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아 약타 에스트:(가만히 바라봅니다.) 그건 말해주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어요, 피세아. (기숙사에 입사하는 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출한 모습, 그리고 교칙이라고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 네 옷단장을 보면 인상을 옅게 씁니다.) 당신, 어렸을 적에도 이랬나요?
이노레오 오르비타:어렸을 때? (고개를 기울이며 너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무슨 소리야? (어쩌면 본인이 가장 먼저 들어야 했을 말, 그럴 만한 행동을 했음에도, 너무나도 뻔뻔하게, 어쩌면 능숙할 정도로 그런 말을 내뱉는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네 넥타이를 제대로 매어줍니다. 딱히 네 안위를 크게 신경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서 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이런 것도 하는 줄은 몰랐는 걸요. (네 주머니에서 불룩 튀어나온 담배를 손으로 집어서 꺼내 네 눈앞에 흔듭니다. 설명을 해보라는 것처럼요.)
이노레오 오르비타:아... (낮은 한숨. 손에 들려진 담배갑은 몇 개비가 비어있는 상태다.) 그건..., (돌려달라며 화를 내지도,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어물쩡한 표정을 짓다가 손을 한번 휘젓는다. 이후의 말은 내보이지 않겠다는 것처럼) 으음, 우리 입학하고 나서 같은 방 쓰는 건 처음이지? (이내 애매하게 미소짓고 있던 얼굴이 너를 보며 사근사근 피어오른다.) 너무 좋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대답하기 싫어요? (대답하기 싫은 것 처럼 행동하는 네 모습에 고개를 갸웃일 뿐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네 눈을 빤히 들여다봅니다.) ....처음이죠. (너를 알았던 시간은 꽤나 길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잠에 들고 일어나는 것은 처음일 것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아무쪼록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벌점을 받으면 일이 귀찮아져서.
이노레오 오르비타:으응, 그렇지. 처음이지. (되새기듯이 따라붙는 그 말.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알레아. 너는 자기관리에 철저한 애잖아? 그런 것까지 걱정할필요 있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다가, 별안간 목소리를 낮춘다.) 아니면 내가 방해될 것 같아?
알레아 약타 에스트:피세아. (마냥 즐겁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는 너는 이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비밀을 속삭이듯 전하는 너의 말에 따라 목소리를 조금 낮춥니다.) 그래, 제 처신은 걱정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룸메이트가 된 이상, 저희는 원치 않아도 꽤 가깝게 지내야할 거잖아요. 당신이 지금 하는 행동을 보니 방해될 것 같은데. (한숨을 옅게 쉽니다.)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면 사춘기가 늦게 찾아와서 이렇게 각박한 학교의 생활 속에 반항심이라도 들었나요? (너를 걱정하는 듯이 말했지만, 어느 정도는 네가 처음에 말했던 말--미친 설립자에 대한 것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하하...... (네 말이 끝나자마다 내지르듯이 웃는다. 어떠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을 일.) 아무 일도. (고개를 천천히 내저으며 이야기를 지속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끊이지 않는 미소. 그 상대는 오롯이 너만을 향한다.) 그건 썩 괜찮은 표현이야. 각박한 학교에서 생긴 반항심...... 너도 학칙을 준수하면서 살고 있지만, 사실은 알고 있을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말이야. (책상 위에 놓여진 종이 한 장에 느릿느릿 손을 얹어, 네게 건넨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웃겨요? (그간 많은 웃음을 지켜보았지만 지금 네 입에서 나오는 것은 꽤나 다른 형태의 웃음이었습니다. 비웃는 것일까? 아니면 보기보다 제 룸메이트가 될 사람은 실성한 것이었을까. 생각이 들어 잠시 눈살을 찡그리지만 네가 건네주는 종이 한 장에 시선을 돌립니다. "이성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음주, 약물, 흡연....." 이미 알고 있던 조항들이었지만 마지막 문장은 꽤나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 세상의 전부를 알 수 없는게 당연했지만 때론 그것은 답답함을 일으키기도 했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대답합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 같네요. 이것에 대해 알고 있어요?
이노레오 오르비타:글쎄, 나는 잘... (두 팔로 팔짱을 끼며 책상 위에 기대어 앉았다. 올라간 치맛자락을 통해 깡마른 무릎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내 생각엔, 편집증이야. 저걸 쓴 사람. (앞전의 학교 설립자에 대해 말을 얹는 듯)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저걸 사감용 학칙으로 지정했을 리가 없으니까......
알레아 약타 에스트:(너를 관찰하듯 빤히 지켜봅니다. 제 손가락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매만지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궁금하긴 하지만... 어차피 졸업하고 나면 다시 발 들일 일이 없을 학교인데 당신이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이노레오 오르비타:관심? 알레아. 내가 여길 얼마나 빠져나가고 싶은지 알아? (탐탁찮은 표정이다.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갖은 소문과 비난을 감당해야만 했으니.) 하, 너도 역시. (앞전과는 다른 짧은 한숨. 제법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 학교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라는 말이야? (네게 투정을 부리듯 그런 말을 내뱉는다. 내내 손에 쥐고 있던 붉은 책을 열린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린다. 순식간이다.)
눈앞을 빠르게 지나가버린 그 책은 순식간에 창 밖으로 떨어집니다.
얼핏, 그 책의 제목을 본 것도 같습니다.
'신곡'.
이노레오의 무례한 행동에 따끔하게 한 마디 하려는 찰나,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벽면에 걸린 시계는 11시 49분을 알리고 있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순식간에 제 눈 앞에서 사라진 정체모를 붉은 책을 따라 바라보면 네가 얼마나 이 곳에 지내며 억울함과 답답함이 컸을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학칙을 잘 지키면 괜찮을 것 아니었나요, 이기적인 한 소리를 하려는 찰나 들리는 노크소리에 고개를 돌려 문쪽으로 묻습니다.) 네, 누구세요?
문을 열면 탐사자의 전 룸메이트가 초조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앤 버니스:저기, 혹시 내 책 못 봤어? 짐을 옮기고 보니까 사라져 있어서. 네 짐에 섞인 게 아닌가 해서 찾아왔어. 도서관에 내일까지 반납해야 하는데…….
알레아 약타 에스트:(꽤나 익숙한 얼굴이었습니다.) ....책? 제목이 뭐였는데요?
앤 버니스:(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꺼낸다. 여전히 초조한 낯으로.) 좀 누런 장정의 책인데, …맥베스, 맥베스인 것 같아. 그거 우리 문학 숙제잖아. 본 적 있어?
이노레오 오르비타:그 책이라면 너희 방 창틀에 올려져 있던데? 아까 너희 방에 놀러갔다가 거기서 봤어. 자정 이후로 기숙사를 돌아다니거나 외출하는 건 금지잖아. 곧 열두시가 되니까 빨리 돌아가서 확인해봐. 없으면 내일 찾아보고.
앤 버니스:분명히 없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까 정말 열두시네……. 내일 찾아봐야겠다. 아, 나는 너희 방 바로 밑이야! 201호! 내일 보자, 탐사자!
내일 봐, 알레아!
알레아 약타 에스트:...? (네가 대답할 줄을 몰랐다는 듯 빤히 바라보다가 떠나는 옛 룸메이트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래요, 앤. 잘 자요. (문이 닫히고 나면 이노레오를 다시 바라봅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이노레오 오르비타:그렇네. 언제 이렇게 되었담. (두 팔을 위로 올리며 기지개를 쭉 펴고는 보기좋게 하품을 한다.) 먼저 자, 알레아.
알레아 약타 에스트:(순식간에 찾아온 어둠 속에 숨을 얕게 들이킵니다. 잠에 든 것일까? 그러기에는 이 기시감이 너무나도 불쾌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상황 판단을 하려 귀를 기울입니다.)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
그리고......
머리 위에서 무엇인가가,
쿵, 쿵,
하는 것도 잠시,
비명 소리,
무엇인가가 방 안에 들어오는 소리, 오도독 오도독, 부러지는 듯한, 아니 무엇인가를 씹는 듯한 소리.
당신은 얼핏 깨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알레아 에스트, 관찰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알레아가 눈을 뜹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여전히 망막을 두드립니다......
당신이 막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도처에 맴돌던 소음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당신의 발 끝에서,
무릎으로......,
복부로.......,
흉부로......,
얼굴로, 마침내 귓가로......
손이라고 여겨질 수 없을 정도의 그것이, 그 형체가,
기이한, 불규칙적인, 이물스러운 움직임으로- 살포시 당신의 눈꺼풀을 가립니다.
그리고는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욱 더, 더더욱 가까이......
더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그것이
당신의 앞에서 이야기합니다.
낯선 목소리입니다.
"자야지?"
이윽고, 그것이 자장가와 비슷한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당신은 속절없이 잠에 빠져듭니다.
'이런 것'을 눈 앞에 두고 자면 안 되는데도.
무방비하게 의식을 놓고, 몸을 축 늘인 채로,
무방비한 상태가 되면 안될텐데도,
위험할 것이 분명할 텐데도,
당신은 졸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몸 안에서 꿈틀거리면 서늘한 한기가 얇은 천처럼
살갗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섬칫한 감각을 남깁니다.
......
[ 1악장.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
숨이 가빠오릅니다.
무거운 것이 목젖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고통에,
헐떡이며 눈을 뜨면…
아침입니다.
좁은 창문으로 한 줄기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치고 있고,
숲에서는 새 소리가 낭랑합니다.
