손 꼭 잡고 있다가) 지금? 지이금은...
 
다비드: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 입구 쪽에서 두런두런 소리들이 들립니다.
 
"이거 축제 간식인데 아가 신녀님 기도 시간 끝나면 드릴까?"
 
"지금 기도실에 계시려나?"
 
"깜짝 선물로 드리자. 조용히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는 거야. 어차피 우린 저녁에도 나가니까."
 
다비드:부모님도 이놈~하지. 가장 많이 하시지 않나? 너네 부모님은 안 그래? (엇비슷한 궁금증. 시선 빤히 마주한다.) ...내가 어떻게 생겼길래? (어리둥절) 지금은 왜 (뭐라 말 이어가려다가 입구 쪽에서 들리는 소리들에 멈춘다.) 사람들이 오려는 것 같은데... 숨을까?
 
리은:... 나는... 부모가 없는데...? 기억두 않나구... 꼭 있어야 하오? 그만큼 궁녀 언니들이 잘해주니까... (말 끝 흐리다가) 좀... 둔하게 생겼지. 바늘로 찔러도 표정 하나 안바뀔 것 같애. (헤헤. 솔직한 감상이나 내뱉었다가 사람들이 온다는 소리에 발딱 일어났다.) 드, 들키면 이거 무우조건 이놈!이야! 여기 숨을 곳 없소오... 괜찮으면 저녁에 다시 와주면 안되오? 축제는 저녁에두 하고... 궁녀 언니들은 그때두 나가니까... (소곤소곤...)
 
다비드:(짧은 침묵.)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나? (답하다보니 뜻이 이상해서 덧붙인다.) 모르겠어, 나에게는 그분들 밖에 없으니까. (맹)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너는 콕 찌르면 눈물 터뜨릴 것처럼 생겨서, (묻지도 않는 상대의 얼굴평가 내뱉다가 너 따라 벌떡 일어난다.) 난 그래도 상관 없는데.... 너는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영 아쉬운 낯)
 
리은:가족이란건 마음으로 이어지는 거랬으니까 없어두 괜찮아! 원래 어린 애들은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랬으니 그럴 수 있소. 원래 그게 맞을걸? (조잘거리다가 볼 잔뜩 부풀렸다.) 아니야! 나 지금까지 운 적 없단 말이오! 사람이 뭐 물주머니인가! (나중에는 정말로 콕 찌르면 울 것이다. 그렇게 자랄 것이다.) 당연한 말을 하고 그러시오. 내가 따로 갈 곳이 어디에 있다구. 해만 지면 갈 수 있을 터니까아... 술시 즈음에 보세. 쪼기 나무 있던 담장 너머서 기다리구 있으면 내 갈게. (잡지 않고 있던 다른 손으로 당신의 볼을 부비작 문지르고는 개구지게 웃는다. 사람들 어디에 있나 확인하곤 당신 데리고 조심조심 담장 쪽으로 총총) 담장 위에 아무도 없으면 리은아~ 하구 함 불러주시오. 알겠지?
 
다비드:(가만 경청하다가 고개 느릿하게 주억거린다. 그러더니 잔뜩 부풀린 네 볼 손가락으로 콕...) 그건 또 의외네. 물만두 같아서는... (자주 웃는 사람은 자주 울기도 한대. 중얼거리며 개구진 미소 멀거니 바라보다가 네 발걸음 뒤밟는다. 다시 한번 담장 앞에 서게 되면, 마주잡은 네 손 한번 내려다보며 만지작거리더니 네 머리 한번 더 쓰다듬고 나서야 담장 위로 가뿐히 올라간다. 환해진 낯으로 너 내려다본다.) 손 잡아줘서 고마웠어. 그러면 나중에 해 지고 나서 우리 다시 보자.
 
리은:내애가 무슨 물만... 아니야아! (들킬까 싶어서 작게 신경질 냈다가 한쪽 눈썹 올렸다. 이번에도 잘 모르겠다는 듯 보였을까. 당신이 저를 쓰다듬을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당신 올려다 보았다. 작게 손 흔들흔들) 웅. 알겠소. 내 요기다가 쪼그맣게 적어두기도 할 테니까 잊을 일 없네. 달님이 인사하는 시간에 다시 만나자아-.
 
당신이 담장을 넘어가자 아주 잠시 뒤, 담장 안쪽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신녀님! 또 기도 시간 빼먹으셨죠!"
 
"에. 아, 아닌데에헤? 아은이 기도 잘 하구 있었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어휴, 지금이라도 다시 기도 드리러 들어가세요."
 
다비드:(그럴 리가 없잖아요)
 
꽤나 자주 빼먹은 모양이네요.
 
다비드:(그런거였군... 담장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축제가 열리는 광장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당신이 광장으로 가며 눈을 한번 깜빡, 두 번 깜빡였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당신의 머리 위에 달이 떠오른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의 눈 앞에는 다시 흰 담장이 보이는군요.
 
다비드:(기이함 못 알아차리고 아까 약속했던 것처럼 담장 너머로 네 이름을 부른다.) 리은아.
 
당신의 부름에 담장 너머가 부산스러워지더니 곧이어 검은 머리가 담장 너머로 올라옵니다.
 
낮과 마찬가지로 꽤나 용쓰는 모습이네요.
 
담장 위에 겨우 올라온 리은이 당신을 보고 헤실 웃습니다.
 
리은:응, 다비드으! 나 잡아주시게!
 
다비드:(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네쪽으로 양팔 뻗는다. 뛰어내리면 잡겠다는 듯.) 기도는 잘 드렸어?
 
리은:(당신에게 폴짝 뛰어내렸다.) 으으으음... 나름? 기도실만 들어가서 제향 맡으면 머리가 멍해져서 기도를 드렸는지 안드렸는지도 기억에 없소. 이것도 잘 드렸다고 해주는고?
 
다비드:(가뿐하게 널 잡아 안고 반 바퀴 돌더니 살포시 땅위에 내려준다.) 제향? 그거 몸에 안 좋은 거 아니야? (이번에는 먼저 네 쪽으로 손 뻗었다.) 그래도 고생했겠네. 잘했어.
 
리은:(당신 목 꼭 안고 있다가 제 발이 땅에 닿자 조심조심 힘 풀고 만세! 이리저리 뽈뽈 돌아다녔다. 당신 손 꼭 잡고는) 몸에 안좋나? 모르겠는데. 아무렴 어떻소? 지금 나온게 중요하지! 나 밖에 나온거 처음이란 말이야. 완전 두근두근해. 축제는 저쪽인게지? (빛무리 올라오는 마을 가르키고는)
 
다비드:누가 제향 때문인지 기침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는 것 같은데... (그저 고개 끄덕이고 발걸음 옮기려다가 아까 나눈 대화 떠올리고 덧붙인다.) 나...도. 두근거리네. 누구랑 같이 가는 건 처음이라... (시선 잠시 맞잡은 손에 두었다가 네 손끝따라 마을로 향한다.) 적어도 오늘은 길잃을 걱정 안 해도 되겠다. (환하게 뜬 달 한번 올려다보고 빛무리 쪽으로 달음박질한다.) 얼른 가자.
 
마을이 잘 보이는 언덕을 가로지릅니다.
 
달이 휘영청 뜨고 마을에서는 흥겨운 노래 소리들려오는 언덕의 소나무를 지나 뛰어갑니다.
 
오늘은 칠석제가 열리는 날.
 
사람들이 모여있는 시내에서는 흥겨운 음악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군요.
 
축제가 열리는 시장에 도착하여 가쁜 숨을 내쉽니다.
 
도착한 곳은 화려하게 꾸며진 시장입니다.
 
가게들이 붉은 홍등을 내걸고 왁자지껄 시끄럽게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한껏 고운 옷들로 단장하고 삼삼오오 모여 행복하다는 듯 웃음을 내고 있군요.
 
이 세상에 어떤 걱정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당신들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가 웃으며 여러 가게들로 달려갑니다.
 
[광장], [잡화점], [천막] 을 갈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비드:(사람들에게 잠시 시선 빼앗겼다가 퍼뜩 정신차리고 너 바라본다.) 어디부터 가볼래?
 
리은:(당신 손 잡은 것이 살며시 느슨해졌다가 정신 차렸는지 다시 힘을 꼭 쥐었다. 화려한 곳에 정신이 팔렸는지 눈 반짝이고 있다가 두어박자 늦게 반응했으려나.) 저기 넓은 곳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조오기 가보자아.
 
다비드:(고개 끄덕이고는 광장으로 향한다. 혹여 놓칠까 맞잡은 손에 더 힘 주었다.) 손 꼭 잡아.
 
리은:(히이 웃고는 고개 꾸닥.) 응! 놓으면 안되오. 나 여기 길 모른단 말이야.
 
광장으로 가면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크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흥겨운 노래에 맞추어 빙글빙글 도는 것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리은:(꿈박꿈박...) 다비드. 춤 출 수 있는고?
 
다비드:...아니? (깜빡...깜빡...) 추려고?
 
리은:(흐음...) 기왕 왔으니까 말이야. 나도 추는 법은 모르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냥 눈치껏... 하면... (당신 힐꼼...) 같이 추자아아...~.
 
다비드:(동공지진...) ...네가... 원한다면.... (엉거주춤 사람들 무리에 낀다.) 그. 발. 조심해. 너 발등뼈 부러질수도....
 
리은:흥. 고거 하나 내가 피하지 못할 것 같소? (히죽 웃으며 당신의 손 꼭 잡았다.) 자신 좀 가져! 아아주 다행이도 아은이는 춤을 잘 추는 편이니 고대로 따라오면 되오!
 
리은이 당신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껴들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다비드:(픽...) 자신있게 말하는 거 보니까 나중에 업고 가야할 일은 안 생기겠네. (너 따라 춤사위를 곧잘 따라하기는 한다만... 한박자가 늦다.) 아은이는 네 다른 이름이야?
 
리은:아니지. 다리 아프면 업어 달라고 할 수도 있지. (아주 뻔뻔했다. 눈 땡그랗게 뜨고 빤히 보고 있다가 눈꼬리 접었다. 음악 자락에 몸 맡기는 것이 마냥 즐겁다는 것처럼.) 내 이름이 리은이잖소? 리- 대신에 아, 자를 붙여서 부르는게요. 어른들이 아이를 부르는 것인데... 그게 더 귀엽잖아. 아니야?
 
다비드:너 나 사실 가마꾼으로 쓰려고 데려온 거지. (어이없다는 투.... 스스로 박자가 틀린 것도 모르고 마냥 발걸음 내딛고 있다.) 아하. 그런 건 처음 알았어. 아은이... 소리가 더 부드럽긴 하다. 어른들만 널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거야?
 
리은:에에, 설마아~. 농담이지, 농담! 내가 정말 그럴 위인으로 보이시오? (그마저도 마냥 좋아서 당신 손 잡은 제 손에 힘 꼭 쥐었다.) 물론 어른들만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오.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렇게 부르지? 그대두 아은이라구 불러도 좋소. 친구잖아! (빵끗) 아은이도 좋고... 은이도 좋아!
 
다비드:아니... (볼멘소리 짧게 내뱉었으나 맞잡은 손보면 금새 표정 플어졌다. 애초에 그리 무겁지도 않았으니 부탁한다면 응당 그랬을 거라며 덧붙이던가.) 우리 벌써 친구가 된거야? (되묻지만 싫은 기색은 전혀 없다.) 그럼 리은... 은이, 네가 이곳에서 생긴 나의 첫 친구구나. (눈 깜박...)
 
리은:옴멤메... 요건 또 귀여운 발언... (그리 중얼거렸던가.) 그으래두 아무 사람이나 예서 그리 업어주겠다고 하면 큰일나오. 아시겠소? 나니까 넘어가는게지. (낮에는 안겨있기까지 했으면서 잊은 것인지 정말 걱정스럽다는 듯 덧붙였다. 그대, 다른 누가 업어달라고 하면 진짜 다 업어줘? 이거... 위험한 이일세... 라며.) 통성명하면 친구 된 것 아니오? (맹... 하게 있다가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 헤헤, 처음이라는 것은 어째 기분이 좋은 듯 해. 그럼 우리는 서로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겠소. 나중에 임자가 친구 더 사귀거나 하면 나한테도 알려주어야 해!
 
다비드:ㅁ, 뭐? (낯선 단어 듣고 사례들림. 시선 슬쩍 피했다.) 그... 도움이 필요한 사람(제가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이라면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너는 안 그래? (가만 듣다가 진짜 위험한 건 너 아니냐 덧붙인다.) 그러면 통성명 안 했으면 우리 친구 못할 뻔한 거야? (빤) 사귈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럴게. 너도 나중에 친구 더 많이 사귀게 된다면 소개시켜줘.
 
