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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 다비드 로템 & 이 리은 - 티타니아와 춤을

by 시크 (SYK) 2023. 12. 22.

KPC PC
다비드 로템 이 리은
시나리오 시나리오 링크 END
티타니아와 춤을 https://dear-heresy.postype.com/post/3146494 2
플레이날짜 플레이타임 트리거 요소 (드래그로 확인)
2023년 12월 21일, 22일 8시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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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음악이 흐릅니다.
 
낯설기 짝이 없는 멜로디지만 어쩐지 애틋하고, 아련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어디서부터 들려오며, 누가 들려주는, 누가 듣고 있는 곡조인가요?
 
파도에 떠밀리는 것처럼,
 
귓바퀴를 맴도는 소리를 따라 정신이 좌우로 흔들립니다.
 
아득하니 멀어졌다가,
 
선뜩하니 가까워졌다가.
 
시작도,
 
끝도,
 
정체도,
 
의미도 알 수 없는 노랫소리의 끝에서……
 
다비드 로템:은아,
 
익숙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당신을 부릅니다.
 
아, 다비드.
 
눈을 뜨면, 두 사람은 연회장의 문가에 서 있습니다.
 
손을 내민 그는 노래하듯이, 즐거움에 겨운 목소리로 묻습니다.
 
다비드 로템:춤, 추지 않을래?
 
다비드의 얼굴이 아주 가깝습니다.
 
코앞까지 다가온 다비드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왠지 모를 낯섦이 먼저 고개를 듭니다.
 
다비드가……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요?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노안은 아직 안왔군. 저 얼굴 구경해야 하는데 오면 곤란하지.)
 
무언가 다릅니다.
 
평소와 다르게 느껴집니다.
 
위화감의 출처가 무엇인지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시선이 마주칩니다.
 
눈도,
 
코도,
 
입술도 모두 다비드가 분명한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요?
 
이 리은:(홀렸군, 홀렸어. 아주 단단하게도 홀린게요.) 잘생긴 청년. 춤 추기 전에 고개 이리 가까이 가져와 보시오. 감상 좀 해야 쓰겄어.
 
다비드 로템:뭐? (멋쩍게 웃더니) 너도 예쁘다고 하면 돼? (어색하게 발음하며 네 쪽으로 한걸음.)
 
평소라면 입지 않을 야회복.
 
다비드 로템:한 번뿐인 프롬 파티니까 신경을 좀 썼는데... 괜찮다면 다행이야.
 
프롬 파티?
 
그제야 자신의 차림새 또한 눈에 들어옵니다.
 
다비드와 엇비슷한 야회복을 차려 입은 상태로,
 
손목에는 꽃을 한 송이 달고 있습니다.
 
다비드 로템:코사지... 마음에 들어?
 
이 리은:코사지? (제 손목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요거 무슨 꽃이더라... 다비드가 준 것이던가?)
 
 코사지
 
옅은 보라색을 띠는 화려한 꽃송이.
 
꽃잎은 하트처럼 끄트머리가 둥글게 갈라졌고,
 
채 다 피어나지 못한 꽃송이의 모양새가 꼭 심장처럼 보입니다.
 
이 리은:
자연
기준치: 10/5/2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얼핏 보니 장미를 닮았군요.
 
이 리은:(입술 삐쭉)
 
다비드 로템:마음에 안 드는구나 (시무룩)
 
이 리은:잉? 무슨 소리요! 이렇게 예쁜 꽃이지 않소! 아유, 아은이는 너무너무 마음에 드오. 그냥 무슨 꽃인지 몰라서 얄팍한 내 지식에 감탄을 하던 중이었을 뿐이외다! 우리 다비드 안목이 참 대단해. 아주 어여쁘고 내 마음에 쏙 드오. (교수님들께 하던 필살 아부...)
 
다비드 로템:(금새 또 웃는... 단순한...) 그러면 다행이지. 나도 무슨 꽃인지는 몰라. (몸 숙이고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구경은 다 했어?
 
이 리은:이런. 물어보려고 했는데 모른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소. (가면 뒤에서 눈 맞추고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고 있다가 그대로 약하게 누른다.) 제대로 구경을 하려면 하루 반나절은 꼴딱 넘어가게 생겼으니 지금은 이만 하겠네. 다른 이들이 보고 홀딱 빠지면 많이 곤란하지만... 오늘은 봐주지.
 
다비드 로템:(볼에 온기 닿으면 눈 지긋이 감는다. 한 손 들어 네 손을 맞잡았고,) 네가 골라준 옷이잖아. 나한테 제일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이 리은:(만족스러운 듯,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간다.) 옷이 날개라고는 하나, 옷이 없어도 천하일색임은 틀림이 없소. 이렇게 보니 아주 하늘에서 오신 낭군이구료. 잘 어울려. 역시 안목이 좋군, 이 리은. (후후, 셀프 칭찬)
 
다비드 로템:나 조금 부끄러운데... (양뺨에 옅은 홍조 띄운다. 되돌려줄 고운 말을 알지 못해 아쉬울뿐이다.) 리은은 안목도 좋고... 그 외의 것들도 수려하지. 이 장소가 너를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면, 연회장의 문가입니다.
 
투명한 유리를 세밀한 각도로 깎아 빛을 떨어뜨리는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화려하게 빛납니다.
 
천장에는 커다란 벽화가 빈틈없이 그려져 있고,
 
바닥은 반질거리는 대리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벽을 따라 긴 테이블이 서 있고,
 
색색의 음식이 지나가는 이를 유혹합니다.
 
샹들리에 아래의 댄스 플로어에선 벌써 몇 쌍이고 손을 잡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군요.
 
다비드 로템:이제 춤 추러 갈까?
 
당신이 주위를 살펴보느라 정신이 팔리면 다비드가 다시금 묻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언제 도착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파티라곤 하나도 알 수 없건만,
 
다비드는 개의치 않고 웃을 뿐입니다.
 
이 리은:(슬며시 손 내려서 당신의 손을 잡아냈다. 머리가 부연 것이 안개 속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다.) ... 그러지. (치맛자락 제 손에 잡아내고) 잠이 덜 깬 모양이야. 이러다가 임자의 발을 작살나게 밟아대면 어쩔꼬.
 
머리속이 흐릿합니다.
 
이 리은: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홀의 음악 소리가 귓가로 파고듭니다.
 
부드럽고 잔잔한, 마음을 흔드는 피아노 곡조입니다.
 
아, 이런들 저런들 모두 상관없는 일이에요.
 
눈앞의 다비드가 이토록 완벽한 모습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걸요.
 
이곳까지 오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 같단,
 
막연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우리, 춤을 출까요?
 
다비드 로템:아? (다시 한번 웃는다.) 아니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 걸지도. 너 답지 않게 말이지...
 
그러며 다비드는 언제 쥐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빈 잔을 가로챕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샴페인 잔은 뜨뜻미지근해서 존재감이 없습니다.
 
달큰한 술 냄새가 백일몽처럼 코끝을 스칠 뿐.
 
정말 술을 마셨던가, 입안이 달달한 것 같기도 하고.
 
마셨다면 역시 겨울의 추위를 잊기 위해서였을까요.
 
온통 희미한 기억들로 머릿속이 흐릿합니다.
 
다비드의 말대로 취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다비드가 다시 손을 내밉니다.
 
파트너 신청의 정석대로,
 
다비드 로템:이 리은 양, 한 곡 추시겠어요?
 
허리를 숙이며.
 
다비드의 등 너머로 커다란 창이 보입니다.
 
눈이 내리지는 않지만,
 
퍽 추운지 한껏서리가 맺혀 있습니다.
 
