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당신은 핏덩어리를 토해냅니다.
그와 동시에 다비드는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가슴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본다면, 여기저기 끈적하게 말라붙은 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은 핏물에 젖어 축축합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군복이 지독하게 무겁습니다.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총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입니다.
그보다, 다비드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차가운 웅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전 소생 직후와는 달리, 혼란스러움은 한결 덜합니다.
짜증나는 라디오 소리는 더 들리지 않습니다.
다비드가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은 회색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묵직하게 눈 바닥을 밟는 군화 소리가 가까워집니다.
이 리은:이제 정신 들었나?
총을 고쳐잡은 리은이 근처에 다가와 묻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당장이라도 한 발 더 갈길 기세입니다.
이 리은:전자기기도 맞으면 고쳐진다던데, 크리쳐도 TV같은 구조일까?
매번 그댈 죽이는 것은 퍽 힘들어. 알잖아. 소중한 이를 내 손으로 죽인다니. 너무 잔인한 일 아니야?
다비드:(한손 들어 붉은 눈가 부비작거린다. 여김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아직 숨이 붙어있으니.) 고쳐진 건가? (이게? 픽, 헛웃음이 잇새로 세어나온다.) 미안.
그래요.
은은 다비드를 처참하게 살해한 뒤에도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있지만, 당신의 소중한 전우입니다.
이 리은:멀쩡해 보이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 가끔 한눈판 사이에 까마귀가 널 물고 가서 참 곤란했는데.
……어제까지는 그랬죠.
리은이 까마귀에게서 소중한 다비드를 되찾아온 무용담 따위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 이전 임무를 끝낸 직후에 다비드가 사망했던 것 같습니다.
소생 직후에는 10번 중의 1번꼴로 이번처럼 정신이 이상해지는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리은이 물리적인 '리셋'을 도와줬던 기억이 납니다.
죽음은 익숙하지만 다정하지 않고, 소생 직후의 첫 숨은 유난히 차갑습니다.
임무가 끝나면 휴식기가 주어지니 느슨하게 풀어질 법도 한데,
어째서인지 리은은 농담 도중에도 빈틈없는 모습으로 조금 떨어진 도시에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다비드가 주변을 둘러보아도 음식과 모닥불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이 리은:자. 이거 몇 개로 보이는가, 그대? (손가락 브이하며 당신 앞에 흔들)
다비드:(깨물까? 그랬다간 총 맞겠지.) 둘.
이 리은:옳지. (당신 머리 헝클고는) 이전 임무는 성공적이었어. ... 대신 그대가 과다출혈로 죽어버렸지만. (잠시 뜸) 그대의 자가소생 시간이 복불복이라지만... 이번 소생은 유독 느린데, 무슨 몸에 문제라도 있다고 느껴지나?
다비드:(얌전히 손길받는데 시선이 유독 비뚜름하다.)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멀쩡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삶을 확신하다니!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앗쇠를 당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끓었으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탄약이 아까웠다.)
이 리은:... 말투가 왜 이래?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그대는 모를걸. 하나뿐인 파트너를 두고 그리 오래 잠들어 있으면 곤란하단 말이오. ...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게 싫어?
다비드:걱정했어? (그제야 시선 맞추고,) ...싫다고 해서 다시 안 살아나는 것도 아니잖아. (말하다보니 칭얼거리는 기분이 들어서 잠시 입 다문다.) 나 잠들어 있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
이 리은:... (시선 가만히 맞추고 있다가 고개 돌려서 시선 비끄렸다. 물음을 냅다 삼켜버리고는) 다시 살아나지 않을 수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거라는 소리처럼 들리네. (단정한 미간을 한번 찌푸렸다가) 또 임무가 내려왔어. 시간이 부족하니까 바로 출발해야 해. 괜찮지?
리은이 당신에게 지도와 임무 내용을 전달합니다.
다비드:그런 소리 맞을걸... 그보다 무슨 일 있었냐니까. (집요한 시선이 따라잡는다. 지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A시의 크리쳐를 말살하는 것.' 유독 그 문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었다.) 응, 당연히 괜찮아.
이 리은:... 너어... (무어라 이야기 하려 했으나 곧바로 입 다물었다.) 없었다니까? 리셋을 해도 일어나지 않길래 기다리면서 밥 먹었소! (울컥 올라오는 감정 내뱉었다. 성질 냈다는 것이려나.) ... 그럼 바로 출발할 거야.
다비드:...크리쳐가 된다고 해서 아프지 않는 건 아니지만... 무뎌지기는 하지. (아니면 물리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덮어 두거나.)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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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성공
이 리은:(어떤 것이든 무뎌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 대신 나온 것은,) ... 아픔은 생물이 가진 방어기재야. 아프면 아프다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없는 곳에서 네가 죽어가면? 네가 아프다는 것을 내게 알리지 않으면 난 끝까지 모를텐데. 주먹 꾹 쥐었다가 괜히 서랍을 열어 뒤적였다. 쓸만한 것이 있을까.) ... 크리쳐가 되면 그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 이러면 싫어하려나. (본심이 비집어 나왔다. 새빨간 이기심.)
