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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 이 리은 & 다비드 로템 - CREA GRRR : 클리셰 SF 세계관의 크리쳐는 그어그어하고 울지 않는다 3부

by 시크 (SYK) 2023. 11. 10.

KPC PC
이 리은 다비드 로템
시나리오 시나리오 링크 END
CREA GRRR : 클리셰 SF 세계관의 크리쳐는 그어그어하고 울지 않는다 3부   2
플레이날짜 플레이타임 트리거 요소 (드래그로 확인)
2023년 11월 9일, 10일, 11일 1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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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그어 3
 
CALL OF CTHULHU 7TH EDITION
 
2023.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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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인:저기요, 괜찮으세요? 저기요?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몇 번이나 되묻습니다.
 
이런, 너무 얼빠져 있었네요.
 
너무 터무니없는 상황이라 잠깐 넋을 놓고 있었더니…….
 
눈앞의 사람은 진심으로 당신을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행인:저기... 정신이 드세요?
 
다비드:네?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린다.) ...네, 네.
 
행인:아, 다행이에요. 정신을 잃으신 줄 알았어요. 몸은 괜찮으세요?
 
다비드:몸은 괜찮...(은데, 왜 괜찮지? 나 그때 죽은 것 아니었나? 제 손 들어서 이리저리 뒤집어본다.) 제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습니까?
 
다비드의 상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어요.
 
행인:글쎄요...-. 저도 장을 보러 가다가 발견을 한 것이어서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이라도 가보세요.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다비드:(다시 부활한 건가? 크리쳐였던 시절을 떠올린다면 자연스러운 형상이었지만, 이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는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도록 할게요. 근데 아까 저 전광판에서 나왔던 사람은 누군가요?
 
행인:네? 리은 님을 모르신다고요?
 
행인의 눈에 순간 다비드를 의심하는 빛이 스쳐 지나갑니다.
 
행인:기억 상실이라도 왔나요? 안전지대의 관리자 시잖아요.
 
다비드:리은... 님? 관리자? (깜박... 생각치도 못한 단어들의 조합.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나 진짜 병원이라도 가봐야겠다. 기억이 나질 않는데, 제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습니까?
 
행인:네? 허리케인이라도 만나셨어요? 중앙관리체제가 있는 안전지대의 중심부에 있는 번화가 한복판에 누워계셨잖아요! 정말 곤란하신 분이네요... 정말 하나도 기억 나지 않으세요? 리은 님의 관한 것도 모르시겠네요? (흠...) ... 어디에서 오신 분이람.
 
다비드:안전지대의 번화가... (그제야 몸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크리쳐들은? 명멸하는 기억 속 끔찍했던 괴물의 형태 떠올리며 눈살 찌푸렸다. 잊으려는 듯 고개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몇번이고 지우려 해도 속절없이 다시 새겨지는 이름이 있었다.) ...리은... (목소리가 옅다.) 잘 알고 있죠... AOC 대원이었잖아요. (그렇다면 본인은 무엇일까. 그야말로 난데없는 치 아닌가. 무어라 대답해야할 지 몰라 끝내 입을 다물었다.)
 
행인:전 AOC 대원을 실제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에요. 대원들이 안전지대의 번화가를 군복을 입고 다니지는 않잖아요? 잊지 않으셨다면 다행이고요. 여기서 리은 님을 모르신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걸요. 정치부터 법 제정이나 재판까지 모두 하시는 관리자 분을 모르면 그게 이상한 것이죠.
 
행인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짧게 말합니다.
 
행인:이만 가봐야겠어요. 오늘은 죽은 아내가 돌아오는 날이거든요.
 
다비드:예? 자, 잠시만요. (무턱대고 행인의 옷끝을 잡는다.)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죽은 사람이 어떻게 돌아와요?
 
행인:(한층 더 이상한 눈으로 당신을 보았다.) 정말, 왜 그러세요? 죽은 사람은 장례로부터 1년 후에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요?
 
다비드:허? (맥이 탁 풀린다. 그제야 미안하다며 옷자락을 놓아준다.) ....그럼 마지막으로 뭐 하나만 묻게 해주세요. 리은, 그러니까... AOC대원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행인:저기 도시 중심부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에 가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 전에 병원부터 꼭 가시고요.
 
다비드:...네... 감사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일단 병원으로 향한다. 여기서 이상한 게 저 뿐이라면, 병원이던 연구소던 우선 제 뇌를 뜯어 고쳐놓는 것이 옳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 누구도 100년동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리은에 관해선 어떠한 의문조차 품지않습니다.
 
그야, 이 클리셰 SF 시나리오는 죽은 사람도 돌아오는 세계 관이 되어버렸거든요.
 
즉 그런 뜻입니다.
 
리은은 독재자고, 조금 많이 미쳤습니다.
 
그보다 100년 후라면 리은이 어떻게 그때와 똑같은 모습인 걸까요?
 
분명 그 때, 마지막으로 본 리은은 분명히…….
 
다비드:
지능
753715
64
성공
 
인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던 피는 눈물과 섞여 뺨을 타고 흘러내렸죠.
 
다비드:
이성
783915
78
성공
 
행인이 말해주었던 건물은... AOC의 건물입니다.
 
다비드, 어디로 갈까요?
 
다비드:(사실만 두고 보면 나쁘지 않은 세계관임은 확실한데, 뭐가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건지. 눈꺼풀 내리 감았다. 도시 불빛이 닿지 않는 암흑 속, 망막 위로 선명하게 그려지는 현상이 있었다.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그것이 지나치게 생생했던 탓일까. 온전한 전신을 날카롭게 훑고 지나가는 이 감각들이 진정 현재의 것인지, 과거의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심장을 관통하는 통증에 놀라 다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차는 것은 거대한 AOC건물이다. 병원을 들리자는 생각은 철회하고 AOC건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AOC로 가는 길, 다비드는 새로운 안전지대의 시민들을 봅니다.
 
안드로이드의 연인이 된 사람,
 
리은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
 
발달된 기술의 힘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리은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치 모두가 반드시 행복해지는 꿈을 꾸는 것 같아요.
 
한층 더 세련된 외관으로 단장한 AOC 건물의 입구로 진입하면, 당연하게도 그 앞을 지키고 선 사람들이 다비드를 제지합니다.
 
리은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이 벽을 넘어야겠죠!
 
다비드:(뭘... 해? 주먹을 들어본다...)
 
경비원과... 전투를 할까요?
 
그 선택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다비드:(...주먹 쥐고 작게 화이팅.) 저, 리은...님?을 만나뵈러 왔는데. 다비드라고 하면 알 것 같습니다. 올라가봐도 될까요?
 
경호원은 다비드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어딘가에 연락을 넣습니다.
 
경호원: 올라오시라고 하네요.
 
잠시 뒤, 경호원은 그리 말하며 다비드에게 입구를 내어줍니다.
 
다비드:(이렇게 쉽게? 이번에는 본인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경호원에게 고개 꾸벅하곤 입구로 들어선다.)
 
다비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다비드:(최상층으로 올라간다.)
 
다비드를 태운 기기는 빠른 속도로 리은이 있는 곳까지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는 유리로 되어있어 야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비드:
관찰력
753715
21
어려운 성공
 
가장 높은 건물보다도 높은 하늘, 검은 상자가 허공에 떠 있습니다.
 
청색 전류가 흐르는 물건은 마치 감시카메라 같습니다.
 
다비드:(눈살 찌푸린다. 저런 게 왜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수행원이 다비드를 안내합니다.
 
최고층의 가장 안쪽 방, 소장실이 있던 곳은 이제 리은이 차지했습니다.
 
문득 영문 모를 불안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수행원이 문을 열면, 다비드는 리은과 재회합니다.
 
전면 유리창을 향해 돌아선 뒷모습이 낯익습니다.
 
인기척을 느낀 듯 천천히 돌아보는 리은의 얼굴에는 화면과 똑같이 안대가 자리를 차지 하고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세월은 정말 실감 나지 않습니다.
 
그야, 다비드와 리은은 이렇게나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걸요.
 
잠시 간의 침묵, 리은의 표정을 읽기 어렵습니다.
 
리은:다비드.
 
리은은 낮게 다비드의 이름을 읊조립니다.
 
그는 다비드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감회에 젖은 듯 다비드의 팔을 붙잡습니다.
 
여전히 그는 표정을 읽기 어렵습니다.
 
가느다란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의 이마를 타고 내려 오나 싶더니, 안대 위에 안착합니다.
 
리은:정말, ... 보고 싶었어.
 
다비드:... (장시간 말이 없었다. 전면 유리창이 너무나도 거대한 탓에. 그걸 등지고 선 사람은 너무나도 작은 탓에. 금방이라도 저 도시 아래로, 빛이 닿지 않는 까마득한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팔에 닿는 감촉이 선명하다. 동시에 그리웠다.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도록 그리웠다.) ...은아. (그 이름 전체를 부르기에는 숨이 턱없이 부족해 낯선 공기를 한껏 들이키고 나서야 한걸음 다가섰다.) 나도, 보고 싶었어.
 
리은은 도통 속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다비드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리은:오느라 많이 힘들었겠네. 음, 오랜만에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 할까? ... 할 이야기가 많아.
 
다비드:(맞아, 할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다. 평소라면 식사고 뭐고 당장 머리속을 어지럽히는 질문들을 쏟아냈을 테지만, 지극히 비정상인 상황에 지나치게 일상적인 대화라. 결국은 말없이 수긍하며 고개 끄덕인다.)
 
그는 다비드의 손을 잡고 최상층의 식당으로 안내합니다.
 
새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직사각형 식탁 위로 섬세하게 세공된 은색 식기들이 하나둘 올라갑니다.
 
따뜻한 수프와 바게트, 소스와 아스파라거스가 어우러진 폭립 스테이크와 풍미가 훌륭한 와인까지!
 
그러고 보니 식사를 꽤 굶은 것 같아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먹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리은은 포크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며 먼저 식사를 시작합니다.
 
접시가 가볍게 눌리며 테이블 시트가 약간 구겨집니다.
 
디너 테이블의 끝과 끝, 확실한 거리감 사이에서 입을 먼저 뗀 사람은 리은입니다.
 
리은: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구료. 그래, 벌써 100년인가. 안심해, 그대가 목숨과 맞바꿔 지킨 안전지대는 내가 보호하고 있으니. 그대의 유지를 이어받을 사람이 내가 아니면 또 누가 있겠어?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굶지 않고, 아무도 외로워하지 않고, 아무도 죄를 범하지 않아. 오로지 내 통제와 계산으로만 굴러가고 있으니 말이오. 완벽히 이상적인 세계 아니겠나. 그대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는데. ... 어때?
 
다비드:(음식에는 손도 안 댄 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그러니까 이게 다 너가 만든 세계인 거야? (그제야 시선이 번지르르한 접시들 위를 굴러간다.) 사람들이 행복해보여. (다만 식욕이 들지는 않았다.) 잘 모르겠어. 이 모든 게 낯설어. (저에게 익숙한 음식이라곤 이리저리 포장지가 구겨진 에너지바, 조금 딱딱한 바게트 빵, 피처럼 붉었던 파스타 소스 정도인데.)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어떻게 된 일이야?
 