이 리은:(가면 밑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돌아왔다.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다가 손 위에 제 손을 올린다. 정석 그대로 돌려준다. 한쪽 드레스 자락을 잡고 살며시 무릎 굽혀 숙였다.) 제 춤 실력이 신사분께 폐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요. 신발에 철판은 넣고 오셨을까요? (발을 열심히 밟겠다는 무언의 암시와 놀리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다비드 로템:(손을 맞잡으면 제쪽으로 이끌더니 네 장갑 위로 입술 잠깐 맞추었다 떨어졌다. 엄지로 한번 쓸어 흔적을 지웠고. 다시 허리 피고 너 내려다본다.) 신발에 철판 넣고 왔으면... 네 발등이 가루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데. (마찬가지로 네 발을--의도치 않게--열심히 밟겠다는...)
 
이 리은:(옅은 홍조 떴다가 당신의 말에 웃음소리 터뜨려 내었다. 다른 쪽 손으로 당신의 팔을 톡 치더니) 한 명은 신에 밟히고 한 명은 힐에 밟히게 생겼구료. 나란히 병동에 가겠소, 아주. 차라리 날 그대 발등에 올리고 추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다시 농담이나 하고는) 갈까, 임자. 발등 데-스 매치 하러. (깔깔!)
 
다비드 로템:(픽...) 그러면 우리 둘다 같이 넘어지겠지. (네 손을 잡고 천천히 댄스 플로어로 향한다.) 가자, 발등 매치... 데스까지는 안 가려고 노력해볼게. 생에 단 하나뿐인 프롬 파티인데 병동에 누워서 보내버리면 아쉽잖아.
 
두 사람은 천천히 댄스 플로어로 나갑니다.
 
때마침 새로운 곡이 시작되었네요.
 
경쾌한 박자, 발랄한 음계. 왈츠입니다.
 
퍽 익숙한 멜로디군요.
 
이 리은:
예술 Roll
기준치: 40/20/8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노래는 알지만 춤은 모른다. 하하, 큰일났군.)
 
아는... 노래였나?
 
클래식이란 하나 같이 비슷하게 들리니까요,
 
무슨 곡인지 몰라도 어쩔 수 없죠.
 
박자에 맞추어 걸음을 옮깁니다.
 
어깨를 감싼 손과 허리를 끌어안는 팔,
 
익숙하게 스텝을 밟는 구두 굽 소리,
 
시샘 추위에 파르라니 떠는 꽃잎처럼 활짝 펼쳐지는 드레스의 치맛자락……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낭만적인 순간입니다.
 
다비드의 뺨은 발그레하니 달아올라 있습니다.
 
이 리은:(이리은의 처첨한 교양... 속에서 피어난 꽃다운 사내. 이런 생각이나.) 그대, 무도회 좋아하오?
 
다비드 로템:나? 이런 곳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지금까지는 좋은 것 같아. 넌?
 
이 리은:임자가 좋다면 그것으로 다행인 것이지. (끔박.) 눈이 호강하니 좋긴 하구료. (당신에게나 시선 두고 있다가 그제서야 내렸다.) 사람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기가 빨리긴 하지마는.
 
다비드 로템:호강? (네 말에 주위 힐끔. 아름다운 곳이긴 하지, 그리 중얼거리며.) 그래도... 사람들이 많으니 더 들뜬 분위기이지 않니. 무엇보다... 지금은 다른 걱정이나 잡념은 잠깐 내려놓고 취기따위에 몸을 맡겨도 괜찮으니까.
 
샹들리에의 빛 망울이 머리 장식에 부딪혀 찬란하게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품 안에 가까이 닿은 몸은 지나치게 따뜻해서 떼어 놓기 싫을 지경입니다.
 
한껏 기분 좋은 감각에 취해있는 사이,
 
이 리은:
민첩
기준치: 40/20/8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이 한 바퀴 턴을 할 차례가 찾아왔습니다.
 
겨우 떼어놓고 팔을 들자 당신이 빙그르르 돕니다.
 
정신 차리지 않았다면 발을 밟을 뻔했군요.
 
이 리은:(흠. 파트너의 발은 내가 지켰다.) 구태여 반짝이고 고급진 곳이 아니라고 해도... (말 끝 흐리다가) 일순의 도피는 달콤하기 그지 없는 법이지 않소? ... 잠깐은 괜찮겠구료. (가지고 있던 걱정들을 내려 놓았다. 피곤하기 그지 없던 하루하루의 생각이나 이후의 것들을 머리 속에서 지워내고) 정말 취하면 곤란하긴 하지만.
 
음악을 따라 봄의 꽃잎처럼 흔들리기를 여러 번,
 
어느새 다비드와 당신은 자연스럽게 궤도에 오릅니다.
 
익숙한 춤이에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비드와 함께했던 것처럼……
 
어째서일까요?
 
춤을 연습한 기억이라곤 전혀 없는데.
 
이 리은: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봄을 닮은, 
 
사랑스러운 피아노 곡조를 따라 다비드는 햇살을 담뿍 받은 것처럼 환하게 웃습니다.
 
다비드가 이토록 사랑스러웠던가.
 
이토록 환하게 웃었던가.
 
이토록…….
 
기분 좋은 괴리감이 뇌를 절입니다.
 
뭐어,
 
어찌 됐건 형편없는 실수를 하지 않아서 다행인 것 아니겠어요?
 
다비드 로템:만약 이대로 영원히 도피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 (네 손 높이 잡고 한바퀴 빙글 돌린다. 시선은 여전히 네게 꽂힌 채다.)
 
이 리은:(손에 이끌려서 가볍게 빙글 돌았다. 질문의 답을 잠시 유보했다가,) 이건 반대로 묻지. 임자는 내가 무언가에서 도망칠 것 같은 이로 보이오?
 
다비드 로템:(본래 밟았던 스텝을 다시 한번 내딛고 네 허리를 붙잡는다.) 전혀.
 
이 리은:(제 허리 감싸는 손길 느끼며 당신의 팔에 제 손 올려둔다.) 잘 아는군. 영원히, 라는 단어가 붙는다고 하여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소. 힘든 일에서 잠시 고개를 돌리는 것은 좋으나, 어떤 것이든 완전히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아오.(끔박.) 그러는 임자는 영원히 도피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할 거야?
 
다비드 로템:(앗차, 하는 순간 발을 헛딛는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으나 민망한 표정되어 너 바라본다.) 그러면 나도 똑같이 질문하고 싶은걸. 내가 도망칠 것 같아? (뜸...) 순간순간 도망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이 리은:(순간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몸에 힘을 꾹 주었다. 놀랐잖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약간의 투정과 함께 놀림을 담아보고) ...아니. 내가 봐온 그대라면 도망칠 이는 아니오. 도망치고 싶어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이잖아. 그래서 좋아해.(작게 속삭였다.)
 
다비드 로템:(미안, 속닥이고 손에 힘주어 널 제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았잖아.) 그러면 도망치지 않겠지. (이어진 속삭임에 눈동자 조금 커졌다. 예상 못했다는 것 마냥.) 나도... 좋아, 그래서.
 
봄을 닮은 왈츠곡은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아주 오래도록 이어집니다.
 
원래 이토록 긴 곡이었던가요?
 
아니면 다비드와 함께라,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연주가 계속될수록 댄스 플로어에 꽃향기가 가득히 차오릅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향긋하고 쌉싸래한 향기.
 
어디선가 맡아본 것 같은 향이군요.
 
이 리은:
자연
기준치: 10/5/2
굴림: 47
판정결과: 실패
(맹)
 
봄이 찾아올 때면 종종 맡을 수 있었던,
 
익숙한 내음.
 
꽃향기를 따라 고개를 들면,
 
다비드의 어깨 너머로 다시 커다란 창이 보입니다.
 
아까 보았던 그 창입니다.
 
흰 격자 창틀 사이로 꽃송이들이 만개했습니다.
 
작고, 부드러운 분홍색을 띤……
 
백매입니다.
 
겨울밤 특유의 차디찬 서리로 가득했던 창의 정경은 어느새 꽃이 만개한 봄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가지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조차 따뜻한 색으로 물들어 있군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변동 없습니다.
 