아팠던 기억을 더듬던 중, 문득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갑니다.
감기에 걸려 고생했었죠…
어라? 잠깐, 다비드가 감기에 걸린 적 있었나요?
다비드:그런가... (전해지지 못한 속내는 결국 알아차리지 못한 체 흘려보낸다.) 아프다고 하는 건 결국 살고 싶기 때문에 하는 거 아니야? 난 아프던 아프지 않던 죽지 않는데... (단편적인 생각이다. 받는 것에는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인지. 이해라는 단어에 오히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차라리 내가 인간이 되는 방법을 찾자. 그렇게 말하면 너도 정말 크리쳐가 될 것 같아서 겁나. (감기에 걸린 듯 목구멍이 따갑다. 이또한 본인의 기억인가? 확신이 안 섰다.) 뭐 쓸 만한 거 있어?
이 리은:그대는 그대 자신이 죽던 말던 상관은 없겠지만 난...! (제 속이 뒤엎어지는 기분이었기에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커졌다. 곧바로 입 꾹 다물었다가 중얼거린다.) ... 난... 네가 살아서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울적했다. 매번 그래. 너랑 있으면 매번 나만 이렇게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서. 제 감정을 곧바로 추스른다. 좋을 것 하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이해도 싫구나. 쓴 미소나 픽 내었다.) 뭘 그리 겁을 내시오? 그대가 인간이 되면 상부에서 가만히 있겠나. ...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마는. (서랍을 슬 밀어 넣었다. 제 모든 감정 접어서 밀어 넣은 서랍에 비집어 끼워둔 뒤 한숨 작게 쉬어낸다.) ... 없군. 모르는 약들이 한가득이야. 다음 번에는 의료 서적이라도 읽어보는 것이 좋겠어.
다비드:그건... (운 떼었다가 네 감정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잠시 말을 골라낸다. 답하는 목소리가 나른하다.) 죽던 말던 상관없는 건 아니야. 살고 싶었어, 미치도록. 그저-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함께. 오래토록. 불순한 욕망이 네쪽으로 몸을 기울게 만든다. 어딘가 어긋난 네 미소를 보고 난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반복되는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한 확신을 받고 싶은 건 아니었지. 그러는 너는 왜 이곳에 왔어, 리은아. 그렇게 쉽게 죽고 다치며 병에 걸리면서. 또 내가 너한테 달려들면 어쩌려고? (그래서 네가 나를 또 죽여야하면. 나지막히 중얼리며 병원 내부를 빙 둘러본다.) 여기도 살아있는 사람은 없는 걸까....
이 리은:매번 죽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말하면서 무슨. 기분이라도 풀어주려 하는 것이면 그만두어. (그리 생각하기로 답을 내린 듯 했다.) 삶의 확신을 가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하니까 여러 가지를 경험 해보시게. 상부에는 휴가라도 요청을 해두도록 할 테니까. ... 가끔은 반복되는 죽음도 잠시나마 멀어져야 하지 않겠소. 찾으면 나중에나 말해주시게. 그거면 되겠어. (발걸음 떼며 이리저리 꼼꼼하게 보다가) 나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들어왔지. 언제나처럼 밑바닥은 도통 나랑 안맞소. 지금 잠시 다치고 병에 걸리는 것은 나중을 위해서라면 꽤나 싼 값의 발판이지 않겠나. 뭐, 그 외도 하고픈 일은 여럿 있어서 예 있네. (잠시의 간극) 뭐 어때? 그대가 몇 번이고 나에게 달려든다고 해도 난 죽지 않을 것이고 그댈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을 거요. 이건 장담이고 확신이며 정해진 미래니 반박할 생각은 마시게. 스스로 정한 일이면 어떤 후회도 남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마. (그 또한 받아들이고 나아갈 뿐이야. 마주 중얼거림을 잇더니) ...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다비드:시정하지. (거짓말은 못하더라도, 덮어두고 숨기며 참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에 대한 짐작이나 섣부른 판단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중얼거린다.) 휴가를 혼자 보낼 수 있도록 해주려나... (뜸) 위? 네게 권력욕이 있는 줄을 몰랐군. (그곳에는 뭐가 있을까, 그런 상상이나 잠시 했다. 이곳과 많이 다를까. 이어 확신하는 네 목소리에 작은 웃음소리 낸다.) 그건 진심으로 고마워. (반박도, 물음도 없다. 올곧이 믿어버린 까닭이다.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자아를 너에게 의탁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상처약을 발견하면 네 손에 쥐어주고 백화점으로 향한다.)