리은:(포크로 아스파라거스 하나를 입에 쏙 넣고 두어번 오물거렸다. 목소리 하나하나 들으며 씹는 것 이어가다가 마지막 말에 그대로 멈추었다. 잠시 미동 없이 있다가 포크를 내려 놓으며 삼켰다. 시선을 제 그릇에 두고 있다가 탁자 위의 꽃병에 두었나.) 마음에 들지 않나? 나름 고민해서 만든 거야. 수많은 이들이 소중한 이를 잃고 슬퍼하며 일어날 수 없게 무너져버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더구료. 다들 말하잖나. 다시 한번 더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고. 다시 그 사람이 내게 돌아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 다시금... 그 목소리 한번 더 들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난, 그것을 이루어 주었을 뿐이오. 죽은 이를 완전히 되살리는 것은 이 나도 불가능하기에, 준 거야. 생전의 이를 빼닮은 인형을. 다시 한번 일어날 힘을. (턱을 한 손으로 감싸 잡고 검지로 윗 입술을 슬며시 눌렀다.) 그대는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나와 똑같은 모습과 생각, 목소리를 가진 안드로이드도 나라고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다비드:(딱 적당히,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조명과 온기, 그리고 습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셨고 살갗은 서늘했으며 목이 탔다. 그나마 달가운 건 귓가에 닿는 네 목소리다. 잠자코 귀여겨듣다가 나지막히 답했다.) 네 마음에 들었다면... 그런 거겠지. (그제야 새빨갛게 녹슬었던 톱니바퀴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도 그 안드로이드 같은 건가? (뒤늦게 웃기나...) 축하해. 고생 많았겠어.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아직 그런 상황을 마주하지 못해서 모르겠어. 지금도 너는 내 앞에 이렇게 존재하는걸. 아니면 지금의 너도 안드로이드인 건가? 인간이 100년을 산다는 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잖아.
 
리은:(미묘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본다. 표정 안에 담긴 것은 공허하고 텅 비어버린 제 속. 그 안에 투명하게 부유하는...) 그대라면 그리 답할 것이라 생각했지. (샐쭉, 이어지는 눈웃음이다. 결코 보기 좋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보기 좋지만은 않은 그 특유의 눈웃음.) 그대가 안드로이드일 리 있겠어? 그대는 따스한 온기와 박동하는 심장을 가진 이지 않소. 난 그대가 안드로이드였다면... 이렇게 나오지도 않았을 거요. 난 말이야. (간극) 그대라는 존재를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지 그 대체품을 원하지 않소. 나 또한 예전 모습 그대로인 것이 이상하긴 하겠지마는, 박동하는 심장을 가진 이외다. (의자 등받이에 제 상체를 기댔다. 눈 감고 예전 기억 짚어보다가) 난, 그때 그대가 가르쳐준 것을 그대로 행하고 있어. 이런 내가 안드로이드라고는 믿고 싶지는 않네. ... 입력된 정보로만 움직이는 고철덩어리라니.
 
다비드:(색채가 빗물에 흘러 빠져나간 것 같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잔상 따위를 붙잡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지 알면서도. 제가 알고 있던 사실과 모르는 진상의 차이를 좁혀야만 했다.) 눈은 왜 그렇게 된 거야? (제 눈가 톡톡.)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차이점이 따스한 온기와 박동하는 심장정도라면 나쁘지 않은걸. 크리쳐와 다를 것이 무엇 있어. (지미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도 손대지 않으면 볼품없이 차가운 고깃덩이가 되는 걸. 미동도 없이 너를 시선에 담는다.) ...미안해, 내가 너에게 뭘 가르쳐주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시간이 많이 흘러서 까먹은걸까.
 
리은:... 많은 일이 있었을 뿐이오. 아프지는 않았어. 전혀. (고개 비스듬히 기울였다. 눈 굴리다가) ... 기분 나쁜 소리 그만해. 난 그것들과 인간을 동일선상에 두고 싶지 않으니까. ... 진심으로 불쾌하잖소. 내 정의는 인간을 위한 것이지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이야. (작게 한숨 내쉬었다. 이어서 자리에서 제 몸 일으킨다.) 그날 그대가 보여준 숭고한 희생을 보고 깨달았네. 나는 이런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정의라고 믿어. ... 아직도 기억나지 않아?
그대가 가르쳐줬잖아.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선 다소의 희생이 필요하고, 낙원은 찾는 것이 아니라 세워내는 것이라고.
그대에겐 고마워하고 있어. 그 사건이 없었다면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평생 몰랐을 거요. 그러니까,
그만 좀 찾아와.
누누이 말했잖나. ‘소중한 그대’를 죽이는 것도 힘들다고.
 
리은은 제 품 안에서 총을 꺼내어 다비드에게 쏩니다.
 
시끄러운 발포음이 귀를 울립니다.
 
다비드가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어딘가에 통화를 거는 리은의 모습입니다.
 
다비드:아프지 않은 것이라면 다행이지. (...) 거짓이어도 속을게. 고철덩어리라도 안을 수 있어. ...나 기억력 좋지 않은 거 알잖아. (그런 소리나 해대며 웃었고,) ...그러니까.... (그것이 종말이었다. 지독하게도 익숙한.) ...은, 아....
 
그는 다비드에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비드는 거친 호흡과 함께 눈을 뜹니다.
 
깜빡, 깜빡.
 
이곳은 가정집입니다.
 
커튼 위에는 색색의 싸구려 전구가 다비드의 눈 꺼풀과 함께 깜빡이며 알록달록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TV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선 B급 클리셰 SF 영화가 방송되고 있습니다.
 
이런, 주인공은 악당의 계략에 당해 총에 맞고 죽어버렸네요.
 
리은:그새 잠들었어? 그거 엄청 재미없나 보오.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홀짝 이던 리은이 문턱에 기댄 채 조금 웃습니다.
 
뺨에 남은 시트 자국이 선명합니다.
 
내내 누워있었나 봐요.
 
리은:슬슬 일어나서 케이크 준비하자. 모처럼의 크리스마스 파티잖아.
 
다비드를 재촉하는 목소리가 잠결처럼 몽롱합니다.
 
꿈을 꿨나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득, 이대로도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다비드:...꿈? (어느 쪽이? 나른하게 주위 두리번거렸다.)
 
다비드:
관찰력
753715
70
성공
 
다비드는 저 밖, 허공에 뜬 눈동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익숙한 색깔의 눈알은 청색으로 빛나고 있어요.
 
한참 바라보면 천천히 기억의 파편이 돌아옵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비드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때, 리은이 다비드의 어깨를 짚으며 머그잔을 내밉니다.
 
리은:오늘 정도는 쉬어도 괜찮아. 나가지 마, 춥잖아. 조금 더 같이 있자. 응?
 
같은 말 을 하면서요.
 
다비드:(머그잔 쪽으로 손 내미는가 싶더니 돌연 네 손목을 잡고 제 쪽으로 거칠게 이끌었다. 그대로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도망치지도 못하게 한 팔로 네 허리를 감싸 안고 질척거렸다. 중심을 잃은 머그잔이 바닥에 구르고 카펫이 흠뻑 젖어가는 동안. 한참 구석구석을 탐닉하고, 살갗이 맞물리고, 울긋불긋해진 것을 삼키고. 이제는 누구의 것인지 분간 못 할 타액에서 커피의 씁쓸함이 사라지고 단향이 날 때까지. 만들어진 것이라도 기껍다. 꿈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염원이라고 해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면, 믿을 수 있겠니.)
 
리은:다비, (말은 끝맺음을 토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손짓에 이끌려 그대로 엎어졌다. 닿아오는 촉감과 느껴지는 이물감에 삽시간에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킴 따위 잊은 채 별다른 거부없이 그저 두었다. 간간히 떨어지는 사이로 달뜬 숨 뱉어냈다. 얽혀오는 따스한 온기에 제 모든 것을 내어주겠다는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입 안에 퍼진 단 향이 기껍다. 저를 탐하는 이가 무얼 바라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은 어느덧 희미하게 변해 의지를 잃는다.)
 
다비드:(하릴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는 이제 이 작디작은 공간을 집어삼킬 듯한데, 저는 입조차 대지 못했던 와인을 단숨에 들이켠 듯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만큼 현실감각이 없었고, 그만큼 제 앞에 있는 이를 끌어안았다. 거슬린다는 듯 옷자락을 손으로 밀어냈고 몸을 밀착했다. 고작 속눈썹 정도의 거리를 두고 속닥댔다.) 같이 있을게, 그럴 거라고 했잖아.
scene
(영화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주인공이니 살아날 것이다. 스토리 내에서든, 관객들의 마음속에서든. 어쨌거나 엔딩 크레딧에 당당히,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릴 것 아니야.)
 
리은:(제 팔 들어서 당신의 목을 그러 안는다. 감았던 눈 뜨고 제 앞의 이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 제 애정 듬뿍 담고. 부드러운 숨을 허공서 섞고 다시금 짧게 입 맞추었다. 온전히 당신에게 기대어서. 끝 없이 고동치며 제 삶을 증명하는 박동을 맞대고 웃음 지어냈다.) 그대가 곁에 있어주는 것으로 나는 족해. 정말, 계속 있어줄 거지? 춥고, 외롭고, 아주 많이 아프고... 아주 많이 괴로워져서 후회할 일은 저 밖에 있으니까. (당신의 이마에 제 입술 맞추고는 속삭였다.) ... 어차피 모두가 행복했다는 결말 따위는 오래잖아. 그러니, 그대가 행복함을 바라.
 
깜빡,
 
눈을 감았다 뜨면 익숙한 가정집입니다.
 
싸구려 조명과 달콤한 코코아 향기, 무릎 위에는 따뜻한 전기담요가 있습니다.
 
작은 크리스마스트 리가 구석에서 반짝거립니다.
 
리은:악몽이라도 꿨소?
 
리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비드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줍니다.
 
글쎄요, 악몽을 꿨던가요?
 
가슴 저미도록 아프고 괴롭지만, 그건 결코 악몽은 아닐 거예요.
 
그도 그럴 게, 그토록 노력했는걸요.
 
TV에서는 지루한 클리셰 SF 영화가 방송됩니다.
 
눈을 감으면 펼쳐지 는 새하얀 설원은,
 
영원히 당신과 연이 없을 것처럼 멀고 아득해서,
 
어쩐지 눈물이 흐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당신은 혼자가 아닌걸요.
 
Credit
 
.KPC?
 
Staff
 
청서
 
다비드:(이마에 닿는 감촉에 따라 자연스레 눈을 감게 된다. 그리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가... (다시금 눈꺼풀을 들어 올려 기어코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다. 지긋지긋한,) 나는 행복했어. 나는 행복해. 은아, 그런데 여기 밖의 세상은 불행해? 춥고, 외롭고, 아프고... 괴로워져서 후회하는 너는 밖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달콤한 코코아 향기가 나고 무릎 위에는 따듯한 전기담요가 올려진 이곳. 알전구들이 명멸하며 온기를 밝히는 이 따스한 감각은 분명 꿈일 테다.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을 꿈. 그뿐이었다. 관심을 가지려야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한 여름밤의 꿈, 정성스레 쓰인 플롯, 단 한 사람 몫의 행복. 영화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 화면 속 너머의 주인공이 아니잖아. 내 삶은 각본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걸.) ...날 좀 일으켜줄래.
 