리은:와- 반응 신선하구료. (빤히 당신 보다가 부끄러워? 라며 웃음소리 냈다. 떼잉 수줍음 많긴!) 도움이 필요한 사람... 음~ 그런 사람이 해달라고 하면 해주겠지만 내가 할 수 있다면? 내가 막 업어주고는... 못하겠네. 그야... 난 다른 사람을 업거나 한 적이 없거든! (정확히는 못하니까. 필요하면 도와주겠다 답했다. 내가 왜 위험하지? 오히려 되묻는 모양새가 분명 이해를 못한 모양이다.) 아아니, 그래두 했을걸! 만난 순간 인연의 실이 요로코롬 묶인다고 궁녀 언니가 그랬으니까! (움~) 꼬옥이야~. 나중에 또 게로 와주시오. 된다면 우리가 스물 되기 전에 말이야. 내가 그대 외에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도통 모르겠지만... 사귀게 된다면야 그럼세! 일단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만나는 것부터 해야겠소만...
 
다비드:...너랑 있으니까 이리저리 자꾸 물드는 것 같다. (대답하는 대신 애먼 남탓이나 한다.) 궁금한데 나중에 너보고 업어달라고 하면 안되겠지? 나중에 나쁜 사람이 너한테 와서 이름 알려주고 친구 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려구. (깜박.) 인연의 실? 보이지 않는 붉은 비단실로 손가락이 묶여져 있다는 이야기 말이야? (어디선가의 기억 끄집어낸다.) 못할 것도 없지만... 스물 이후로는 안 되는 거야? (뜸) 그으러면, 이제 다른 곳도 가볼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춤추느라 바쁜 것 같지만, 아까 보니까 또래애들이 가게들로 들어가더라고.
 
리은:다른 이의 색으로 물드는건 좋은 일이라고 했소.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나 으쓱였다.) 내가 그대를? 일단 들 수 있는지부터가 문제가 아닐까 싶소만... 도전은 해보지이... (깜빡) 나쁜 사람? 나쁜 사람 구분은 자신 없어서 알려줄 것 같긴 한데... 신녀궁서 쬐깐한 애라고 하면 나밖에 없고... 다들 내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을. (검지 들더니 한번 구부렸다가 폈다.) 그치이-. 그거요. 알고 있었네? 그 전에... 자, 잠시만... (달달 떨리는 다리에 힘 겨우 줘서 춤추는 무리에서 벗어났다.) 체력이 바닥을 보였소. 일다경(대충 5분)만 쉬자... 진짜 업혀서 다니면 낯부끄럽단 말이오. 처자가 다 보는 앞에서 업혀다닌다구 꾸지람 들을지도 몰라.
 
리은이 당신을 끌고 춤추는 무리가 보이는 곳에 가서 쪼그려 앉습니다.
 
곧이어 그들을 보며 흥얼거리는 듯이 노래를 부르는군요.
 
다비드:그러다가 본연의 색도 잃어버리면 어쩌려구. (느릿하게 눈 깜박. 이어지는 네 말에 정말 네가 본인을 드는 모습 상상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음.) ...맨땅에 같이 코 박고 싶은 게 아니면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 순수한 영혼을 어떻게 하지? 그런 표정.) 이정도 춤췄다고 힘들다고...? 너 어디 크게 아픈 거 아니야? (걱정스런 목소리 내면서 찬찬히 뒤따라간다. 네 옆에 서서 발걸음 멈추고 나서야 흘려들어오는 노래에 귀기울였고,)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그냥 멍청하다는 걸 깨닫다)
 
당신은 리은이 부르는 노래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곡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매우 낯익고 익숙한 노래 가사네요.
 
초원에서 가장 예쁜 꽃, 바로 새빨간 백합이구나
 
하늘의 끝에 달하는 꿈을 꾸니, 곳곳에 꽃향기로 가득하구나
 
떠도는 이의 마음 속에 그가 있으니
 
천리만리 밖에서도 돌아보게 하는구나
 
흥얼거리는 것을 마친 리은이 다시 당신의 손을 잡습니다.
 
리은:본연의 색을 잃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소, 그대. 어떤 모습이든 그대는 그대고 그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게요. 사람이라는 것은 본래 그런 존재야.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그대가 다비드라는 것이 어디 가겠소? (낄낄 웃음소리로 넘겨버렸다. 정말로 나쁜 사람이 저에게 친구가 되자고 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자신은 그것을 승낙할 것이 분명하였으니까.) 하이고야... 하루죙일 앉아서 기도하는게 일상의 대부분인데 무어. 아픈 곳 하나 없는데에-. 자아, 어디 가자고 그랬더라? 가게?
 
다비드:(짧은 공백.) 가끔은 내 스스로가 내가 아니었으면 하지만. (눈꺼풀 느릿하게 내리 감았다가 뜬다.) 그러면 나중에, 조금 멀리 있는 나중에. 내가 완전히 뒤바뀐 모습을 하고 나타나도 그렇게 말해주라. (여러 색 뒤집어쓰고 종내에는 스스로를 부정하더라도, 인정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맞잡은 손에 힘 실고 아까 봐둔 잡화점으로 발걸음 옮긴다.) 그게 문제인 거 아니야? 여하튼... 그래, 잡화점. 그런데 방금 부른 그 노래, 언젠가 나한테 불러준 적이 있던가? 왜 이렇게 낯이 익지?
 
리은:그건 왜일꼬? 스스로가 스스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니? (알아 볼 수 있다면 그러마, 라며 가볍게 답했다. 분명 알아볼 수 있겠지. 그리고 언제나처럼 네 이름을 부르지 않겠나. 조금 멀리 있는 나중이라. 시선이 슬며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아무 말 없이 이리저리 눈 굴리고 있다가 제 치맛자락을 다른 손으로 꾹 쥐었다. 가만히 당신을 따라 걸었다.) 산보도 잘 하고 있소마는? (깜박.) 요 노래 알아? 내가 불러 준 적이 있을 리가 없는데. 요 노래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요. 아는 사람은 거의 없긴 한데... 계속 부르고 다니면 누가 듣고 널리널리 퍼지게 해주지 않을까? (헤헤)
 
여러가지의 물건들을 파는 잡화점 입니다.
 
지금은 한쪽에서 축제 용품들도 판매를 하고 있군요.
 
나이가 지긋한 주인이 환영하며 맞이합니다.
 
주인: 어서오시오, 작은 손님들. 어여쁜 물건들이 들어왔네. 편히 둘러보고 가도 좋아.
 
다비드:그냥,... (눈동자 도르륵. 작은 머리로는 마땅한 대답 내놓을 수 없는 모양인지 잘 모르겠다며 대충 얼버무리고야 만다.) 그냥, 이런 거 아닌가... 네가 궁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도 가끔은 내 삶을 벗어나고 싶어. (이어지는 침묵에 네 정수리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럼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모양이군... 너 호위무사는 없어? (고개 기울어진다.) 이상하네.... 그러면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른 걸 들었었나? (잡화점에 들어서면 주인에게 고개 숙이고 주변 둘러본다. 뭐가 있을까.)
 
리은:으응, 그러시오? 뭐어, 일탈도 나쁘지 않다고 보아. 그대가 하고픈거 다 하고 지내면 그만 아니겠는가. 지금 내가 궁 나온 것처럼 말이오. (선천적으로라, 다시금 눈을 데굴 굴렸다.) 그건 아니고... 신녀들은 원래 다 명이 짧아서 말이외다. (잉?) 호위무사? 있을 리가 없지! 신녀궁서는 대대로 무사를 두지 않소. 애초에 나갈 일도 없거니와 필요한 일들은 모두 궁녀 언니들이 해주는 것을. (반대로 고개 기울였다.) 거참 신기한 일이오. 그럼 나중에 내 부를 때 장단 좀 맞춰 주시게. (요리조리 둘러보며 헤에- 소리나 냈다. 당신 손을 살며시 놓고 이리저리 뽈뽈뽈)
 
잡화점에는 축제 용품인 등과 작은 불꽃놀이 기구, 나무 모형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붉은 비단 실과, 옥으로 된 가락지, 머리핀... 이것저것...
 
다비드:손 놓지 말라니까... (뒤따라 총총)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의 눈에 푸른 대를 가진 매화나무 형상의 비녀가 들어옵니다.
 
푸르고, 붉은 보석이 박혀서 빛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다비드:내가 하고픈거 말이지... (일탈도 일탈이지만, 역시 함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도 이렇게 같이 놀아 주겠냐 물으려던 찰나, 붉은 보석에 시선이 팔린다. 한참 푸른 비녀를 손에 쥐고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차리고 네게 다가선다.) 그런데... 신녀들의 수명이 짧다고? 왜?
 
리은:그야, 스물이 되기 전에 다 죽으니까. 신녀들은 제사장이오. 동시에 제물인게야. 아주 예전부터 그랬네. 신이 가장 사랑하며 가장 귀하고 신성한 존재를 신에게 바치는게지. (붉은 실 가만히 내려다 보다가 당신 올려다 보았다. 당신 손에 있는 비녀 보더니 와!) 요거 예쁘다! 매화요?
 
다비드:(어안벙벙... 사람이 당황하면 오히려 말이 안 나온다는데, 그런 뜻인가 보다. 인상 한참 구겼다가, 뒷말은 듣지도 못한 채 말 이어갔다.) ...너도 신녀 아니야?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리은:다 근본 있는 일인데 무얼. 에그, 왜 그래애... 마음 쓰이게. (당신의 뺨을 양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신녀지. 그러니까 아주 옛날부터 난 그렇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오.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하고픈 것들을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다비드:이게... 근본 있는 말이라고?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을 해? (두 눈동자에 혼란이 담겨진다. 어느새 주위 소리가 제대로 안 들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제가 알던 언어가 아니었다.) 나는 100살도 짧다고 느끼는데, 스물이라고...
 
리은:내 이전의 신녀들도 다 그랬으니까. 모두가 그리 생각을 하고 있을거요. 지금이... 나라가 세워진지 500년 정도 됐으니... 500년간 모두가 그리 생각을 했겠지. 신녀가 죽으면 나라에서 한동안 크게 장례도 치루어주어. (저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 싶어서 가만히 눈동자 들여다 보다가 아차, 싶었다.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구나.) 미, 미안하오... 별 것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멋쩍어졌다. 괜스레 당신의 머리칼을 쓸었다.) 스, 스물 전이니까... 열 여덟...? 헤헤... 잘은 모르겠네에... 사람이 어떻게 100년을 살아? 그건 인간이 아니지! (이런 소리나.)
 
다비드:....그러면 벌써 30명 가까운 숫자의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다가 갔다는 말이야? 신녀가 뭐길래? 그건 누가 정하는 거길래? (의문점 수두룩 찍히고 나서야 옅게 숨 내쉬고는 침체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그걸로 만족을 해? (그러면 나는? 미처 소리내지 못한 마지막 질문이 혀끝에 걸린다.) ...그래도 여기있는 사람들은... 열 여덟 보다는 훨씬 더 오래 살 것 아니야. 저 분(가게 주인 가리키고)만 봐도 신녀의 수명을 생각해보면 벌써 세번은 죽고 되살아나셨겠는데...
 
리은:30명? 아아니야, 내가 13명째요. 신녀는 점지 받는 것이라서 공백기도 있네. 1대 신녀님이 그러하였소. 우리 나라 신녀님들은 총 13명만 있을 거라고. (당신을 쓸던 손이 잠시 멈췄다. 아이고... 어쩌면 좋나. 누군가를 위로하여 본 적이 있어야 말이야. 작게 침음을 내었다.) ... 아해야. 다비드. 신이 점지한 것은 내 틀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우리는 한낱 미물이니까. 내가 만족하고 말고는 무어가 중하겠소? (가게 주인을 가르키는 당신의 손을 잡아서 깍지꼈다. 이건... 노인 공격이다... 우리 애가 예의 따위 집어 삼킨 아이가 됨은 원치 않는다...) 하나만 희생하면 이 나라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는걸. 나는 그것으로 족해.
 
다비드:네가 마지막이라는 소리야? 그럼 그 이후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여전히 갈피 못 잡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해맨다.) 신은 너를 사랑한다며.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그 사람의 안위를 바라지 않을 수가 있어? 내가 살던 곳의 신은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면 구백살까지도 살게 해주었는데.... (헌신을 강요당하는 삶에 만족하는 것이 너의 몫이라면, 그 후에 홀로 남겨지는 삶을 견디는 것은 역시 나의 몫이다. 나는 그것이 무섭다. 흔들림 숨기려는 듯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함께 살고싶어. 되도록이면 오래. 축복받은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어진 많은 것들을 누리며. 이건 나만의 욕심인가?
 