다비드:정말 때려도 상관은 없는데.... (그걸로 날 쏘는 것만 아니면. 덧붙이고 네 말에 경청하는데 뭔갈 못 알아채고 고개 돌린다....) ....그건 좀.... (데구르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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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진짜바보임)
여기 있는 선물 세트들 몇 개 가져가면 혼날까?
기분이 한층 더 가라앉습니다.
연휴나 명절은 평범한 사람에게나 즐거운 일이지, 다비드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잖아요?
당신은 스스로 존재 의의를 되새깁니다.
이 리은:일부러 이러는 거요, 이쯤 되면? (우뚝 서서는 마른 세수 했다.) ... 됐어. 이건 둔한 건지 아니면 진짜 바보인 것인지 도통 모르겠구료. ...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면서. (볼 잔뜩 부풀리곤 흥.) 혼나는건 모르겠고 상부에 가련한 유리 마냥 깨지겠지, 뭐. ... 가지고 싶은 것이라도 있어서 그러오?
다비드:네가 스트레스 해소 된다면야.... (진심으로. 둔한 것도 맞고 바보도 맞다.) 음..... 가지고 싶은 것보단 주고 싶은 게 있어.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떠올리고는 표정 암울해진다.) 아니야, 임무를 수행해야지. 남아있는 사람들이 위험할 수도 있잖아.
이 리은:그거 말고~! 내가 혈압 때문에 쓰러지면 다 그대가 자초한 일인 거요. 그대는 이런 곳에서 재능이 참 좋아.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서. 입술이나 삐죽 내밀고 있다가) ... 나중에 사러 가는 것으로 하지. 함부로 가지고 가면 도둑질이 되지 않나. 아무리 망한 도시라지만. (끔박. 표정이 왜 저런담.) 그러지. 시간이 아깝구료.
이 리은:계속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인데 말이오. 대피 구역은 크리쳐가 진입하기 어려우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곳으로 설정했는데... 왜 사람은 없는 것인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단 말이오. 이상하지 않아?
다비드:그러고보니... 여태껏 생존자를 못 만났네. 시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눈살 찌푸리고 한손으로 제 턱 매만진다.) 지하철 쪽으로 몰려있나?
이 리은:그랬으면 좋겠지만 높은 확률로 거기도 없지 않을까. ... 애초에 지금까지 크리쳐가 한 장소에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본 것도 처음이고... 안전지대가 생긴 이후로 크리쳐들이 도시를 통째로 장악할 정도로 피해를 본 적도 없었단 말이지. (머리 돌돌 돌리며 제 검지로 윗입술 눌렀다. 눈 가늘어지다가) 지능이 안될텐데? 통솔이 가능한 리더라도 있나? 이건 흥미가 생기는 부분인데... 연구를 조금 더...(중얼중얼중얼)
98%의 하급 크리처들을 처리하는 게 그들의 일이지만, 간혹 특수한 능력을 갖춘 상급 크리쳐와 조우하기도 했죠.
본능적으로 둘 중 하나는 상급 크리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리은?:맹하게 뭘 하고 있어? 빨리 이쪽으로 와.
이 리은:갈 거요? 말리지는 않음세. 대신 내가 화나서 총을 이리저리 갈겨댈지도 모르지만.
다비드:아니 근데 나도 크리쳐인데 (표정 심각해진다) 다같이 가자고 하면 큰일나? (상부에 가서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닌지.)
이 리은:그대랑 점마랑 같아?! 일반 크리쳐랑 그대랑 동일선상에 두지 말라니까. 그대는 나한테 사람이오. (... ... 당신 꼬라본다.) 큰일은 지금 그대가 나한테 날 것 같소만. 장난해?
이 리은?:말이 되는 소리를 해! 우리가 대체 왜 여기에 왔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빨리 이쪽에 와. 위험하다니까?
다비드:두 사람 다 나한테 딱히 큰 위험은 안 되서 (맞을발언1) 상관은 없는데. (맞을발언2) ....그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가짜던 진짜던 상처받은 네 얼굴 상상하니까 정말정말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이제까진 인간 리은이 크리쳐보다 훨씬 강했으니까 더 강한 쪽에 붙으면 되나?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멈췄다.) .............그냥 내가 리셋 되는 게 나을지도.....
이 리은: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 거야? (주먹 꽈악 쥐고 있다가 마지막 말을 듣자마자 멱살 잡아서 거칠게 끌어 내렸다.) ... 아주 죽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 구나. 이 상황에서까지 그대는... 너는... (멱살 쥔 손에 힘 풀었다. 그대로 툭 놔버리고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변해서는) 됐어. 그대랑 이런 이야기 해봤자 제자리걸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 내 모든 걱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았어. 여기까지 하지. ... 감정만 상할 터이니. 그래도 순순히 보내주지는 못하겠으니까.... 내 옆에...
리은과 다비드의 대화를 들으며 가짜는 말없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찰나의 순간이 흐른 뒤, 리은의 형태를 가지고 있던 크리쳐의 얼굴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길쭉한 팔을 휘두릅니다.