리은:으응,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 끝을 늘렸다.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조용히 흐릿한 기억을 곱씹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 행복하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할까. 난... 나는 말이야...-. 영원한 답을 유보한다. 내 날개는 너잖아.) 그대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싸우러 나가는 거야? (희미한 중얼거림에 가까운 소리다.) 밖에는 아주 불행하고... 춥고, 외롭고, 아프고, 괴로워서 후회하지만... 뒤에 나 있던 모든 길은 무너져서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가 있지. 이제 멈추는 법 따위는 모르는 사람이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지독한 외로움을 자초하는 것임을 앎에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거거든. (지키고 싶다는 신념이, 퇴색되어 색을 바꾸고 더 이상 그 본질은 존재치 않았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대라면 말해주겠지? 그 사람 또한, 나라고. (쓴 웃음 지어냈다. 쓸던 볼에 긴 선 그어내리며 떨어지는 투명한 감정의 편린을 제 입술로 정리해내곤 이마를 맞대어 두어번 부볐다. 가지마, 그리 말하고픈 것을 눌러 참아냈다. 이곳은 한 여름밤의 꿈. 눈을 뜨면 사라질 흐릿한 환상. 오로지 너만을 위해 준비 되었던 달큰한 과실주라서. 마지막으로 목을 그러 안았다. 힘 주어 품어내었다가 몸 일으켜서 일어난다. 흐트러진 옷자락을 정리 해주고 맑은 웃음 내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대의 모든 것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보내줄 수 있는 마음을 다잡는 것이겠소. 그리고... 그대의 손을 잠시나마 잡아줄 수 있는 것 말이야.(언제나처럼, 매 순간 그랬던 것처럼 제 손 내밀었다.) ... 일어날 시간이야, 다비드.
 
다비드:나는 언제나 너의 행복을 바라. (한 치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만큼의 확신이 있었다. 내 행복의 정의는 너와 함께함이었으니, 무너진 길을 내딛고 감히 그 외로운 길을 함께 나아간다면 그또한 행복하리라고.) 당연히... (언젠가처럼 네 맑은 웃음을 멍하니 바라봤던 것 같다. 저에게 향한 것이 아닌 그려낸듯한 선한 미소. 그럴 때면 꼭 숨이 막히도록 끌어안고 싶었다. 품에 넣어두고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두고 싶었다. 그건 얼마나 추잡한 욕망인지. 그리하여 차마 끌어안지 못했으나 그 잔상이 심장 위로 새겨졌다. 폭설이 내리던 날, 새하얀 눈밭에 발자국 그어내듯 네 자국이 남았다. 그로써 만족했다. 말없이 내밀어진 손에 힘 실어 잡고 일어선다.)
 
다비드는 리은의 손을 잡고 문 앞으로 갑니다.
 
동시에 실내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집니다.
 
문 앞의 조명을 제외하고요.
 
리은은 한참이고 말 없이 당신의 뺨을 쓸다가 한 발, 뒤로 물러납니다.
 
지금부터는 오롯이 다비드 혼자만의 싸움입니다.
 
현관문은 오늘따라 단단하고 굳게 잠겨 있지만,
 
다비드가 손잡이에 손을 대는 것만으 로도 쉽게 열립니다.
 
다비드:
듣기
703514
97
실패
 
문고리를 돌려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무언가 들리는 듯 했지만, 바람의 소리에 파묻혀 어떤 것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다비드:(미련스럽게 뒤 바라보다가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야말로 거센 기침과 함께 눈을 뜹니다.
 
시야가 어둡고, 여긴 정말…….
 
엄청나게 춥네요!
 
누워있는 바닥은 이상하게 불편하며, 퀴퀴한 냄새까지 납니다.
 
어둠에 양 눈이 익숙해지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립니다.
 
익숙해진다고 해도 여전히 팔다리가 무거워 마음껏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다비드:
건강
804016
30
어려운 성공
 
간신히 고개를 돌린 다비드는 낯선 얼굴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얼굴입니다.
 
전혀 생기가 없지만!
 
잠깐, 이거 시체 아닌가요?
 
다비드:
이성
783915
84
실패
1
1d3 Roll
 
이상하게도 시체는 전혀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씨름하던 그 때,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손전등 같은 조명이 켜집니다.
 
작은 조명을 든 사람은 무언가를 찾는 듯 시체 더미를 뒤적거리고 있습니다.
 
다비드:(추워서 멀쩡했나? ...가 아니라, 지금 시체 더미 속에 누워있는 건가, 나? 충격은 뒤로하고 몇번 쿨럭이더니 목소리 냈다.) 여기 사람 있어요.
 
그 사람은 곧이어 다비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낯익은 이목구비는 분명히……
 
레드럼 입니다.
 
다비드와 리은이 예전에 구한 그 사람이 맞습니다.
 
다비드:
지능
753715
30
어려운 성공
 
그때와 똑같은 연령대와 얼굴이라는 사실에서 위화감을 느낍니다.
 
레드럼:여기에 있었군. 몸은 잘 움직여?
 
다비드:(지금은 저 얼굴마저 반갑네)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 당신 여기서 뭐합니까?
 
레드럼:나는 너 찾으러 왔지. 안움직이면... 으음... 이거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그는 다비드가 입은 군복의 소매를 걷고 주사바늘을 쑤셔 넣습니다.
 
저항할 힘도 없는 데 말이죠!
 
레드럼:따꼼해요~. 아이 안아파~.
 
다비드:??뭔데요?
 
레드럼:아가씨가 너 죽고 나서 네 몸에 때려 박았던 독에 대한 해독제.
 
그 말을 증명하듯, 뻣뻣하던 다비드의 몸에 금세 힘이 돌아옵니다.
 
다비드:(미간찌풀...) 아가씨가 설마 리은인가요?
 
레드럼:아아, 어. 그 이름이었을걸? 지금 100년 가깝게 아가씨라고 불러서 입에 붙었지 뭐야. ... 음...~. 속상하려나. 비밀로 해줄걸.
 
다비드:걔한테서 죽임은 많이 당해봐서 속상하진 않는데... (그도 아니라면 현실감이 없는 거겠지. 느릿하게 몸 일으킨다.) 그녀는 내가 죽길 바랐나요?
 
레드럼:야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런 것에 무덤덤해지지 말란 말이야. (작게 한숨 쉬더니) 죽길 바라지 않았으면 그러지도 않았겠지. 말려도 봤는데 내가 부숴질 뿐이어서 이제는 말리지도 못하고 있었거든. 그 점은 미안해.
 
다비드:정신나간 신체에 적응하려면 같이 정신이 나가게 되더라고... (시체들 밟지 않도록 조심히 걸어 나오더니 멀거니 바라본다.) 부셔지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예요?
 
레드럼: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거늘. 아아, 그거 폐기된 안드로이드야. 밟아도 괜찮아. 고인에 대한 뭐... 그런거면 별 신경은 안쓰지만... (끔박.) 아, 그렇네! 말을 안해줬구나. 나 100년 전에 그 싸움에서 너랑 같이 죽었거든. 내 짝궁이 원할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아가씨가 만들었어. 한마디로 안드로이드라는 소리. ... 짝궁이 정이 좀 쌓였었는지... 힘들어 했다나. (검지의 끝을 꾹 쥐었다. 조금 미소 사그라들었고) ... 걔도 크리쳐였어서 홀로 남았거든.
 
다비드:건강하게 만들어졌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네요... (시선이 발 밑을 향하고,) ...안드로이드가 폐기도 되나요? 왜? (다시 고개 들어 시선 마주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는 듯 느릿하게 눈 깜박였다.) 그러니까... 당신도, (여기 있는 시체들처럼,) 안드로이드라는 건가요? 리은은 내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제가 여지껏 살아남은 건 크리쳐여서 그랬나?) 카... 짝궁, 걘 지금 어딨어요?
 
레드럼: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니 어쩔 수 없지. 햇빛 많이 보고 잘 먹고 건강하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해. (멋쩍게 제 뒷목을 쓸었다.) 부수어지거나 고장나면 폐기하고 다시 만드는 것을 사람들이 원하거든. 아가씨는 그것에 응해준 것 뿐이야. 난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는데 어쩌겠니. (고개 까닥.) 그렇지. 난 안드로이드가 맞아. 아가씨 말대로 너는 안드로이드가 아니고. (...음?) 왜 이름을 말 못해? (걔 혹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 뭐 그런 거야?) 아가씨 명령 때문에 건물 어딘가에 배치가 되어 있을걸. 난 자세한 것은 몰라. 갈 거야?
 
다비드:(눈살 가늘어진다.) 고작 그런걸로? (대체품이라는 게 그런 거라면, 잘 모르겠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있기는 있나.) 안드로이드인 당신은 이전의 당신과 뭐가 달라요? 온기가 없고 심장이 안 뛰나? (음?) 당신이 못 알아 들을 것 같아서요. (손 휘적...) 네, 가야해요. 갈곳도 없는걸...
 
레드럼:고작 그런 것으로 사람들은 바꾸더라. 네게 고작인 것이, 그 사람들한테는 아닌 모양이지. (다른 것? 곰곰 생각했다.) 이전에 있던 데이터들을 싸그리 모아서 만든 것이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세포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라는 점 외에는 모르겠는데. 온기는 있어. 심장은 기계지만. (...) 아, 그런 이유? 친절하기도 하지. 그럼 가기 전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너밖에 못하는 일이야.
 
다비드:그건.... 어디까지를 수용하고 존중해줘야 할지 모르겠네요. (침음 흘리더니 당신 빤히 바라본다. 설명을 들어보니 당신은 고장나고 부서지지 않을 것 같다는 미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무슨 부탁인데요?
 
레드럼:(말을 고르는 듯 눈 굴린다. 습관적으로 제 짧은 머리카락의 끝을 검지로 꼬다가) 솔직히 말이야... 아가씨도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한 것은 나도 알거든. 엄청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그 직후에 인간들이 테러를 일으켜서. 이후로 아가씨가 좀 이상해졌거든. 그 전부터 멀쩡한 척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아가씨가 만든게 나고, 난 내가 살아있는 예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 즈음은 알아. 기계일 뿐이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 되살린 것은 아가씨지만, 내가 살아났기 때문에 내 짝궁은 더 불행해졌지. 그러니까...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네가 아가씨를 좀 막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수어줘. ... 과거에 묶인 이들을 풀어주었으면 해.
 
레드럼이 문 쪽으로 턱짓합니다.
 
레드럼 외에도 세상을 떠나지 못한 망자들이 다비드의 대답을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습니다.
 
레드럼:과거의 이들에게는 안식을, 산 자에게는 미래를... 뭐, 그런 거지.
 
다비드:사람들이 테러.... 왜? (고개가 기울어진다. 얼핏 보기에는 큰 문제 없을 세계라 생각했다.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함께 한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었으니까. 그 만들어진 것들의 민낯을 아직 보지 못해서 그런가?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더이상 가동하지 않는 시체들로 향했다.) 그러면 당신은 영원히 죽는데도요? 당신에게 있어 가장 큰 가치는 생명이라고 했잖아요.
 