간밤에 있었던 일은 꿈이었을까요?
몸 속은 여전히 얼음을 품은 것처럼 차디 찬데,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흔적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노레오는 여즉 잠에 빠져 있습니다.
숨소리도 없이 잠에 빠진 모습은, 실수로 독사과를 삼켜버린 이야기 속 공주처럼,
차라리 시체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아까 들었던 말 때문인지 편히 잠들 수는 없는 밤이었습니다. 비명을 내지를 수는 있었을까요. 흡사 가위에 눌린 것처럼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긴 밤을 지새고 나면 가쁘게 숨을 들이키며 침대에서 일어납니다. 아침 햇살 사이로 언뜻 보이는 네 얼굴이 반가울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잠든 모습이 어제의 악몽과도 닮아있어서 마른침을 삼키고 네 이름을 입에 담습니다.) …피세아.
이노레오 오르비타:침대 건너편에서(이제 막 정신을 차린 것 같지도 않은, 이해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 왜? (열린 입 밖으로 꺼낸 목소리는 잠겨있지도 않고, 어젯밤 마주한 그 상태 그대로였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막상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너를 마주하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런걸까, 짧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이상한 꿈을 꿔서. (한숨을 짙게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알레아. 안색이... (따라서 상체를 일으켜 너를 멍하니 본다. 걱정어린 말투를 하고서) 악몽 꿨어?
알레아 약타 에스트:악몽보다는 가위에 눌렸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걱정이 담긴 네 표정을 빤히 들여다보며) 당신은 잘 잤나요?
이노레오 오르비타:너. (침대에서 일어나 네게 다가온다. 이미 너의 물음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천천히 다가가는 그 와중에서도 시선은 네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봤어? (그리고는 알수없는 물음. 더없이 커다란 눈동자가 네 앞을 마주하고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 (영문을 알 수 없는 네 행동에 뒤로 한발자국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네 질문에 대답하기 앞서 제 얼굴에 당혹감이 스칩니다.) 무슨 짓입니까.
이노레오 오르비타:대답해... (제게서 떨어진 그 간격을 오히려 좁히며 계속해서 재촉한다.) 봤어? (다가온 그 형체에 내린 그림자가 네 전부를 채울 것처럼 시커멓다.) 네게 무슨 짓을 했어?
알레아 약타 에스트:(네가 정말 제가 알던 사람이 맞는가, 질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아치면 다소 거친 손길로 너를 밀어냅니다.) 피세아, 정신차리세요. 뭐를 봤다는 소리입니까? 진짜 귀신이라도 봤어요?
이노레오 오르비타:(네게 밀쳐져 두어 걸음 멀어진다. 흐트러진 균형을 잡으려 몸을 바로세우자 옅은 한숨이 서서히 흘러나온다.) 아니, 됐어... (밀쳐진 부위를 공연히 툭, 툭 털어내며 고개를 들고서 너를 다시금 마주한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동자. 끊임없이 탐색하는 듯한 분위기로.) 먼저 식사하러 가. 난 좀 더 자다가 수업 갈래.
알레아 약타 에스트:(이렇게 보자하니 악몽을 꾼 건 아무래도 제가 아니라 너인 것 처럼 보였습니다. 평소 이렇게 남에게 크게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네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는 해야했습니다.) 피세아, 무슨 일이 있으면 얘기를 하세요.
이노레오 오르비타:괜찮아......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며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을 만큼 이불을 완전히 둘러싸고서.) ...아직까지는... (네게 닿지 않을 만큼의 미세한 음성은 자신의 이불 속에서 꼭 그만큼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내 사라져버린다. '아직까지는'.)
알레아 약타 에스트:(이불 속에 숨어버린 네 모습을 빤히 바라봅니다.) 아직까지라구요. (답답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였지만 이대로는 네가 아무것도 말할 것 같지 않았고, 이런 실랑이로 제 하루가 늦추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한숨을 쉬고 식사를 하러 방에서 나갑니다.) 수업시간 때 보죠.
게이먼:(당신이 식당을 벗어나려 몸을 트는 순간, 그 옷자락을 붙잡는다. 콱, 하고, 휘어잡는 듯한.)
알레아 약타 에스트:(깜짝 놀라서 손을 쳐냅니다.) 무슨 짓입니까?
게이먼:(이미 그 반응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지 입을 뻐끔거리긴 하나, 소리 낼 여력은 없어 보였다.) ....아. (떨어진 손을 다시 들어 네 옷자락을 찾는다. '옷자락' 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지) ..도와줘.
알레아 약타 에스트:무엇을요? (무언가에 도망치듯, 간절히 붙잡을 것을 찾는 듯한 손을 바라봅니다.)
게이먼:앤... 앤 버니스... 알고 있지? (여전히 시선은 너를 향해 있지 않았다.) 내, 내가... (내가 그 아이의 룸메이트인데... 라고 소개할 모양으로 이야기하지만, 이어 말하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자꾸만 가리킨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네, 당신이 앤의 룸메이트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인상을 여전히 찡그리고) 무슨 일입니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게이먼:앤, 앤이. 책을. (책을 찾고 있었다는 듯, 손을 이용해 네모난 책을 그려낸다. 입이 있으나 말할 수 없다. 본인 역시 이러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듯,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찡그리기도, 뻣뻣하게 굳어버리기도, 한쪽 입꼬리를 꿈틀거리기도 한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책... (불현듯 떠오르는 어제의 일. 어쩐지 불안함이 생겼습니다.) 어제 앤이 책을 하나 찾는다고 했었는데, 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게이먼:죽었어!!
식당이 조용해집니다.
이목은 당신에게로 집중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한순간의 침묵. 뜻밖의 대답에 눈이 매서워집니다.) 게이먼, 당신이 한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똑바로 대답하세요. 앤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요?
게이먼:(이제야 말문이 트인 듯, 또렷한 목소리로 사정없이 말을 뱉어낸다.) 앤이 죽었어. 도와달라고 했는데. 와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어. 나무에, 나무에 걸려 있었다고. (어제 그가 찾던 책이.) 그래서 그걸 빼내려 했어! (앞뒤를 헤아릴 수 없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목소리를 조절할 수 없는 사람처럼 크게 내지르면서.)
알레아 약타 에스트:누가 나무에 걸려있었다고? (뛰엄뛰엄 끊어진 말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직까지는 네 말을 100프로 신뢰하긴 어려웠으니 제 눈으로 직접확인해야 했습니다.) 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게이먼:앤은 죽었어. 그래, 앤은... (다시금 어젯밤의 상황을 그려내며 경황없이 이야기한다.) 앤은 창 밖으로 몸을 꺼내 버렸어... 그걸 꺼내기 위해서... 그래서 앤은...
그 순간, 당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오렌지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손아귀에서 놓친 적이 없는데, 떨어진 것을 보면,
이런, 절반으로 잘려져 있던 상태였군요!
절단면이 바닥에 제대로 달라붙어 과육이 그 주위를 적십니다.
못 먹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게이먼이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게이먼:으.., 엑.., 엑..,
게이먼은 잔뜩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기 시작합니다.
게이먼:엑.., 엑.., 엑.., 으그극, 으그극, 으그극...
알레아 약타 에스트:(떨어진 오렌지를 주우려던 찰나 몸을 떠는 게이먼의 어깨를 단단히 쥐고 정신을 차리라는 듯 또렷하게 말합니다.) 게이먼, 괜찮아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게이먼! (뺨에 피가 튄것도 여의치 않고 달려가 그의 손목을 붙잡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알레아가 더 이상 말을 붙여도,
게이먼은 대답하지 않은 채 선생님께 부축받아 보건실로 향합니다.
일련의 상황을 구경하던 학생들은 서서히 흩어집니다.
무리지어 있던 군중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소의 식당으로 돌아갑니다.
... 그러나, 그 전에,
버니스가 죽었습니다.
상반신이 잘려버린 채로.
이성 판정 0/1D6.
알레아 약타 에스트: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
게이먼이 떠난 자리에 종이 쪽지가 남아 있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잔인함에 역겨움이 올라오는 것 보다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 죽음, 상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군중들 사이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가 남긴 핏자국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제야 종이 쪽지를 발견하고 읽어봅니다.)
종이 쪽지는 어디에선가 찢어낸 듯 절단면이 고르지 않습니다.
어제 이노레오가 말한 사감 학칙이 이것인가요?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이노레오의 시답지 않은 농담인 줄로만 알았지만,
심상치 않은 모습의 게이먼이 '사감용 학칙'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보니
단순한 장난질은 아닐 것 같습니다.
게이먼이 부린 소동은 주변의 학생들에게 완전히 번져갔습니다.
벌떼처럼 웅성거리는 소리 중에서, 유독 몇 마디가 알레아의 이목을 잡아 챕니다.
알레아 에스트, 듣기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제 봤어? 창문 밖에 새까만 것이 휙 지나가더니, 입을 벌려서 버니스를 먹었어.”
“나도 봤어. ……버니스는 왜 교표를 착용하지 않은 거야?”
“그래도 열두시를 넘었으니까 소용은 없었을걸.”
신경 쓰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통에 누가 그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찾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감 선생님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라 목소리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감 선생님:“게이먼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병이 발병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의 인도 하에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니 모쪼록 학내 면학 분위기를 흐리는 소문은 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소대로 학업에 열중하고, 게이먼이 완쾌하기를 기다리세요.”