크리쳐는 어째서인지 공격하지 않으며, 흐물흐물 반쯤 녹은 입으로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우물거립니다.
다비드가 얼떨떨하게 서 있는 사이, 그는 천천히 팔(로 추정되는 것)을 뻗어 당신의 양어깨를 움켜쥡니다.
역한 냄새가 밀려옵니다.
상급 크리쳐:미안해.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떻게든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신호를 보낸 거야. 크리쳐의 몸이면 공격당할 테니까 모습을 바꿨어. 그리고... 이런 미세한 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는 건, 역시 다비드, 네가 인간처럼 살고 있다는 크리쳐지? 널 여태 찾았어.
다비드:그게 아니야, 나는-, (네가 그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할 거라고, 다급함에 무심코 속내가 튀어 나오려다 순식간에 뒤바뀐 상황에 도로 들어갔다. 해야할 말은 아주 한참 전에 할 기회를 잃었다. 크리쳐에게 그 어떤 대답도 물음도 하지 못한 채 창백해진 표정으로 붙잡힌 몸 비틀어 빼내고 날아간 리은 쪽으로 달려간다.)
상급 크리쳐:나… 나아… 아직 살고 싶어… 아직… 아직 살고 싶단 말이야… 왜 내가 크리쳐라는 이유로 죽어야 해? 나도 인간처럼 살 수 있어! 내 이야기를 좀... 다비드!
애달픈 소리가 들려왔으나 다비드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리은이 부딪힌 제 허리를 쥐며 자리에서 작게 신음합니다.
조금 전 공격으로 인해,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히기라도 한 것인지 이마가 찢어져 안면에 피가 철철 흐르는군요.
이 리은:왜 이리 와? 이리 올 줄은 몰랐는데. 나라면 다 좋은거 아니었나?
다비드:(급하게 네 상태 살펴보던 몸짓을 멈춘다.) 그건 무슨 의미야? (표정 일그러졌다.) 아까 준 약 이리줘. 너 이마에서 피 나.
이 리은:너는 내 얼굴을 한 누군가가 오면 또 휘둘릴걸. 다른가? 내 말이 틀려? (실소나 내며 빈정거렸다. 장갑 낀 손으로 대충 제 피나 닦아 내고는) 이런 거 그냥 두면 알아서 멎으니 괜찮네. 어차피 흉 생기는게 하루 이틀인가. 치료보다는 적 사살이 먼저겠소마는. (주변 둘러 보다가 제 총 들어서 크리쳐를 조준하고 발포한다.) 아무리 중한 것이라도 순서는 있는 법이외다.
익숙한 파열음과 함께, 크리쳐는 축 늘어지며 바닥에 엎어집니다.
다비드:당연한 소리를. 네 얼굴에 네 목소리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내치겠어. (한 박자 늦게 시선이 총을 쥔 네 손을 따라간다. 상황파악을 끝냈을 때에는 인간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바닥에 나뒹구는 태다. 너는 나를 저것들과 동일선상에 두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이지. 무엇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무엇이 나를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살아가게 만드는 거지? 매순간 유보했던 답이 무색하게도, 불결한 질문이 머릿속을 헤짚는다.) 내가 언젠가 네 앞에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같은 결말을 맞이할까.
이 리은:... 날 그렇게 아껴준다는 것에서 감동을 받아야 할지,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오면 가만히 있을 널 알고도 참으며 넘겨야 할지 도통 모르겠군. 실로 불쾌해. (제 머리카락을 헝클더니마는 당신 보았다. 손 뻗어서 뺨 쓸려다가 제 피 진득한 손을 보곤 허공에서 거두어들인다.) 이봐, 다비드. 나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실로 아끼네. 네가 무슨 짓을 하던 내가 그대를 아끼지 않게 될 날은 오지 않소. 내 사랑은 또 다른 말로 끝 없는 인내요. (그러니까,) 네가 정말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면 죽을 일은 없지 않겠나. 난 그대 하나만을 아끼는 사람이라.
다비드:(입 몇 번 벙긋 거리더니 곧 눈썹이 아래로 축 늘어진다. 제 군복의 지퍼를 목끝까지 올려 입술을 묻었다. 곧이어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 (짧은 공백. 이윽고 잇새로 맑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껴주는구나. (의심은 없었다. 인간이 되질 못한 삶에 제 가치를 새겨 넣은 것이 너라면, 너를 따르는 것이 옳다. 피가 흐르던 네 이마를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며 말 이어갔다.) 크리쳐가 이상한 말을 했어.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신호를 보냈다고. 인간처럼 살 수 있다고.