레드럼:아가씨가 만든 안전지대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몰라. 아가씨면 알려나, 싶지만 물어본 기억은 없어. 많이 아픈 표정을 지어서... 음, 좀 껄끄럽거든. 게다가 무언가 물어보려고 할 때면 매번 싸워서 말이야. (끄응...)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다. 내가 인간이라 말하는 것은 심장이 박동하고 유한한 삶을 살며 자신의 삶을 다채롭게 꾸며나가는 이들이야. ... 지금 내가 가진 감정들도, 짝궁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전부 그렇게 여기게 되어 있기 때문에, 라는 이유지 정말 내 자신이 그리 여기는지조차 알 수 없어.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 행해지는 것을 인간의 생명이라 할 수 있나?
 
다비드:많이 아파했나요? (알 수 없는 표정들이 이어진다. 눈동자 도르륵...) 인간은 크리쳐가 되기도 하고 크리쳐가 인간이 되기도 하는 이 세계에 '인간'이라는 이름표에 큰 의미가 있습니까? 나조차도 이미 수십 번을 죽고 되살아나고, 변하고, 변질되었는데. 당신이 날 찾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썩지도 못하고 고여 있었겠죠. 폐기물들이라 불리는 것들과 함께. 아니면 이런 변화가 흔해진 탓에 '태초부터 인간이었고 아직까지도 인간'이라는 타이틀에 가치가 부여된 건가? (공백) 당신이 태초부터 안드로이드였다면, 당신이 정말 그리 여기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한때 인간이었고 인간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니냐라는 기준점이 있어서 과거의 당신과 현재의 당신의 차이에 혼란스러워하는 거 아닌가? 전 그 또한 제법 다채롭고 '인간적'이라 생각하는데요... (모르겠다. 애초에 해답이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영원토록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의 끝이름을 물을 테다. 현재의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지금의 감정뿐이다. 그러니 결론은,) ...전 기왕이면 당신도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레드럼:아파했지. 매일을 울었고 동시에 외로워하며 만들었던 것이 하루 아침에 불타서 사라졌는데. 미쳐버리는 것이 오히려 잘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 그래도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숙청해버리는 것은, 아가씨가 자기 자신을 놓아버린 것 같아서 많이 불안했어. 예전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잖아. (그런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인간이라는 개념이 네게 있어서 모호한 모양이야. 평소에 무언가 하나의 개념에 대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어가는가, 같은 거 많이 생각하는 편인가? 실제로 인간이 크리쳐가 되고, 크리쳐가 인간이 되는 이 세상이야. 인간이라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지. 0이면서 동시에 10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며 그것은 방대하고 무궁무진하다. ... 그래. 나도 태초부터 안드로이드였다면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무언가의 개념은 모호해서 흑백 논리나 이분법처럼 완전히 나뉘는 것이 아니잖아. 나는 생각하는 안드로이드인 동시에 생각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거야. 네가 나를 인간이라고 불러준다면, 나는 그에 맞추어 인간이 될 수 있겠지.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에 대해서 끝 없이 고민을 하는 존재는 사랑스럽고 인간답다, 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 (흐리게 웃음 지어냈다가 곧이어 그 웃음은 맑기 그지 없는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같이 지내면 좋겠어. 야아-. 그래도 말이야? 내 동생들이랑 딸은 지금 이곳에 없고 남은 것은 짝궁 뿐이걸랑? 아, 친구인 너도 있겠다. 그리고 아가씨도 있고... 전에 알게 된 걔랑... 아무튼. 그 중에 누구 하나라도 나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아. 내가 만들어진 이유도 내 짝궁 때문이잖아. 그 애가 내 존재 때문에 불행해 한다면 난 그 애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 뿐 아니겠어? 내가 동생들한테 매번 하는 말이 있었는데 너한테도 해줄게. (흠.)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삶을 끝내게 되든,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오로지 너의 길을 갈 것. 과거로 남아버린 나에게 묶이지 말고 새롭게 사랑하는 것들을 만들어가며 그것들을 품고 살아갈 것. 나에 대한 것은 가끔 사진이나 들여다 봐줬으면 좋겠어~.
 
다비드:... (설명 이어 듣는 낯이 가라앉더니 어느 순간 침을 잘못 삼켜 쿨럭 댄다.) 숙청을 했다고.... 아니었죠. 적어도 제가 아는 리은은 안 그랬어요. (...) 내가 생각이 짧다는 말은 자주 들었는데... (오히려 생각을 안 하고 살아서 이렇게 답을 못 내리는 것은 아닌지. 때묻지 않은 미소 멀거니 바라보기나.) 그게 당신의 존재 가치의 이유라면, 그또한 존중해요. 다만 당신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불행한 사람들도 분명 있을거란 걸 알아둬요. 그게 나라는 건 아니지만, (무어라 더 말하려는 듯 싶더니 못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말해주어 고마워요. 아쉬움은 덜 할 것 같아.
 
다비드:
지능
753715
49
성공
 
이 이야기의 내막에 제삼자가 관여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다비드와 리은을 알고 있고, 말도 안 되는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자.
 
이전에 만난 미고입니다.
 
알아낸다고 해도 당장 거처를 알지 못하니(지구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별수 없습니다.
 
빙긋 웃은 레드럼은 다비드에게 '단도'와 '라이플' 을 받습니다.
 
레드럼:중앙 관리 체제는 반경 1km에 쉴드가 펼쳐져 있어. 그걸 부수기 위해서는 안전지대의 남쪽이랑 북쪽, 총 두 곳에서 쉴드의 약점을 조져야 하고. 민간인의 방해가 없고 목격이 안되는 곳이면... 요기랑 요기.
 
레드럼이 가지고 온 지도를 짚어줍니다.
 
짚은 곳은 (구)AOC와 X 제약 회사 입니다.
 
레드럼:지금은 AOC 건물 지하니까 여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미안해~. 제약 때문에 말이야. ... 최대한 아가씨 눈 좀 돌려둘게. 오래는 못버틸지도.
 
다비드:(미심쩍은 표정으로 단도와 라이플을 받든다. 그야, 이런건 크리쳐나 괴물 때려잡을 때나 썼지. 그런 존재들이 없는 이 세계에서 쓸 일이라고 하면. 고개를 털어냈다.)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더 해줄 말은 없어요?
 
레드럼:흠... 흠... 더 해줄 말... 이라면... (눈 도르륵) 아가씨가 하는 말들에 너무 상처 받지 말고... 내 짝궁 보면 반갑게 인사나 한번 해줘. 음...~ 그리고 나는 네가 많이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다 잘 될 거야.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응원할게! 자, 나는 끝! 시간 아깝겠다. 얼른 가.
 
다비드:그럴게요. (불분명하게 답하고 입꼬리 당겨 웃었다. 주어진 것들 챙겨 들고 레드럼이 짚어준 곳으로 향한다.)
 
건물의 층수는 100년 전 그대로 36층이며, 다비드는 지하 1층의 안드로이드 폐기 창고에서 옥상까지 올라갑니다.
 
100년 전의 사람인 당신을 알아볼 사람은 없으리라 안심하고 있나요? 
 
다비드:(설마 누가 있어?)
 
안타깝게도, AOC를 지키는 안드로이드들이 다비드를 찾아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다비드:(이런 인기 부담스러운데...)(몸 사리며 이동한다. 최대한 피해갈 수 있으면 피해가는 걸로...)
 
다비드:
854217
50
성공
 
다비드:
4
1d8 Roll
 
다비드:
건강
804016
88
실패
(쿨럭)
 
다비드:(돌겠네.... 아까 받은 무기들을 든다)
 
저 멀리서 20명의 사람들이 달려옵니다.
 
다비드:...조용히 지나갈 수 있으면 그러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다비드:
3
1d3 Roll
 
다비드는 쫓아오는 사람... 아니, 안드로이드들에게서 벗어납니다.
 
다비드:(탁탁...)(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다비드:
854217
93
실패
 
저 멀리서 26 명의 사람... 아니, 안드로이드들이 다비드를 발견하고 달려옵니다.
 
다비드:어째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이번에도 도망칠 각을 세운다...)
 
다비드:
2
1d3 Roll
 
쫓아오던 이들의 소리가 멀어집니다.
 
다비드:
854217
92
실패
(리은아 세상이 내가 너랑 만나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저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안드로이드 23체가 달려옵니다.
 
다비드:싸우고 싶지 않다니까. (도망친다)
 
다비드:
2
1d3 Roll
(너덜너덜...)
 
시끄러운 소리에서 무사히 멀어졌습니다.
 
다비드:
854217
41
어려운 성공
 
다비드:
7
1d8 Roll
 
다비드:
크기
804016
66
성공
 
다비드는 회의가 끝난 회의실에서 자료를 획득합니다. 
 
현재의 안전지대를 관리하고 안드로이드를 운영하는 것은 중앙 관리 체제라는 기계입니다.
 
내부 구조는 다비드가 가진 지식으로 알아보기 힘드나, 막대한 마력이 소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요, 최소한 작은 나라의 국민이 가진 마력의 총량만큼은 있어야…….
 
중앙 관리 체제가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게 안전지대 시민들의 마력을 원동력으로 삼아 돌아가고 있던 건가요? 
 
문득, 올라가며 마주친 안드로이드를 떠올립니다.
 
생명을 운용하기 위해 생명을 소모한다, 리은 답지 않은 기이한 발상입니다. 
 
다비드:
이성
773815
66
성공
 
다비드:
854217
79
성공
8
1d8 Roll
 
다비드:
지능
753715
41
성공
 
다비드는 옥상으로 향하던 도중, 자료실 문이 열린 것을 발견합니다. 
 
다비드:
자료조사
20104
17
성공
 
약 100년 전에 있었던 일이 적힌 자료를 획득합니다. 
 
100년 전, 크리쳐를 신으로 모시던 사이비 종교의 테러로 인해 신정부와 안전지대는 한 번 더 괴멸 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인류를 구원한 것은 리은이라고 하네요. 
 
그는 직접 무너 진 도시를 수복하고, 죽은 사람을 안드로이드로 되살려냈습니다.
 
무언가 위화감이 들어 자료를 천천히 살펴보면,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안전지대가 파괴된 날짜와 정상적으로 동작하기 시작한 날짜가 너무나도 가깝습니다. 
 
적어도 평범한 수단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이런 건 이상해요.
 
리은이 꼭, 옛 정부나 AOC의 상관들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다비드:
이성
773815
31
어려운 성공
 
다비드:(이것을 무어라 형용할 수 있을까... 복잡해진 표정으로 자료들을 확인하고 빠르게 이동한다.)
 
다비드:
854217
4
극단적 성공
3
1d8 Roll
정신력
904518
52
성공
 
다비드는 AOC 군복을 입은 사람과 조우합니다.
 
그는 다비드를 보고 크게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집니다.
 
거의 유령이라도 본 듯한 반응입니다.
 
다비드:(도망갈 태세...)
 
AOC 직원:또, 또 살아나 버린 건가요.
 
다비드와 마주한 사람은 패닉에 빠진 듯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 앉습니다.
 
다비드:(멈칫) 누구세요?
 
AOC 직원:이상해요. 이건 이상하다고요. 당신의 시체를 처리한 것은 저였는데요. 분명히 죽은 것을 확인했는데, 그 시체에 불을 지른 것도 저인데…
바람에 날려버린 재가 아직도 손에 만져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살아난 거죠? 당신, 사람 맞아요?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재로 만들어버린 사람이 살아났다고요?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는 회복력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인걸요!
 