사감 선생님은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굳게 다뭅니다.
그러던 중,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보는가 하더니 당신을 향해 다가옵니다.
식당 내 모든 시선은 사감 선생이 아닌 당신에게로 집중됩니다.
사감 선생님:"에스트 양. 충격받은 얼굴이군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목소리의 주인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선생님쪽을 빠라봅니다. 순식간에 집중되는 시선들에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갑니다.) 조금은요. (충격받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생각이 들었지만 말을 삼킵니다.)
답지 않은 말투로 당신을 걱정합니다.
사감 선생님:"괜찮은가요? 혹여 에스트 양도 몸이 좋지 않다면 보건실로 가보도록 해요."
'걱정', 하나요?
사감 선생님:"휴식을 취하는 건 중요하지요.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쉴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네요."
이내 당신의 뺨에 묻은 혈흔을 닦아줍니다.
사감 선생님:"잊지 마세요.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서는 학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눈 깜박깜박) ...보건실에 갈 정도는 아니니 괜찮습니다.
갑자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요?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리입니까?
... 사감 선생이 뒤를 돌아 등을 보이는 순간,
기묘한 위화감이 당신을 엄습합니다.
기시감에 휩싸인 당신은 주변을 둘러봅니다.
차갑고 선뜩한 것이 뱀처럼 등골을 타고 기어오릅니다.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속도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탁한 동공에는 자아랄 만한 총기 따위 없습니다.
알레아 에스트, 정신력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정신이 튼튼한 편입니다)
당신은 떠올립니다.
이렇게 학교에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난동’이 일어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며,
그 때 당신도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노레오 오르비타:“정신 차려.”
누군가 당신의 어깨를 건드립니다.
과할 정도로 심장이 콩닥거립니다.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면, 역시나 이노레오입니다.
이노레오는 경멸 서린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알레아 에스트, 관찰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숨을 가다듬고 너를 봅니다.) ...피세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평소와는 다르게 모범적인 교복 차림입니다. 여전히 넥타이에 백합 교표는 달지 않았지만요.
이노레오는 학생들과 사감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정신은 좀 차렸습니까?
이노레오 오르비타:...내가 물어봐야 할 말인 것 같은데? (손을 뻗어 네 뺨을 문지른다. 앞전에 온전히 닦아내지 못한 피가 그 손에 묻어져 나온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이런건.... 괜찮아요. (네 손이 떨어지고 나면 제 뺨을 손등으로 훑어내 남아있는 피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게이먼이 말하길, 앤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책을 찾다가, 상반신이 잘려서요.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이노레오 오르비타:(너를 지그시 바라보다 시선을 천천히 사건 현장으로 옮긴다. 게이먼의 피가 아직 굳지 않고 타일 표면을 따라 흐르고 있다) ...이제 너도 알겠지? (잠깐 눈썹을 찌푸리는 듯 하더니 또 다시 의미모를 미소를 품는다.) 학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이 학교가, 왜 이런 정신나간 학칙을 요구하는지.
알레아 약타 에스트:일단은 이런 정신나간 장소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요. (낮게 한숨을 쉬고 인상을 찌푸립니다. 두려움보다는 꽤나 골치아픈 상황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학칙을 요구하는 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고 해야하나요? (꿋꿋히 너를 시선에 담으면 평범한 검은 넥타이가 눈에 띕니다.) 교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노레오 오르비타:과연 그게 '보호'라고 할 수 있을까? (답을 파헤치지 못할 물음을 네게 건네며 네게 부착된 넥타이핀을 본다.) 그걸 빼 버려. 저렇게 되고 싶은 건 아니지? (검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곳에는, 이전과 다름없는 식당 속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고, 서로 이야기하며, 배식판을 들고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적어도 네가 진실을 파헤칠 요량이라면......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고,) 그건 아무 도움도 안 될 테니까.
알레아 약타 에스트:누구의 기준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겠지요. (지금 제 기준은 어느 방향으로 잡아야할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때까지 그래 왔던 것 처럼 학교생활을 이어가다가 얼마남지 않은 졸업을 맞이하느냐, 아니면 너를 따라 목숨을 걸어야할 수도 있는 상황에 한발자국 나서냐.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넥타이핀을 만지작거립니다.) 저에게 이런 걸 알려주는 이유는 있습니까?
이노레오 오르비타:좀 만 생각하면 알 수 있잖아! 내가 친구가 어디 있겠어. (나에게는 너뿐이지. 그렇게 말하며 성글하게 웃는 얼굴은 괴상할 정도로 화사한 모습이다.) 자, 알레아. 선택해. 내 판단을 믿고 일탈을 시작해볼지, 아니면 여전히 저들처럼 경박하게 고개를 끄덕거릴지......
얼마 지나지 않아 1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이 칩니다.
수업에 빠지면 분명히 벌점을 받을 게 분명한 데다가 이 학교의 양호 선생님은 꾀병 같은 건 절대 용납해주지 않는 성미입니다.
학교나 이 일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적어도 수업이 끝난 이후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석막한 이 공기에 홀로 화사하게 웃고 있는 네 모습도 만만치 않게 미친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 저에게 해가 될 것은 아니니 새겨듣습니다. 확실히 한 사람이 죽고 다른 사람은 눈알이 파헤쳐졌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일상은 충분히 괴이하게 느껴지고도 남았습니다.) 그럼 수업 끝나고 난 다음에 보도록 해요. (아직은 선생님들의 눈이 있었으니 넥타이의 교표는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기분 탓일까요…, 평소 깐깐하기로 유명했던 이 사감은 의외로 당신을 꽤 걱정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죄송합니다. (깔끔하게 양해를 구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감 선생님:자습실에서 보이질 않던데, 이 시간까지 어디서 뭘 한 것인지 궁금하군요. (머리칼을 정리하며 너를 지나쳐 몇 걸음 앞서 걷는다. 구둣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저 먼 복도까지 울려퍼진다.) 화장실은 미리미리 다녀오도록 합니다. 7시 30분이 넘어서는 절대 학교를 돌아다니면 안되니까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네. (대체 7시 반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별 다른 말 없이 자습실로 갑니다.)
자습실 문 앞까지 당신을 데려다 준 사감 선생님은 제법 빠른 걸음으로 복도 끝을 향해 걸어갑니다.
알레아 에스트, 행운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
행운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문득 발 밑을 확인해보면, 방금 전 사감 선생님이 떨어뜨린 듯한 종이 한 장을 발견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종이를 주워서 확인합니다. 점점 이 학교에 대한 불신만이 커집니다. 그와 반대로 이노레오에 대한 신뢰가 상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까, 자습실에 들어오면 제 룸메이트의 흔적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알레아와 이노레오가 사용하는 방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는 왜 눈치채지 못한 걸까요?
백합 액자가 걸려 있는 다른 방과는 다르게,
당신의 방에는 헌팅 트로피가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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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습실 먼 구석, 램프의 불빛이 닿지 않는 음험한 곳에...
이노레오로 '추정' 되는, 한 학생이 엎드려 자고 있군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네 모습을 발견하면 한숨을 짧게 내쉬고 네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어깨에 얹힌 손의 무게가 전해진 듯, 놀란 기색도 없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아, 뭐가 떨어져서... (별안간 잔뜩 잠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고개들어 네 얼굴을 확인한다.) 뭐야.., 너였어?
알레아 약타 에스트:자습시간에 이렇게 자고 있으면 곤란해질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너만 들릴 수 있도록 속삭입니다.) 당신의 말이 그렇게 틀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학교가 이상하다는 것.
이노레오 오르비타:어...?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느슨해진 머리끈을 다시 묶었다. 방정맞은 꼴이다.) 뭐 하다가 왔는데? (네 손에 잡혀진 맥베스를 보고는 가늘게 뜨고 있었던 눈꼬리가 서서히 펴진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오늘 수업은 제대로 가긴 한 걸까 의심이 가는 너의 모습을 봅니다. 품에서 휴지를 꺼내서 네게 건네주며 말합니다.) 제 옛 룸메이트의 방이요. (제 손에 집힌 책을 위로 들어올리며) ...이거, 보통 책은 아닌 것 같은데. 알고 있었어요?
이노레오 오르비타:룸메이트? (휴지를 받아들고서 입가를 닦은 후 주머니에 넣어뒀던 손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룸메이트 누구? 너 방 혼자 쓰고 있었잖아? (이내 책상 아래 배치된 작은 휴지통에 휴지를 버리고는, 자습 시간 내내 배게로 쓰려고 했던 자신의 맥베스를 펼친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 (네 대답에 인상을 찡그립니다. 어쩐지 심장이 덜컥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앤 버니스요. 기억안납니까? 어제 저녁에도 찾아왔었잖아요. 당신과도 대화했었고.
이노레오 오르비타:그래? (대수롭지 않게 그 이야기를 듣고서 입을 가리고 크게 하품을 한다. 곳곳에서는 책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만년필로 필기하는 소리, 낮은 목소리로 웅얼대는 소리가 겹쳐서 울려 퍼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깨워줘서 고마워. 내일 문학 숙제 검사하잖아. 이걸 다 언제 끝내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큰 한숨을 내쉰다. 네 쪽을 흘깃 흘깃 바라보면서.)