이 리은:(시선의 끝을 한 곳에 두다가 슬그머니 떼어내어 주변이나 둘러보았다. 이어지는 웃음소리에 의아하다는 듯 다시금 익숙한 이를 향하고,) ... 그게 무어가 좋다고 웃는담. (퉁명스러운 어투였으나 괜스럽게 나온 쑥스러움 표출에 가까웠다. 얌전히 손길을 받고 있다가 찌푸려져 있던 미간에 힘 조금 더 준다.) 그걸 믿는 것은 아니겠지? 정말 인간처럼 살던가 도움을 원했다면 공격을 하지 말았어야지. 내 존안에 흠집을 내놓고 무슨? (손 뻗어서 당신의 옷자락을 잡았다.) ... 그런거 들어주지 마시게. 미물에게 현혹되지 말아.
다비드:안 좋을 게 뭐 있어. (괜찮나? 네 표정 살피다가 찌푸려진 미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댔다. 피 묻어난 손을 거두고,) ....음.... (눈동자 도로록. 이전에 눈 속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제 옷자락에 닿은 네 손가락을 잡아내곤 엄지로 슬 문질렀다.) ....다음에는 네가 먼저 방아쇠를 당겨. (다른 말로 저는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는 소리. 얼굴이라도 다르게 하고 나타나던가.) 크리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나?
이 리은:내가 짜증을 냈잖아. 그럼 뭐라고 하든 기분이 상해도 이상하지 않지 않겠어? (나름 버티는 듯 했지만 뒤로 슬그머니 밀어졌다. 이익..., 같이 잇새 사이로 오기 섞인 침음이나 낸다.) ... 나 없으면 그대는 정말 어쩌려고 그래? 하여간에. (작게 투덜투덜 거렸으나 묘하게 기분은 좋아 보이는 듯 했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풀렸는지.) 모르지. 내가 아는 것은... 적어도 그대가 아무 때에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이라는 것 뿐이오. 그냥 내가 거슬렸던 것일지도 모르고. 그대랑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있으면 걸리적 거리잖나. 아, 그리고... 이거, 열어줄 수 있겠어?
리은이 조금 전까지 넘어져 있던 바닥을 가리킵니다.
빼곡하게 타일로 채워져 있으나, 리은이 가리키는 곳의 타일만 다른 칸과 재질이 다릅니다.
다비드:기분 안 상했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낯색 하나 안 변하고 답했다. 이어지는 투덜거림에는 별말 않고 웃기나.) 이게 뭐야? (뒤늦게 다른 재질의 타일을 발견한다. 열어보려고 한다.) 비밀통로 같은 건가?
이 리은:어... 어? (그 자리에서 굳었다. 쭈뼛쭈뼛 거리는 듯 삐그덕 거리다가) 미... ... 미... (글자 뱉는게 무어가 어렵다고 버벅거린다.) ... 내, 내가 싫어하는 말을 그대가 먼저 했잖아. ... 그건 그대가 나빠. (흐읍) 그래두 막, (어...) 막 말해서 미안... 해. (당신 눈치 힐꼼. 보다가 어색하게 몸 돌렸다.)
다비드가 손끝을 밀어 넣고 타일을 걷어내면,
아! 생존자들이 숨어있던 벙커를 발견합니다.
대피 구역이 전부 크리쳐에게 점령되어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숨어있었군요.
이것으로 구출 성공입니다.
다비드와 리은에게 구해진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계속해서 감사를 표합니다.
다비드:(무어라 답하려다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을 보고 말이 도로 쏙 들어간다.) ...아,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시민 1: 다들 괜찮습니다. 다친 사람들은 없어요. 무사히 피난을 했었거든요.
시민 2: 말로만 듣던 분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시민 3: 이제 우린 안전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생존자들은 바깥 공기를 마시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최강의 인류'라고 불리는 다비드와 리은을 신기한 듯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인을 요청하거나, 심지어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을 들이밀며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물론 다비드와 리은은 거절해야 합니다.
연예인이 아닌걸요!
이 리은:(슬쩍 다비드 뒤로 가기.) 나 카메라 알레르기가 있소. (뻔뻔하게 거짓말)
다비드:(제법당황) ....나 어떡해? (아니너가그러면) 죄송합니다만 사진은 안 됩니다....
이 리은:(히죽...) 옳지, 잘한다. (처음 심부름 하고 온 자식을 보는 자랑스러운 눈)
이 리은:그래, 3일. 아주 내 피를 말리려고 일부러 그러나 했을 정도였소. (잠시 움찔. 제 옆구리 만지작 거리다가) 별 것 아니외다. 생존자들 모두 보내고 크리쳐 제거를 하다가 좀 다쳤어. 치료는 다 해두었으니 문제는 없네. 지금은 3일이나 지나서 크리쳐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증식을 해버렸지만.
다비드:(옆구리가 왜? 시선이 자연스레 네 손끝을 따라간다.) 많이 다쳤던 거야? (창백한 낯에 죄책감이 서렸다.) 이런.... 상부에서 연락 온 건 없고?