다비드:
이성
773815
23
어려운 성공
2
1d3 Roll
 
다비드:내가 크리쳐라서 그런 것 아닌가요? 이때까지 그런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듯,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립니다.
 
다비드:뭐야? (가늘게 눈 뜨고 멀어지는 뒷모습 보다가 이동한다.)
854217
72
성공
7
1d8 Roll
크기
804016
70
성공
 
다비드는 AOC의 마지막 크리쳐, 카데르와 조우합니다.
 
다비드에게 총구를 겨누던 카데르 경계하듯 묻습니다.
 
카데르:방금 너를 보면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길래 이런 명령이 내려오는지 설명해야 할 거다.
 
다비드:카데르, 진짜 너구나. (경계하는 네 모습과는 다르게 아까와는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안도한 모습이다.) 난 죽고 다시 살아난 것 밖에 없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봐.
 
카데르는 한숨과 함께 총을 내립니다.
 
카데르:안그래도 아까 전에 묘하게 기분이 나빠 보이던 이유가 이건가. 그럼 그냥 가라. 너랑 나는 지구상에 마지막 크리쳐 동지기도 하니. 아, 지금은 인간인가? 어쩌면 이런 것들이 더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이젠 다 됐어.
... 아은이의 명령을 위반하고 널 다시 돌아다니게 만든 것도 다 녀석의 짓이겠지. 내 생각이 맞나?
 
다비드:그냥 가라니, ...리은한테? (깜박...) 녀석이 니냐 씨를 말하는 거라면 네 생각이 맞을걸. 그는 그의 존재가 널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더라. 정말 그래?
 
카데르:아은이한테 가는 것이 아니었나? 아니면 옥상으로? 아은이는 지금 이 건물에 없을텐데. (표정 변화 없이 보다가) 니냐는 이전에 죽었어. 네가 만난 것은 겉모습만 본딴 안드로이드지 니냐라는 존재가 아니다. 난 그것을 내 파트너라 부를 수 없어. 말에 어폐가 있군.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다비드:가는 길에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술까 싶어. (고개가 기울어진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리도 수십번 죽고 되살아나길 반복했잖아. 그거랑 뭐가 달라.
 
카데르:내가 막지 않더라도 아은이가 알아서 막겠지. 내가 구태여 지금 이곳에서 너와 싸우면서까지 막아야 할까. (들고있던 라이플 고쳐 쥐며 희미한 한숨 내쉰다.) 안드로이드는 생전의 이를 본따 만든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녀석은 크리쳐가 아니며, 죽었다가 시간이 지난 이후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난 그를 이전의 니냐라고 받아들이지 않을거다. 나에게 있어서 그 녀석은 이미 죽어서 빛바랜 존재니까.
 
다비드:다행이다. 나 너랑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 (웃기나...) 그 변화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지. 그래도 인간이나,...동식물이나, 심지어 불변할 것 같았던 사물 마저도 세월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지 않니. 당장 너만해도... (뜸) 아니다. 나 궁금한 거 있는데. 우리는 크리쳐니까 이제까지 살아있다고 치고, 리은이는 어떻게 된 거야?
 
카데르:변화는 살아가는 생물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죽은 이를 되살려 내 앞에 두는 것은 고인에게 내어준 나의 감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표정이 미묘해졌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겠지만 안대를 끼게 된 뒤로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지. 죽은 적도 없고 몸 또한 인간의 몸에 지나지 않는다. 확신은 없으나 예상으로는... 안전지대를 갑자기 세워낸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일전에 흘러가는 소리로 그랬지. 안전지대가 존재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살아간다고.
 
다비드:그럴 수도 있지. 그냥... 나는 보내주는 나의 감정보다 함께하는 서로의 감정이 더 소중해서, 돌아올 기회가 있다면 몇번이고 잡게 되더라. 그래도, (공백) 너도, 니냐 씨도 이미 마음을 정리한 것 같은데 내가 더 가타부타 할 수는 없겠지. (가만히 경청하더니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뭔... 안대에 무슨 장치라도 있어? 안전지대가 무너지면 걔도 죽는 건가... 일단 알겠다. 그리고 나 100년동안 죽어있던 게 맞아? 또 기억을 잃은 건 아니고?
 
카데르:안대는 평범한 안대야. 벗는 것을 본 적은 없으니 장담은 못한다. (기억을 되짚는 것처럼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내가 알기로는 넌 몇 번이고 돌아왔어. 그리고 아은이의 손에 죽었지. 100년동안 그 짓을 똑같이 되풀이 했다는 뜻이다. 간격은 매번 달렸고 매번 기억은 제자리 걸음이었다고 들었는데. 지금 네 상태를 직접 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군. 나는 자세한 것을 모른다. 모두 아은이에게 건너 들은 것들이니까. 이만 가지. 이 이상으로 유의미한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다비드:...이러면 아주 예전에 크리쳐였을 때랑 크게 다를 것도 없군. 더이상 자아를 무너뜨리고 명령에 의존해야하는 무기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선택을 강요해. (시선 조금 먼곳을 향했다가 돌아왔다.) 데려다 줄려고? 아니면 나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이라도 안내해줘라. (뻔뻔) 근데 카데르, 나는 네가 정보를 안 줘도 괜찮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되고 또 도움이 돼.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카데르:세상과 인생은 순간순간이 선택의 나열이지 않나. 가혹한 선택을 하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것들을 많은 이들은 시련이라고도 부르더군. (손가락으로 위 가르켰다.) 올라가려고 한 것 아닌가?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수기 위해서는 옥상으로 가야지. (느리게 걸음 떼어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함께 해주지는 못하지만 대화를 섞은 이 시간이 네게 유의미한 시간이 됐으면 한다.
 
다비드에게 목례를 한 카데르는 등을 돌려 떠납니다.
 
다비드:
854217
51
성공
8
1d8 Roll
지능
753715
62
성공
 
여러 사건을 겪은 뒤에야 다비드는 간신히 옥상에 도달합니다.
 
이 세계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그렇게 단언할지도 모르겠네요. 
 
육중한 철문에는 엄중한 보안장치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 이런 장치로 당신의 침입을 막을 수는 없겠죠. 
 
다비드:(보안장치를 열려고 시도한다. 안되면 엄중하게 주먹으로 내려칠 생각.)
 
다비드:
근력
804016
73
성공
 
주먹으로 보안장치를 내리치자 보안장치가 박살나며 문이 열립니다.
 
회청색 세계 위, 눈이 휘날리는 허공에는 정육면체의 기계가 제자리 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뒷모습입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립니다.
 
이곳은 클리셰 SF 세계관. 
 
죽은 사람은 필요에 의해 안드로이드로 되살아나는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에, 최강의 군인이었던 다비드만이 없을 리가 없잖아요? 
 
지금의 안전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앙 관리 체제 라면, 그걸 수호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자명합니다.
 
안드로이드 다비드:꼭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어.
아니, 붙어보고 싶었다는 쪽에 가까우려나.
 
다비드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가볍게 웃습니다. 
 
허름한 AOC 군복을 입은 다비드와 대조적으로, 깨끗한 군복을 입은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듯 오른쪽으로 길게 스트레칭합니다.
 
다비드:...안드로이드는 사라지는 게 나을지도... (의미없이 중얼댄다) 이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진짜 모르겠는데. 왜 나를 만나고 싶었다는 거야? (단도를 빼어드나 공격하진 못한다. 대신 얼음의 방패를 사용한다.)
 
다비드:
1
1d5 Roll
 
안드로이드 다비드:내 모티브가 된 것이 누구인지 정도는 궁금해하지 않겠어? 날 볼 때마다 은이가 그러더라. (숨 들이켰다가 그대로 공격했다.) 난 정보 부족으로 제대로 카피조차 되지 못했다고. 참 기분이 이상하더라. 가슴 안쪽이 저려오는게.
비무장
854217
14
극단적 성공
피해4
 
다비드:...걔랑 대화를 했어? (눈살 가늘어진다. 그래, 기분이 정말 이상하긴 하다. 가슴 안쪽이 저려오는 게, 아주...) 그때 똑닮은 크리쳐를 두고 고르지 못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오늘 반성을 제법 많이 하게 되네. (다가오는 이에게 단도를 휘두른다.)
단도
854217
97
실패
피해5
 
다비드:
단도
854217
7
극단적 성공
피해6
(눈의 검을 시전한다)
 
다비드:
4
1d5 Roll
 
안드로이드 다비드:걔한테 있어서 진짜 네가 되지는 못해도 대화 상대 정도는 됐지. 너랑 하는 생각이 나름 비슷하도록 입력이 되어 있으니까.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이 냉소적인 비소일 뿐이었으나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공격 그대로 맞아내며 반격한다.)
비무장
854217
12
극단적 성공
피해5
 
안드로이드 다비드:
비무장
854217
34
어려운 성공
피해5
 
다비드:내 생각과 비슷하다면 싸우지 않고 보내줬을 텐데, 오류인가? (이거 잘못하면 죽겠다. 몸이 자연스레 반응한다.)
회피
25125
48
실패
 
둔탁한 타격소리와 함께 다비드의 의식이 멀어집니다.
 
머리 속의 누군가가 묻습니다.
 
다비드:(언제나 살고 싶었다. 살 수 있냐,가 문제였지.)
 
다비드:(다시 한번 쓰러진 몸을 일으켰다.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이 상황이 지나치게 익숙하지 않은가. 감정 얼마 담기지 않는 표정이 제 앞에 있는 이에게 향한다.) 너도 되살아날까? (단도로 상대를 찌른다.)
단도
854217
4
극단적 성공
피해5
(다시 눈의 검을 시전한다.)
4
1d5 Roll
 
안드로이드 다비드:(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 다시 만들어지는 것도 되살아나는 것으로 쳐주나? (몸 뒤로 물려본다.)
회피
25125
29
실패
 
다비드의 단검이 안드로이드를 꿰뚫습니다.
 
전투가 끝나면 안드로이드는 차가운 옥상 바닥에 무릎 꿇은 채로 무너져갑니다. 
 
그것은 가동을 멈춰가며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안드로이드 다비드:정말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수려고?
안드로이드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는데도?
저 사람들이 결정한 거잖아. 네게 남의 선택을 번복할 권리가 있나?
꿈을 꾸는 세계가 뭐가 나빠? 비참한 현실보단 꿈이 낫단 생각 안 해?
 
다비드와 같은 신념은 아니지만, 안드로이드 다비드 역시 그가 생각한 정의를 위해 이곳을 지켜왔습니다. 
 
다비드는 라이플로 쉴드를 부술 수 있습니다. 
 
다비드:(저를 똑닮은 이가 무너져가는 형태를 보면 제 폐부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길게 늘어뜨렸다.) 없지. (그를 뒤로하고 쉴드로 다가섰다.) 없어. 자격이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그러니 꿈을 꾸는 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하지만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잖아. 계속 꿈을 꾸는 것은 죽어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걸. 삶은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돌아와. 불꽃으로, 허공에 휘날리는 잿가루로, 강가의 바람으로, 그리하여 다시 꽃 피는 계절로. 그리고 그건 안드로이드가 아니어도 괜찮아. (라이플을 장전하고 쉴드로 방아쇠를 당겼다.)
 
익숙하기 그지 없는 발포음과 쪼개져 날아간 탄환이 쉴드를 파괴합니다. 
 
다비드의 곁으로 푸른빛의 전류 조각들이 떨어집니다.
 