알레아 약타 에스트:(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는 너를 한참동안 가만히 내려보기만 했습니다.) ...네, 그렇지요. (지금 누군가의 악기가 음이 나간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 곳의 모든이가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불협화음에 익숙해진 듯, 연주자는 지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도 제 자리에 돌아가서 제가 할 일을 끝낼 뿐이었습니다. 다시 밤이 찾아오면 이 학교에 대해서 무언가를 더 알아낼 수도 있겠죠.)
이노레오 오르비타:있지, 숙제 어디까지 했어? (제 옆자리에 앉으라는 듯 의자를 뒤로 뺐다.) 어렵진 않았어? (쓸데없이 부담스럽게 네게 말을 걸어오는 의도는 앞전의 괴이한 일들과는 별개의 의미로 보였다.) 쪼금만 봐도 돼? (결국에는, 이러한 의도로.)
알레아 약타 에스트:(숙제를 보여달라는 말에 째려봅니다.) 거의 다 끝냈습니다. 숙제는 혼자 하는 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가장 많이 될 거예요. 모르는 것이 있다면 도와는 드리겠습니다만 배끼는 건 안돼요. (늘 그렇듯 이런 것에 있어서는 꽤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흠~ (고개를 창문쪽으로 돌리며 별 것 아닌 듯 대답하지만 꽤나 타격이 온 것 같아 보인다. 이번에도 숙제를 안하면 벌점이 얼마나 쌓이게 되었지......) 그럼 같이 공부하자. (펼쳐진 맥베스를 가리킨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볼테니까.
알레아 약타 에스트:(그래도 너를 아예 도와주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네가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의자를 네 옆으로 끌어서 앉습니다.) 자, 집중합시다. (맥베스를 다시 보니 아까 전에 책갈피가 끼워져있던 페이지가 떠올라 그쪽으로 페이지를 옮겨가 너에게 보여줍니다.) 이 문장, 기억나십니까?
이노레오 오르비타:으음......., (고개를 쭈욱 빼고 글자를 확인하는 시늉을 한다. 한가득 의문을 품은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모르겠어, 네가 한번 읽어봐. (그렇게 말하고는 한쪽 턱을 괴고 네 얼굴을 바라본다. 한순간이었을까 그 얼굴에 서늘한 조소가 번진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 네 표정을 발견하면 반사적으로 책 끝을 쥐고 있던 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갑니다. 누군가의 주사위판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엄지가 따끔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이쪽으로 끔찍한 것이 오고 있구나. (창백한 네 얼굴을 바라보며 조곤조곤, 한단어 한단어 내뱉습니다.) 끔찍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당신은 맥베스를 펼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갑니다.
그러던 도중...
별안간 바깥이 어두워집니다.
자갈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번개가 꽂힙니다.
아마도 평범한 소나기예요, 곧 지나갈 겁니다. 아마도, 아마도…….
『When shall we three meet again? In thunder, lightning, or in rain?』
맥베스의 그 대사를 읽는 순간,
알레아는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정말로 맥베스가 맞나요?
당신이 맥베스라고 생각하고 읽기 때문에 맥베스처럼 읽히는 것 아닐까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어느 순간 읽혀지는 글들은 제가 기억하던 본문이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피세아. (해답을 요구하는 얼굴로 너를 바라봅니다.)
자, 집중하세요.
다시 한 번 읽어보면,
글자가 우그러지더니 아예 다른 내용으로 변합니다.
『다시 말하느니, 물리칠 수 없는 것을 불러내지 마라.』
물리칠 수 없는 것…
게이먼에게 들었던 검은 사슴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 수상쩍은 책을 계속 읽으면 이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확실히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계속해서 책을 읽습니다.)
알레아는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내려갑니다......
난해한 문장으로 점철된 이 미지의 저서는 독서가 아닌 독해로 바꿔야만 앞뒤가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새 주변 소리가 아득히 멀어지고,
당신은 온전히 이 책에 빠져듭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로 흘렀는지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때,
사감 선생님이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사감 선생님:에스트 양. 제 말 안 들립니까?
알레아 약타 에스트:아, 네. (얼마나 집중했던 걸까, 한참 후에야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듭니다.) 무슨 일이죠?
알레아 약타 에스트:아, 네 네. (짐을 챙겨서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곧 있으면 자정일텐데, 학교를 둘러볼 시간은 있을까.)
아쉽게도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알레아의 방과 다른 학생들의 방으로 보입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다른 학생들의 방을 둘러봅니다.)
누군가가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엘라 루코:누구야? (책을 내려놓고 너를 보며 상체를 일으켰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알레아 에스트. 늦은 밤에 실례합니다. (새로운 학생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엘라 루코:응? 이시간에... 무슨 일인데? (평범한 몰골을 하고 있다. 휴식을 취하고 있어 그런지 넥타이를 비롯한 자잘한 것은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꽤나 평범한 모습을 확인하고 현재 제게 가장 중요했을 질문을 묻습니다.) 혹시 앤 버니스라고 기억하시나요?
엘라 루코:누구? (제대로 듣지 못한 듯 다시 묻는다. 그러던 중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학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그니 크로시오:앤 버니스라고? (고개를 들어 너를 보며 묻는다.) 처음 듣는 이름인데?
알레아 약타 에스트:(이제는 이런 상황이 질린다는 듯 눈을 위쪽으로 살짝 들어올리고 지긋이 감습니다.) ...학교에서 이상한 일은 없었는지요.
이그니 크로시오:이상한 일이라... 문학 에세이 작문이 지겨워 죽겠다는 점...?
엘라 루코: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 너 좀 이상하다?
이그니 크로시오: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긴 해.
어젯밤 내 창문에 거대한 사슴 같은 게 스쳐지나가더라고. 악몽인가, 싶어서 다시 잤는데 악몽치고는 너무 현실감이 넘쳐서……
사슴이 그렇게 클 리가 없는데 말이야.
엘라 루코:너도 학업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거 아냐? 하긴… 나도 가끔 없는 애를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어. 저번에 우리 반 학생들은 모두 27명인데, 내가 간식 나눠주려고 챙겨왔는데 28개를 챙겨 온 거야. 하나 더 챙긴 거지.
깜빡깜빡 한다니까. 옥스퍼드로 가면 이 지긋지긋한 스트레스랑도 안녕이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어쩐지 단순히 학업 스트레스 뿐만은 아닌 것 같은데. 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는 싫으니 말을 삼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좋은 밤 보내시길. 아, 다음에는 학교 밖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자정이 지난 후면 모른 척 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섭니다. 다른 학생들도 같은 반응일까 싶어서 제 방으로 돌아옵니다.)
엘라 루코:그래, 알레아. 잘 자. (손을 흔들며 방 문이 닫힐 때까지 네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모습은, 잘 짜여진 연극을 보는 듯 흐트러짐 없는 각본과도 같았다.)
알레아는 방으로 돌아옵니다.
불을 켜기도 전에, 이노레오가 잠든 모습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피세아, 자나요?
대답이 없습니다. 아마 잠에 든 것 같습니다.
깨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여 이 방을 살펴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한숨을 내쉬고 짐을 내려둔 후 화장실로 가서 가볍게 씻고 돌아옵니다. 어느정도 어둠에 적응하면 방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젯밤에는 왜 눈치채지 못한 걸까요?
백합 액자가 걸려 있는 다른 방과는 다르게,
당신의 방에는 헌팅 트로피가 걸려 있습니다.
좁다란 두개골에서 두 갈래로 뻗어나온 사슴뿔은… 기형입니다.
‘정상적인’ 사슴이라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과하게 자라난 뿔들은 복잡하게 얽히고 구부러졌으며 심지어는 서로 맞닿아 이어진 부분도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뿔은 이상하리만치 무도해 보입니다.
그 외는 모두 다른 기숙사 방과 같습니다.
알레아와 이노레오의 침대와 옷장이 각각 1인용씩 나뉘어져 있고, 머리맡에는 창문이 있습니다.
반쯤 열린 옷장 속에는 제대로 갖춰 입은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교복이 가지런히 걸려 있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옷장에서 시선을 돌려 제 침대로 다가갑니다.)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자켓 주머니에서 뭔가가 보이는군요.
잠깐 확인해 봐도 될까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봐도 되려나? 이노레오를 잠깐 보고 주머니를 확인합니다.)
자켓 주머니에서 사감용 학칙 몇 장을 발견합니다.
각각 1항, 2항, 7항입니다.
이걸 왜 주머니에 구겨넣어 놓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침대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당신을 반겨줍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학칙을 발견하면 원래대로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줍니다. 밑에 추가된 글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신경이 쓰였습니다. 침대에 누우며 창문을 바라봅니다.)
바로 밑에 전나무가 있습니다.
나무의 우듬지는 201호의 창문께에 멈춰 있을 듯합니다.
어제 이노레오가 바깥에 책을 떨어뜨렸다면,
정확히 전나무 가지에 걸릴 정도입니다.
창문 밑에는, 전에 보이지 않았던 바이올린 케이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주울 수 있으려나?)(빤)
바이올린 케이스는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쉽게 열어볼 수 있습니다.
들키지 않을 수 있다면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조심히 열어볼려고 합니다.)
조심조심...
알레아 에스트, 은밀행동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
은밀행동
기준치:
20/10/4
굴림:
31
판정결과:
실패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보려던 찰나... 이노레오가 꿈틀거립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흠냐..... (뒤척인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할까, 잠깐 현타가 오지만 이런 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열어보려고 합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봅니다.
예술 특기생인 당신과 동일하게 이노레오는 본인만의 악기를 들고 다녔었지요.