이 리은:그냥 좀 긁혔어. 움직이는 것에 문제도 없으니... 그리 보지 말아. 내 판단 미스일 뿐이니. (손 뻗어서 당신의 양 뺨을 제 손으로 감쌌다. 눈꼬리 휘며 웃어보이더니) 위에서 명이오. A시를 포기한다더구료. 안전지대 내부로 크리쳐가 진입하는걸 막기 위해서 A시를 완전히 폭파 시키겠다 하였어. 그러니 그대랑 나는 폭탄이 실린 헬기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빠져나가야 하지. (잠시 뜨음) 걸리는게 있다면... 방금 들어온 구조 요청이네만... 좀 고민이야.
다비드:(입술 떼었다가 뺨에 닿는 온기에 차마 무어라 말을 건네지는 못한다. 대신 다음에는 사지가 날아가도 죽어선 안 되겠다 다짐한다. 이어지는 말에 이해하려는 듯 눈 깜박임 몇번.) 아직 A시에 사람이 남아있어? 그럼 상부에 다시 연락을 취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람이 남아있으니 터뜨리는 것은 잠시 미루어두라고. (네게 인형들을 안겨주고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구조 요청은 어디서 왔어? 지하철?
이 리은:물론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기상 악화로 인해서 더 이상의 무전이 불가능하네. 폭격 지연 요청이 닿질 않소. 그대가 정신을 차리지 않아서 구조를 포기하려 했는데... 다행이구료. (인형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위치는 X 제약 회사야.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소. (흠. 눈동자 굴리다가) 나 혼자 가서 구해올게. 그대는 부상이 심하니 먼저 빠져나가.
다비드:첩첩산중이군. 그러면 빨리 움직이자. (X 제약 회사... 머릿속으로 위치를 가늠한다. 얼추 나갈 채비를 끝내고나서야 뒤돌아 너를 바라봤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남아있더라도 죽어도 되살아나는 내가 남아있는 게 맞지.
이 리은:(곰돌이 인형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A시가 터지면 그대의 코어가 멀쩡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잖아. 게다가 확실하게 살 것이면 그대가 사는게 효율이 좋지 않나? 그대는 크리쳐고, 나는 인간이야. 이득을 따지면,... 그대가 사는 것이 확실히 나아.
다비드:최강의 인류라고 불리면서 그런 말을 하는군. 전투력만 따진다면 네가 나보다 나아. 넌 두뇌회전이 빠르고 판단력이 좋잖아. 더군다나... (뜸) 크리쳐는 만들어질 수 있어. 인간은 아니고.
이 리은:(입술 삐죽) ... ... 최강 인류라고 해서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닌걸. 명부상실 내가 최고인 것은 맞다만(흠.)... 져주려 하질 않네. (소파 위에 인형 나란히 두고 몸 일으켰다.) 내 파트너는 그대 뿐이라 잃기 싫소. 그대가 똑같이 만들어져서 내 앞에 온다고 해도 난 지금의 그대가 좋아. (고집 하고는!) 그럼, 음... 결론은 역시 같이 가자, 는 거지? 그대 혼자 보낼 생각은 없으니까.
다비드:(삐죽 튀어나온 입술 엄지로 꾹...) 알고 있어서 다행이네. 지는 것보다는... (도르륵) 타협이라고 부르지. ...그거 감동받을 포인트인가.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 한번 주억거린다. 이제 나가자며.) 난 네가 죽을 거라 생각 안해. 너가 그랬잖아. 안 죽겠다고.
이 리은:(입 아앙 벌려서 당신의 엄지를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그대 고집은 고래 힘줄보다 더할거요. (손 휘적휘적 거리곤 저도 미적미적 걸음 옮겼다.) 믿음을 받았으면 그에 답을 해주어야겠지. 나 그런거 하나는 퍽이나 잘하오. 서두르지. 1시간 내로 빠져나가야 하니까.
이 리은:... 일단 임무 끝나고 말하자. 지금은 임무가 우선이니까. 어차피 다치는 것은 매번 있던 일이고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난 정말 괜찮아.
리은이 어깨를 으쓱하며 어느덧 찾아낸 개폐 버튼을 누릅니다.
다비드:(적막한 침묵 속에 화면을 바라봤다. 익숙한 혈향이 코끝을, 날카로운 고통이 폐부를 다시금 찌르기 시작했다. 입 안쪽 살을 어찌나 꽉 물었는지 짓잇긴 상처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뱉어내진 않고, 목구멍 너머로 비릿하고 뜨거운 무언가를 밀어냈다.) ...그,랬구나. (그랬어. 표정은, 어땠나.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 비틀거리며 몸 일으키더니 지하로 발걸음 내딛었다.)
다비드:(연구 일지가 힘이 빠진 손에서 미끄러진다. 그와 동시에 찡그린 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인간의 삶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온전히 기뻐해야하는지, ...그게 살인을 한 후에야 이루어낸 것이기에 슬퍼해야하는지. 접점이 전혀 없을 줄로만 알았던 양가감정이 마구 뒤엉킬 때면, 보색 관계에 있는 색들이 결합하여 무채색의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흐르고는 했다. 기어이.) ....어떡해? 나.