리은:내 대가 끝나면,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 분명한 미래만이 있소. 신께서 그리 약조하여 주셨다고 하셨으니 내 믿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고. (듣고 자란 방식이 달라서 그런가? 그는 당신을 이해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이야기를 해줌이 옳다.) 본래 사람들은 사랑하면 곁에 두고 싶어지는 법이잖소? 그러니 신님도 같은 것이라 내 보오. 그 작은 미물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어서 빨리 곁에 두고프다, 로 생각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데... 내가 전에 말했잖아. 우리 신님은 소유욕이 많은 이라고. (구, 구백살? 사는 재미가 있을까? 뭐하면 사람이 그리 살 수 있지? 그거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뭔가... 아닐까? 같은 생각이 머리 속에서 굴러갔으나 곧 떨쳐냈다.) 많은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좋아. 모든 이들이 날 좋아해주니까... 나도 그들을 위하고 싶으니. 난 날 좋아해주는 이들이 참 좋다고 했잖소? (쓴 웃음이었다. 짧은 만남이었는데 정이 많이 들었나.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 나도 그러면 참 좋겠다. 계속계속 그대랑 걷고, 이야기하고, 장난도 치고... (말 끝이 흐려졌다. 이 이상 너를 원하게 된다면 나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후회를 할지도 모르니까. ... 그러니, 여기까지.) 그대가 원하는거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네-. (부러 밝은 소리 내고는 들고 있던 붉은 실과 비녀 가르키고 주머니 안에 있던 보석알 하나를 주인이 보고 있는 곳에 올려두었다. 값은 이것으로 하겠다는 것처럼.) 속이 많이 상했나보아, 그대야. 미안해애-. 괜한 소리 했구료. 좋은 날인데.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문득 기억해냅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년도는... 995년.
 
방금 전, 리은이 무어라고 했던가요?
 
나라가 건국 된지, 500년.
 
400년의 공백입니다.
 
이 공백의 시간 동안, 당신은 당신으로... 리은은 리은으로.
 
사람이 400년간 살 수 있던가요?
 
무언가 일그러진 기분입니다.
 
다비드:
SAN Roll
기준치: 86/43/17
굴림: 7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습니다.
 
다비드:믿음...이라고... (이내 입술 다물었다. 어느정도의 설득됨, 그리고 미약한 단념. 타인에 품에게 온전히 안길 수 있는 건 높은 담장에서 본인의 몸을 내던진 이후다. 너에게는 너만의 믿음이 있음을 알았고,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것을 수용하고 나니 문득 떠올리기를, '그 모두에 나는 포함되지 않겠구나.' 마지막 잡념에 당도하고나니 입안에 씁쓸함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불순한 호기가 일었다.) 그러면, 은아. 너의 신보다 너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이 땅위에 더 발붙일 수 있겠어? (본인또한 아직 몇 십년도 살지도 못한 이라 확실하진 못하다만... 글쎄! 좋은 것은 더 오래 볼수록 더 좋을 거라고 희망하는 바이다.) 내가 원하는 건...... (말 이어가다가 시선이 네 손끝으로 향한다.) ......아니야, 괜찮아. 안 상했어, 너 때문도 아니고... (맞나? 모르겠다. 고의 없는 말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결국은 상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말지. 이또한 스스로가 선택한 '무지'다.) 500년... ...시간이 이상하게 많이 비는데...
 
리은:그러엄. 내 믿음이지. ... 비록 내가 그 뒤를 볼 수는 없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런 것 뿐인데 어쩌겠는고? (분명 모두, 에는 당신도 포함이었겠으나 그의 생각은 얕았다. 분명 저 같은 것은 일찍 잊고 다른 이들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겠지. 대부분의 이들이 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만난지 하루 되었고, 네가 사랑하고 사랑 받는 이들과는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으응?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당신을 끌어서 잡화점 나갔다. 용건 있으면 다시 들어오면 그만이니까. 사람이 있는 곳에서 무언가 입이 떨어지지 않길래 인적 드문 골목에 쏙 들어가서는 붉은 등 밑에 섰다.) 신보다 날 훨씬 사랑해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 정말 있다면... (할 수 있나? 모르겠다. 도통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저는 그것 하나를 위해 살아왔는데. 오로지 신을 위해 죽는 것만을 위해 살았건만. 지하의 서고에 있던 문자들이 떠오르는 듯 했다. 숨을 살며시 들이켰다. 등이 희끄무리해서 다행이다. 등이 붉어서 다행이다.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음을 네가 몰라서 다행이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잡은 손이 가볍게 떨렸다.) ... 그대는 바보야. 사람의 결심을 아주 잘 흔들어두어. (흥. 입술이나 삐죽였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 마냥 고개를 새침하게 돌렸다. 원하는거 있으면 말을 좀 하지. 속으로 궁시렁 거리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당신에게 돌렸다.) ... 요건 또 무슨 소리래? 지금 505년이오. ... 시간이 빈다니?
 
다비드:그건 확실히 신녀가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몰라. 그런데 너는 신녀이기 이전에 그냥… 한 사람이잖아. 적어도 오늘 가 만난 는.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그런 것뿐이야? (생각이 온전히 정리되기 전에 본능적으로 말이 후두둑 쏟아졌다. 다만, 화난 목소리나 표정은 아니었다. 대명사에 이따금의 강조가 들어갔을 뿐. 신의 축복과 가호가 함께하는 나라, 그곳에서 웃음을 잃지 못하는 ‘모두’는 차치하고, 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존재하게 만들어주는 ‘너’이기 때문에. 다만, 스스로 내뱉은 질문에서 만큼은 불확실성을 느꼈다. 예상 가능한 답이나 기대하는 답은 없었고, 너의 믿음 또한 존중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약속된 삶의 반의 반도 살지 못한다는 너의 상황만큼은 납득하지 못하겠다. 흔들리는 시선은 곧이어 너에게로 향했다. 그러면 녹음 가득한 두 눈동자에 미물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숨을 갈망하듯, 결정을 의탁하듯, 긴 호흡과 함께 소리냈다.) 네가 죽고 난 다음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네 이끌림을 따라 잡화점을 나서서야 네가 물건들의 값을 이미 치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사려고 했는데- (뒤늦은 부채감을 언질 하며 함께 골목에 들어서면, 붉음이 시야 한가득 들어찼다. 그것에 눈길을 빼앗긴 것도 잠깐. 네 목소리에 다시금 너와 시선을 맞췄는데, 그것도 금새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그렇지. 신은 절대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으니 그것에 비하는 이 한 몸은 얼마나 작고 미개한가. 언젠가 깨우쳤던 스스로를 향한 모멸감. 그것을 타인에게 보였다는 수치. 반발하듯 급하게 운을 떼었다.) 바, 바보라고. 내가? (얼마 안 가 도로 입을 다물었지만. 이거, 내 꿈인 줄로만 알았는데. 흘러가는 꼴을 보아하니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또한 꿈은 이루어지지 못한 욕망의 표출이라고 하지 않던가.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수많은 의문에 찾지 못하겠다면,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이만큼이라도 손에 쥐어야지. 양손을 뻗어 네 손을 맞잡고, 곱게 포개어서 기어이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은이 네 선한 마음이 좋아. 오늘 함께 한 하루가—축제를 아직 전부 둘러보지도 않았는데!—즐거워. 그래도 사실을 고하자면 너의 신만큼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몰라. 내가 이제까지 배웠던 교리에서는 네 말대로 신은 절대적이며 인간은 미물에 준하지 않았단 말이야. 하지만 네가 그런 이들을 아끼고 행복을 바란 것과 같이, 나도 네 행복을 바라게 된다면, 나는 너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이 광막한 세계에서 매순간 지워지고 싶다는 불온함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고개 들어 다시 시선 맞춘다.) 지금이 505년이었어? 나는 995년인 줄 알았는데.
 
리은:나, 나아는... 그렇지만... (저를 신녀가 아닌 이로 봐주는 이를 처음 만나서 그런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조가비 마냥 꼭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무어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었고 마땅한 답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방면으로는 전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담담한 목소리에 안정이 되었으나, 머리 속만은 복잡했다. 저가 본래 살아야 하는 삶에 바람을 불어 넣어 흔들리게 하는 너는 대체 누구길래. 뒤늦게 믿어도 괜찮나? 이렇게 함께 있어도 괜찮은 것이 맞는가, 같은 의문점이 들었다. 다만, 완전히 늦은 의문점이다. 이미 제 속에 자리 잡은 작은 소년이 떠날 생각을 않는다.) ... 내가 죽고 난 뒤에 그대는... 그대의 삶을 살면 되지. (살아야지. 한 사람에게 묶여 있음은 지금의 그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인간은 나아가야 함이 옳다는 명제를 배웠다. 모든 이들이 그렇지 않나. 언젠가는 잊고, 혹은 마음 저 깊은 곳에 밀어두고 나아가지 않나. 그렇지만 이를 입에 올리기엔, 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듯 하여서 차마 꺼낼 수 없었다.)
... 됐소. 기념이라고 생각하지 뭐. 그대 눈이 떠오르는 색이라서 마음에 들었던 것이외다. 나중에 나도 쪽 지어서 비녀 한번 꽂아보고 싶기도 했어. (비녀 쥔 손에 힘 꼭 쥐었다. 아까 전부터 일렁이는 감정을 다루기가 어렵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그런 단어드링 머리를 어지럽혀두어서.) 그래. 그대는 바보야. 누군가가 열심히 굳힌 결심을 아주 쉽게 흔들어버리잖아. 아아주 못됐어. (이런 소리나 했다. 속이 괜시리 상한 탓이다. 저 조그만 머릿속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제 손을 맞잡는 네 온기에 깜빡. 동시에 눈이 커졌다. 예상치 못한 온기에 손이 잘게 떨리더니 형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단어들이 입에서 흘러나갔다.) 뭐, 뭐하... 뭐하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제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고 있다가 헛숨을 뱉었다. 다른 이의 입 맞춤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건만 본래 이렇게 심장이 뛰나? 귓가에서 박동 소리가 요란하기 그지 없었다. 슬며시 손을 내리더니)
... ... 부끄러운 줄두 모르구...!
(팔자 눈썹을 하고 퉁명스럽게 입술 꼭 물었다. 그럼, 내가 선하지 않으면 싫어?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가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 이미 내 생에 다시 없을 이오마는... 이걸로는 부족하오?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이잖아. 너도 알다시피. 당신의 손을 잡은 작은 손에 힘이 약간 들어갔다.) 무슨 소리야? 미래에서 온 것 같은 말을 하는구료. 확실하게 505년이야.
 
다비드:그렇지만 너는? (충동적으로 되물었다. 너에게 타인의 삶을 종용할 수도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네가 본래 살아야 한다는 삶의 방향성을 틀어내기에는 지금의 제가 너무나도 작았다. 당장 네 눈앞에 서있는 건—이 순간의 ‘함께’를 야기하는 건 본인이면서도. 고작 어린아이의 몸으로 신적의 존재에게 질투를 느낀다는 게 참 우습다. 또한 스스로의 이기본위에 구역질이 났다.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네가 보고 있음을 인지하면 의식적으로 안면근육의 힘을 풀어냈다. 대신 눈썹이 축 늘어지더니 갈 곳 잃은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딱, 금방이라도 울음 터뜨릴 것 같은 표정.) 내 삶이 뭐길래? (글쎄, 역시나. 이 또한 지금의 그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부분. 시간 감각이 왜곡되어갔다. 고통의 순간을 무의식에서 지워낸 까닭이다. 어느새 붉어진 눈가 한 손으로 꾹꾹 누르더니 긴 숨 내뱉었다.)
…나중에는 하기 싫어도 수십 개를 머리에 꽂게 될 텐데. (어디서 떠오른 기억인지 모르겠다. 시간의 부조화 인지하지 못한 채 말 이어갔다.) 이리 줘봐. 이왕 산 거, 하고 돌아다니는 게 낫지 않아? (해주겠다는 듯 네게 손 뻗더니) 네 결심이 뭔데? 일찍 죽는 거? (못됐다는 말에 화답하듯 성의 없는 말이나 내던졌다. 뭐가 문제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따라붙는 시선이 제법 집요하다.) 먼저 볼뽀뽀한 건 너잖아?! (심지어—아마도—오늘 처음 본 외간 남자한테! 뭐가 그리도 괘씸한 지 양손으로 네 볼 잡아 늘린다. 적당히 아플 정도로. 얘는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도통 만족하는 법을 모르겠어. (정말, 괜히 퉁명스럽게 답했다. 흔적을 남겼다고 하기에는 본인은 그저 네가 정의한 ‘모두’에 포함된 단 한 명 아니던가. 이 이야기의 주연은 신의 어여쁨을 받는 신녀이자 그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이지, 본인이 아니다. 언제나처럼.
이어지는 말에 눈동자만 도르륵 굴러갔다. 그게 아니라고 답하기에는…. 지금은 스스로가 좀 머저리 같아서. 머릿속 기억들이 뒤죽박죽 뒤엉킨다. 그중 떠오른 기억 하나.) 여기 천막이 하나 있을 거야. 거기 가면 이상한 사람이 과거나 미래를 알려준다고 했어. 같이 갈래?
 