이 리은:(익숙한 내음에 고개 들자 동시에 눈동자가 작아진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서리가 끼어 있지 않았나? 그 날씨에 백매? 겨울이 다 지났다고?) ... 내가 확실히 취한 것 같긴 하오. 이러다가 픽 쓰러질지도 모르겠소. (춤을 추고 있지 않았더라면 발딱 일어나서 벽에 제 머리를 박아 정신을 차리려 했을지도 몰랐다.) 쓰러지면 알아서 병동에 넣어 주어.
 
다비드 로템:흠? (네 표정을 보면 고개 기울어진다. 다만, 그 무엇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저 이 순간에 존재하고, 즐기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결국은 여상하게도 웃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거라니까.
 
다비드가 태평하게 말을 끝맺는 순간,
 
때마침 음악이 멎습니다.
 
다비드 로템:이제 내려갈까?
 
이 리은:(창을 다시금 힐끔 보았다가 제 가면의 미간께를 꾹 눌렀다. 파악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지 않았기에 스물스물 이상한 예감이 올라온다. 누가 마법이라도 부렸나. 기분 좋은 시간에 이게 대체.) ... 그러지. 창이 잘 보이는 곳에 잠시 앉아있고 싶소. 힐 신고 춤을 추니 발이 비명을 지르오.
 
춤을 추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군요.
 
다비드의 부축을 받으며 댄스 플로어를 내려와,
 
홀의 가장자리로 벗어나면 긴 테이블에 가까워집니다.
 
테이블 위에는 색색의 요리가 가득 쌓여 있습니다.
 
중앙의 커다란 케이크가 유난히 눈에 띄는군요.
 
잠깐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이 리은:(헤............. 맛있겠다....... 배고픈 커비의 눈이 되다)
 
피망 수프와 나초,
 
치즈를 깍둑 썰어 넣은 큐브 샐러드,
 
연어크럼블 스테이크에 치즈를 뿌린 올리브 파스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라즈베리 파이,
 
설탕을 듬뿍 넣은 레몬 절임과 콩 스테이크,
 
버터를 발라 구운 감자, 코코넛 쿠키,
 
시금치를 반죽에 섞은 탓에 초록색 빵과 발사믹 소스,
 
토마토 카프레제, 치즈 수플레, 전복구이, 토마토 수프,
 
치즈 라비올리 라자냐와 립 아이 스테이크, 바닷가재 그릴,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 젤리……
 
한 입씩 먹더라도 전부 먹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입니다
 
테이블을 훑어보다 보면 문득 깨닫습니다.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먹을 것에 정신 팔렸다)
 
음식이 하나 같이 맛있어 보인다는 것을요.
 
요리사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다비드 로템:배고파? (음식 하나씩 집어 접시에 덜어서 네게 건네준다.)
 
이 리은:... 두 입 먹으면 입고 있는 옷이 숨통을 조일지도 모르겠소만... (허리 감싸며 조이고 있는 제 옷자락을 쓸어 내렸다.) ... 고맙소. (바닷가재를 포크로 찍어서 천을 슬며시 들어냈다. 옷이 터지고 나발이고 일단 먹고 싶은 것을 어찌 참아? 입에 쏙 넣고 헤헤...)
 
바닷가재는 아주 훌륭한 맛입니다.
 
아주...
 
차갑다는 점을 제외하자면요.
 
그제야 당신은 깨닫습니다.
 
파스타 그릇에도 얼음을 띄웠고,
 
스테이크 따위의 고기도,
 
구운 채소도 전부 서늘한 온도입니다.
 
디저트도 마찬가지예요.
 
이 리은:... ... ... 음식은 따뜻하게 막 나왔을 때가 가장 맛있는 법이라고 하였거늘. 하여간에... (떼잉 쯧!) 사람의 몸은 차가운 것이 들어가면 탈이 나는 법이거늘. (그대로 포크 내려 놓았다. 투정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몸 상태가 잼병인데 여기서 배탈이라도 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비드 로템:음식 남기는 건 또 처음 보네. (아무렇지도 않게 스테이크 조각 입에 욱여 넣고 있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니야?
 
이 리은:... 차갑지 않소? 난 차가운 음식 먹으면 쉽게 탈이 나. (투덜거리며 포크로 음식들을 톡톡 쳤다.) ... ... 아픈 것 보다는... 코르셋이 조여서 먹기 힘들다는 이유로 하지.
 
다비드 로템:차가운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여름이잖아.
 
다비드는 태연하게 창밖을 가리킵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창밖을 내다보면 매화꽃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시들었습니다.
 
꽃잎도, 꽃향기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홀을 가득 채우는 것은 향긋한 음식의 냄새들뿐이고……
 
창가에 드리운 나뭇가지에는 녹음이 푸르릅니다.
 
새파란 이파리가 흐드러진 사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지 창밖은 유난히 고요합니다.
 
계절이 이렇게 한순간에 바뀌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다비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신을 바라봅니다.
 
다비드 로템:덕에 여름밤치곤 후덥지근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디저트도 못 먹을 것 같아? 케이크 멋져 보이던데...
 
아, 케이크.
 
유난히 눈에 띄던 것을 떠올립니다.
 
커다란 케이크는 레드 벨벳.
 
붉은 빵과 하얀 크림치즈가 어우러진 달콤한 것입니다.
 
산타의 옷자락을 닮은 그 케이크는 무려 3층이나 되는데,
 
제일 위에는 작은 산타 인형이 앉아 있습니다.
 
여름이라더니, 웬 크리스마스 케이크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케이크 위의 인형을 자세히 보면, 산타가 아님을 금세 알아챕니다.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의 인형은 산타 모자를 쓰지도,
 
붉은 옷을 입지도, 선물 상자를 안고 있지도 않습니다.
 
대신 화려한 의자에 앉아 권태롭게 케이크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다비드가 케이크의 아랫단을 한 조각 잘라 내밉니다.
 
접시 위의 케이크는 유난히 붉고 촉촉합니다.
 
다비드 로템:정말 안 먹어?
 
이 리은:(기분이 도통 좋지가 않았다. 본래라면 바보 같은 웃음이나 지으며 농담이나 던지고 있을 때건만. 물끄러미 케이크를 바라보다가 접시를 받았다.) ... 한 입 정도라면. (시선은 케이크가 아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일전의 기억은 흐릿하다 못해 없고 순식간에 계절들이 지나간다고?) ... 꿈이라도 꾸나, 싶어서 현실감이 없구료.
 
이 리은:
기준치: 70/35/14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주위를 살피며 포크로 케이크를 뒤적이는데,
 
그 안에서 작은 카드가 한 장 나옵니다.
 
이 리은:
예술 Roll
기준치: 40/20/8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오베론이라는 사람이 티타니아에게 고백하려고 했던 걸까요?
 
이벤트를 망쳐버린 걸지도 몰라요.
 
다비드 로템:맛있네. (어느새 제 몫의 케이크 가져와서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이 리은:(케이크 가만히 보다가 탁자 위에 내려두었다. 이제는 하다하다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치네. 익숙한 이름들에 골이 다시 울려왔다. 그래도 즐겨야 하니까. ... 그게 예의지.) 임자. 나 한 입 주게. 아~. (들뜬 목소리나 꾸며내며 당신 옆에 착 붙었다.)
 
다비드 로템:(네 속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새 포크로 케이크 크게 떠서 네 입에 넣어준다.)
 
이 리은:(케이크나 오물오물 씹어냈다. 가면을 쓰길 잘했지.) 이거 괜찮구료. 썩 나쁘지 않아서 혀도 즐겁소. 냅다 한 층 전부 입에 넣고 싶은 기분이외다. (진짜.)
 
다비드 로템:진짜? 넣어줄까? (응하면 당장 케이크 윗단 통째로 들어올릴 셈인지.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한다.)
 
이 리은:례? (급하게 당신의 팔을 잡았다.) 자, 자기야아...~. 지금 은이 그렇게 많이 모, 못 먹는데에...~? 나, 나중에 먹자. 응? 나중에!
 