이 리은:(벽면의 서랍이나 하나하나 열어 서류들을 확인하고 있다가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들었다가 낯에 당황이 서렸다. 들고 있던 것이건 뭐건 바닥에 던지듯 내려두고 당신에게 다가갔다. 뺨 타고 길게 제 흔적을 남기며 떨어지는 눈물을 제 손으로 눌러 닦아본다.) 무슨 일이야. 왜 울어? 뭘 봤길래?
다비드:(고개 느릿하게 젓는다.) ...일단 임무를 끝,내고.... (네가 열어보던 서류들을 살펴본다.)
벽과 계단은 강한 힘을 싣고 내리친 주먹과 발길질로 움푹 팬 채 부스러기를 흘리고 있습니다.
위로,
위로,
더 위로.
리은의 빠른 발을 따라잡지 못한 다비드는 한참 뒤에서야 옥상에 도착합니다.
잠겨있던 옥상의 철문은 억지로 열린 것인지, 단순히 그 너머로 가겠다는 의지 하나에 의해 흉한 형태로 휘어져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너덜너덜한 문짝을 걷어내면,
리은이 있습니다.
그는 불완전했던 정신을 어느 정도 추슬렀는지, 시선을 건물 아래의 야경에 꽂은 채 눈을 떼지 못합니다.
주먹을 감싸고 있던 장갑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습니다.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눈이 쏟아지고, 하늘은 새카맣지만,
여전히 새파랗게 밝은 건물의 빛을 등지고 선 리은의 표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크리쳐라도 괜찮다고 했던가요?
당신은 사람이라고 했던가요?
당신이 무엇이든, 괜찮다고 했던가요.
전부 위선입니다.
리은은 다비드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죠.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지금, 리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다비드 뿐입니다.
다비드:(숨이 부족해 한참을 헐떡거렸다. 폐가 그 한계까지 팽창하고 쪼그라드는 끔찍한 감각이 몇 번. 땀인지 다른 무엇인지 모를 것이 뚝뚝 떨어지는 눈가를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문질렀다.) 리은아, 돌아가자.
이 리은:... 어디로? 제정신 못차리고 공격한 그대 곁에? 아니면,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 그대와 나를 이곳에 보낸 AOC로? (한참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제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수천의 아우성을 억누르는 것만으로 역부족이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실로 불쾌한 일이야. ... 지금 당장이라도 그대의 숨을 끊어버리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있는걸.
다비드:...어디든. 일단 여기는 안돼, 곧 폭격이 일어날 거야. (허공에 시선이 맞물린다. 새하얀 눈에 시야가 반즘 가려지면,)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넌 괜찮다며. (억지로 집어 삼켰던 것이 날것의 형태로 내뱉어졌다. 폐부를 찔린 까닭이다. 겹쳐질 리가 전혀 없을 거라 생각했던 타인이 포개어졌을 때. 그로인해, 본인에게만 향할 줄로만 알았던 유리조각이 타인에게 향하게 될 때. 마음이 철저히 무너졌다.) 난 그게 안돼. 도저히. (눈 지긋이 감았다.) ...내가 돌아온 것처럼, 너도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함께 할게. 죽지 않고. 그걸 바라잖아.
이 리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어, 다비드. (흐린 목소리 내었다. 허공으로 흰 숨을 뱉는다. 숨 흩어지는 것 너머로 당신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이거 기분이 참 묘해. 난 정말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어. 차라리 나도 크리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 ... 되어보니 대단한 일은 아닌 듯 하오. 그저, 내 욕망이 아주 날뛰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할 뿐이겠구료. 그대가 자조적이었던 이유도 알 것 같고. (한 손을 들었다. 검지의 끝으로 당신을 가르킨다.) 그대처럼 수십 번을 죽는다면 인간이 될 수 있나? 아니면 무구한 시간을 보내보아? 어떤 것도 단정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잖아. ... 그대가 죽지 않고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그대. 내가 그대에게 하던 일을 이번에는 그대가 나에게 하는 거야. 알아 들었지? ... 못하겠어도 해.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그대가 말을 했으니까.
다비드:낙원은 찾는 게 아니라 세우는 것이라 생각해. (다시금 불순한 감정이 네쪽으로 몸을 기울게 만든다. 한걸음 내딛어 공백 사이를 메꾸어 갔다. 그리고 멈칫.) …이제 알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이해 받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아니, 나는.) …이해 받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이 있었어. 상대를 파악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낱낱이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 곱게 접어 서랍에 간직한 감정들과 ‘그저’라는 이름의 손잡이. 나는 그게 참 사랑스럽더라. (시선이 비스듬히 아래를 향했다. 그 얇은 손끝에서 총탄이 튀어나와 흉골을 부수고 심벽을 뚫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당장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쳐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지 않은가. 그 덕인지, 두뇌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야가 명료해지고 흔들리던 몸에 힘이 들어가 경직되면, 위험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반은 확신, 반은 믿음.)