리은: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하잖아. 처음부터 이리 배우며 살았던 이와... 아닌 이가 마주 해야 하는 상황은 다른 법이기도 하고. 내가... 그만두겠다고 하면... 마,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지잖아...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사라졌다. 생각나는 미래들은 점점 암울해져갔다. 나는 그 미래가 두렵다. 손을 잡고 싶어도 내가 용기가 없어. 모든 것을 뒤로 할 용기가 도통 솟아나질 않는다. 한 가지 길만 있던 제 삶에서 다른 길을 보여주는 당신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마음이 자꾸 기울었다. 눈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르륵 굴려대다가 겨우 마주한 당신이 울 듯 해서.) 그대가 원하는 삶 말이야.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웃으면서 지내는 삶. (거기서 나는 없는. 오로지 나만. ... 나만 없는. 가슴 한구석이 시큰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잊겠지. 잊히고 싶지 않아. 불쑥 튀어나온 새빨간 이기심에 저도 놀랐다. 울지마아. 그리 중얼거릴 뿐이다.)
신녀가 기도할 때 하는 것이랑 쪽져서 하나만 하는 것은 다르지! 그게 왜 같아?! (제 머리 만지작 거리다가 당신에게 비녀를 쥐여주었다. 어여쁘게 해보려무나. 라면서 뒤돌고.) 안봐도 훤하지. 아아주 잘어울릴거요. 나는 뭐든 예쁘게 어울린다고 그랬으니까!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자랑스레 조잘거리다가 일자눈 되었다. 당신이 제 표정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다, 같은 생각도.) 어. 일찍 죽어서 이런 말 안듣는 거. (아랫입술 삐죽.)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대체 누가 손바닥에다가 하냐고! 그건 충격요법이지이! 아, 몰라아아!! (바락바락 승질을 냈다. 제 볼이 잡아당겨지자 아디마아~! 짓눌린 발음 내며 씩씩거리기나 하는 꼴이 작은 어린아이 그 자체다.)
그럼 욕심 내등가. 이리 욕심 많아서 우짤꼬. 여기서 내 더 줄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거 아쉽게 됐소. 아주 다 가져가지, 그래? (생각 없이 툭 뱉었다. 네가 어찌 생각을 하던지 그 안에서 '모두'라는 단어에서 삐져나와 홀로 자리 잡은 이가 있다고는 도통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혼란스러웠으니 알 턱이 없지.)
천막? 과거랑 미래를 알려줘? 거 신기하구료. 웅, 가자. 몇 번 들은 적도 있는 듯 하니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소.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었으면 좋겠구료.
 
다비드:(그냥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되나… 난 안 곤란한데… 네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못마땅한 듯 중간중간 추임새 붙여 넣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어린애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해 울먹이는 낯짝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당장 네 손 잡고 모든 걸 뒤로 한 채 여기서 도망치기에는, 그저 네 마음이 귀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제가 너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스스로의 답을 유보하게 된다. 대신 손목을 비틀어 네 손을 깍지 껴서 잡고 힘을 실었다. 나도 무서워. 하지만 용기는 두려움을 없애지 않는다. 그대로 두려움을 품에 안고 담장에서 몸을 내던지게 해 주지. 담장 너머에서 네 이름을 부르고 너를 향해 양팔 뻗는 것.) 맞아, 내가 원하는 삶은 그것뿐이야.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웃으면서 지내는 삶. (이마를 맞댔다. 잊지 않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장 제 눈앞에 놓인 현재만 보며 살아가는 한 미물의 한계점이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난 머리 장신구 같은 거 안 해봐서 몰라. (그리 말하며 혀 내둘렀다. 저는 가끔가다 머리 빗기 귀찮다며 아버지 모자 몇 번 눌러 쓴 게 고작인데. 그러니 막상 비녀를 제 손에 쥐고 나니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모양. 이제껏 본인 머리도 묶어본 적이 없었다. 네 머리카락 타래 한뭉큼 손에 쥐었다 놓았다 반복하다가 결국은 엉성하게 하나로 묶어 비녀를 꽂았다. 머릿결이 곱네. 신녀궁에서 사람들이 잘 보살펴주나 보다. 같은 감상도 잠깐.) 자꾸 그러면 입술에다 해버려. (그게 무슨 차이인데?? 네 말 가볍게 무시하고 이리저리 볼살 늘리다가 놔준다.)
감당할 수 있겠어? (뒤늦게 생각 없이 뱉어진 말이라는 것 알아차리고 눈살 가늘게 떴다. 차라리 만족하는 법을 알려주던가.) 난 못된 사람이라서 그렇게 말하면 진짜 전부 가져간다. (전하지 않는 마음은 도통 알아낼 수가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그저 고개 선선히 주억거리고 네 손 잡고 언젠가 밟아냈던 발걸음을 옮겨 천막으로 향했다.)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천막으로 향합니다.
 
천막 주위에는 작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습니다.
 
대충 들리는 이야기로는 점집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기에 편히 들어갈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비드:(잘 쫓아오는가... 뒤 한번 돌아보고 천막으로 들어간다.)
 
리은:(조금 쫄았는지 손 꼭 잡고 총총...)
 
안으로 들어가자 어둡고 좁은 공간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안에서는 희미한 향의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천막 안에 앉아있던 얼굴을 가린 이가 당신들을 보고 작게 손을 흔듭니다.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예전, 당신의 기억에 있던 이와 모든 것이 똑같습니다.
 
체구나 입은 옷이나.
 
당신의 기억 속에서 방금 튀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요.
 
다비드:(눈살 찌푸린다. 무의식적으로 오랜만이라고 말할 뻔해서.) ...안녕하세요...
 
점집 주인: 어서오세요, 꼬마 손님분들. 무어가 궁금해서 오셨나요? 과거? 미래?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무엇이든 좋아요.
 
다비드:(일단 착석.) 너가 질문할래? (리은이 빤.)
 
리은:(옆에 꼼질꼼질 앉기... 맞잡은 손에 힘 살짝 줬다가 풀고) 우, 우아아... 이런거 처음이라... 아무거나 질문해도 되나? (머리 돌돌 굴리다가) 그럼, 저한테도 붉은 실이 걸려 있는지 궁금해요. 어, 없으면... 만들 수도 있나요?
 
점집 주인: (잠시 빤히 보다가) 꼬마 손님분들, 잡고 있는 손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다비드:(응? 리은이 손 잡고 번쩍....)
 
리은:(손 슬쩍 올리려다가 번쩍 올려지기)
 
다비드:(이거 아냐? 눈.)
 
점집 주인: 가만 보자... (에구구 일어나서 잡고 있는 손 자신이 감싸 쥐고 내린다.) 힘 넘치는 손님분들이네~. (가만히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붉은 실이라는 것은 날 때부터 묶여 있다고들 하지만, 처음에 묶일 때에는 운명의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묶인답니다. 아가씨에게도 잘 걸려 있지요. 자신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인연에 축복을 내려줄게요. 단단히 묶일 수 있도록.
 
리은이 눈을 빛내더니 당신의 옆구리를 콕콕 찌릅니다.
 
리은:있지이, 다비드. 요거 묶자. 나랑 묶자아. (아까 샀던 붉은 비단실 내밀기) 싫어?
 
다비드:(내려다보는 눈 동그래진다. 그것도 잠깐,) 아니, 싫지 않아. 이거 묶으면 너도 나만큼 오래 살 수 있는 거야?
 
리은:에, 그, 그런...가? 모르겠네... 그래도 연이 묶인다는 것은 계속해서 볼 수 있다는 뜻 아니야? (손 잠시 놓더니 꼼질꼼질 당신의 검지에 빨간 실 묶어냈다. 제 검지도 내밀기) 요기 묶어줘!
 
다비드:(내가 묶는 거였군. 타 문화생활, 쉽지 않다. 능청스럽게 내밀어진 검지에 붉은 실을 묶었다.) 이제 축복 내려주세요. (뻔뻔.)
 
점집 주인이 작게 웃더니 자개함 안에서 희고 탐스러운 꽃 한 송이를 꺼냅니다.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점집 주인이 꺼낸 꽃은 당신도 익히 아는 꽃이니까요.
 
월하미인 입니다.
 
점집 주인: 예쁘죠? 이 꽃을 태우면 좋은 향이 나요. 그리고 하늘에 비는거죠. 이 인연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눈 감아보아요, 손님분들.
 
리은:(눈 꼭 감기!)
 
다비드:(미심쩍은 표정으로 점집 주인 봤다가... 리은이 한번 봤다가... 따라 눈 감는다.)
 
눈을 감자 곧이어 무언가 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의 코 끝에, 이전에 쉬이 맡을 수 있던 향기로운 향이 퍼지고...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의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울음소리인가요?
 
아니면 비명소리?
 
살려달라는 희미한 외침.
 
그리고 이어지는 점집 주인의 기도소리.
 
얼마나 지났을까, 기도 소리가 차츰 멎어갑니다.
 
눈을 뜨면 까맣게 탄 재와 미소를 띄고 있는 주인이 보입니다.
 
다비드:... (자비로운 신님. 아까는 제 생각이 불경했어요. 그래도 이 인연이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하다가 소리 듣고 잠깐 인상 찌푸렸다. 다만, 지금 눈을 뜨면 어린 두 사람이 아니라, 어른이 된 저 홀로 점집에서 눈을 뜰 것 같아. 기도가 끝나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눈 슬며시 떴다.) 다 된 건가요?
 
점집 주인: 네. 모두 끝났습니다. 재미있는 운명을 만들어 줄 것 같아서 저는 기쁘네요. 부디 수많은 인연 속에서 다시금 연을 따라 갈 수 있기를 바라요. 이번 생에 국한되지 않고 말이에요.
 
다비드:(감사하다며 고개 슬쩍 숙였다가 리은이 쪽으로 시선 돌린다.) 만족했어? (아니면 더 붙잡고 물어볼 셈.)
 
리은:(발갛게 상기된 뺨으로 말 없이 깜빡이고 있다가 고개 꾸닥.) ... 웅. 난 이걸로... 됐어. 만족했어. 그대는 더 물어볼 것 있소?
 
다비드:(그제야 네 뺨이 제법 붉은 것 알아차리고 눈 느릿하게 깜박인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 몇 있었으나, 오늘은 밤이 짧았으니.) 나도 괜찮아. 나가자.
 
리은:진짜루? 그럼 좋아. 다른 곳도 가보자.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 손 슬며시 잡았다.)
 
다비드:(네 손 잡고 밖으로 나선다.)
 
점집을 나가기 전, 주인이 당신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다비드:어... 잠시만. (왜? 주인에게 다가선다.)
 
점집 주인: (리은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회양나무 같은 아가씨로군요. 부디 서로에게 상처가 남지 않는 연이 되기를 바라요. ...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줄 수 없는 법 또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네요. (방긋 웃곤) 나중에 또 만나겠네요, 우리. 궁금한 것은 그때 더 물어봐도 좋으니 지금은 즐거운 칠석제 보내도록 하세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요.
 
다비드:네? (더 붙잡고 물어볼까 했다가 기다리는 이 있어서 고개 끄덕이곤 점집을 나섰다.)
 
점집 밖에서는 리은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은:왜애? 무슨 일 있었어?
 
다비드:너가 회양나무 같대. (그걸 또 다 이름)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리은:에. 그, 그거 쪼끄마하다는 뜻인가?! (나도 작고 싶어서 작은거 아니란 말이야! 볼 왕창 부풀리고 찡그렸다가) ... ... 시간?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두. 다른 곳 가볼까? 슬슬 등 날릴 시간인 것 같아.
 
다비드: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작은 정수리 내려다본다. 부풀린 볼 보고 만두 같다는 생각... 또 한번.) 너무 늦게 들어가면 네가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그렇지. (깜박) 아, 등. 그래, 같이 가자. (주위 두리번 거리다가 사람들 모여있는 곳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으로 걸음 합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등을 가지고 광장으로 향하고 있군요.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광장 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 멀리서 보이는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난장판 속에 떨어진 홍등에서 불이 이리저리로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혼비백산이 되어 광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괴물이야!
 
괴물들이 마을을 습격했다!
 
저 멀리서부터 괴물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흘러옵니다.
 
다비드:뭐야? (인상 팍 찌푸리더니 네 손 꽉 잡은 채 본능적으로 뜀박질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몸을 가누기 힘듭니다.
 
작은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이 인파를 헤집고 나아갈 수 없습니다.
 
다비드:
근력
기준치: 80/40/16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리은:
근력
기준치: 30/15/6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꽉 잡고 있던 리은의 손에서 힘이 빠집니다.
 
다비드:(미끄러진 손 더 단단하게 붙잡는다.) 야, 놓으면 안돼!
 
손을 꼭 쥐고 인파에 휩쓸리지 않게 버팁니다.
 
저 멀리서부터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리은의 안색이 더더욱 창백해지고 손이 떨려오는 듯 합니다.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의 귀 바로 옆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괴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비드:이거 설마... (내가 너를 신녀궁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그런 거야? 불길한 문장 완성하기 전에 입술을 짓씹었다.) 은아, 내 앞으로 와.
 
리은:(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당신의 옷자락 꼭 잡더니) ... ... 나, 나 돌아갈래. ... 나, 갈래. 다 나 때문이면 어떻게?
 