안드로이드는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다비드에게 내밉니다.
 
안드로이드 다비드:미고의 전언이야. 나를 부수는 사람에게 전하라고 했어.
만나봐서 알겠지만, 은이는 너를 너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 역시 다비드라고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상하지 않아? 100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크리쳐들.
그리고 아무리 죽여도, 심지어 불태워버려도 끊임없이 살아나는 너.
하나 묻자.
너는 내가 가짜라고 생각하겠지. 그렇다면 네가 진짜 다비드라고 생각해?
 
다비드의 안드로이드가 내민 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빔프로젝터입니다. 
 
다비드:(빔프로젝터를 손에 쥔다. 무감하게 답했다.) 난 너 가짜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어설프게 흉내라도 냈으면 그랬을 수도 있겠는데, 너는 나랑 너무 다르잖아. 그냥 다른 사람인 거야. 창조된 순간부터. 다름이 틀림을 뜻하지 않는 건 네가 가장 잘 알겠지. 나는... 크리쳐였고, 인간이었고, 다시 크리쳐가 되었고. 이제는 내가 뭔지 모르겠어. (용사나, 마녀나, ...주인공따위 되고 싶지 않았는데. 옅게 웃는다.) 그래서 정의하는 것은 그만뒀어. 난 그냥 나야. 그뿐이야.
 
안드로이드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간단하게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이 재생됩니다. 
 
그 영상 속에서 입을 떼는 자는,
 
네, 뻔하지 않나요?
 
미고입니다. 
 
다비드:(눈을 감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니 그제야 또다시 살인을 했다는 감각이 와닿았다. 그 수는 한둘이 아니며 이번에는 예전처럼 의식이 없던 상태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소중했을 이들의 학살. 명백한 미필적 고의. 나는 그렇게나 살고 싶었는데,) 기만자가 따로 없네. (짓누르는 감각에서 벗어나듯 멍하니 영상을 바라봤다.)
 
미고:다비드 님께. 마침내 여기까지 도달하셨군요.
저는 지구에 남았습니다만, 리은 님에게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제 존재 자체가 리은 님에겐 위협이겠지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또 다른 강자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 기기는 마지막 안드로이드가 회수해 당신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걸 보고 있다면 저는 이미 죽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고 있고요. 그런 당신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미 과거가 된 이야기입니다.
 
미고의 등 뒤에서 잠긴 문을 조금씩 비틀어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영상 속 미고는 후회 없이 편안한 표정입니다. 
 
한 점 불안이 있다면, 그건 다비드에게 전할 말을 전하지 못할까 봐 서두를 뿐, 지금의 그에게 목숨이 아깝다는 감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미고:당시의 저는 두 분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드리고자 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은 분명히 소원을 빌었습니다.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쳤어요. 안타깝게도 당신에겐 육체가 남지 않았지만요. 그런고로, 그건 이룰 수 없는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부순 악신은 사라져가며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었습 니다. 가장 끔찍한 형태로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크리쳐는 아자토스에 의해 한순간에 기화 했습니다. 그리고 대기로 흩어져 당신의 영혼체와 결합했죠. 그러니까, 당신의 육체는 크리쳐입니다. 크리쳐가 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크리쳐요.
 
홀로그램 영상 속 미고는 덤덤하게 다비드를 응시합니다. 
 
지금 다비드의 몸은 다비드의 것이 아니라는 건가요?
 
자, 여기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한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육체일까요, 영혼일까요?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죠?
 
당신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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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미고:이미 아실지 모르겠지만, 안전지대는 아자토스의 찌꺼기가 소멸한 이후에도 인간들끼리의 분쟁으로 인해 괴멸되었습니다. 그때, 리은 님은 사랑하는 이가 남긴 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소원은 들어드릴 수 있었지만,
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중앙 관리 체제, 그건 제가 직접 만든 시스템입니다. 재료는 방주와 아자토스의 찌꺼기였죠. 거기에 리은 님의 눈을 사용해 리은 님께서 힘을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리은 님의 상태가 그렇게 피폐해져 있었을 줄은, 파훼된 아자토스의 찌꺼기가 리은 님을 집어삼킬 줄은….
그 이후로 리은 님은 변했습니다. 제가 살해당한다면, 그 원인 역시 리은 님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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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발. 
 
소원을 끔찍한 형태로 이루어준다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이것은 가장 절망적인 형태로 완성된 두 사람의 꿈입니다.
 
언젠가의 대화가 꿈결처럼 스쳐지나갑니다. 
 
미래를 기약하고,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웃고 떠들던 시절이 아득하게 멀어져갑니다. 
 
당신이 알던 리은은 이제 없습니다. 
 
100년 전, 당신과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그의 그림자만이 이곳에 홀로 남아 자신을 없애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비드:(가만히 응시하는 두 눈에 핏기가 서린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소원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져서 이 사달이 난 거라고....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들끓었다.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여 으스러지고 되감기고 무너지고 또다시 일어서고. 그럼에도 여태껏 꺼지지 않는 불씨가 신통하다 싶었더니, 불씨가 아닌 세상이 얼어붙은 모양새다. 삶이 있을 수가 없는 절대 영도. 심장이 뜨겁게 식어갔다.) 그런데 당신 실수를 왜 내가 수습해야 해?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존재하지도 않을 이를 향해 거칠게 발길질을 했다. 홀로그램은 여전했다. 누구 한 명 탓할 수 없는 것 알기에 더욱 서러웠다. 갈 곳 잃은 화살촉의 방향은 저였고, 그 관성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엉망징창으로 구겨진 제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 내렸다. 질문의 답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을 잔상 따위가 아닌, 이 비릿한 현실의 구심점이 된 이에게 들려줄 참이었다.)
 
영상 속의 미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미고:전 아직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무슨 소원을 빌지는 대략 예상이 가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빔프로젝터가 분해되며 하나의 탄환을 내밉니다. 
 
끝부분이 열쇠처럼 생긴 그것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탄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고:쉴드를 부순다고 해도 중앙 관리 체제는 당신의 힘으로는 멈추지 않아요. 이 장치는 하나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짐작 가능한 범위 내인 것은 그 장치가 가동을 멈추면 연결된 리은 님 역시 죽어버립니다. 100년 이나 흐른 지금, 체제와 리은 님은 완전히 융합되었거든요.
 
그제야 다비드는 생각해냅니다.
 
불쌍한 당신은 크리쳐의 몸을 빌려 리은을 막으려 했고, 리은은 당신을 죽여버렸죠. 
 
그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흩어진 재에서 지금의 몸으로 재생되었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마침내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립니다. 
 
뒤에서부터 느긋한 발소리와 흥얼거리는 자장가 소리가 들리자, 미고는 온화하게 웃으며 녹화 종료 버튼에 손을 올립니다.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입니다.
 
미고:저희의 시간은 인간과 다릅니다. 생명이나 목숨에 관한 견해 역시 그렇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요, 미고는 넘치는 지식욕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저 역시 미고답게 제 욕심을 채웠을 뿐이죠.
그래서, 저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종족의 수치라거나 모자란 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처해서 이 거대한 흐름의 끝을 보고자 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뒤집힌 먹이 사슬도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덕분에 원하는 만큼 지켜보았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영웅의 일대기에 한 획을 그은 자가 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당신들을, 당신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를 정말로 좋아했어요.
안녕히.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일그러진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홀로그램 영상은 그것으로 끝납니다. 
 
안드로이드 다비드 역시 가동하지 않으니, 다비드는 빈 옥상에 홀로 남습니다.
 
깡통이 된 안드로이드와 빔프로젝터를 응시하고 있으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무와 깊은 고독이 찾아옵니다. 
 
다비드:
이성
753715
36
어려운 성공
 
다비드: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죽임을 당하는 건 결코 나쁘지 않아. (비뚜름한 시선이 이제는 움직일 리가 없는 깡통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살고 싶은 게 내 본능이라니, 정말 우스울 수밖에 없어. (달짝지끈한 코코아, 따뜻한 전기담요, 명멸하는 알전구와 부드러운 살갗. 우리는 극심한 추위 속에서 온기를 더욱 그리워하게 되지 않는가. 보고싶어. 발걸음 돌려 옥상에서 벗어났다. 지쳤어. 그것이 소리내어졌을 지는 불분명하다.)
 
탄환을 챙기고 옥상을 벗어나려고 할 때,
 
분해된 빔프로젝터에 불이 들어옵니다. 
 
영상은 제대로 보이지 않고 일그러졌지만, 목소리만은 선명하게 들립니다. 
 
어떻게 못 알아듣겠어요, 
 
이건 리은의 목소리인데.
 
리은과의 통화가 진행됩니다.
 
리은: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잘 싸우고 있구나. 그대를 위해 준비한 것들을 즐겨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소. 그러니까... 다음은 X 제약 회사던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말이야.
 
다비드:(느릿하게 눈 깜박인다. 발걸음 되돌리진 않았다.) 당장 들은 내용들이 너무 많아 까먹을 뻔했네. 알려줘서 고마워. 넌 어디에 있어? 내가 마지막으로 널 봤던 장소인가?
 
리은:(희미한 웃음소리 내고는) 역시 지루하지 않게 최종 보스가 등장할 시기겠지?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길을 잃어서 소장실로 오면 안되오. 난 지금 그대가 아주 보고 싶으니까. ... 부디 빨리 와주었으면 좋겠어. 날 너무 기다리게 하지는 말아주시게.
 
그 목소리는 지루한 기색을 숨기지 않습니다. 
 
끝이 다가옵니다.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곳에서의 결투가 마지막 같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야말로 시작이었습니다.
 
다비드:너가 최종 보스라고... (한동안 말이 없다. 너에게 제 얼굴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제까지 널 오래 기다리게 하긴 했지... 노력해볼게. (변함없는 웃음기가 목소리에 서렸다. 아, 그러니까...) 나도 보고 싶다, 아주 많이. 네가 먼저 끊을래? 이거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어.
 
리은:그럼 나 외에 누가 있겠어? 편히 오시게. 아, 그러니까... 친애하는 ... 나의 그대,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됩니다.
 
다비드:(통화가 종료되자마자 X 제약 회사로 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정신차리고 보면 어느새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X제약 회사에 도착하면, 다비드를 반기듯 모든 문은 열려 있습니다. 
 
이곳 역시 테러 이후 체제의 힘으로 복구되어서 깨끗합니다.
 
[관리실], [지하 4층의 제약 연구실], [옥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다비드:(관리실부터 들린다.)
 
마치 당신을 놀리는 것처럼, 재생되는 CCTV 영상이 전부 예전의 ‘그 영상’으로 교체되어 있습니다.
 
영상 속 다비드는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날뛰고, 리은은 필사적으로 다비드의 폭주를 막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과는 정반대인걸요.
 
그 외에도 저장된 다른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다비드:(언젠가 보았던 영상이 하릴없이 지나간다. 그것에 큰 반응이 없었던 것은 이제는 이 몸이 제 것이 아닌 것을 깨달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떨리지 않는 손으로 기계를 조작하여 다른 파일들을 둘러본다.)
 
건성으로 수천 개의 파일을 넘기던 다비드는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합니다.
 
아주 옛날, 레드럼과 카데르의 영상입니다. 
 
크리쳐와의 전투가 끝난 뒤 다친 카데르 업은 레드럼이 황급히 제약 회사 내부에 들어옵니다. 
 