어렸을 때를 마지막으로, 연주한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요.
덜컥, 하고 열리는 소리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꽤나 남루합니다.
썩어가는 나뭇잎, 진흙 속에 잠기는 새의 가느다란 뼈, 바닥을 기며 뻗어나가는 덩굴.
...대체 왜 이런 게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 들어가 있죠?
게다가 바이올린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이게 뭐야.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 있는 것을 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알레아 에스트, 관찰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강행 가능할까요?)
태 (GM):ㅇㅋ
알레아 약타 에스트:(어두워서 그런가, 눈을 한번 비비고 제대로 봅니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아악 눈을 너무 세게 비빈것 같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눈만 겁나 아파올 뿐입니다.
그 순간, 주변이 밝아집니다.
마치, 불을 켠 것 처럼...
이노레오 오르비타:뭐하니?
알레아 약타 에스트:.....피세아.
(충혈된 눈으로 바라봅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바이올린 케이스가 열려진 것을 본다.) 너... (천천히 다가가 뚜껑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속에 든 것이 없어 그런가, 제법 가벼운 소리가 퍼졌다.) 아무리 너라도 이건 알려줄 수 없어. (내 사생활이니까. 그렇게 덧붙이며 침대 밑으로 쑤셔 넣어버린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아무리 이게 모두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네게 실례되는 행동인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피세아, 아침에 말씀하셨던 것은 기억하십니까?
느릿느릿 침대에 누워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어떤? (이불 속에서 웅얼거리며 말한다.)
이노레오 오르비타:느릿느릿 침대에 누워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어떤? (이불 속에서 웅얼거리며 말한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제 침대에 눕고) 학교가 이상하다는 것, 앤 버니스.... 제 전 룸메이트에 관한 것. '그것'에 관한 것도요.
이노레오 오르비타:(이불에 휩싸인 채 아무 말이 없다. 네게서 등 돌린 그 모습에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너는 알 수 없다.) ...너도 이제 제대로 알게 됐구나.
알레아 약타 에스트:당신이 원하던 건 줄 알았는데요.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있는지 몰라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맞아. (하지만 이 앞으로 더 나아간다면 네 안전은 더욱 더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 역시 그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맥..., 아니. '프나코티카' 는 챙겨 왔어? (여전히 등을 보인 채로 웅얼거리며 묻는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안전하지 않는 것은 지금 모든 학생과 선생이 그러지 않을까.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 네 속마음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프나코티카? 그게 뭐죠? (네 말을 조금 더 잘 듣기 위해서 몸을 네 쪽으로 비틉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네가 자습실에서 신나게 읽었던 책 말이야.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나, 자연스레 네 쪽으로 몸을 돌려 마주본다. 어둠 속에서 두 눈이 유독 밝게 빛나고 있다. 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맥베스' 가 아닌 건 이미 알았지?
알레아 약타 에스트:아. (네 말에 몸을 일으켜 제 가방속에서 '맥베스'라고 믿어왔던 책을 꺼냅니다.) 그러고보니 저에게 말도 안하고 먼저 자습실을 나가셨더군요. (네 쪽으로 책을 보여주고) 이것을 말하는 거지요?
이노레오 오르비타:(너를 따라 몸을 일으켜 네 침대에 가 앉았다. 범상치 않은 눈빛을 보이면서.) 네가 못 들은 거야. (네가 미친듯이 집중하고 있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빠져들어 있었기 때문에. 책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펼친다. 맥베스의 내용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확연히 다른 문장들. 어느 곳에는 작은 글씨로 각주를 달아놓은 것이 보인다. 익숙한 글씨체.)
알레아 약타 에스트:(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듯한 네 눈을 마주하고 나면 이제는 완전히 일어나 네게로 다가가 침대 위로 앉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을 등불 삼아 너를 따라 문장들을 읽습니다.) 이게 무슨 책이죠? (너는 이게 사람의 가죽인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이노레오 오르비타:신화서. (누군가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이 작게 속삭이는 그 말에는 미약한 힘이 실려 있다. '신화서'. 익숙한 글씨체의 주인은 다름아닌, 너와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에세이 작문을 돕기도 하고, 함께 요리도 하고, 독서도 함께 했었던, 조금은 음침하지만 괴담 연구에 열의를 쏟았었던 이전 룸메이트, 앤 버니스였다.) 봐, 연구했던 흔적이 남아 있지? (그가 남긴 글씨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익숙한 글씨체였습니다. 너와 함께하기 전까지 자주 봐왔던 것이니까. 그것을 읽고 있자면 지금 이 어둠 속에 있는 단 둘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같아서 기이하게도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마춥니다.) 무엇을 연구했던 거죠? 당신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알구요?
이노레오 오르비타:이건 아주 오래 전부터 학교에 있었던 책이야.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덧붙이며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긴다.) 사감실 책상 서랍에서 발견했어. 그들이 꽁꽁 숨겨놓을 물건으로 제격이지 않아?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그 얼굴은 비열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너도 알겠지만 내가 이걸 완독하는 건 무리야...... (앤 버니스. 그 아이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허무하게 무릎으로 떨어졌다. 그가 신화와 괴담에 깊이 몰두했었다는 점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놓았던 것인지.) 알레아. (이내 그 손은 네게로 다가갔다.) 너는 할 수 있을까... (미지근한 온도가 살갗에 닿았다. 부드럽고 연약한 감촉이 손끝에서 퍼진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네가 기대했던게 무엇인지, 그리고 기대를 했기에 실망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네 미소를 보면 대충 어림짐작 할 수 있었습니다. 꽤나 오랫동안 알고있던 사이니 그럴만도 했지요. 네가 제 이름을 부르면 늘 그렇듯, 변함없이 날카로운 눈매로 당신을 꽤뚫어볼 듯이 응시합니다.) 이걸 다 읽게 된다면 앤 버니스처럼 되는 겁니까. 차라리 그렇다면 그들처럼 다 잊고 이 곳을 졸업하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도망치는 것은 제 성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질문은 저와 너를 실험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겠다고? (잡은 손에 조금씩 힘이 실린다. 강요와도 같은 물음이다.) 너는 네 동기의 눈알이 파헤쳐지는 것을 봤어. 그 아이는 네 전 룸메이트의 죽음을 목도했었고. (답지 않은 말투로 네게 몰아붙이는 그 모습은 흡사 정의로운 영웅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사실일까?) ...이 학교를 벗어나면 그만이라고? (정말 그럴까? 다시금 찾아온 비웃음 가득한 얼굴. 너는 정말로 이 일련의 사건들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왠지모를 당당함이 그의 주위를 맴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참지 못하고 손에 힘이 조금씩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면 너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늘어집니다. 사실 너의 모습은 정의로운 영웅보다는 전쟁터의 혁명군과도 같았습니다. 네가 바꾸어낼 역사로 인해 네가 영웅으로 칭송받을지, 아니면 그저 광인으로 불릴지 결정되는. 네 당당한 눈빛은 본인에게 그 역사를 기록해야할 책임을 주는 것과 같아서. 네 손을 단단히 붙잡아 내려놓고 한숨을 깊게 내쉽니다. 어쩌면 안도와 비슷한.)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입니까. 말씀해보세요,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이노레오 오르비타:(너를 잡고 있던 손이 힘없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급격히 피곤해진 얼굴. 척박한 표정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저 역시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너와는 다른, 몹시 지쳐버린 듯한 느낌으로.) 이 학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이제 너와 나. 둘 뿐이야. (이전의 당당함은 어디 가고, 공허하게 입밖으로 내뱉어진 말들은 속절없이 허공에 흩어진다.) ...눈을 감으면 안 돼. (정신을 놓지 마. 네 손에 긴장을 풀지 마.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마. 그렇게 네게 요구하는 말들은 왜인지, 이유모를 서글픈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에게 수도 없이 반복했던 일. 그럴 때마다 번번히 닿지 않았을. 그런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발. (책을 덮어 네게 건넨다. 모든 것의 지식. 모든 것의 진실이 네 앞에 놓여져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여주었던 당당함이 흐트러지고, 너무나도 가벼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네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났지만 결코 쉽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습니다.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네 요구들을 듣고 있으면 저마저도 네 서글픔에 동화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너에게는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네가 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 해줍니다.) 이만 주무세요. (시계를 확인합니다. 아마도 이 시간에 학교를 돌아다닐 수도 없을테니 무엇을 하기에는 어렵겠죠. 대신 네가 건네준 책을 들고 일어나 책상으로 가 테이블 라이트를 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주, 혹은 며칠, 혹은 몇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밤이 되면 예의 4층에서는 쿵, 쿵, 하는 소리가 불길하게 울렸고,
미친듯이 책을 읽어내리다 까무라칠 때면 누군가 제 옆에 서서 군침을 다시던 것만 같습니다.
불길한 기억 틈새에서는 이노레오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있습니다.
당신은 그 말에 대답한 적이 있었던가요?
이노레오 오르비타:알레아, 식당에서 가져온 샌드위치야. 이거라도 먹고 해.
곧 수업인데 안 가?
사감이 너 엄청 찾길래 독감에 걸린 것 같다고 했어......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지?
믿기 힘들지만,
그동안 이노레오가 당신을 살펴주었나 봅니다.
매 끼니마다 식사를 챙겨주고,
지나치게 잠을 자지 않으면 재웠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낯선 종류의 다정함.