다비드:뭐? (귓가에 울리는 굉음 탓에 언성이 절로 높아진다.) 너 때문아니야! (그 생각 아예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이곳의 신이라는 존재가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신녀궁은 여기보다 안전해? 그러면 데려다줄게.
 
리은:(높은 언성에 어깨를 움츠렸다. 옷자락 쥔 손을 슬며시 놓는다. 입술 꾹 물더니) ... 여, 여기서 좀 떨어져 있으...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빨리 가서 기, 기도 드려야... (입술 꼭 물고) 다비드, 나 무서워... 빨리 가자.
 
다비드:(네 상태보니 이대로는 중간에 가다가 쓰러지겠다싶어 네 동의없이 널 품 안에 번쩍 들고 신녀궁으로 뛰기 시작한다.) 꽉 잡아.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서 신녀궁으로 향합니다.
 
다리를 건너고, 소나무가 자라있는 언덕을 건너고, 다시 다리를 건너.
 
아직 이 곳은 어떤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화롭습니다.
 
다리 너머에 있던 마을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만 뺀다면요.
 
리은:나, 나 여기서 내려줘. ... 여기서는 혼자서 갈 수 있어. 그러니까... 그으... 그대 숨겨주고 시, 싶은데... 미안해...
 
다비드:왜 그런 걸 미안해 해. (조심스럽게 널 그 앞에 내려다준다.) 너 많이 놀란 것 같다. 난 괜찮으니까 어서 들어가. (물끄러미 보다가,) 아니다, 잠깐 이리와봐.
 
리은:(숨 겨우 내쉬고 있다가 당신의 말에 눈동자 굴려서 당신 보았다.) ... 왜애? (당신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다비드:(네가 다가오면 품에 안는다. 네 등 몇 번 도닥이더니 힘주어 한번 꽉 끌어안고 난 후에야 놓아주었다.) 이거 네 탓 아니라고. 알겠어? 나중에 다시 올게.
 
리은:(옷자락 다시 꼭 쥐고 있다가 당신이 떨어지자 놓았다.) ... ... 응. 다음에 꼭 다시 와야 해. 알겠지? 약속이야.
 
리은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담장에 올라갑니다.
 
다비드:(혹여 떨어질까 담장 너머가는 것까지 확인한다. 그러고보니 쟤 혼자서 내려갈 수 있나?)
 
담장 너머로는 우당탕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비드:(뛰어가는 소리 들으니 다친 건 아닌 것 같다... 아마. 잠깐 보다가 저또한 집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도중, 당신의 시야가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극심한 편두통이 당신을 덮치고, 눈 앞이 암전합니다.
 
귓가에서 울리던 비명소리들이 지워버린 듯, 뚝 끊어짐과 동시에
 
당신은 눈을 뜹니다.
 
다비드:(순간 헉소리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꿈을 꾸었나요?
 
그저 눈을 떴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온 몸이 식은 땀으로 흥건합니다.
 
방금 그 기억은 뭐였죠?
 
그러니까… 칠석제에 갔다가… 그곳에서 괴물들이 몰려오고,
 
신녀궁에 갔다가 다리를 건너 마을에 가고…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마지막 기억을 더듬습니다.
 
희미하게 균열이 간 기억 너머로 보이는 것은, 다음 아닌 괴물과 마주친 당신이었죠.
 
그 이후에는 모든 기억이 혼탁합니다.
 
당신이 있는 곳은 한 방 안이고, 창 밖에서 달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을 둘러본다면 [거울], [화병], [선반] 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비드:...(방? 여긴 제가 알고 있는 곳인가. 버릇처럼 시선이 화병으로 향했다.)
 
희고 크며 탐스러운 꽃이 꽂혀있는 화병입니다.
 
당신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꽃이죠.
 
월하미인 입니다.
 
어쩐지 상태가 상당히 시들합니다.
 
다비드:(왜? 인상 찌푸렸다. 급하게 선반도 살펴본다.)
 
여러가지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당신이 즐겨 보던 것들을 포함하여 여러 권이 있군요.
 
그 중 [건국 신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비드:(꺼내서 읽어본다. 제가 알던 내용이 맞을지.)
 
어째서인지 앞 부분이 몇 장 뜯겨 있습니다.
 
그 이후를 읽어보자면...
 
신녀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꽃을 피워내었고, 그 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평화와 안식, 풍요를 얻게 되었으며 나라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신녀를 칭송했으며, 그 신녀는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합니다.
 
이 내용, 당신이 기억하는 내용과 같던가요?
 
다비드:목숨을 바쳤다고? (두통 채 가시지 않아 관자놀이 꾹꾹 눌렀다. 뭐 더 없나 책 후두룩 보고 탈탈 털어보기까지.)
 
따로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다비드:(혼자서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방을 나서기 직전, 문득 거울이 시야에 들어온다.)
 
거울 속에서는 면식 없는 존재가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 어라?
 
분명 이런 얼굴이었던가요, 당신?
 
다비드:
정신
기준치: 90/45/18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뇨. 아닙니다.
 
이건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당신의 모습이 아닌 이 모습 또한, 당신이라는 것을요.
 
다비드:
SAN Roll
기준치: 86/43/17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하락 없습니다.
 
다비드:(누군가가 제 이름을 불러주길.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자 달빛이 쏟아지며 당신을 맞이합니다.
 
다비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지금은 아침임을 상기합니다.
 
당신의 머릿속에 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여러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신만을 위해 살아가야했을 신녀가 신당에서 도망쳐버린 것으로 인해 신이 분노했다고 합니다.
 
괴물을 풀고 이 나라에 뜨는 해를 영영 앗아갔다고.
 
이것이 사실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실제로 역사서에는 괴물이 몰려온 날과 해가 사라진 날이 같다고 서술이 되어 있으며 나이 많은 이들은 모두 이것이 신녀의 죄라며 손가락질을 할 뿐.
 
신녀궁은 저 커다란 궁 깊은 곳으로 옮겨져 신녀를 가두는 새장이 되었습니다.
 
죄인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줄에 온통 얽혀서 저 깊은 곳에 유폐되었습니다.
 
자유는 죄가 되고 동시에 지울 수 없는 업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그곳으로 걸음합니다.
 
그것이 '당신' 이라는 존재에게 부여된 역할이기에요.
 
다비드:(마치 일전이 기억이 아주 먼 꿈 같이 느껴진다. 발걸음 재촉하여 신녀궁으로 향한다.)
 
다리를 하나 건너고, 언덕에 있는 소나무를 지나고, 다리를 또 하나 건너면.
 
익숙하기 그지 없는 신녀궁 입니다.
 
아주 오래 전, 당신의 기억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당신을 맞이합니다.
 
작디 작은 궁 근처를, 군복을 입은 이들이 돌고 있습니다.
 
호패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곳과 다르게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향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다비드:(군복을 입은 이들을 보면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될 것들 본 것 마냥 인상이 구겨진다. 새를 가두기 위해서는, 새장이면 충분하지 않나? 늘 해오던 생각 갈무리하며 안으로 들어선다. 깊은 숨 들이마시고 주위를 둘러본다.)
 
나무와 꽃들이 우거지고 저 멀리 옥색의 기와로 만들어진 작은 궁이 보이는군요.
 
다비드:(늦어도 한참 늦었다. 넋 놓고 바라볼 것도 없으니 빠른 발걸음으로 궁으로 간다.)
 
가까이 다가가면 커다란 창문이 나 있습니다.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보고 있던 리은이 당신을 보고 고개를 들어 손을 흔듭니다.
 
당신이 신녀궁에 올 때마다 항상 저 장소에 앉아 기대어 밖을 보고 있었지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똑같은 일상 입니다.
 
평화롭고 지루한 평범한 일상 말입니다.
 
다비드:(뒤늦게 창문에 다가서서 너 마주한다.) ...기다렸지.
 
리은:(창틀에 기대어 있다가 살풋 숨 뱉는다. 천이 살며시 흔들리고 그 밑에서 나직한 목소리 냈다.) 언제나처럼 기다렸지. 매번 이 자리에서. 잘 잤는가? 좋은 꿈 꾸었고?
 
다비드:(검은 천이 흔들리는 자태에 시선 잠깐 두고,) 지루했겠네... 나들이라도 다녀오지. (순간 숨이 멎는다. 다시끔 영문 모를 두통이 일어서.) ...좋은 꿈은 아니었어.
 
리은:... 그대 없이는 어디도 움직이지 말라잖아. 어쩌겠나. 내 얌전히 있을 수 밖에 더 있겠어? (손 뻗어서 까닥였다. 이리 와, 라는 것처럼.) 어디 피곤치는 않고? 안색이 좋지 않소, 그대.
 
다비드:내가, 조금... 더 일찍, 올걸 그랬네. (단어들 사이에 간극이 길어진다. 목이 메인 까닭이다.) ...지금이라도 나랑 같이 걸을래? (네 꽃신을 가져올게. 덧붙였다.) 피곤하기야, 너만 하겠어. 사람들의... (무엇이었지. 눈 느릿하게 깜박인다.) ...아니다.
 
리은:그대가 하루 종일 내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요. 그럼 어딜 가든 가벼웠을지도 모르겠어. (무슨 일 있나? 당신의 얼굴을 살폈다. 오늘따라 어째...) 시간이야 많으니, 산보도 좋겠소. (부디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가지고 와주어. 가볍게 대꾸했다.) 오늘따라 이상하네. 그냥 들어오겠나? 차라도 내오라 하지. 잠자리가 영 사나웠던 모양이야.
 
다비드:그래도 돼? (괜찮다며 문간으로 다가가 옥색 꽃신을 가져왔다. 창문으로 건네주고는 신을 신고 넘어오면 잡아주겠다며 양 팔 뻗었다. 느릿하게 고개 절래...) 됐어, 걸으면 좀 낫겠지. 워낙 사나워서 들려주기도 뭐하네.
 
리은:설마. 농담이오. (작은 웃음소리 내었다. 꽃신 받아서 신고는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났다. 치맛자락 양 손에 모아 잡고 의자에 올라 서서 당신에게 제 손 뻗는다. 조심해. 그리 짧은 덧붙임이 있고) 거 안타깝구료. 요즘 이 나라 사람들은 꿈도 꾸지 않는다는데... 그대는 왜 악몽이나 꾸었는지. 내가 차라리 가져갈 수 있다면 참 좋았겠소. 뭐라더라... 슬픔은 나누면 반이라고 하는 것처럼 악몽도 똑 떼어서 주면 얼마나 좋아.
 
다비드:그러면 전부 가져가라고 한 것도 농담이었나? (한쪽 입꼬리 슬 올라갔던가. 번듯하게 서서 꽃신 흘끔 보고, 다시 네쪽으로 시선 돌렸다. 여태껏 놓친 적은 없었는데. 변함없는 낯으로 중얼거리고.) 글쎄.... 너도 악몽을 꾸었다고 하지 않았나? 슬픔을 반으로 똑 뗄 수 있다면, 수명도 반으로 똑 떼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어. 조금 더 생을 즐기는 건... 좋은 일이잖아.
 
리은:전부? (전부 가져가? 내가 그런 적이 있던가? 생각을 되짚다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 '너'한테... 내가 그런 적이 있던가.) 가지고 싶다면 가져도 좋소마는. 무얼 그리 가지고 싶기에 그러오? (이번에도 가볍게 답했다. 뭘 가지고 싶다는 것인지 저로서는 짐작 가지 않는 듯 한 투였나. 당신에게 몸 기울이며 창틀에서 발 뗀다. 얍!) 이제는 익숙하니 되었네. 게다가 나도 요즘은 꿈을 잘 꾸지도 않아. ... 수명이라. 그런 것이면 내 것을 떼어서 그대한테 주고픈데. 받아줄래? (가벼운 농조.) 그대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다비드:... 무엇이라.... (되돌아온 네 불확실성만큼 말꼬리 흐리며 답을 유보했다. 대신 제 품으로 뛰어든 너를 가볍게 받아내더니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러면 무언가가 되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소망은? (뜸) 마음만 받으련다. 수명은 네 것보다 내 것이 더 길걸. (그러더니 짓궂게도 웃었다. 어쩐지 찡그린 듯한 미소.) 신이 너를 어여삐 여긴다면 그 기도 또한 들어주시겠지.
 