그는 미친 듯이 카데르에게 쓸 약을 찾다가, 카데르가 결국 죽어버리 자 괴로운 듯 옆에 주저앉습니다.
 
바보 같아요. 
 
어차피 카데르는 살아 날 텐데. 
 
두 사람을 보던 다비드는 리은과 함께하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분명 어쩔 수 없었던 거겠죠. 
 
그만큼 소중했으니까. 
 
레드럼과 카데르, 두 사람은 100년간 정말 행복했을까요. 
 
다비드는 결코 알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다비드:(거대한 진실을 마주할 때면 제 앞에 놓인 것들이 한없이 작아지고는 했다. 본인마저. 무감한 표정으로 영상들을 둘러보다가 더 볼 것이 없다 판단되면 관리실에서 나와 지하로 내려간다.)
 
남자가 엎드린 채 죽어있던 테이블, 
 
편지를 발견했던 서랍, 
 
전투를 펼쳤던 바닥, 
 
무엇 하나 흔적도 남지 않은 장소입니다.
 
다비드는 이곳에서 약을 입수할 수 있습니다. 
 
다비드:(무슨 약? 여기저기 뒤적거린다.)
 
다비드:(의약용품들 주머니 한가득 챙겨간다. 옛날 기억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알전구가 켜지듯 반짝였다. 그것을 뒤로하고 옥상으로 향한다.)
 
옥상
 
활짝 열린 문, 옥상 난간에 기댄 리은이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 다비드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훨씬 오래전부터 다비드를 기다렸던 것만 같아요.
 
그의 등 뒤로 불길한 빛을 뽐내는 박스가 보입니다.
 
다비드:(시야에, 세상에 네가 가득 들어찼다. 입매가 산뜻한 호선을 그렸고, 가벼운 두 발의 방향은 올곧게 너에게로 향했다. 양자와 전자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그 단단한 유대에 기껍게 응하며 파장에 올라섰다. 이건 분명 영혼에 각인된 것이라 해야하지 않겠나.) ...기다렸지, 미안.
 
리은:(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가 몸을 난간에 슬며시 더 기대었다. 중심을 뒤로 하고 제 고개 살짝 젖히더니) 매번... 그대는 내가 기다린다고 하면 이리도 급하게 뛰어오더라? 그리고는 사과를 해. 거리도 꽤 있었을 텐데 이 정도면 빨리 왔잖아. (입 벌려서 입김 한번 내뱉었다.) 그대가 사과를 하면... 난 매번 이어서 말하지. (냉소적인 미소 그려내고 몸 바로 했다.) 어서 와, 그대. 이리 보니까 참 좋아. 이번에도 내 곁에 있어주려나? 라고.
 
다비드:(난간에 기댄 너를 보면 급한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네가 저 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나도 이렇게 보니 참 좋다. (이또한 진심이다. 미소에 화답하듯 눈을 희어 트렸다.)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수면 안드로이드도, 너도 죽는다고 하던데. 맞아?
 
리은:(손 잡히자 자연스럽게 돌려 빼내고 당신의 손목을 잡아냈다. 이렇게 하자.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매번 좋아하는구료. 뭐가 그리 좋다고. 기억도 다 난 것 아니오? 이후에 매번 내 손에 죽었으면서. (흠...) 그건 누가 알려줬나?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난 둘째 치고... 안드로이드들은 멈추겠소. 모두 중앙 관리 체제의 마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까. ... 그대가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수도록 순순히 내버려 둘 생각은 없어.
 
다비드:너도 좋아하면서? 좋다며? (아쉬운 소리나 해댔다. 붙잡힌 손목은 여의치 않은 채 시선은 여전히 네 눈을 향하고 있었다.) 미고가 알려주던데. 네가 죽였다던. 왜 안드로이드를 만들고자 한 거야?
 
리은:예전에는 그랬던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옛날이지. (툭, 잡았던 손목을 허공에서 놓았다. 끼고 있던 장갑을 고쳐서 꾸욱 눌러 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 냈다.) 아아, 미고가 또 허튼 짓을 했나보오. 얌전히 죽어주면 좋았으련만. 끝까지 귀찮은 짓을 해. (눈 굴려서 비스듬히 바닥에나 시선 둔다.) 첫째, 테러로 인하여 극단적으로 적어졌던 안전지대의 인구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둘째, 절망해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무너져서 쓰러진 인간들의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셋째, 이래저래 효율이 좋으니까. (하하,) 충분히 답이 됐나?
 
다비드:(그와 동시에 제 팔이 툭 떨어졌다. 미련스럽게 어깨에 붙어있는 꼴이 모순적이게도 제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없는데,)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어. 너는 내가 알던 리은이 아니며 나또한 네가 알던 다비드가 아닐 테지. 그럼에도 네 옆에 있고자 이렇게 왔는데... (물끄러미 바라봤다. 침체된 채다.) 그럼 왜 효율도 좋지 않은 '나'의 안드로이드를 만들었어? 너라면... 가짜라며 마음을 주지도 않았을 것을. ...아니면 그에게 마음이 갔어?
 
리은:있잖나, 그대. 10년이면 강산이 바뀌는데... 무려 100년이야. 나는 그대가 알지 못하는 100년을 지내온 이고, 그대도 내가 알지 못하는 100년을 지내온 이요. 이전과 같을 리가 없잖아. 내 곁에 있고 싶었다면 차라리 그때 이 세계와 함께 죽어주지 그랬소. ... 지금은, 너무 늦었어. (옆으로 걸어나가 시야에서 벗어났다. 별 말 없이 작게 흥얼거리며 야경 보고 있다가 발걸음 멈추었다.) 실로 불쾌하구료. 안드로이드로 만든 그대는 꽤나 쓸만했소. 실제로도 제 쓸모를 증명했고. 단지 그 뿐이오. 내가 마음을 줘? 하! (기가 차다는 듯 큰 소리를 냈다. 띄우고 있던 냉소마저 지워버렸다. 단정했던 미간을 구겨버리곤) 답지 않게 질투라도 하는 건가? 왜? 내가 그대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를 마음에라도 품었다고 하면 달라질 것이 있기라도 해?
 
다비드:이렇게 살아날 거란 생각은 못 했어. 나도- (운을 떼었다 도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네 앞에서는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한 말들이 몇가지 있었다. 송곳니로 입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비릿한 혈향과 알싸한 고통이 다시금 이곳,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붉은 입술을 떼었다.) 그래, 무려 100년이지. 그리고 지금 너는... 날 사랑해? (한걸음 멀어지면 다시 한걸음 내딛으면 되는 일이었다. 큰 소리 내는 모습에 이윽고 발을 멈추었지만.) ...내어줄... 생각을 했어. 네 곁을.
 
리은:인생은 본래 예상치 못하는 기적의 연속이라고 하지. 불가해한 시간을 헤쳐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느긋한 걸음을 이어가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어떤 말도, 행동도 않았다. 그저 당신의 소리에 못 박힌 것 마냥, 벽에 걸린 박제품 마냥 어떤 미동도 않았다. 잠잠하던 속에 파문이 인다. 파문은 거세어지고, 요동치며 그대로 거대한 헤일을 만들고,) ... 아, 그래. 나는... 나는 말이야. (목소리 끝이 떨렸다.) 나는... 네가 사라진 그 순간부터 단 한 순간이라도, 널 잊은 적도 없고... 사랑하지 않은 적도 없는데. ... 감정이 변질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씨앗 만큼은...지켜오며 나 자신의 마지막 파편만큼은 지켜왔는데. (입 꾹 다물었다. 까지고 붉어진 눈가가 더욱 달아올랐다. 아주 예전에는 네 생각을 하며 제정신을 유지하려 수백의 날들을 눈물 떨구며 지냈는데. 그런 모든 순간이 멍청함에 비웃음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나에게, 지금 뭐라고 했어?
넌 매번 내 심장을 수천갈래로 난도질하는구나.
정말, 넌 … 최악이야, 다비드 로템.
 
다비드는 리은를 공격하지 않고 쉴드를 부순 뒤 관리 체제에 열쇠 탄환을 꽂을 수 있습니다.
 
쉴드 파괴는 한 턴을 소모하며, 리은가 방해하므로 사격(라/산)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해 야 합니다.
 
열쇠 탄환은 RP 후 선언만으로 성공합니다.
 
다비드: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재앙을 기적이라 부를 수 없잖아. (멈추면 다가가서 그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멍청하게 네가 부서지는 모습을 말갛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재앙을 대비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헤일의 그림자는 두터웠고, 그림자를 온전히 견뎌내는 것은 작은 모래성이었으나, 그 사실을 본인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100년을 견디지 못한 정신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육체를 추억과 어제의 관성으로 겨우 이음매를 메꾸고, 이 세상을, 오늘을, 너를 모르는 이 영혼으로. 그리고 너 또한 100년을 살아왔다면, 그래서 네가 하나의 신념이 되어 파랑하는 숲을 이루게 되었다면. 나는...) ...최악이었구나, 내가. (새삼스레 그 말이 와닿았다. 그 무게가 버거워서, 땅이 흔들렸다. 덕에 비상은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너에게 추락했다. 
0.5%
제 것으로 네 입술을 가볍게 짓누르고, 0.1, 0.2, 0.3, 0.4, 0.5. 이후 깔끔하게 떨어졌다.) 나는 그저... 이제는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말에 모순이 있는 것을 알았다.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었다. 쉴드를 부수지도, 반격 하지도 않은 채 널 시선에 담기만 했다.)
 
리은:그리고 그걸, 신의 시련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변덕스럽기 그지 없는 이의 장난에 불과한 재앙 말이오. (제 손을 잡는 온기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뭐 하는 거람. 뿌리칠까 했으나 그대로 두기로 했다. 무엇을 하는지 보자는 심산이었을까.) 나는 허공을 부유하는 공기이고 싶었지, 땅에 묶여 살아가는 미물이고 싶지는 않았소. ... 그대는 날 이 땅에 잡아둔 유일한 사슬이었던 적이 있었기도 하여. (그러니 내 모든 것을 던져서 널 애착했다. 애착했었다. 지금의 자신의 속은 온통 검기에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으니 무엇을 품고 있노라 답을 할 수조차 없었기에 종장에는 침묵이다. 일그러진 관계의 틈에는 어떠한 빛도 들지 않나.) ...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러해. (예전의 저였다면 입에도 담지 않을 말을 쉽게 올리고, 마주 잡았을 손을 잡지 않고 있음이 이를 증명케 했다.) 나는 지금 오로지 이곳을 위해 살아가기에, 그대를 위해 남길 마음 한 켠이 없소. 그러니... (눈 떠서 제 입술에 닿아오는 온기를 마주한다. 눈 감을 새도 없이 떨어졌다.) 날 더 이상 화나지 않게 해주었으면 하오마는.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덤벼. 오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가겠어.
 