다비드 로템:응? (깜박.) 나중에,... (포크랑 접시 정리한다.) 그럼... 잠깐 같이 게스트룸으로 가줄래? 소화도 할겸. 넥타이도 풀린 것 같아서 차림새를 가다듬으려고.
 
게스트룸은 멀지 않습니다.
 
복도를 나가 우측으로 꺾은 뒤 한 층을 올라가면 그만입니다.
 
어떻게 알고 있더라,
 
묻는다면……
 
글쎄요.
 
이 리은:(속으로 빠르게 숨 쉬었다. 예상 못할 행동을 한다니까! 아주 귀엽군.) 그러지. 그러니까... 게스트룸이... 요기. (우측으로 꺾어서 한 층을 올라가면... 중얼거리다가 좌측으로 꺾었다.)
 
다비드 로템:어디 가 (총총) 거기 막다른 길이야...
 
이 리은:... 나, 나도 아오. (슬며시 자연스럽게 돌아서 당신의 뒤에 붙어서 걸었다.) ... 모르는 척 좀 해봤소. 사람이 완벽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지.
 
다비드 로템:(좀 웃음) 가만보면 인간미가 있다니까...
 
다비드의 웃음소리와 동시에 창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여름이 가득한데 눈이 내립니다.
 
눈이,
 
눈이 내립니다.
 
온통 이상한 일 천지입니다.
 
이 리은:캬... 세상이 망해가는구료. 아주 지구에 망조가 들었어. (창 밖을 보다가 미간 찡그렸다.) 한 여름에 눈이 오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
 
다비드 로템:넌 무슨 세상이 망한다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등 콕.) 그... 환경오염? 기후변화? 그런걸지도.
 
이 리은:그게 세상에 망조가 들었다는 소리지. (이잉 간지러어) 꿈 아니면 세상이 망한 것이니 망한 세상에 임자랑 있을 수 있음에 기쁨을 느끼오. (손 팔랑팔랑)
 
다비드 로템:말은. 너 세상 다 망했는데 나랑 단둘이 살 수 있겠어? (빤)
 
이 리은:(어깨나 으쓱 했다가) 세상이 망했으면 내가 이룰 목표도 없어지지 않겠소? 챙길 이가 없다면... 임자랑 단 둘이 살아도 나쁘지 않겠구료. 인간은 어떤 세상이든 살아갈 방법을 찾소.
 
다비드 로템:이룰 목표가 뭔데. (눈 여러번 깜박인다. 와중에 부지런히 발걸음 옮겨 게스트룸에 도착했고.) 그 말은... 듣기 좋네. 서로에게 유일해지는 거잖아. ...네가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된 거면 별로인가?
 
이 리은:흠... (주변 휘휘 살피다가) 내 근처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그리 간단하게 답했다.) 서로에게 유일한 것이 좋아? ...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 된 것이면... (눈 굴리다가) 글쎄. 원하지 않은 상황이 무언지에 따라 다르겠소마는. 예를 들어서?
 
환담을 나누며 게스트룸으로 들어섭니다.
 
게스트룸은 단출한 구조입니다.
 
작은 책상 옷장
 
둘이 눕기에 약간 좁은 침대가 있습니다.
 
창은 보이지 않네요.
 
다비드 로템:하기야... 망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어렵지. (중얼대며 침대에 누웠다. 손 들어 빈 손가락이나 바라보고,) 응, 그게 좋아. 서로에게 소유되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흠, 글쎄. 일단 세상멸망이라고 하면 보통 원하지 않는 상황이지 않아? (아니면 그런걸 바라냐고, 시선 맞춘다.) 그랬는데, 어쩌다보니 우리 둘만 살아남은 거야. 천운으로.
 
이 리은:내 인생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에서 바뀔 일은 없겠소.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제 가면을 벗어냈다. 작은 숨 내쉬고 책상에 시선 두어본다.) 대체할 수 없는 이, 라고 하면 만약... 그 이가 사라지면 대체할 수 없는 구멍이 생기는 것 아니오? 함께 끝까지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마는... (난 어쩔 수 없이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게 되는 이라서. 말 삼킨다.) 세상의 멸망을 바라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는 답하겠소. 난 많은 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이니까. (제 입술에 손 대려다가 의식하고 그만두었다. 흰 장갑에 립이 묻어나면 곤란하니.) 그럼 난 무엇보다 기쁘겠는데. 그대랑 내가 함께 살았고, 함께 살아갈 생각이 있다는 것은 기적이지 않나.
 
다비드 로템:다행이네, 나도 네 행복을 바라거든. (다시 손 내리고 눈 감았다. 어차피 다들 파트너끼리 어울리느라 바쁜데 조금만 쉬다 가자며.) 그마저도 기껍다고 하면 화낼테야? 타인에게 내 형태를 본 딴... 대체할 수 없는 구멍이 생기는 것 말이야. 아, 구멍이 생기면 더 이상 행복해지지 못하는 건가? (어렵네, 말끝을 흐렸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먼저 정의했어야하나... (뒷말에는 웃기나 했다. 또한 기쁘다는 것 마냥.) 멸망을 맞이해 우리 둘만이 남은 세상은 더이상 화려하지 않고, 따뜻하지도 않으며... 매일 마주하는 건 과거의 잔재 따위나 상처뿐일텐데도?
 
다비드는 당분간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책상
 
서랍 두 개가 딸린 작은 책상.
 
책상 위에는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몇 권과 잡지 따위가 널려 있습니다.
 
꽃병에는 파란 꽃이 꽂혀 있군요.
 
이 리은:서로의 행복을 바라는 것만큼 행복은 없소. (편히 쉬라며 슬며시 자리 피했다. 책상 앞으로 가서 파란꽃을 시선에 담는다. 파란색 꽃이라.) 사람마다 다르겠으니 화를 낼 생각은 없소. ... 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마는. ...나는 무언가의 특별하고 유일한 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냥... 소중한 무언가 중 하나가 되고팠어. 없어지더라도 다른 소중한 것들로 가려질 수 있는 것 말이오. (그래야, 끝까지 행복하지. 그리 중얼거리다가) 이런. 그대야, 내 그대. 나는 탐욕이 많은 이요마는, 화려한 것보다, 따뜻한 것보다 하나의 사람이 더 좋소. 과거의 잔재와 상처가 있음에도 그것은 사람이 낸 것이며, 그러한 상처들은 모두 사람으로 치유가 되거든.
 
옅은 보랏빛을 띠는 하늘색의 작은 꽃송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풍성한 꽃송이가 퍽 볼만하군요.
 
파란 수국입니다.
 
흰 방과 흰 가구 사이에서 시선을 잡아끄네요.
 
이 리은: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멍청...)
 
수국의 개화 시기가 언제였더라.
 
아마 6월, 혹은 7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흐릿하군요.
 
이 리은:(수국 꺼내어 이리저리 보았다. 제 머리 위에나 올려두고 흠.) ... 본가에서 수국 머리를 따, 호수 위에 띄워 두었는데... (중얼거리기)
 
다비드 로템:없어지면 다른 소중한 걸로 가려질 수 있다는 게 어떻게 소중한 걸 수가 있어? (고개만 슬쩍 들어 바라본다.) 지금은 네가 호수가 된 모양이군.
 
이 리은:소중한 것이 여럿이면 사람은 쉬이 잊어버리더구료.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는 것이지. 이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과거는 바뀌지 않고... 사람은 과거를 태워 현재를 살아가지 않나. (똑같은 거야. 라며 한 바퀴를 빙글 돌아보았다. 잡지를 팔락이며 본다.) 호수 같이 잔잔한 마음을 가진 이는 아니오마는,... 뭐어 듣기는 좋소.
 
프롬에 관련된 팁이 여럿 적힌 하이틴 잡지입니다.
 