……너, 정말 내가……. 널 죽이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도저히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네가 수십번이고 했었으니. 네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대 크리쳐 살상탄
804016
72
성공
피해13
이 리은:... 좋은 말이네. 낙원은, 찾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이라. (흐린 중얼거림이다. 난 다른 것은 모른다. 감정이라는 것은 나의 판단에 있어서 사치일 뿐이라. 그저 결과만을 고집했다. 그 속을 비틀어 둔 것이 너라는 존재라.) ... 이해 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계속하여 어긋나지. 그렇기에, 나는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파악해야만 직성이 풀려. ... 그러니, 그대를 이해하려 하던 모든 것은 나의 이기요. (피할 생각도, 반격할 생각도 없으니 방아쇠 당기는 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본다. 어떤 움직임도 않았다. 익숙한 발포음과, 탄환이 쪼개어져 날아오는 소리. 그리고,) ... 잘,... 하면서... 무얼 못... 한다고... (몸이 크게 뒤로 기울었다. 아름답게 피어나던 꽃가지는, 제 심장부터 내장, 오장육부를 뒤엎듯이 피어났다. 더욱 더 제 생을 갈망하는 붉은 꽃잎을 마지막으로 제 시야에 둔다. 앞으로 익숙하게 볼 풍경이다. 제 온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시야가 점멸했다. 아, 어머니. 어머니. 어쩌면 습관이 되어버린 부름을 속으로 삼켰다. 나 아파. 그렇지만, 이 또한 기꺼워서.)
다비드:(순식간에 뛰어가 쓰러진 몸을 들어올렸다. 그 무게는 한없이 가벼웠으나 반비례적으로 팔에 힘이 들어갔다. 하늘 한번 보았다가 도시 바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A시에서 최대한 멀리.)
절반 즈음 달려왔을까요.
당신의 품에 있던 리은이 거친 기침과 함께 눈을 뜹니다.
이 리은:... 나 토할 것 같은데, 좀... 좀 멈춰 봐.
다비드:(멈칫) ...걸을 수 있어? (내려주진 않았다)
이 리은:그대가 더 잘 알지 않나. 소생 후의 컨디션은 최고라고. ... 이대로 빠져나가려고? ... 어디로 가게? (끔박.)
다비드:....몰라.... 생각 안 했어. 일단 A시 벗어나야 하니까. (도르륵...) ...미안. 아팠지.
이 리은:... 정말 그대는 나 없으면 어쩌지? (한숨 작게 쉰다.) 생각은 하고 움직여, 바보야. 내가 AOC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어쩌려고. (손 뻗어서 한쪽 볼을 톡톡. 나 봐.) 아팠지. 많이 아팠지. 그래도 그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소. 내가 하라고 했잖아. 이 아픔 또한 내 책임이오. 그대가 안했으면 내 스스로 했을 거야.
다비드:따라갔겠지. (문제 인지 못하고 그리 답했다. 그제야 시선 올곧게 마주한다.)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 넌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날 죽였던 거야? (뜸) 아니, 아니구나. 넌 크게 신경쓰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을 수도 있지. (제가 느끼는 감정이 너에게도 해당할 수는 없는 법이잖나.) 내려줘? 네가 걸을래?
이 리은:내 선택이 그대에게 있어서 잘못 되었다고 느껴진다고 해도? (슴박. 시선 맞춘 상태로 고개를 기울여 당신에게 기대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하는가? 말을 하지 않았던가. 소중한 그대를 죽이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괴롭고 힘든 일이야. 물론... 내 결정에 사사로운 감정이 들어가지 않음은 부정치 않음세. 그러나 결정을 하는 그 순간까지 내가 품은 감정들까지 없는 것으로 취급하지는 말아주었으면 해. 나는... 음...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그대를... 좋아해.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잖아. (고개 까닥.) 내려주어. 이제 내 발로 걸을 수 있소.
다비드:너를 따르겠다고 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으니 책임졌겠지.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걸. (깜박.) 무슨 감정... (응? 순간 말문이 막힌다. ...그러니까 네가 일전에 말한 '아낀다'는 감정을 아끼는 골동품을 향한 감정...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거다.) ...그건 좀 더 탐내고 싶은데, 안 내려줄래. 토할 거면 토해도 돼. 나 뛴다?
이 리은:그대 고집을 누가 말려. 그럼 나 AOC 안갈거요. 탈영 해버리지 뭐어. 돌아가서 그대나 나나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거길 가겠어. (엄... 양 팔을 뻗어서 당신의 목을 꾹 그러 안았다. 조금 불안하게 눈 굴리다가 힘 꾹 주었다.) ... 많이 탐내던가. 이러고 가는건 조금 낯부끄럽긴 하오마는 마다하지는 않을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