다비드:장난치고는 그 파격이 엄청나서 어찌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금이 가듯 날 선 언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침묵 짙게 앉은 종장에서 뒤늦게 어떠한 깨달음에 도달했다.) 그래서 신이라도 되고 싶었어? 부디 그러지 마, 은아. 낙원을 세우자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 그저 사랑하는 너와 영원과도 같은 찰나를 함께하는 것. 그게 나의 행복이자 낙원이야. 나 같은 미물에게 있어 영원이란 한 여름밤의 꿈같은 찰나였단 말이야. 영원히 깨지 못할 꿈이 아니라. 그런 건 죽음과 별반 다를 것 없잖아.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거짓된... 아니야? (그래도, 정말이지. 미물은 네 사랑을 먹고 이렇게나 몸집을 키웠어. 어느 한순간에는 감히 네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바랐을 만큼.) 네가 부유하는 공기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나 또한 날개가 될 수 없어. (일그러진 관계의 말로, 그 끝에서 하나의 대사를 마주했다. 그는 여전히 행복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건조한 웃음소리 따위가 두 사람 곁에 산재했다.) 최악이라 불러주어 다행이야. ...덕분에 마음이 섰어. 이제야 지긋지긋한 이 이야기의 결말을 낼 준비가 된 것 같아. (억지로 숨 들이켰다. 괴로운 듯 미소가 일그러졌다.) ...내게, 남길 마음이... 없더라도, 네가 진정 이곳을 위한다면... 여기서 끝내자. (네 손목을 잡고 이끌어 제 품에 안은 채, 난간에 몸을 느긋하게 기댔다.) 어서 와, 기꺼이 응할게. 이게 네가 바라는 거지? 
낙화
(기어이 총구를 푸른 실드에 향하고 방앗쇠를 당겼다.)
 
다비드:
사격:라/산
804016
7
극단적 성공
 
익숙한 발포음이 들려오고 리은이 급히 몸을 틀었으나 이는 무색하게 올곧은 직선을 그으며 날아갑니다.
 
쪼개지는 탄환,
 
찢어져 깨지는 쉴드.
 
둘의 머리 위로 푸른 전기의 조각들이 눈처럼 흩어져 내려옵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에서 리은의 희미한 중얼거림이 들려옵니다.
 
리은:너는, 기어코 나의 세계를 부수고 말아. ... 내가 지키려 했던 모든 것들이, 나의 속부터 부정 당하는 것처럼.
 
자, 마지막이 남았습니다.
 
중앙 관리 체제를 깨부술 시간입니다.
 
다비드:나에게 있어 너는 여전히 너야, 이 리은. 내 존재가 너의 세계를 부수고 널 부정한다면,... (열쇠 모양의 탄환을 라이플에 넣고 체제를 향해 다시금 방아쇠를 당긴다. 그 무게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하나는 끝을 보는 게 맞겠지.
 
관리 체제에 열쇠 탄환이 쏘아져 꽂힙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와 동시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던 리은의 정신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겨우 유지되고 있던 흔적마저, 모든 것이 헤일에 휩쓸려 무너지는 것처럼 빠르게.
 
동시에 잔잔히.
 
그는 다비드의 품 속에 무너집니다. 
 
다비드:(열쇠는 종막을 닫았을까, 새로운 서막을 열었을까. 지금의 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너를 힘주어 품에 끌어안고 난간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지막히 네 이름을 입에 담아본다.) 은아.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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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실패
 
다비드의 귓가에는 거세게 부는 겨울 바람의 속삭임만이 들려올 뿐입니다.
 
다비드:(눈 꾹 감고 다시 한번 귀기울인다.)
 
당신의 품 속에서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리은:어째서 그날 죽은 게 내가 아닌 너였을까. ... 대체 왜...
 
하늘 높이 걸려있던 체제가 멈추며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나의 별이 수명을 다해 아래로 추락하듯, 긴 조명이 꼬리처럼 달라붙습니다.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굉음과 함께, 주변으로 둥글게 바람이 퍼져나갑니다.
 
다비드와 리은의 옷자락과 머리카락 역시 크게 휘날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따스한 바람입니다.
 
그와 동시에 안전지대를 이루고 있던 하나의 가짜 세계가 부서집니다. 
 
화려한 조명이 흩어지며 검게 그을린 회색 벽이 드러나고, 관리 체제로 이루어진 것들이 붕괴합니다.
 
새하얀 빛이 번지며, 당신은 모든 것의 끝을 예감합니다.
 
리은은 다비드를 끌어 안습니다.
 
수명을 다한 리은 역시 빛에 휩싸여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깁니다. 
 
리은:고마워. 그대는... 정말 열심히 싸워줬어.
이거면 충분해.
그대는 내 하나뿐인 영웅이야.
 
안대가 끊어지고 그 밑으로 흉하게 일그러진 눈가가 보입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 아래에서 재회의 기쁨이 드러납니다. 
 
당신과 만나서 좋았어요. 
 
당신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다비드:(추위 없이는 온기를 이해할 수 없는 계절. 파랑하는 하늘 아래, 난간 하나 두고 회색의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버텼다. 인간의 명줄이 으레 그러한 것처럼.) 사랑해, 은아. (흔한 B급 클리셰 영화라면 이런 대사는 해야하지 않겠어. 다시 중얼거린다. 나는, 그리고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마지막은 웃어야지, 그러라고 했는데. 갈기갈기 찢기고 이리저리 뒤틀린 곳에서 지독한 서러움이 쏟아졌다.)
 
리은:(흐린 미소를 내걸었다. 이전과 같은 비소가 아닌, 이전에 자신이 당신에게 수 없이 지어주었던 애정이 담뿍 담긴 미소를. 상반되게 이 순간이, 그저 기꺼우며 기뻤다. 대체 무엇에 눈이 멀어버려, 품고 품어서 너무나도 소중해져버린 네게 상처를 주었나. 씨앗만이 남은 감정에서 피어난 꽃은 죄책감, 죄악감, 희미한 사랑.) 사랑해, 다비드. (마지막 숨 뱉어냈다. 이제 이 세계에 나라는 이는 없고, 너라는 이는 살아갈 것이다. 돌아올 봄은 함께 보지 못하겠으나 더럽혀진 죄인이 심판 받아 스러질 곳은 영원한 겨울이다. 그 사실로 저는 있지도 않은 위안을 받은 기분이다.)
행복했어. 행복해, 다비드.
 
그저 조용한,
 
아주 조용한 멸망만이 찾아옵니다.
 
리은은 이어진 말을 끝으로 사라집니다.
 
침식당해 괴로워하던 꼭두각시의 끈은 당신이 끊어주었어요, 
 
그는 이제 편안할 거예요.
 
빛이 완전히 사라진 뒤 드러난 것은 100년 전 테러 때문에 황폐해진 안전지대입니다.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검게 그을리고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 위로 새파란 것들이 하나둘 돋아납니다. 
 
응축된 마력이 제 자리로 돌아가고, 안전지대에는 100년분의 생명력이 넘쳐흐릅니다. 
 
곳곳에 꽃과 나무와 풀이 피어납니다. 
 
다비드의 발치에 핀 민들레가 따뜻한 바람을 타고 흔들거립니다.
 
엉망이 된 거리에는 가동을 멈춘 안드로이드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사람들도 보입니다. 
 
갑자기 멈춘 안드로이드를 끌어안은 채 패닉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정말 이 방법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잣대란 쓸모를 잃은 지 오래인걸요. 
 
부모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아이 하나가 떨어지는 분홍색 꽃잎을 주워듭니다. 
 
꽃잎은 다비드의 이마 위에도 한 장 내려앉습니다. 
 
자연스럽게 꽃의 출처를 찾던 다비드의 시선이 한 폐허 앞에서 머무릅니다. 
 
만개한 벚나무 아래의 시멘트 바닥에는 낯익은 얼굴의 사람들이 앉아있습니다.
 
카데르는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잠에 빠진 레드럼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립니다. 
 
살랑이는 바람에 연분홍색 꽃잎들이 휘날립니다. 
 
다비드를 알아본 그는 조금 웃습니다.
 
카데르:100년간, 깨어나지 못할 긴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 후회 없는 선택을 했나?
 
다비드:(감정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후회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카데르: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니냐의 선택도 후회 없었으리라 믿어. 그렇게 생각하면 홀가분해.
……어쩐지 굉장히 졸리군. 지금 잠들면 좋은 꿈을 꿀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카데르는 다비드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다비드는 이것이 잠시간의 단 잠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끝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인간이든 아니든 말이에요.
 
파트너의 손을 잡고, 눈을 감은 카데르는 다시 없을 만큼 안락하게 끝을 맞이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명을 다한 크리쳐의 편안한 죽음입니다. 
 
또 하나의 꽃잎이 살랑거리며 잠든 이의 콧잔등에 내려앉 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죽지 않기 위해 싸워온 이들이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지 않나요.
 
삶이라는 긴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는 것은 곧, 
 
더는 바라지 않을 만큼 행복하다는 것,
 
혹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다음이 궁금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도 분명 행복할 것을 확신하고 눈을 감는 것.
 
많이 힘들었나요,
 
지금까지의 모험담을 돌아볼까요. 
 
돌아보면 거칠고 고된 싸움이었지만, 당신의 발자취는 한평생이라는 기나긴 시간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부 다 읽어냈다고 책을 덮기 에는 가장 중요한 ‘결말’이 남아있잖아요?
 
언젠가는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예요. 
 
굳이 100년의 세월이 흐르지 않아도,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내려두고 죽음에 몸을 맡기는 날이. 
 
가장 아름다운 결말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미사여구가. 
 
험한 길이라 해도 조금 더 걸어갑시다. 
 
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았습니다.
 
아직 이 세상에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걸요. 
 
그러니 조금 더 살아볼까요. 
 
분명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이 세계가 더는 클리셰 SF 세계관이 아니게 된다고 하더라도, 
 
잊지 마세요. 
 
이 진부한 이야기를 빛낸 것은 당신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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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드는 추락한 중앙 관리 체제를 회수하기 위해 안전지대 중심부 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움푹 팬 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비드:(붉은 눈가 문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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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다비드의 시야 안에 무언가 들어옵니다.
 
새파랗게 돋아난 잔디 위로, 무언가가 질질 끌린 자국입니다.
 
그 자국을 따라 걷는다면, 둔탁한 끌린 흔적에 불과하던 것은 50m쯤 지나자 어느덧 사람의 발자국처럼 모양이 변합니다.
 
그 발자국의 끝에는,
 
등을 돌린 사람 하나가 땅을 짚은 채 주저앉아 있습니다. 
 
익숙하기 그지 없는 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이는 천천히 다비드를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지나치게 긴 머리카락은 오른쪽 눈만을 드러내고 있으며, 드러난 심장 부에는 열쇠 모양 탄환이 꽂혀있습니다. 
 
신체 일부에서는 고압의 전류 가 흘러 곳곳에 청색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의 귓가에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던 미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다비드와 같은 색의 눈에 다비드를 담은 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파트너와 똑같이 생긴 그가 천천히 입을 엽니다. 
 
그 순간,
 
다비드는 진부하게도 세상이 멈춘 듯한 감각을 느낍니다. 
 
그는 교과서를 읽듯 또렷하고 기계적인 어조로 말합니다.
 
?:인사하겠습니다.
 
괴물이라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이며,
 
?:저는 구 방주이며
 
기계라기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구 중앙 관리 체제입니다.
 
인간이라기엔 지나치게 끔찍한 존재.
 
?:이 리은이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아니게 된,
 
사람이었던 것들.
 
우리는 그것을 크리쳐라고 부릅니다.
 
오염되고 일그러진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살아 숨 쉬고 있어. 
 
끝까지 맞서 싸운 누군가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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