이 리은:
자료조사
기준치: 75/37/15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
 
딱히 눈에 띄는 구절은 없습니다.
 
이 리은:(아찔하다.)
 
다비드 로템:하지만 현재도 언젠가는 과거가 돼. (침대 위에서 뒤척이다 네게 등 돌리고 누웠다.) 결국 모든 것은 태워져서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면 좀 슬프지. ...누가 호수에 돌이라도 던졌나?
 
이 리은:그럼 또 다시 과거를 등지고 현재를 살아가겠지. 단지 그것 뿐인 인생이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고. (잡지 다시 꽂아둔다. 이런 것을 쓰는 잡지 회사는 뭐 하는 곳일까, 따위나 생각하며 책 살폈다.) 아무래도 잘 모르겠군. ... 돌 던져대던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닌 듯 싶소마는. 덕분에 파문이 잘 일어나오.
 
여러 가지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한여름 밤의 꿈’,
 
‘맥베스’와 ‘햄릿’.
 
……
 
소설책이군요.
 
분량이 상당해서 다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이 리은:
예술 Roll
기준치: 40/20/8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모두 셰익스피어의 작품입니다.
 
유명한 작가이니 모를 수 없죠.
 
다비드 로템:그또한 틀린 말은 아니지. (몸 일으켰다.) 내가? (멍청하게 되묻는다.) 미안...?
 
이 리은:(제 멍청함에 이마나 문지르다가 책들 뽑아서 쌓아두고 서랍 본다.) 응, 그대가 매번 고요하던 호수에 돌을 던져대니 한 순간도 설레지 않고 견디지 못하겠더구료. 이것도 미안해 할 거야?
 
다비드 로템:(쿨럭, 입 가리고 기침한다.) ...네가 미안해하길 바라면 그러도록 할게.
 
서랍은 잠겨 있습니다.
 
열리지 않는군요.
 
열쇠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 리은:그대는 조금 더 뻔뻔해지시게. 미안해 하게 된다면 매 순간을 미안해야 할 거요. (서랍 두어번 열려고 하다가 순간 짜증!) 아 잠겼어!
 
이 리은: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 그래요. 이 게스트룸은 우리에게 부여된 곳이었죠.
 
당신이 잠그지 않았다면 다비드 뿐 입니다.
 
다비드가 열쇠의 출처를 알고 있을 거예요.
 
다비드 로템:(그래도 상관없는데. 중얼대다가 눈 조금 크게 뜬다.) 무슨 소리야? 그 서랍은 너에게 잠겨 있지 않아.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서랍이 지문 인식이라도 한단 말인가요?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다비드의 말을 듣고 뒤돌아보면,
 
서랍은 한 뼘이 조금 안 되게 열려 있습니다.
 
어느새?
 
이 리은: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서랍에 정신이 팔린 당신에게,
 
다비드 로템:너는 자신을 잠가둘 수 있어?
 
다비드가 영문 모를 질문을 던집니다.
 
이 리은:(무슨 소리야? 눈이나 끔박이다가 고개 기울였다.) 여러 방법이 있지 않겠는고. 제 자신도 속일 수 있는 마당에... (서랍을 삐끔 열어보았다.)
 
서랍의 레일이 매끄럽게 미끄러지고 소리 없이 틈을 벌립니다.
 
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넘쳐 흐르기 직전이에요.
 
찰랑거리는 표면 위, 혹은 투명한 수심 아래로 붉은 실타래가 몸을 담그고 있습니다.
 
이런, 다 젖어버렸군요.
 
이 리은:(입술 꽉 물었다. 새 옷이... 젖었어. 아랫입술이 대빨 나온다. 장갑이 옷에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라 붉은 실타래 잡지도 못하고 빤히 본다. 저게 왜 저기에 있담.) ... 다비드, 이 보시게. 서랍 안에 물이 가득 있어.
 
다비드 로템:(침대에 앉아서 고개 기울인다.) 물이, 왜?
 
이 리은:... 몰라? 덕분에 옷이 젖었소. 기분이 거 좋군. (혀를 차고는 다시 집어 넣었다. 뽑아두었던 책들을 가지고 조심조심 당신의 옆에 걸터 앉았다.) 읽을 것들이 있으니 좋군.
 
시트 아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리은:으어엥? (바보같은 소리나 내고 한쪽 눈썹 올렸다. 이, 이 머고?) 뭔 소리가 나는데.
 
시트를 걷어내면, 매트리스는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무르익은 단풍잎들이 짓눌리고, 뭉개지며 시트를 칠한 것입니다.
 
웬 단풍일까요?
 
다비드 로템:그것들 다 읽으려고? (혀 내두른다.)
 
이 리은:(눈 부비작 거리다가 한숨 깊게 내쉰다. 그러니까... 맥이는? 건가? 단풍들 보다가 당신의 머리를 헝클였다.) 몇 개만 읽던가 하려고. 그대는 좀 쉬시오. 아니면 같이 쉴까? 누워서 말이야. (머리는 좀 망가지겠지만.)
 
다비드 로템:(손길에 따라 눈 꾹 감았다가 뜬다.) 너무 오래는 읽지마. 지루하단 말이야. (구석으로 몸 밀착...) 약간 (좀 많이) 좁을 것 같지만.... 원하면.
 
게스트룸의 창밖으로 붉은 단풍이 물결칩니다.
 
가을바람이 선선해선 이따금 불안하게 흔들리는군요.
 
마치 피에 젖은 것처럼 붉고, 붉고, 선명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깊은 한숨에 불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변동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문득 깨닫습니다.
 
게스트룸에는 창이 없었노라고.
 
불가능의 연속을 목격한 리은.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3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변동 없습니다.
 
한편, 단풍잎의 표면은 하나 같이 엉망입니다.
 
짓눌렸거나,
 
뭉개졌거나,
 
찢어졌거나.
 
심지어 벌레가 갉아먹은 것처럼 구멍이 잔뜩 나 있습니다.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벌레가 갉아먹은 그 흔적이……
 
삐뚤빼뚤하지만,
 
글자를 이루고 낱말을 맞춰 문장을 적었습니다.
 
이 리은:(주조위왕 인 줄 알았군. 큼. 잠시 글씨를 보고 있다가 침대에 제 몸 뉘였다. 당신의 몸을 가만히 안아본다.) 좁지만 잠깐 이러고 있자. 이러면 많이 좁지는 않을 거야. 나 추워졌소.
 
다비드 로템:(조심스레 널 품에 안더니 물끄러미 제 앞의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본다.) 비좁아서 너 심장박동이 다 느껴지는데.
 
이 리은:그럼 싫소? 싫으면 좀 있다가 떨어짐세. (당신의 가슴팍에 제 귀 붙인다. 조금은 노곤해져서.)
 
귓가에 심장소리가 닿습니다.
 
조금 빠른 템포로-
 
-두근, 두근.
 
선명합니다.
 
다비드 로템:싫지 않아. 싫은 적 단 한번도 없었어. (천천히 눈을 감는다. 열기에 숨이 막혀서.) 피곤해?
 
이 리은:그럼 다행이고. (가만가만 숨 내쉬었다. 손에 힘을 준다. 이곳이 어떻게 되먹은 것은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 품 안에서는 평안을 느꼈기 때문에.) ... 조금. 뭐 했다고 이럴까, 싶지마는... 그대랑 있으면 편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소.
 
다비드 로템:춤 춰서 그런 것 아니야? 어쩌지, 곧 다시 나가야 할 텐데. (네 등 작게 도닥인다.) ....가기 전에 넥타이 좀 다시 매줄래?
 
이 리은:내 체력이 한 줌 뿐이라는 것에 다시금 감탄하고 있어. (가기 싫다. 도닥이는 느낌에 칭얼거리는 소리 내본다.) 넥타이? 음... 그러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마는.
 