리은:... 그대야? (바닥 밟으려 했다가 여전히 떠있는 제 몸에 발을 작게 흔들었다. 이내 작게 숨 뱉고 당신의 어깨 위에 제 두 팔을 걸쳤다. 가만히 올려다 보았던가. 두어번 끔박이다가 머리 기댔다. 나 정자에 가고 싶어. 라던가.) ... 글쎄. 그것도 도통 없는데. .. 그대 기다리는 하루하루에 무어가 있겠소. 내 수명이 얼마나 될 것이라 생각하고? 아직 꽃다운 20대처럼 보이잖는가. (아, 얼굴이 안보이니 모를지도. 한 손의 손등으로 당신 볼 쓸었다. 괜시리 가슴팍이 아파서.) ... 그럼 신님한테 아양이라도 떨어보아야겠구료. 밖에 다른 무사님들이 그러는데,... 요즘 여기 이들이 일찍 생을 마감한다잖아. ...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다비드:(대답 말고 멀거니 너를 바라보기만 했다. 네 중얼거림 듣고 나서야 여유롭게 발걸음 옮겼다. 해외에서 온 가마는 좀 어때? 가볍게 내뱉은 목소리에 어느 시간 속 기억만큼의 무게가 실린다.) 숲 속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그러고 보니 샤샤가 안 보이더라.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잠시 움직임이 멈췄다. 네 질문의 의도를 헤아리려는 듯. 얼마 안 가 포기하고 스스로의 발걸음이나 다시 재촉했다.) ...모르겠어. 그래도 지금 말하는 모양새는 여전히 꽃다운 20대 같네. (살갗에 닿은 손길이 제법 낯설다. 그 설면한 온기에 위로를 받았다면, 대체 무엇에 대한 위로란 말일까. 여전히 그 무엇에도 해답 찾지 못한 채, 네가 부탁했던 장소에 당도하고 널 조심스레 내려 뒀다. 다시 몸 일으켜 너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슬 기울어졌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신녀가 무슨 아양까지 떨어야 해? (깜빡.) 예전에는 안 그랬다는 말은 무슨 소리고. 여기 사람들은... (쿵. 공존할 수 없는 시간선 둘이 충돌하면, 곧이어 뒤통수가 얻어맞은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옅은 인상과 함께 물었다.) ...질문이 우스울 수도 있는데... 이번 연도가 몇이지?
 
리은:... 난 독심술 못하오만. (모르겠다는 듯 조금은 불만스런 투덜거림이었다. 알아야지 주던지 말던지 할 것인데. 제 딴에는 머리 굴리다가, 다른 가마를 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소매 자락으로 입 가리고 고른 숨 쉬어냈다.) 이 또한 나쁘지 않겠소마는... 샤샤? 샤샤가 누구야? 아끼는 아해라도 생겼는고. (어마~ 소개라도 시켜주어야 해~. 라며 너스레나 떤다. 내 마음에 차지 않으면 어림도 없어. 라며 종알거리다가) 아무렴 꽃다운 나이요. 그러니까 아주 오래 살 것은 분명하지. 내가 신녀라고 해도 말이야. (정자에 앉아서 밑의 연못에 시선 돌렸다. 끝에 걸린 잉어를 잠시 보다가)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픈 것 다 주는 신이었다면 이리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곳에 두지는 않았을 것 아니오. (작은 소리였다. 밖으로 몸을 기울이고나 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614년이야. 헷갈리기라도 했는가?
 
다비드:나름 표정은 잘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혀 내두르기나. 이쪽은 네 얼굴을 보지도 못하는데! 작은 머릿속이 열심히도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예전에 조금 더 작은 가마 탔었잖아.) 하얀질풍 알렉산더 2세. 몰라? 네가 아끼는 까만 토끼. (분명 네 마음에 찼을 텐데. 너스레 떠는 표정에 대조되도록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네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때로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이 그럴 수가 없다는 말과 비슷한 물성을 띄어서. 네 옆에 털썩 앉았다.) 너희 신은 소유욕이 많은 이라며. 그래서 너를 소유한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해 주었다...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진 대답에 되레 표정이 제법 심각해졌다.) ......나 충격 요법이 필요한 것 같다. 좀 큰걸로.
 
리은:표정을 잘 읽으면 뭐하오. 정작 속은 도통 모르겠는 이가 있는데. (내가 뭐 이거 쓰고 싶어서 쓴다고 보아? 입술을 삐죽이다가 검지 끝으로 제 입가 근처를 톡톡 쳤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했다가, ... ... ... 같은 가마잖아. 그러니 다른 것을 타본 적은 없소. 흐리게 중얼거렸다. 급 드는 위화감이다. 나는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있잖나, 그대. 혹시... (그럴 리 없지. 조용히 입 다물었다.) ... 아무것도 아니야. 하... 바보 같은 소리를 할 뻔 했구료. (... 음?) ... 난 까만 토끼 안키우는데, 그대야. 내가 알렉산더는 또 어디 나라 이름인고. (잠시 뜸)... 누구랑 헷갈렸는가? (빤히 보는 듯 했다. 잠깐. 토끼? 화악 얼굴이 붉어졌다. 오해 했잖아~! 제 얼굴 감싸고 고개를 파드득 저었다. 아,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고 싶어! 난 또 무슨!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옆에 있는 기둥에 제 머리 꽁꽁 박았다.) 질릴 정도로 살고 있으니 되었소. 아주 오래오래 살고 있으니 그대 마음에 찼으면 하여. (제 붉은 얼굴을 손부채질로 식히다가) 얻는 이들이 있다면 제 것을 포기한 이도 있는 법이외다. 난 그것으로 만족하오. (오. 같은 소리나 냈다.) 해줄까? 꽤나 효과 있는 것을 알고 있네. 아아주 눈 번쩍 떠지는 것이오만. (제 손목 슬슬 돌렸다.) ... 눈 감아봐.
 
다비드:...모르겠다는 사람이 설마 나? (무해한 낯의 두 눈이 동그래진다. 미친 사람은 스스로가 미친 걸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 비슷한 맥락으로.) 그럼 그 천은 왜 쓰는데? (그래도 유년기의 기억을 잃은 건 아닌가 보다. 안도감 느끼면서도 동시에 불편한 감정이 들끓었다. 안타깝게도 잘 모르겠는 건 피차 마찬가지라서. 의문증 풀어줄까 싶어 나름 기대 품고 너 바라봤건만. 싱거운 대답에 결국은 집요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바보 같다고 안 할 테니까 말해주면 안 돼? (이어지는 공백. 생각 정리하여 입 밖으로 소리 낼 때까지의 간극이 길어졌다. 붉어지는 얼굴이나 빤히 바라보다가) 뭐야, 왜. 왜 그래? (급하게 네 머리와 기둥 사이에 제 손 뒀다. 대체 무슨 오해를 했길래, 궁금증 일었으나 내뱉기 이전에 괜찮냐며 면상 가까이 붙이고 너 살펴봤다.) 아주 오래 살아 봤자 얼마나 더 살았다고? 너도 내 또래면서... (영 불만족스러운 듯 미간이 좁혀왔다. 예나저나, 설명이 필요한 일들 뿐이었다. 관자놀이 꾹꾹 누르더니 이윽고 시선이 네 손목으로 떨어졌고.) ...그거라면 맞아도 안 아플 것 같은데... (뭐라 중얼대면서 얌전히 눈 감았다.)
 
리은:그럼 예 다른 누가 있다고 그러시오? 저기 밖에 무사님들도 그렇고 얘 아해들은 죄다 얼굴에 표정이 잘 보이는데 그대만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아, 변했다. 웃음소리 내는 듯 했다가) 그야... 음... 그러게. 다른 사람들이 내 얼굴 보는게 싫어서? (의문문으로 끊은 답이다. 손 끝을 꼬았다. 그렇지만 난 정말 모르겠어. 지금 널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너는 분명히...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입술을 꾹 문다.) ... 아주 옛날에... 아아주 옛날에 말이야. 눈이 어여쁜 아해를 하나 만난 적이 있소. 딱 하루 만나고 그 뒤로 만나지 못했는데... 그대만 보면 그 아해가 생각나서 말이야. 겹쳐 보는 것은 아니외다. 실례인 일이니까. 다른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 그냥... 지금의 내 무사님인 그대가 좋다고. (사람은 수 많은 생을 반복한대. 다시 나한테 네가 돌아와준 것이면 좋겠어. 신님이 정말 날 사랑한다면 한번 정도는... 치맛자락 꾹 쥐었다. 못할 말만 늘었다. 웃음소리로 얼버무리다가) 아니... 그, 그렇게 빤히 보지는 말아주시게... (당신의 얼굴을 꾹 밀어냈다. 왜애. 그대 나이 즈음 되면 정 통하는 이들 정도는 있다고 궁 아해들이 그랬단 말이오. 이야기 들어보면 참 따스하고 그러던데. 그대도 그런 것인 줄 알았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다. 없어? 정말? 나 궁금한데.) 흥. 아아주 오래 살았네. 보는 것만 다인 것은 아니지. 아주 화석이야, 화석. (그런 말이나 하다가) 무시하면 큰 코 다치오. (에잇! 손 들어서 당신의 뺨을 치는가 했다가 살풋 뺨에 올려두고 제 입술 쪽. 곧바로 떨어져서는) 후후... 예로부터 정신 차리기 좋다 했소. 아닌가? (전에는 효과 없던 것 같기도 하고...)
 
다비드:그랬어? (머릿속으로 일전에 스쳐 지나간 이들의 표정을 그렸다. 스스로를 그들과 비슷한 선상에 두고 비교해보기도 했고. 하지만 대부분들은 스스로의 표정을 다른 이들을 보는 만큼의 반의 반도 보지 못하지 않던가. 그제야 저를 모르겠다는 네 말에 납득했다. 멋쩍은 표정 지으며 제 뒷목을 슬쩍 긁었다.) ....느끼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라고 했었는데, 아직도 너나 나나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 보면 표현이 한참 부족하나 보다. (한탄 닮은 숨과 함께 내뱉더니 웃음소리에 다시 한번 눈 깜빡.) 그게 왜 싫어?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널 좋아해 줄 거라고 그렇게 확신해서 말하더니.... (꼬아지는 네 손 끝을 내려다봤다. 그것을 잡아야 한다. 영문모를 충동이 들었다. 두 손이 맞닿으려는 순간, 목소리가 먼저 귓가에 닿았다.) ....네가 말하는 아해는 어떤 애이길래? (이제는 머릿속에서 그릴 필요가 없는 낯선 이.) 그 애를 좋아했어? (어린애의 동력, 밝은 색감의 생동성, 새빨간 백합의 노래, 그 모든 것을 품은 맑은 목소리. 이제는 스스로가 환청을 듣기 위하여 나섰다. 빛바랜 기억을 뒤쫓던 와중, 다시금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본연의 색을 잃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조금 먼 나중에, 언제나처럼 내 이름을 부르기로 했으면서... 이유 모를 서운함이 가슴을 죄여왔다. 그러니까, 언젠가 스스로가 신적의 존재 앞에 내던져졌던 그 순간 느꼈던 모멸감 엇비슷한 무언가가.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조금 침체된 목소리 냈다.) ......네가 다치면 네 호위무사의 입장이 굉장히 곤란해지거든. (봐봐, 밀어내는 손길에도 꿋꿋하게 네 이마 제 엄지로 몇 번 문지르고 나서야 떨어졌다.) 정 통한다는 게 무슨 의미야.... 연애? (눈썹 꿈틀거렸다. 붉은 실로 얽힌 사람은 있다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맞춰 작은 목소리 냈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살갗에 닿는 온기는, 정말. 선명하기만 했다. 긴 어둠 속에 익숙해진 망막 위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백일몽이 아니라면, 현실도 아닌 이곳을 대체 우리는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정신을 차린 게 아니라 내가 정신이 나간 것을 깨달았어.
 
리은:그랬지. 한번씩 웃으면 그리 어여쁜 이가 아닐 수 없는데. 매번 입 꼭 다물고 무뚝뚝하게 말이야. (어떤 표정이든 좋지만 이런 말이나 툭 뱉어낸다. 워낙 이곳의 이들이 표정이 다양한 것도 있었지만. 이제는 저 자신도 그리 표정 많은 이가 아닐 뿐더러 근처에 있는 이들도 입을 꾹 닫고 있으니 조금은 웃는 이가 좋은 탓이었을까. 그래도 억지로 웃지는 말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보통 자신이 어떤 것을 느끼는지 바로바로 나오지는 않으니 되었소. 표정을 말해주기 어렵지 않은가. (음... 어라. 익숙한 말인데. 이어지는 위화감이었다.) ... 보통... 몇 년이 지나도 얼굴이 바뀌지 않는 이를 보면... 기분 나빠하니까. 적어도... 인간 취급은 받지 못할 것 아니오. 눈도 예전이면 자랑이라도 할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도통... 아 그렇네. 좋아해 줄 것이라고 확신도 했고 맞는 말이기도 했지. 예전에는. (... 내가 '네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나? '너'라는 이는... 목소리가 떨렸다.) 무뚝뚝하지만 다정하고... 햇살을 닮은 아해요. 아주 자유로웠어. 제멋대로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이 그 아해만의 빛이라고 내 보아. ... 선하기 그지 없는 아해였지. (머리 속에 똑똑히 남은 아이다. 몇 년이 지나도,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잊을 수 없는 이. 제 안에 자신을 그리 못 박아두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야박한 이. 다시는 볼 수 없는 햇살을 닮은 아이.) ... 좋아했지. 지금도 참 좋아해. 무엇이랑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나한테 중요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외다. (거짓 한 점 없는 답이다. 사람은 자신의 세상을 넓혀준 이를 잊지 못한다. 손 맞잡고 뛰어가던 때를, 함께 춤추던 때를, 홍등 밑에서 눈 빛내던 때를, 붉은 실로 저들 손 이어잡던 것을 모두모두 소중하게 그러모아 기억이라는 상자 안에 넣어두고 이따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워질 때에면 슬그머니 기울여서 구멍 속으로 훔쳐보는 따스한 기억들이다. 빛 바래었기에 더욱이 소중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목소리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보고 싶다. 실로 보고 싶었다. 햇빛 밑에서 다시금 손 잡고 언덕 달려가고 싶었다.) ... ... 아, 응. ... 호위무사... 니까. 그대 입장을 생각 못해주었소. 내 미안해. 얌전히 있도록 할게. (슬그머니 떨어져서는 속이 텅 빈 웃음 두어번 냈다. 네게 폐 끼치면 곤란하지.) 응, 연애. 그런 이야기 듣는 것이 즐거워서 계속 이야기 해달라고 하고 있거든.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고 듣고는 곧바로 평소와 같이 맑은 소리 냈다. 어마. 누구요? 참으로 복 받은 이네-. 나중에 그대가 여기 일을 그만두면 어쩌지? 나 외로울텐데. 종알종알거렸다. 그러다가 제 입 가리고 앗. ... 나 그런거면 방금 실수 한 건가?)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소마는. (느리게 두어걸음 떨어졌다.) 요상한 것이나 깨닫고. 왜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할꼬. 분명 정신 차리는 방법이라고 했단 말이야. ...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보아야겠소.
 