어째서 이렇게까지 당신을 보살폈을까요.
분명히 지난 몇 주간 당신은 방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내리쬐는 햇살에 단 한 번도, 온전히 노출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뒤엉킨 머릿속은 고사하고
뭉쳐진 근육과 결핍된 영양소가 당신을 병들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기억 속의 이노레오는 그런 당신을 곁에서 보살필지언정 병원에 데려간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외출일에 은근히 당신이 기숙사에 남을 것을 바라는 기색이었습니다.
앤 버니스가 끝내려 했던,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이 신화서 "프나코티카"에 대한 연구를,
그는 어째서 그토록 바라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어째서 당신을 지독하게 이용한 것일까요?
어찌 됐건, 창 밖에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은
흘러간 시간을 간직한 듯 생경하고 또한 반갑습니다.
당신의 눈앞에는 펼쳐진 신화서와, 온기가 남은 콘 수프가 남아있습니다.
그 옆에는 숟가락을 받친 냅킨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노레오가 두고 간 걸까요.
식기 전에 먹어두는 게 좋겠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아, (지친 눈가를 손가락으로 지긋이 누릅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요. 결핍된 수면과 영양소 때문인지 정신이 흐릿했지만 일단 감사한 마음으로 숟가락으로 콘수프를 떠먹습니다.)
그래도 몇 주간의 연구가 영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꽤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얻었거든요.
누가 이 책을 나무에 내다버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앤은 제법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옆에 필기해두었습니다.
이를테면 선행연구를 완벽하게 수행한 셈이죠.
덕분에 당신은 상대적으로 쉽게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난해한 데다가 중구난방으로 쓰여
책의 대부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의 다른 내용을 살피려면 지금보다 배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고,
그 동안 학교는 또 다른 학생들을 잡어먹고 모르는 척 하겠지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그래도 “추방의 인장” 이라는 주문은 꽤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찾아낸 기록이 사실이라면요.
"추방의 인장"이 자세히 기록된 페이지를 한 장 넘기면, 종이 한 장이 그곳에 끼워져 있습니다.
『■■■의 기록』.
한번 읽어볼까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추방의 인장과 무언가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봅니다.)
나는 이 책을 정독하는 동안 역관절이 돋아난 긴 뒷다리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사슴과 가장 흡사하게 생겼지만, 사슴이라면 그것처럼 사람 손의 형상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열 개의 손가락, 열 개의 손톱. 어느 모로 보나 그것은 사람의 손이다.
손목에 휘감아진 여러 갈래의 실은 얇은 가닥으로 바람결에 쉽사리 흩날렸다.
가장 먼저 눈으로 마주하는 그것의 얼굴은, 언뜻 사슴으로 짐작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자세히 목도할 기회가 생긴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사슴과는 별개의 수준으로 커다란 눈.
턱 아래까지 내려간 주름살과 기다랗고 축 늘어진 수염.
입 밖으로 비집고 튀어나온 송곳니는 흡사 멧돼지처럼 흉폭하고,
머리 위로 돋아난 뿔은 여러 갈래로 휘어져 나와 서로가 맞닿아 있기도 했으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구불구불한 양상을 띄기도 했다.
게다가 그것은 두 발로 걸어다녔다.
마치 사람처럼.
그것의 어깻죽지에는 혼잡하게 엮인 털과 그것에 덮개처럼 덮여진 날개가 있었다.
날개에는 무시무시하게 뻗어난 뿔들이 돋아나 있었고,
그 위에는 썩어가는 늪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모든 것들이 얽혀 있었다.
이를테면 잠겨 죽어가는 새의 뼈나 진흙 속에서 엉킨 덩쿨,
부패해가는 나뭇잎들 말이다.
그것은 미끄러지듯이 허공을 달렸지만, 날개를 펼친 적은 없다.
나는 이것의 형상을 아주 오랫동안 스태그필드에서 마주해 왔다.
이것의 독특하면서도 오해를 사기 쉬운 모양의 뿔 때문에 이 근방에 '숫사슴의 땅'이라고 불려왔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이것이나 그와 흡사한 것을 보았다는 기록은 적어도 영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은 스태그필드, 바로 이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무언가의 압박으로 인해 자유를 얻을 순간을 고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
"잠겨 죽어가는 새의 뼈나 진흙 속에서 엉킨 덩쿨, 부패해가는 나뭇잎들"....
알레아 에스트, 지능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 구절이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는 당신은 기억 속에서 단서를 발견합니다.
당신은 이것들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이노레오의 은색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두 눈으로 목도한 진실은 당신의 머릿속에 똑똑히 사진처럼 박제되어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마주한, 있을 수 없는 것들.
'알려줄 수 없다' 라며, 침대 밑으로 숨겨버린 그 속의 내용물.
......
앞으로 이 연구를 끝내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걸까요.
아니, 끝을 볼 수는 있을까요?
문득 캘린더에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에 눈길이 갑니다.
아, 그리고 당신은 깨닫습니다.
한 학기가 끝나고,
내일부터 겨울 방학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노레오 오르비타:(복도 먼 곳에서부터 어렴풋이 들리는 발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곧 천천히 문을 열더니 너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일어났어? (그러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너를 지나쳐 빈 그릇과 수저를 치운다. 응답을 바라지도 않는다는 듯. 네가 온전히 정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대체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난거지? 책을 읽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읽던 것을 덮은 체 인상을 찌푸리고 너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발견한 종이 한 장을 보여 줍니다. 그것에 그려진 것은 당신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피세아, 이게 무엇인지 당신은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그릇을 치우다 말고 당신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 마주본다.) 어? (마치 네 목소리를 처음 들어본 사람처럼. 생경한 낯. 하기야 너는 몇 주간 네 목소리를 입밖에 내본 적이 있었던가. 종이를 받아 들었다.) 저 책에 있었던 거야? 징그럽다...... (멍하니 그것을 보며 이야기한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너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이방인처럼 대하는 네 모습에 도리어 제가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너무 몰두한 탓에 판단력도 흐트려진걸까, 책을 잠시 덮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오늘은 수업에 갈 생각이니 씻고 오겠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 앞에 선 너를 삐딱하게 기대서 본다. 네 건강을 살피는 듯했다. 눈썹이 좁혀졌다.) 그럴 필요 없어. 오늘은 종업식이니까... (이내 화장실 문을 닫아준다. 그 너머에서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씻고 나서 동아리실로 올래? 할 이야기가 있어.
알레아 약타 에스트:네? (종업식이라는 네 말 때문이었을까, 제 얼굴에 닿는 차가운 물방울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머리를 한 대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 (거울에 비친 제 자신의 몰꼴에 짙은 한숨이 세면대 위로 떨어집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벌점은 얼마나 쌓였을지, 스트레스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머리카락을 정리합니다. 천장에서 수건을 꺼내며 묻습니다.) 무슨 이야기요?
이노레오 오르비타:네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 (그 말이 끝나게 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이라 그런지 침체된 목소리였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더 말을 듣기 전에 닫히는 문소리로 네가 나간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빠른 손길로 목욕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책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동아리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를 따라 방을 나서려던 중,
이노레오의 책상 위에 종이가 얹혀 있습니다.
아무래도 건네주려다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확인해 볼까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 (책상 위의 종이를 확인합니다.)
사감용 학칙 10번 을 확인하고 알레아는 동아리실로 걸음을 옮깁니다.
[3악장. 그 아이, 내가 잊어버린.]
기숙사를 벗어나 본관을 거쳐 동아리실까지 도착해 있던 이노레오는
당신을 기다린 듯 문 앞에서 개구진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그가 멈춘 곳은 음악 연습실입니다.
곧이어 천천히 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풉니다.
어느 때와 다름없는 연습실.
특유의 나무 냄새를 간직한 채 불을 켜지 않아 조금 어슴푸레합니다.
열린 창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 결에 커튼이 각자의 춤을 춥니다.
누군가 쓰다가 그대로 놔두고 간 듯한 악기들, 악보들.
칠판에 그려진 음표는 제멋대로 지워지고 그려진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습니다.
이노레오는 알 수 없는 곡조를 흥얼거리며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자리에 앉아 선반을 한번 쓸어내린 후 건반뚜껑을 열었다.) 기숙사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서... 여기까지 왔어. 아까는 모른 체 했지만, 그것에 대해 조금은 알아낸 게 있거든.
알레아 약타 에스트:(학칙 10번을 읽고 나면 불안감--아니, 짜증이 생겨서 인상을 구깁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위해서 이렇게나 희생을 해야하는지. 더군다나, 얼마나 오래 앉아서 책에 빠져있던 건지 걷는 것 마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꽤나 오랜만에 찾은 동아리실에 들어서면 몇번 물걸레 칠했을 나무 판자와 지워진 분필의 향이 저를 반겼습니다. 네가 앉아있는 피아노 쪽으로 익숙한 발걸음으로 다가가 대답합니다.) 말씀해보세요.
이노레오 오르비타:게이먼이 돌아왔어. (네 눈치를 살필 생각은 없는지 시선은 계속 피아노에 고정한 채다.) 그때의 일은 기억하지 못해. 다들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고.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미 그것을 수도 없이 겪어온 녹록한 일들 중 하나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알다시피 난 교표를 부착하지 않아. (지금도.) 이제 떠올려봐. 이유가 뭐일 것 같아?