다비드 로템:운동 열심히 해. 나중에 다 뼈가 되고 살이 된다. (이런 소리) 그러면 네가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구석에 구깃)
 
이 리은:이잉, 그대가 내 모친이오? 하이고 잔소리도. (당신 품에서 빠져 나가더니 굴러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 앉았다. 제 옷이나 다듬고 머리카락 뒤로 넘기더니) 이리 와보시게. 해줌세.
 
다비드 로템:(칭얼대는 소리 들리면 낭랑하게 웃음소리 냈다. 그제야 느릿느릿 몸 일으킨다. 기껏 정리해둔 금색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삐쳐 부스스한 태다. 여의치 않고 네쪽으로 고개 숙이고,) 자.
 
이 리은:이게 사자인지 사람인지 도통 모르겠구료. 그러게 왜 누워서. (당신의 머리를 제 손으로 넘겨가며 정리를 해주었다. 예쁘다-. 하며 두어번 쓰담다가 넥타이를 만지작 거렸다. 꽤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풀어냈다가 묶는다. 넥타이 꾹 쥐고 잠시 빠안.) 그대. 내가 지금 뭐 할 것 같아?
 
넥타이의 매듭을 풀면…
 
얇고 부드러운 천이 흘러내리고, 목덜미가 드러납니다.
 
리본을 걷어도 다비드의 목에는 여전히 검푸른 것이 매여 있습니다.
 
아니, 매인 것이 아닙니다.
 
검붉은…… 자국이군요.
 
다비드 로템:(얌전히 머리 쓰다듬는 손길 느끼더니 가까이 다가온 이 빤히 바라본다.) ...이대로 목을 조른다?
 
목덜미를 완전히 감싼 자국은 마치 실선처럼 얇고 가늘며,
 
여러 갈래로 쪼개져 있습니다.
 
꼭,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장이라도 잘게 가루가 되어 흩날릴 것처럼요.
 
이 리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천 뒤의 미간이 구겨졌다. 쥐고 있던 것을 조끼 속에 넣어두고) 목에 자국은 설명 해줄 생각은 있나?
 
다비드 로템:(제 눈에 보일리가 없어 손끝으로 제 목 더듬는다.) 넥타이를 오래 매서 그런가?
 
이 리은:넥타이 오래 매어둔다고 이리 되지는 않소마는. (입 맞추려고 했던 생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참 보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 설명해줄 생각 없으면 가지. (벗어두었던 가면 썼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코끝에 아릿한 향기가 닿습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
 
향기가 서랍 쪽에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서랍 아래 칸을 열어봤던가요?
 
이 리은:(작게 킁. 무슨 향이람. 서랍의 아래 칸을 열어냈다.)
 
서랍을 잡아당기는 순간 훅 퍼지는 것은 지독한 꽃향기.
 
서랍은 흰 꽃으로 잔뜩 채워져 있고,
 
가운데에 흰 카드하나가 파묻혀 있습니다.
 
이 리은:(흰 꽃 한 송이 들었다. 무슨 꽃이람.)
 
종을 닮은 자그마한 모양의 흰 꽃들.
 
흔들면 딸랑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습니다.
 
이 꽃의 이름이……
 
은방울꽃이었죠.
 
이 리은:
자연
기준치: 10/5/2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생생하기 그지없는 것이 꺾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
 
다비드 로템:(어느 새 뒤쫓아왔다. 네 어깨에 제 턱을 올리고,) 뭘 하려고 했는데?
 
이 리은:잊어버려서 이제 못해주오. (은방울꽃 가만히 내려다 본다. 이거 분명 독이 있는 꽃인데. 전에 이 꽃에서 추출한 독으로 생사를 헤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리저리 보다가 카드 꺼낸다.)
 
프롬 파티의 초대장다운 그럴싸한 문장이네요.
 
이 리은: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카드의 뒷면에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보내는 곳도,
 
받는 곳도,
 
목적지조차.
 
주소라곤 한 줄도 적혀 있지 않군요.
 
게다가 티타니아란 누군가요?
 
리은, 잘 생각해봐요.
 
당신이 아는 사람인가요?
 
이 리은:... 티타니아? (머리 굴린다. 티타니아라면... 요정 여왕의 이름이 아니던가.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느리게 눈을 끔박이다가 눈을 찡그린다.) 어쩐지 감이 영 안좋은게... (말 끝을 흐렸다. 제 감이 틀리길 믿는다. 제발 그러기를.)
 
다비드 로템:(여전히 검은 천 뒤 네 표정 알 턱이 없다. 정말? 잠깐 침묵 지키더니 네 손잡고 문쪽으로 이끈다.) 내려가자. 목이 마르네.
 
이 리은:(은방울꽃 제 손에 들고 느리게 걸음 했다.) 그러지. 쉴 만큼 쉬었으니. (작게 심호흡 했다. 어쩐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기분이다.)
 
걸음에 따라 꽃잎이 흔들립니다.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다시 홀로 내려오면 느린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댄스 플로어에는 몇몇 커플이 춤을 추고 있고,
 
대부분은 테이블 근처에 서 있거나 자리를 비운 뒤입니다.
 
휑하군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는데…… 
 
무언가 이상합니다.
 
이 사람들,
 
사람이 아니에요.
 
머리가 있어야 할 목 위에는 부글부글 끓는 거품이 대신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독적인 색.
 
거품은 부풀었다가 터지고,
 
어떤 형태를 이루다 다시 녹아내립니다.
 
두꺼비를, 혹은 뱀을,
 
그보다 더 차고 소름 끼치는 것을 닮은 형상을.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왜 여태까지 몰랐을까요?
 
주위에 제대로 된 얼굴을 달고 있는 사람이라곤 다비드와 당신이 전부입니다.
 
다비드의 안색은 변함없습니다.
 
괴이한 것들도 두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끔찍함을 느끼는 것은 오직 리은뿐입니다.
 
귓가에는 여전히 평온한 음악이 흐릅니다.
 
당신은 어렵지 않게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됩니다.
 
이 홀 내에는 곡을 연주할 악기도, 스피커도 없다는 것을.
 
이 음악은 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가요?
 
이 리은:(깊게 한숨 내쉬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내 정신이 드디어 맛탱이가 가버렸나 보아. 벽에 머리라도 박으면 제정신으로 돌아올까?
 
눈을 깜빡이면, 창밖에 까맣고 차가운 밤이 드리웁니다.
 
앙상한 가지와 서리가 서린 창,
 
새까맣고 건조한 밤하늘……
 
아, 그래.
 
겨울이에요.
 
이별과 죽음의 계절.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다비드 로템:그러지마, 아프잖아. (네 어깨 잡고 힘을 주어 발걸음 내딛는다.)
 
다비드는 잠자코 당신을 테라스로 이끕니다.
 
격자창이 열리고,
 
커튼이 드리우고,
 
천 너머로 새어드는 희미한 불빛이 두 사람의 옆얼굴을 밝힙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테라스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새까만 어둠, 심연.
 
그저……
 
깊고 깊은 수렁이 그곳에 존재할 뿐.
 
창을 통해 보았던 벚꽃,
 
여름의 녹음과 가을의 단풍,
 
겨울의 앙상한 가지는 찾아볼 수 없군요.
 
이 리은:(힘 없이 거의 끌려가서 멍하게 바라보았다. 테라스에 느리게 기대더니) 여기 위에 앉혀줄래? 앉아서 그대 보고 싶어. (난간을 두어번 톡톡 쳤다. 위험하면 그대가 잡고 있던가.)
 
다비드 로템:(시선이 난간 너머를 향하더니 차가운 공백이 잇따른다. 느리게 입술 떼고,) 그럴래? 그러면 잠깐 이거 쥐고 있어.
 
다비드는 당신에게 샴페인 잔을 내밉니다.
 
우린 테이블에 들리지 않았고,
 
내내 빈손이었는데 이 잔은 어디서 났단 말인가요?
 
잔에는 투명한 연보랏빛의 무언가가 담겨 있습니다.
 