다비드:…혹시 나 지금 얼굴 붉혀야 하는 시점인가? (차마 선뜻 그러지 못하겠는 건, 표현을 할 줄 몰라서라기 보다는 천 뒤로 보이지 않는 두 눈이 본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한 것 같아서였다. 그나마 억지로 웃지 말라는 네 말에 애당초 연기에는 자신이 없다 답했다. 제 기억 속의 ‘이 리은’이라는 자를 되새기며 눈 여러 번 깜빡였다.) ...네가 몇 년이 지나도 얼굴이 바뀌지 않는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애초에 너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난 기분 안 나빠. 여전해서 좋고, 또 여전하지 않아도 좋았을 거라고. (문장 끝까지 따박따박 소리 내고 나서야 그 말본새나 그의 속뜻이나 굉장히 자의적인 것을 깨달았으나, 이왕 내뱉은 거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뻔뻔해지기로 했다. 응, 좋아해. 좋아하는구나.
이제는 네가 설명하는 이가 누구인지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감상이 너무 후한 거 아닌가, 본의 아니게 반박심이 들었지만 진심 어린 네 목소리에서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건 지금 당장 그 아해가 사실 나요, 라고 선언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고. 몇 초간의 침묵을 흘러 보내고 나서야 나지막이 한마디 건넸다.) …그런 애를 닮았구나, 내가. (‘그런 애.’ 단 세 글자로 줄여진 그 이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네가 알아볼 수 있다면 그리 불러 주기로 했으니 그는 동시에 ‘나’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타인의 삶은 스스로의 삶에 타당성을. 과거는 미래로 향할 수 있도록 현재에 관성을 부여하지 않던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말해주어서 고마워. 좋게 봐주어서 고맙네. 그리 전하고 나면, 어느 순간 가슴 죄여오던 것이 옅어졌다.) 정정하지. 호위무사가 아니었어도 네가 다치는 건 싫어. (공허한 웃음소리에 시선이 가늘어지더니, 애써 문질러 둔 네 이마에 대고 손가락 튕겼다. 딱. 꾸지람 같은 것에는 상처 안 받는다며? 자리 고쳐 앉고 운을 뗐다.)
들어봐, 신녀님. 내가 만난 우물 속 개구리에 대해서 말이야. 짙은 녹음을 품은 두 눈동자 속에서는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다녔고, 모든 빛을 흡수한다는 흑단색의 머리칼은 오히려 받은 햇살을 그대로 내비쳤어. 얼굴은 달처럼 희고 입술은 석산처럼 붉은 게, 어느 귀한 집의 규수 같으면서도 하는 행동은 정반대라서 눈길이 갔지. 겁도 많으면서 높은 곳에 올라가지를 않나, 그날 처음 본 낯선 이한테 뽀뽀를 하지 않나…. (저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느끼는 것을 입 밖으로 내도 된다고 말해주어서 다행이야. 웃음기 가시지 않은 채 말 이어갔다.) 그런데 그 애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심지어 사람이 아닌 것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서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느꼈어. 그래서 걔한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거든. 그러니까 뭐라고 하더라… 그래, ‘생에 다시 없을 이.’ 그때 깨달았어. 그 애의 생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거야.
걱정 말아. 여기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사라졌어. 정신 차리는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아도 괜찮아. (그건 일종의 자기변명이었다.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어느 한 구실. 네가 실수 한번 했으니까 나도 실수 한번 하려고. 한 손 뻗어 네 손을 저에게로 이끌었다. 그러더니 몸을 숙이고 언젠가처럼 손바닥 안쪽에 입을 맞추었다.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떠올라 금새 엄지로 슬쩍 흔적을 지웠지만.)
 
리은:그랬으면 귀엽기라도 했겠구료. 됐소. 내 익숙치 않는 것은 어찌 받아야 할지 모르겠으니 하지 마시게. (제 맘대로 그게 가능하오? 능력도 좋아. 그런 소리나 했다. 눈 감으면 선명하게 보이던 것들을 지워냈다. 눈꺼풀 들어 올려서 달빛 낭낭한 하늘을 담았다. 내 시간은 완전히 멈추었구나. 자신의 천 끝을 손으로 문지르다가) 눈 떠보니 다른 모든 이들은 하나 둘 늙어 죽어버리고 나만 남은 기분을 아시오? 거울을 보면 나 홀로 저 멀리 떨어진 이처럼 느껴지는게요. ... 그대가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하여도 죄인에게 스스로 죄수복을 벗을 권리는 없소. (뻔뻔하긴. 무얼 그리 단언할 수 있나? 심술 가득해진 듯 제 발의 앞 코로 바닥을 툭툭 쳤다.
아끼고 또 아끼던 기억을 손 끝으로 쓺과 동시에 모든 꽁했던 것이 풀어져서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다.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위화감을 머리 속에서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대. 혹시 전생을 믿소? 영혼의 순환이라고 말이오. 이전의 삶의 영혼이 또 다른 몸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아아주 이전에 본 적이 있네. 알다시피 난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런 책이나 읽을 수 밖에 없거든. 그러니 자연스레 상상이 되는 것이오. 그 아이가 돌고 돌아, 나에게 한번 더 돌아왔으면 하는 그런 상상을.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다시 얼굴 마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와줬을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말이야. 전하고 싶은 것이 가득이었는데. 목에 걸린 단어들이 스러졌다. 제 이마에 느껴지는 작은 통증에 반사적으로 미간 찡그렸다. 표정은 도통 펴질 줄 몰랐기에 두어번 숨 골랐다. 치이.) 형태 없는 활자보다 아픈 것은 없소, 그대. 무지했을 때에는 몰랐던 사실이지. 큰 대가 치루고 알게 된 교훈이야. (입을 꾹 다물고 귓가 스치는 활자를 품었다.
글자 하나 하나가 고왔다. 당신의 진심이 가득 눌러 담겨서 듣기만 해도 따스했다. 의문점이, 위화감이 매듭을 풀어냈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네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면... 내 앞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그리워 마지 않던 아해로구나. 생에 다시 없을 이야. 멀고 먼 길 돌아서 오셨는가.) ... ... 어제까지는 아무 것도 기억 못했으면서. (속에도 없던 책망이 튀어나갔다. 이제야 기억을 해주는가, 그대.
제 손바닥에 입을 맞추는 모습에 떨리는 손을 두어번 쥐었다가 폈다. 끌리는 치맛자락 이끌고 한발, 두어발 다가가서 그 앞에 서서는 다시금 허리 숙여서 다른 손으로 앞머리카락 쓸어냈다. 달빛 쏟아지는 연못의 색을 머금은 쪽빛이오. 매 밤마다 우느라 까진 눈가가 붉어졌다.) ... 그럼 그만 둘 생각은 있었는가. 내 생에 다시 없을 이야. 왜 이제야 오셨소. 내 명 다한 뒤에나 오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꼭 백년을 기다렸어. 이제는 게 살지 않으니 내가 있는 곳을 모르나. 혹 오다가 길 잃었나. 이제는 얼굴 가려서 알아보지 못하나 하면서 요상한 걱정도 하였더랬지. (쓸어낸 이마를 제 손가락으로 훑다가 이마에 제 입술 눌렀다.) ... 보고 싶었어, 다비드. 꼭 백년만큼 보고 싶었어. (하루라도 널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으니, 나의 그 날들은 모두 널 위한 것이다. 이제라도 모두 가져가, 그대. 물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비드:(눈 접고 말간 웃음을 흘려보낸다. 그런 게 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연기에는 자신이 없다니까. 눈꺼풀 들어 올려 시야 가득히 너를 담는다. 어쩐지 달빛에 비친 네 얼굴이 투명해진 것 같아 눈가를 몇 번 문질러야 했다. 이제까지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이 있었나? 아니, 있다 하더라도 너만큼은 아니겠지. 가슴의 답답함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고통이 피어오른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과 그것을 오롯이 홀로 감내해야 했을 너를 떠올린 까닭에. 참으로 애상하기만 했다. 외로웠겠네. 힘들었겠어. 그 흔한 위로조차 이 비천한 입술에 차마 담을 수가 없어서. 머리부터 마음까지 무언가가 잔잔히 무너져 내려갔다.)
전생... (누군가로부터 분명 들어본 단어니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저와는 관련 없을 주제라 확언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믿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전의 죽음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유독 한 사람과의 기억만. 딱 그와의 기억만 선명했다. 새빨간 끈으로 이어진 인연.)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어? (조심스레 물으며 찡그린 미간 꾹꾹 눌러준다. 늘 이런 식이었다. 상처를 주고, 또 그걸 제 딴에서 수습하고.) 마음의 상처라는 거 제법 아프지.
(어제까지. 단어의 무게를 가늠해보려 했으나 이제 고작 몇 시진을 떠올린 이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미안해, 신님의 꾸중을 함께 듣기로 했는데... 혼자 널 이곳으로 보내고 도망쳤구나.
애초에 그날 널 데리고 밖으로 나온 건 나였고 네가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 것 또한 나였으니. 감옥에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지. 대신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라고 한다면 응당 그러겠어. (머리카락 쓸어주는 네 손길을 얌전히 받아내다가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깍지 껴 붙잡는다. 천 너머의 표정이 얼핏 그려지는 건 착각인가?) 예전에.... 아주 예전에. 아니, 먼 훗날인가?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는 생각 못했지. 이 나라의 사람들의 수명은 짧고, 내가 모시는 이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했으니. (백 년이나 되었구나. 백 년이나, 되어버렸구나. 놀라움도 잠깐, 이마에 맞닿은 온기가 이제는 선명하다. 이제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양팔 뻗어 너를 품 속에 안는다.) 나 또한 보고 싶었어, 은아. (수백 년을 뛰어넘어 비로소 오늘날 전하기로 했다. 기억하지 못했던 수많은 '나’들 또한, 네가 보고 싶었을 거야.)
 
리은:(그려진 웃음이 좋았다. 저 멀리서부터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는 듯 했다.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이처럼 뛴다. 아주 예전에 품어 안아준 아해를 처음 봤을 때처럼 거세게. 꽃 한 송이에서 꽃잎 하나를 떼어내어 바람에 날리며 하늘에 빌었더랬다. 신님. 신님. 부디 그 아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제게 올 모든 복도 아이에게 가게 해주세요. 그리 빌었더랬다. 외로운 것을 도통 싫어했다. 그럼에도 네가 없는 시간은 북해에서 불어온 바람 마냥 차가워서 한참을 떨었다. 이제서야 몸 녹일 수 있는 온기를 잡아볼까, 잠시의 고민이다. 어서 와. 널 기다렸어. 매 순간 말이야. 네가 손을 잡아주는 상상을 했었고, 이제는 사실이 되었으니 이마저도 되었다.) 세상을 품에 안은 기분이야.
(인연의 실은 시간을 넘어 묶였구나. 축복의 기도를 다시금 속으로 되내었다. 마지막 발악이며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이다. 다시 데리고 가지 말아주시어요, 신님. 하고 말이야.) 그대가 이전에도 내 곁에 있었는지는 모르오. 어딘가에서 행복했기를 바랄 뿐이지. (아주 예전, 묶여 있던 붉은 실자락이 있던 곳을 맞대었다. 연의 실은 아주 쉽게 끊어지지만, 동시에 단단하지 않니. 찡그린 미간을 느리게 폈다. 네가 무얼 하든, 난 받아들일 뿐인 것을.) 미안하다 하고 싶었어. 아주 많이 미안하다고. 그런 일을 겪게 하여서 미안했고, 혼자 보내게 되어서 미안했고... 다시 언덕에 가지 못해서 미안했소. 내가... 그대에게 상처를 주었으면 어쩌나 해서... 또 미안했어. (손에 슬며시 기대어서 부비었다. 괜찮아. 난 괜찮아.)
다 괜찮소. 신님의 꾸중은 나만 들으면 족하오. 그대에게 폐가 가지 않았더라면 난 그것으로 되었네. 그대의 손을 잡은 것도 나요, 그대와 연 맺겠다 한 것도 나인데 어찌 이 모든 것이 그대의 탓이겠나. 그냥... 나랑 이곳에서 하루하루 지내는 것으로 해주어. 지금처럼 곁에 있어주는 것이 좋아. (깍지 껴 잡은 손을 올려 제 뺨에 대고 있다가 당신의 손등에 가볍게 기댔다. 온기를 탐하는 이가 되어서 놓고 싶지 않다는 듯.) 아주 먼 훗날도 알 수 있나? ... 명이 길었으면 했는데. 내 모든 기도는 닿지 않았나 보아. (입안이 썼다. 당신의 품에 파고 들고 나서야 지금까지의 웃음 중, 가장 평온한 미소 지어냈다.) 응. 이번 삶만이라도 좋으니 내 곁에 있어주어, 그대야.
 