알레아 약타 에스트:그러면 나중에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어야 겠군요. (네 시선을 저에게로 이끌려고 하는지 건반에 살포시 손가락을 얹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한참 전에 빼어버린 백합의 교표를 꺼내서 당신 앞에 당당히 보여줍니다.) 당신이 나에게 빼어버리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것을 계속 하고 있는 이상 이 학교가 가리려고 하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거겠죠. 아니면 벌점을 더 받아서 무슨 일을 벌이려는 속셈이라던지. 그래요, 피세아. 벌점은 얼마나 받았습니까?
이노레오 오르비타:(건반에 올려진 손가락을 보며 느리게 한숨을 내쉰다. 웃음이 섞인, 가벼운 농담처럼.) 괜찮아....아슬아슬하거든. (네가 벌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대로 이야기를 지속한다.) 너는 걱정할 것 없어. 아파서 쉬는 것도 학칙에 어긋난다고 하면, 그 누가 이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너무 야박하잖아. 라고 덧붙이며 다만 개근상만 바라지 않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시덥잖게.) 이 학교는 어떤 괴물에게 학생들을 계속 바치고 있어. 네가 신화서에서 봤던 '그것'. (사뭇 진지해진다.) 그 정체는... 그것일지도 몰라.
알레아 약타 에스트: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괜찮겠다만. (한숨을 내쉬고) 그런 것 같더군요. 하, 내가 어쩌자고 이런 학교에 오게 된거지. (낮은 목소리로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습니다. 이제와서 개근상이던, 모범생의 타이틀이던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퇴학 당하더라도 그딴 것에 제물로 받쳐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하려구요?
이노레오 오르비타:네가 책에 파묻혀 지내던 그때도,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가 사라졌을지도 몰라. 알레아. 너는, 그 표적으로 너와 내가 향하지 않을거란 보장이 있다고 생각해?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린다. 연주라도 할 심산으로.) 내일이 되면 다들 짐을 챙기고 이 학교를 벗어나겠지. 두 달 동안이야. 이 학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 (조여진 넥타이로 조금은 숨이 막히는 듯 헐겁게 풀었다.) 어수선해질 때, 도서관에 가봐. (이내 연주를 시작한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사실 그 표적이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정도로 깊숙이 이 일에 연관되어있으니 이제즘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우린 이렇게 멀쩡하고. (아닌가, 실없는 웃음을 내뱉습니다. 네 얇은 손가락이 검고 흰 건반 위로 올려지는 것을 바라봅니다.) 당신은요?
이노레오 오르비타:나는 해야 할 일이 있어. 아, 그리고 그 책도..., (프나코티카를 칭하는 듯) 꼭 챙겨가도록 해. 항상, 네 곁에 두고 있어야 해.
이노레오 오르비타:(건반을 빠르게 움직이며 연주에 몰두하고 있다. 이 노래를 듣는 네 기분은 어떨까. 어느 때보다 열중해서 연주하는 것과는 달리 표정에서는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 있지는 않았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잘 짜여진 곡선 위로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노래자락이 귓가로 흘러들어옵니다. 지금 이 노래를 연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세아. (작게 네 이름을 부르지만 네가 멈출 것 같지 않으면 제 손에 제법 힘을 실어서 건반을 짓누릅니다. 불협화음이 순식간에 마디사이를 끼어들어 네 연주를 무례하도록 망가뜨립니다. 낮아진 눈높이로 너와 시선을 마주하고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내뱉습니다.) 이노레오 피세아 오르비타.
이노레오는 연주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 깊이 몰두한 듯한 표정은 전과 다르게 웃음 한 점 없습니다.
어쩐지 수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뒤에 자리하고 있던 커튼이 강한 바람에 휩싸여 크게 휘날립니다.
당신의 가느다란 머리카락도 함께 흩날리고 있습니다.
창 너머에서 내려온 햇살에 이노레오의 그림자가 더없이 길어집니다.
당신의 발끝까지 기다랗게 내려온 그 그림자는
일순간 형체가 희미해집니다.
크툴루 신화 판정을 진행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
크툴루 신화
기준치:
0/0/0
굴림:
47
판정결과:
실패
도대체 어떤 괴물이 당신을 노리고 있는 걸까요?
괴상한 기책이 느껴지지만 도처에는 어떤 실마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폭풍이 곧 불어닥칠 것만 같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연주를 멈추고 건반이 짓눌려진 네 손을 보았다. 그 시선은 천천히 네 눈동자로 향한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도 같다.) 왜?
알레아 약타 에스트:(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폭풍에 휘말리지 않도록 발에 최대한 힘을 주고 지탱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네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가만히 내려봅니다.) 나한테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이유가 궁금해요.
이노레오 오르비타:함께하고 싶었어. (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쏘아붙는 한 마디. 경우에 따라 위협으로도, 설득으로도, 경고로도 들릴 수 있는 그 말이 네게 전해진다. 이마를 타고 내려온 너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어. (무언가 덧붙이려는 찰나, 스피커에서 돌연 소리가 흘러나온다.)
종소리가 울리자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날씨가 사나워집니다.
이노레오는 연주를 관두고 하늘을 올려보더니 어수선한 표정을 짓고는 건반 뚜껑을 닫아버립니다.
이내 연습실을 벗어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제 살갗에 닿는 네 손가락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단순히 오늘 날씨 때문일까요. 너를 따라 연습실을 벗어나 방으로 돌아가 프나코티카책을 챙겨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그를 따라 연주실을 벗어나던 당신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낡은 종이를 발견합니다.
아무래도 아까 바닥으로 흩어진 악보 사이에 끼어 있던 모양입니다.
먼저 계단을 내려 간 이노레오와는 제법 거리가 있습니다.
가만히 사감용 학칙을 읽고 있노라면, 밑에서 그가 소리쳐서 알레아를 부릅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교실로 가자. 이제 곧 종업식이 시작되겠어.
알레아 약타 에스트:(어쩐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언짢은 표정으로 너를 따라갑니다.)
지금까지 괴물의 옆에서 기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당신은, 이성 판정 1D3/1D6.
알레아 약타 에스트:
SAN Roll
기준치:
67/33/13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때까지 본인이 몰랐던 학칙 10가지의 마지막 내용까지 다 확인하면 수레바퀴 조각이 맞물려 하나의 큰 조각이 되어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녹슨 쇠소리와 함께.)
rolling 1d3
(
1
)
=
1
이성 -1
그러고 보니, 내일은 방학식입니다.
방학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오면, 룸메이트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늘로써 이노레오와 룸메이트가 된 지 3개월이 지나는 시점이니까요.
운동장에서는 짐을 챙기고 학교 밖을 나가는 학생들로 가득합니다.
평소라면 당신 역시,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짐을 챙기고,
예매해둔 기차표를 가지고 역으로 가거나, 데리러 온 부모님의 차를 타고
편안히 집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대체 어쩌다 당신은,
당신을 지나쳐가는 수 많은 학생들과는 별개로,
지금 이 순간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진 것일까요?
바로 저 괴물에게 말입니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를 외면하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 주문을 완성해볼지,
아니면 그 가증스러운 이유라도 들어나 볼지......
알레아 약타 에스트:(히죽거리는 네 얼굴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제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머릿속이 피아노 건반처럼 흑백이 되어 연주를 시작합니다. 피날레를 위한 전주를. 그에 맞추어서 패달을 밟듯이 사뿐사뿐 너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이 악장이 존재하는 이유를 묻기 위하여.)
알레아 약타 에스트:(그 노래를 연주하고 있는 당신은 흡사 어렸을 적과 무척이 닮아 있었습니다. 바다로 돌아갔다라는 제목의 노래만큼이나. 그래서 미소를 짓고 당신에게 다가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피세아. 당신은 내가 알던 그녀가 맞습니까?
이노레오 오르비타:(네가 온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연주를 멈춘다. 피아노 소리가 서서히 네 발걸음에 묻혀들어가 사라진다.) 알레아. 왔어? (종업식도 끝났는데 왜 여즉 학교에 남았나. 짐은 다 챙겼나. 부모님이 데리러 오시진 않나. 그런 지극히 평범한 질문들을 하려다, 네 말을 듣고 그저 망설이고 만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노레오는 척박하게 굳은 얼굴입니다.
낮게 가라앉은 눈썹은 어쩌면 서글퍼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제와서 연기를 해보려는 걸까요?
이미 늦었지만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다 알고 왔어요. 괴물에 관한 것도, 주술 의식.... (제 손에 아직 쥐어진 책을 바라봅니다.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것 만큼이나 가식적이고 기묘한 내용의 책.) 그래서 당신이 나에게 알리고 싶어했던 건 이런 것이 맞나요?
이노레오 오르비타:(짧은 한숨을 내쉬고 희미하게 웃었다. 네게 사감용 학칙을 접어 비행기로 날리며 히죽거렸던 웃음과는 자못 다른 형태였다.) 내가 죽였어, 네 전 룸메이트. (일말의 감정 변화도 없이, 그 입에서 또박또박 발음이 흘러나온다.) 앤 버니스. 게이먼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미쳐 버렸지.
알레아 약타 에스트:그 두 사람이 미쳤다고... (입가가 실룩입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놀란 기색은 일말도 없었습니다.) 제 눈에는 당신이 더 미친 걸로 보이는데. (겁도 없이 너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러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곧게 들숨날숨을 반복하는 제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죽일 생각이신가요?