다비드 몫의 잔은 없고,
 
이것은 당신의 잔입니다.
 
이 리은:이건 또 언제 가지고 왔는가? (잔을 들고 끔박.) 음료야?
 
다비드 로템:(고개 끄덕이더니 네 허리 가볍게 잡고 앉혀둔다. 이제 눈높이가 얼추 맞아떨어진다. 멀거니 바라보며 네 손을 잡는다.)
 
이 리은:(혹여 잔을 떨굴까 조심조심 들고 있다가 난간에 앉아서 당신 본다. 이렇게 시야가 맞은 적은 도통 없던 일이라. 눈동자가 굴러서 저 안쪽을 보았다. 어떤 것도 상식 밖의 일인지라 숨이 떨렸다.) 이해 되는 것이 어떠한 것도 없구료. ... 머리 속이 혼란해서 안개가 낀 듯 하오.
 
다비드 로템:(잔을 쥔 네 손 맞잡고 들어올린다. 일렁이는 보라빛 액체 너머로 네 인영이 흐릿하게 뭉개진다. 몸이 네쪽으로 기울어졌다.) 이거 마시면 나아질지도. 도와줘?
 
이 리은:(시선 다른 곳에나 있다가 당신이 제 쪽으로 기울어지자 슬며시 상체 물렸다. 떨어질 것 같으면 잡아주겠지, 같은 생각으로.) 이게 뭐길래 마시면 나아질 것이라 하는가, 그대. (독주를 준다면 그 자리에서 비워내겠으나...)
 
다비드 로템:(다가선 만큼 멀어지면 이내 움직임이 멈춘다. 대신 손가락이 네 장갑 아래를 비집고 들어가 네 손바닥을 훑었다. 시선은 여전히 네게 올곧게 맞추어진 채로.) 음... 약? (그 어떤 독주도 활용을 잘 하면 약이 된다고도 하지 않던가.)
 
이 리은:유혹이라도 하려고? (턱을 들고 거만하게 당신 본다. 간지러워, 라는 말을 남기고는 눈 찡그린다.) 지금 나한테 약을 먹이려 했다고 이실직고 한 것이오? ... 난 그대만 믿고 이걸 쭉 들이키면 된다고?
 
다비드 로템:그런다면 넘어올테야? (상대의 표정의 보이지 않으면 이런 장점이 있네. 손끝이 마디 끝에서 멈추더니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그런 셈이네. 그래줄래? 싫으면... 다른 방법도 있는데.
 
이 리은:이전이면 바로 넘어갔겠소만, 지금은 도통 그럴 기분이 아닌데. 낭군께서 내 기분이라도 돌려놓아 주시겠소? (들고있던 잔을 둥글게 흔들었다. 까닥임을 두어번 이어가다가) 다른 방법을 들어보고 결정 해보지.
 
다비드 로템:이런, 누굴 위로하는 재능은 없는데.... 알잖아. (떨어지지 않도록 한팔로 네 허리 감싸앉고 네 이마에 입맞춤 한번. 시선을 미끄러트리며 콧잔등에 한번. 입가에 다가섰다가 멈추었다. 술을 마셨던가? 아찔한 단내가 쏟아졌다.) 미리 얘기하면 마법이 깨져.
 
이 리은:그런 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 (가만히 입맞춤 받다가 얼굴의 천을 들어서 붉은 립 바른 제 입술 드러내어 당신의 입에 가벼운 도장 찍었다. 1초의 간극,) ... 꿈에서 깨기라도 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말이오. ... 오래 이 꿈을 꾸고 싶다면 마셔야 할까.
 
다비드 로템:그랬나? (입술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도 남는다. 옅은 아쉬움과 함께. 잔과 함께 네 손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 하여도 괜찮고. 선택은 언제나 너의 몫이다.) 조금 더 여기 있고 싶어? ...나와 함께...
 
이 리은:그랬지. (흐린 웃음소리나 냈다. 흰 장갑 탓에 문질러 지울 수 없음이 아쉽다. 립이 묻었어. 그리 조근조근.) 확신을 줄 수 있는 말은 아니구료. 난 도박을 좋아하지 않단 말이오. 목숨 걸고 하는 도박은 내 인생에 다시 없었으면 했는데. (느리게 슴박.) ... ... 그러고 싶소. 나라고 귀애하는 이와 떨어지고 싶겠는고. 내가 여기 더 있으면 다른 이들이 어찌 될까, 스물스물 걱정이 올라와.
 
다비드 로템:(웃음소리가 잘게 부서져 차디찬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것이 못내 아쉬워 시선 두었던가.) 어쩐지 사과할 것들이 늘기만 하네. 인생이 네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간다면 좋았을까? (답 듣고나면 잔 들어올리더니 음료를 한모금 입에 머금고 네게 입술을 맞붙인다.)
 
이 리은:그랬다면 퍽이나 좋았을 것이오. 내 성격이 이렇게 모날 일도 없었겠지. ... 원하는대로만 되었다면 재미는 없었겠소만... (입 맞춰오는 느낌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제 눈을 감고 입을 벌려냈다. 네가 원하는데 내 어찌 이 잔을 거부할 수 있을까.)
 
입안으로 아득한 단내가 쏟아집니다.
 
지독하고 강렬한 향기와 달리 혀를 적신 것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향수 탄 물을 마시는 것 같은 끔찍한 기분입니다.
 
곧이어 잔 속의 액체처럼 머릿속이 출렁입니다.
 
기억이 뒤섞이고, 재조립되고, 다시 완성되는 메스꺼운 감각.
 
독을 마신 것처럼, 코사지 마저 순식간에 시들고 머리를 떨굽니다.
 
당신에게는 익숙한 감각일테죠.
 
이 리은: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찰나를 떠올립니다.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보내야 했던 서글픈 마지막을.
 
회색 도시,
 
눈보라,
 
겨울,
 
죽어가는 당신,
 
살아갈 나.
 
당신은 기억해냅니다.
 
행복했어, 행복해.
 
다비드가 당신을 놓은 게 먼저였을까요,
 
그의 손끝까지 전부 흩어져버린 것이 먼저였을까요.
 
재가 휘날리는 눈밭 속,
 
분명 다비드는 죽음을 맞이했어요.
 
이것은 착각도, 망상도 아닙니다.
 
분명한 진실입니다.
 
그러나 때론 기만보다 진실이 더 잔인한 법이에요.
 
진실을 떠올린 리은,
 
이 리은:
SAN Roll
기준치: 78/39/15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다비드 로템:괜찮아, (그 무엇도,) 그래도... (괜찮으리라. 속에 담긴 것은 자명했으나 듣는 대상만큼은 불분명하다. 혀로 농밀하게 그 안을 탐하다가 떨어졌다. 여전히 가까워진 거리. 네 허리를 감싸앉은 팔도 또한 여전하다.) 괜찮아?
 
이 리은:(온기가 떨어지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억들에 눈물방울 떨구었다.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신의 목을 그러 안았다. 느리게 고개 저어낸다.) ... 하나도, ... 안괜찮아. (눈밭 속에서 오로지 홀로 남아, 공허함만을 품고 있던 그 순간이 떠올라서 추웠다. 제 옆에는 이제 어떤 온기도 없게 되었구나. 깨달음과 함께 그렇게 식어갔다. 내가 미안해.)
 
다비드 로템:(눈물자국 닦아주기 이전에 작은 온기가 품에 안겨진다. 빈 유리잔은 난간에 올려두고 네 등 도닥인다.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미안. (난제의 해답이 될 순 없으나 이게 제 전부였다.) 싫어?
 
이 리은:(폐허가 된 곳에서 구멍 뚫린 가슴팍에 시린 겨울 바람이 들이친다. 제 눈을 가리던 거짓을 씻어 내려주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비정한 현실을 알려줌을 원망해야 하나. 답은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닥이는 손길조차 온기로 느껴지지 않는 이 모든 것이 꿈이구나. 아, 빌어먹을 티타니아.) 그대가 없는 세상은 싫어. ... ... 그대가 내 옆에 없는 것도 싫어. (억지 부리고 있는 것을 안다. 저가 해야 하는 일도 알았다. 아니까, 더욱 싫은 것이다.) ... ...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그대를 만나서 좋다고 웃던 내가... (숨 삼킨다.) 제일 싫어.
 