그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도중, 신녀궁의 궁녀 중 하나가 다가옵니다.
 
신녀궁 궁녀: 번제 시간입니다, 신녀님. 슬슬 환복 후 치장을 하시는 것이 좋으실 듯 하시어서요.
 
리은이 당신의 품에 가만히 있다가 당신을 올려다 봅니다.
 
리은:미안하오. 번제만 내 드리고 오겠소. 칠석제 마지막 날이고... 중요 행사라 빠질 수 없어. ... 다녀와서 같이 있자. 괜찮을까?
 
다비드:(입 떼었다가 인기척에 고개 돌려 궁녀를 올려다본다.) ...다녀와. 여기 있을게. (못내 답하면서도 표정에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리은:응. 금방 다녀올 터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어, 다비드. (당신 뺨 두어번 쓸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지 말아.
 
그리 말하고 궁 안으로 리은이 사라지자 정자는 조용한 적만만이 감돕니다.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한 곳이군요.
 
다비드: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맹..)
 
다비드: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담장 너머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곡조.
 
매우 낯익고 익숙한 노래 가사입니다.
 
초원에서 가장 예쁜 꽃, 바로 새빨간 백합이구나
 
하늘의 끝에 달하는 꿈을 꾸니, 곳곳에 꽃향기로 가득하구나
 
떠도는 이의 마음 속에 그가 있으니
 
천리만리 밖에서도 돌아보게 하는구나
 
다비드:...사랑에 빠진 이의 마음 속에 그가 있으니... (괜히 제 검지를 매만지고,) ...하늘과 땅처럼 영원한 행복이 있네. (그리 중얼거리며 차분히 기다렸다. 원래 가만히 있는 건 진절머리가 났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느덧 곡조가 가까워집니다.
 
곧이어 당신의 눈 앞에 붉은 천이 드리워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군요.
 
"이 노래 좋아하세요? 저도 참 좋아해요. 아주 예전에 회양나무 같은 아가씨가 즐겨 부르던 노래였거든요."
 
다비드:(익숙한 목소리에 고개 들어 바라본다.) ...당신... (가늘어지는 시선.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점집 주인: 이야기꾼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만날 수 있죠. 반갑지 않나요? 전에 말했잖아요. 나중에 또 만나겠다고. 축제에 오지 않아서 제가 직접 왔답니다. 친절하지요?
 
다비드:... (딱히 반갑거나 친절하다 느껴지지는 않는데... 일어난 일들이 있으니 적개심이 생겼나. 머리 굴려본다.) 무슨 일이죠?
 
점집 주인: 너무 그렇게 날 세우지 말아요. 당신한테 도움이 되고자 왔는걸요. 물론 지금의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나중에 가서 판단을 해보고요. (잠시 당신 살피다가) 지금 이 순간이 마음에 드나요? 저 신녀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시간 말이에요.
 
다비드:그렇게 보였나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안면근육에 힘 풀고 한 발 늦게 답했다.) 네, 마음에 들어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랄 만큼.
 
점집 주인: 그렇다면 '당신'이 본래 지내고 있던 곳은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해도 좋을지도 몰라요. 그것이 당신의 선택이라면야 지금의 신녀든, 당신이 본래 있어야 했을 곳의 신녀든... 모두 당신을 존중하겠죠. 전 궁금하네요. 어떤 것을 선택할지.
 
다비드:...예?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995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느리게 눈 깜빡인다.) 왜 이제와서야 나에게 선택권이 생긴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잠시만요. 지금이 꿈도, 이전의 기억도 아닌 현실이라고?
 
점집 주인: 응, 그래요. 995년이라고 부르죠, 당신들은. (빤히 보는 듯 하다가) 신들은 변덕을 좋아하죠. 애초부터 당신이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 변덕 중 하나였는걸요. (어라.) 몰랐어요? 네. 모든 것이 현실이에요. 당신만 튕겨져 나와 이전의 시간의 일부분을 되감는 거예요. 조금 있으면 다시 한번 튕겨져 나갈텐데... 그 전에 묻는 거랍니다. 원한다면 이 곳에 머물게 해줄게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다비드:(이제야 퍼즐 하나 맞추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난제를 맞닥뜨렸다. 어안이 벙벙하다.) 몰...랐어요. 제가 이 곳에 머물겠다, 하면 미래의 나는? 여기서 제가 죽으면 미래의 나도 사라지는 겁니까?
 
점집 주인: 꿈이라고 생각해도 좋았을 것이라 봐요. 뭐든 좋잖아요.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일어나는 일들이면... 꿈이고 실제고 다를 것이 무어가 있겠나요? 아주 예전에 어린 신녀를 만난 것도 진짜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당신도 진짜고.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아뇨, 설마요.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 처음 어린 신녀를 만났던 당신이 첫 번째 당신이라고 쳐봐요. 지금의 당신은 한 스무 번째 즈음 되었으려나? 그리고 미래에 있는 당신은 백 번째 즈음 이라고 해보면 알겠어요? 당신은 죽음과 삶을 반복해서 그 자리에 존재해요. 그러니 지금 이곳의 당신 또한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다른 삶을 살겠죠. 이게 생의 반복이랍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이곳에 머문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크게 없어요. (잠시 뜨음) ... ... 아닌가? 먼 미래는 크게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지금 당신이 신경을 쓸 일 인가요? '지금' 당신은 이대로가 행복하잖아요.
 
다비드:꿈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나만의 것이니까. 나중에 깨어서 나만 기억하고 있는 현실을 진짜라고 부를 수 없잖습니까. 그건 차치한다 하더라도... (얼굴낯이 어두워진다.) 스무번이나? 백년 사이에 제가 스무 번을 죽었어요? 오백년 사이에 백 번을 죽었고? (문장 사이사이에 의문점이 수두룩 찍힌다. 진짜 의문이라기 보다는 경악에 가깝다. 무슨 수명이 그렇게 짧아.) 미래가 크게 바뀐다는 말을 듣고 나면 제가 어떻게 마냥 여기에 계속 있습니까?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은이... 신녀가 돌아오면 말을 나누어봐야 할 것 같아요.
 
점집 주인: (입꼬리가 빙긋 올라갔다.) 더 죽었을지도 몰라요. 제대로 센 것이 아니라서요. 전에 노인이 그러지 않았던가요? 어떨 때는 아니였고, 청년이었다고. 언제 죽을지는 미지수예요. 그리고 당신이 본래 살아야 했던 모든 수명은 신녀에게 가겠죠. 당신이 바랬잖아요. 인연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붉은 실은 이루어주었어요. 제가 뭐랬더라. 저주라고 불러도 좋다고 했을텐데. (흠...) 시간이 충분하면 좋을텐데. 아쉬운 일 투성이지요.
 
다비드:......그건, 오래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이었는데. 남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신녀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선택하라는 말인가... (왜 하필 지금. 꽉 깨문 잇새로 침음이 흘렸다.) 제가 미래..., 본래 지내고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곳에 있는 나와 신녀는 어떻게 됩니까?
 
점집 주인: 물론 저는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축복을 빌어주었어요. 그 이후에 신녀가 받은 저주 탓에 꼬였을 뿐인걸요. 정말 기막힌 운명의 장난이죠? (당신의 행동을 가만히 응시하며 보다가) 이곳의 당신은 당신이 눈 뜨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당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서 신녀가 상처를 받을 일은 없어요. 본래 그려진 운명을 따라갈 뿐이니까요. (고개를 기울였다.) 중요한 부분인가요? 신녀는 본래 시간대의 당신이 아는 모습에서 변하지 않을 텐데요.
 
다비드:...정말 기가 막히네요. (이제껏 그 저주인가 뭔가에 고통받았을 이를 머릿속에 그린다. 사람들의 시선에, 형태 없는 활자에. 다시 고개를 돌려 시선 주인에게로 향한다. 어이가 없다는 투.) 그 애가 상처를 받고 안 받고를 왜 당신이 판단합니까? 400년은, 아니... 몇 년은 인간에겐 정말 긴 시간이에요. 당장 죽음을 맞이하는 건 나지만, 그걸 오래도록 견디는 사람은 걔잖아요. (긴 숨 내뱉는다. 어딘가 결연하다.) 여기 있겠습니다. 이번 삶만이라도 곁에 있어달라고, 어디 가지 않기로 했는걸요. 그렇게 해서 바뀐 미래는 그 애 홀로가 아니라 나와 함께 감당할 겁니다.
 
점집 주인: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당신의 말을 중얼거리며 곱씹었다.) 역시 잘 모르겠어요. 전 운명을 읽은 것 그대로를 말해줄 뿐인걸요. 그럼요. 인간에겐 정말 긴 시간이죠. 그렇기에 마지막만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또한 당신의 선택이니 존중해야겠네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시간을 이곳으로 고정하도록 하죠. 당신의 이번 생은 부디 아주 오래 행복하길 빌어요. 붉은 실은... 끊어질 일이 없겠네요. 제가 걸어둔 축복도 함께 말이에요.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으면 해요. 당신의 선택이,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의 최선이잖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답해주지 않을래요? 당신은 신녀가 없는 삶 또한 살아갈 수 있나요? 이건 단순한 제 궁금증이니 답하지 않아도 좋아요.
 
다비드: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는 선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제야 입가에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장 제 눈앞에 놓인 현재만 보며 살아가는 한 미물의 한계점이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당신이 한 말들은 정말 그대로 일어날 것 같으니 그런 질문은 자제해주시면 안될까요. (또다른 무한한 공백의 가능성. 그 속에서 답을 찾아냈다.)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아.
 
점집 주인: 그렇군요. 답을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아요. 제 궁금증도 모두 해소가 되었고요.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택한 것 뿐이고 어떤 것에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걸요. 이 이야기는 두고 두고 마음을 울릴 이야기가 되겠어요.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는 환한 웃음을 띄우며 붉은 천으로 다시 당신의 시야를 덮습니다.
 
잠시 뒤 눈을 떴을 때에는, 바뀐 것 하나 없이 그저 정자에 멀뚱하게 서 있을 뿐이에요.
 
어떤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사방은 조용했고,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 멀리서 화려하게 꾸민 리은이 당신에게 달려와 품에 안겨옵니다.
 
이것으로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곳도 가지 않기로 결정했는걸요.
 
이번 삶만이라도 곁에 있겠다고 선택했으니까요.
 
그렇게 행복하면 되는 겁니다.
 
어떤 선택도 오답은 없고, 정답 또한 없습니다.
 
부디 행복한 삶을 보내길 바랍니다, 그대들.
 
...
 
옛날 옛날, 먼 옛날.
 
해가 뜨지 않는 나라.
 
천년의 왕국.
 
신의 가호가 함께하는 나라.
 
은의 나라.
 
그 외로도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영원한 행복의 나라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 축복은 끊임이 없을 겁니다.
 
밤하늘 밑의 흰 꽃이 만개한 곳에서, 마지막 신녀의 관이 채워짐과 함께 신은 약속을 지켰는걸요.
 
모두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하였습니다.
 
*
 
*
 
*
 
달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당신은 눈을 뜹니다.
 
이런, 시간이 상당히 흘렀나 봅니다.
 
그 옆에서 있던 이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잘 잤어? 아주 깊게 자던걸. 깨우기도 뭣할 정도로."
 
검은 흑단과도 같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검은 세라복.
 
언제와 같은 표정으로 리은이 당신을 봅니다.
 
"모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잖아. 진부하지만 나름 좋아해. 그게 모두의 해피엔딩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주 옛날에는 해가 떴었대. 알아? 아아주 옛날이지만."
 
"다 잤으면 일어나. 집 갈 시간이야."
 
달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등지고 리은이 웃습니다.
 
인연의 붉은 실은 은하수를 넘어 돌고 돌아 다시 한번 네 곁으로.
 
그것이 붉은 실의 축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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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C?
 
Staff
 
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