다비드 로템:(아늑하게 따뜻하던 감각마저도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간다. 뒤늦게 붙잡아보려 했으나 마디마디 사이로 새었다. 그 구멍에 특별이라는 이름을 붙여두니 이마저도 기껍다고 했다지만, 심장이 죄여왔다. 그와 동시에 불순한 갈망이 튀어오른다. 그러니 배덕하게도 질문해야만 했다.) 그러면 계속 여기 있을래? 나와 함께. (멍청하기는. 네 머리카락 끝자락 잡았다가 놓아준다.)
 
이 리은:(네가 없는 세상? 살아갈 수야 있지. 가장 커다란 행복이라는 조각이 빠져서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는 행복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나? 유일이 되고 싶지 않다며 말했던 이가 유일을 품게 되다니. 헛웃음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모든 책임에서 뒤로하고, 그대랑 같이? ... 계속해서,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해주나? (고개 들었다. 눈물범벅 된 천 뒤의 얼굴이 흉했다. 책임을 뒤로하고 한 여름 밤의 꿈을 계속해서 꾼다면,)... 실로 행복한 일이겠소.
 
다비드 로템:(안타까움 한가득 담아 네 젖은 뺨을 쓰다듬는다. 눈썹이 축 늘어졌다.) 그렇게 되면 내가 널 죽인 게 되나? (바람빠진 소리나 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너와 함께하는 현재 뿐이지 않던가. 그럼에도,) 그걸 진정한 행복이라 부를 수 있어? 이별은 이미 당도했으니 나에게는 남은 현재가 없는걸.
 
이 리은:(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했다. 스며들었던 녹음이 꺼진 눈동자에서 바람이 휘몰아친다. 뱉지 못하고 있던 긴 숨 쉬어낸다.) ... 내가 스스로 자멸한 것이 되겠지. 이 또한 나의 선택이니. (실로 악질이군. 그리 중얼거렸다. 기만이고 악질이다. 검은 방에 처박혀서 거울에 머리 기대어 모든 시간 보내고 있던 나도, 후회를 속삭이던 거울 속의 나도, 날 이곳에 끌어온 이도.) 눈 가리고 이를 행복이라 부를 수 있노냐 한다면... 이는 행복이라 할 수 없어. 그대가 이곳에 있다고 해도, 이것은 내... 행복이 아니야. 나는 그대랑 함께 나아감을 원했지 시간 속에서 고이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야. (울분 토했다.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뺨을 쓸었다.) 내가 떠나면 그대는 어찌 되나?
 
다비드 로템:네가 원했던 선택은 아니었을거고. (중얼거림 듣고 한참 말이 없었다.) 내가 바라서 널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그러니 스스로 자책하는 것은 그만 두라고 한다. 내가 널 불행하게 만들었구나. 예전에도, 지금도. 넥타이가 풀어진 건 지난일이었지만, 목이 울음에 매였다. 결국은 단어 사이사이에 간극이 생겼다.) ...글쎄, 승천하나? 지은 죄가 많아서 지옥으로 떨어질지도. (가볍게 소리냈으나 이또한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또다른 도피일 것을 알아, 한박자 늦게 덧붙였다.) 어디에 있던간에 널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겠지.
 
그러니 간절히 부탁하기를,
 
행복하세요. 
 
그리고 이별하세요. 
 
절절한,
 
끔찍한,
 
아름다운,
 
슬픈,
 
애절한,
 
어떤 형용사가 붙는 결말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충분한 인사를 나누고, 두 사람이 이별을 다짐했다면 그때가 결말입니다.
 
문설주를 따라 덩굴이 싹을 틔웁니다.
 
연록색의 줄기, 희고 둥근 열매.
 
겨우내 살아남고 겨울의 끝을 알리는……
 
겨우살이입니다.
 
겨우살이 아래에서 입 맞춘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던가요.
 
이 얼마나 고전적이고 고리타분한 클리셰인지.
 
이 리은: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그래서, 싫어요?
 
겨우살이 아래에 선 다비드가 웃습니다.
 
이 리은:언제 어디서든 내가 한 선택들은... 원해서 한 선택은 아니었으니 되었소. 이마저도, 운명이겠으니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네. (사랑하여 불행해졌고, 애착하여 괴로워졌고, 귀애하여 가슴 뜯을 수 밖에 없음을 안다. 우울감이 파도마냥 덮쳐서 쓸어버렸다. 이제는 집의 터조차 남지 않은 곳에 홀로 섰다.) ... 그대 덕에 단 꿈 꾸었소. (시커먼 파도 치는 절벽에 선 이가 웃는다. 포말과 함께 스러질 웃음이었다.) ... ... 그대는 용서를 아는 자이니 분명 좋은 곳에 가겠지. (그러니, 나는 너를 만나지 못할 거야. 언어가 되지 못한 말이 스러졌다.) ... 오래 기다리게 될 거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될 지도 모르오. 혹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갈지도 몰라. (영겁의 세월이 될지라도, 나는. 나라는 이는.) ... 그래도 단 꿈을 꾸게 해주어서 고마워. 나는 이 기억으로 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천 걷지 않은 채로 당신에게 짧고 가벼운 입맞춤 남겼다. 이것은 이별. 영원의 안식과 작별을 고하는 인사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과 동시에 당신은 직감합니다.
 
막이 내릴 때가 되었다고.
 
이제는 완벽한 이별이라고…….
 
오로지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합니다.
 
다비드는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고요하게 눈을 감은 다비드를 흔들어보면,
 
반응은 없습니다.
 
홀로 남은 세계는 영원히 겨울일 것만 같습니다.
 
다비드가 보지 못하는 봄은 언젠가 찾아오겠지요
 
저편의 모서리가 희게 새기 시작합니다.
 
아침이 밝고 있는 것입니다.
 
밤중에 만나 아침이 되면 사라진다니.
 
이 얼마나 서러운 운명인가요.
 
몇 번을 겪더라도,
 
이별은 참담하고,
 
먹먹하고,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래도……
 
.
 
.
 
.
 
당신은 눈을 뜹니다.
 
어둑한 시야에 익숙한 천장이 보입니다.
 
당신의 방입니다.
 
샹들리에의 화려한 불빛,
 
모독적인 머리를 한 정체 모를 괴물들,
 
창 너머로 흐르는 사계와 꽃잎처럼 흩어지는 드레스 자락…….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비드는 온데간데없고,
 
사위도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당신의 세계,
 
현실,
 
새로운 아침.
 
꿈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이니까,
 
당연한 이야기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비드와 나눈 이별은,
 
마지막 인사는 완벽했나요?
 
다비드의 바람대로 모든 슬픔을 씻어내고,
 
행복해질 준비가 되었을까요?
 
한낱 꿈으로는 턱없이 가누기 힘든 슬픔이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요.
 
한여름 밤의 꿈은 짧을지언정 잊히지 않을 테니.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베개 아래를 들추면 흰 카드 한 장과 시들지 않은 파랑의 꽃을 발견합니다.
 
이 리은:(텅 빈 눈동자로 파란 꽃 보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입니다.
 
그럼에도,
 
그림
 
카드에 담긴 것은 분명히 다비드의 필체입니다.
 
눈을 깜빡여도,
 
문질러 보아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생생하게 만져집니다.
 
마치…… 꿈이 아닌 것처럼.

 

 
하지만 말도 안 돼요.
 
죽은 이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꿈이 아니라면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답해주는 이는 없습니다.
 
창 너머의 새 지저귀는 소리만 선명합니다.
 
 
 
Credit 
 
Staff 
 
Sponser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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