이노레오 오르비타:(네가 다가오는 중에서도 그저 가만히 너를 바라볼 뿐이었다. 심연과도 같은 새까만 눈동자는 너를 당장에라도 집어삼킬 듯 불빛 하나 비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아. (이내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며 네 눈동자를 회피한다.)
당신의 발 밑에서 검은 촉수가 올라오더니 당신의 목을 조릅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너는 내게 봉양된 제물이니까. 내가 그리 정했어.
그러니 영원토록 옆에 있어, 굴종하며."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목을 죄이는 힘은 그저 강해지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당신과 그의 개같은 관계에 가지는 유일한 신뢰입니다.
저 새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그 무엇이 당신을 죽이게 내버려두지도 않겠죠.
안식 따위를 허용해줄 아량이 어디 있겠어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의심이 확신으로 변화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조여오는 혈관에 숨이 막혔지만 흔들리지 않는 충혈된 눈으로 너를 내려다봅니다.) 난,... 너, 같은... 거에 제물이 될 생각이 없어-! (어째서일까요, 이렇게 비웃음이 나올 것 같은 이유는.)
이노레오 오르비타:(충혈된 눈을 마주하자, 너의 몸을 둘러싼 것의 힘이 조금은 약해지는 듯했다. 힘을 풀어준 것인지, 아니면 살살 봐주며 약을 올리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겠지... (마음먹는다면 충분하다. 얼마든지 지금 너를 이 순간 죽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왜인지 그는 고개를 돌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무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악몽이었음을, 그 누구보다도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손가락이 뺨을 어루만질 때마다 소름이 쭈뼛 돋습니다.
그는 사악한 주문을 읊으면서 알레아의 입 안으로 무엇인가를 흘려 넣습니다.
진흙과 아주 흡사한 것입니다.
늪의 냄새.
썩어가는 나뭇잎,
진흙 속에 잠기는 새의 가느다란 뼈,
바닥을 기며 뻗어나가는 덩굴.
네, 그것이요.
그는 슬픔에 가득 찬 얼굴로 중얼거립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내 피야.
그러더니 당신의 갈비뼈에 손을 얹습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네 몸에 흐르는 피가 모두 내 것이 된다면, 이제 내가 네 심장을 가져갈게.
다시는 더러운 인간의 피가 네 혈관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그동안 하찮고 하등한 것으로 사느라 고생이 많았어.
앞으로… 60일. 인간일 수 있는 마지막 나날들을, 의미있게 보내봐.
알레아 약타 에스트:(힘이 조금 풀리자 급하게 숨을 들이킵니다. 네 손길은 금방이라도 갈비뼈를 뚫고 제 심장을 움켜져, 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꼿꼿이 고개를 쳐들고 너를 매서운 눈으로 내려다봅니다. 네가 가까이 다가오면 남아있는 힘으로 한 손을 들어올려 네 볼을 내려칩니다. 철썩- 꽤나 아플 것 같은 소리가 방안으로 울려퍼지고 살갗에 맞닿은 손바닥이 뜨겁습니다.) 누구 멋대로 하등하다고, 하찮다고 말하는 거지? (비록 약해진 숨으로, 거칠게 내뱉는 말이었지만 두려움이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역겨움에 가까운 비음이 섞였다면 모를까.)
이노레오 오르비타:(강하게 내려친 네 손에 의해 뺨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그 충격에 의해 내려온 앞머리가 난잡하게 흩어진다.) ...벨보 알 소르... 너와 함께 연주한 그 바이올린 연주자. (고개들어 너를 다시 마주했을 때에는 붉어진 뺨 위로 한쪽 눈이 꽤나 충혈되어 있었다. 이내 그 너머로 눈물이 고였다.) 내가 그 아이의 손목을 잘랐어. (허무하게 웃음짓는 그 얼굴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너와 연주할 사람은 나인데. 네 피아노 곁에 서서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바이올린을 켤 수 있는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이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이 선택에 후회는 없어. 너 역시 그러길 바라. (이내 결의에 찬 눈빛으로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어느 인간과도 같이 붉어진 뺨, 고통을 호소하는 듯 흐르는 눈물은 동정심을 자극하기도 했지만 알레아는 죄책감마저 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뻔뻔하게도 늘 본인이 하는 일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인간은 늘 그것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까요. 네가 다른 바이올린 연주자에 대한 말에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짧게 미친사람, 괴물이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뿐. 네 말에 당당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합니다.) 본인은 후회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책임을 넘기려고 하지 마세요, 이노레오 피세아 오르비타. (그건 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던 본인을 원망할 생각을 하지 말란 경고와도 같았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더 할말이 없으면 돌아갈겁니다.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말이 끝나고, 이노레오는 열린 창 밖으로 뛰어내립니다.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여전히, 당신만을 갈구하는 듯한,
그 간절한 눈빛.
이대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습니다.
눈에 힘을 주고, 입 안을 꽉 깨물고 힘을 주어 보세요.
감히 도량을 베풀어주니 고맙기 짝이 없네요.
저 자만에 가득 찬 유예가 제 목을 칠 것도 모르고……
[4악장, 나는 오랫동안 너를 생각해왔어.]
당신은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익숙한 물건들, 익숙한 냄새.
앞전에 겪어온 일들을 잊어버릴 만큼 편안합니다.
이대로 평소처럼 여유롭게 방학을 보내고 싶지만......
남은 시간은 두 달. 당신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대한 기로 앞에서,
겪어온 모든 것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알레아는 "프나코티카" 와 순금을 챙겨왔나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가장 중요한 것이니 챙겨왔습니다.)
당신의 앞에는 그 괴괴한 신화생물을 영구적으로 추방할 수 있는,
"추방의 인장",
그 주문을 완성시킬 앙크의 재료가 놓여있습니다.
지금부터 앙크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제작 공정은 "프나코티카"를 참고하면 됩니다.
십자가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세세하고 정밀한 작업이 요구되는 만큼,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당신이 속한 곳은 당신의 자택입니다.
이 책을 연구했던 것처럼 끼니를 거를 정도로 밤낮없이 열중하거나,
당신이 잠든 사이 펼쳐진 신화서를 누군가가 읽게 된다면......
앙크를 완성시키는 데 지장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은밀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어야 할 텐데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순금과 프나코티카를 이용해 추방의 인장을 시전합니다. 한줄한줄, 세세히 읽고 기록하며 진행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이전에 수업을 들으며 노트 한건가 싶은 흔적을 보다보면 탄 냄새가 나서 그곳의 원천을 찾으려 훑어봅니다.)
공책을 빠르게 넘겨봅니다.
휘갈겨 쓴 글씨가 한장한장 넘어갑니다.
89년 9월 2일, 89년 10월 17일.
90년 3월 8일.
90년 9월 9일...
일기입니다.
당신은 공책에 적힌 그의 일기를 발견합니다.
이제와 이것을 확인한들,
당신의 룸메이트가 끔찍한 괴물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흉부를 꿰뚫고 살아있는 심장을 꺼내어,
그것을 집어삼키고, 자신의 두개골을 영광의 면류관처럼 당신에게 씌운 채,
사랑을 속삭이는......
그런 끔찍한 짓을 하고도 남을 존재입니다.
일기를 확인할까요?
아니면 손에 쥔 그것을 버리고 학교로 나아갈까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혹시나 괴물에 대한 더 정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합니다.)
일기를 확인합니다.
89년 9월 2일.
오늘은 새학기 입학식이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인간들이 나아가 사회 지도층이 되는 거라고?
날 보며 수근거리는 녀석들이 많았다.
멀리 있어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뭐, 손가락?
손가락이 아니라 손목인데. 알 거면 제대로 알지.
멍청한 것들.
그대로 그 인간들 중에서 알레아를 봤다.
여전히 참 예뻤다.
같은 반이 되면 좋을텐데
......
89년 10월 17일.
오늘도 거지같은 하루를 보냈다.
아직도 이 학교가 낯설다.
여길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뿐인 걸까
꽉 채워진 단추가 답답하다. 목에 매인 넥타이는 가끔씩 날 조여오는 것 같다.
그 놈의 넥타이핀. 이런 건 굳이 할 필요 없잖아
이런 자잘한 것들까지 통제하는 이유가 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한 달동안 오며가며 알레아를 보았다.
주위에 친구도 여럿이 있고, 학교에 완벽히 녹아든 것 같았다
인사하고 싶은데 그러질 못했다
.......
90년 3월 8일.
나는 그것을 보았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나타났다
왜 이렇게 난데없이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
90년 3월 22일.
벌점이 5점이나 쌓였다
그거야 당연하지 넥타이핀을 빼고 있으니까
이제 전부알겠다
그건 난데없이 나타난게 아니다
그냥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거다
아프다는 핑계로 계속 방안에 있었다
알레아가 보고싶어.
......
90년 9월 9일.
한 학기가 시작된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학생들은 템플턴을 기억하지 못한다.
리우와 핀저도....
오히려 나를 미친사람 보듯 한다.
왜?
단체로 정신이 나간게 분명하다
교장실에 가서 이야기할 거다. 전부 다 말할 거다
.......
91년 4월 26일.
오늘은 자정을 넘겨서 학교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을 넘어서 절벽으로 간 다음 공책을 태웠다.
주문을 외우고 그것을 불러내 대화를 했다.
그 책에서 본 대로 따라했더니 정말 만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
일기는 불규칙적인 주기로 쓰여져 있습니다.
다음 장을 넘겨 마지막 일기를 확인합니다.
년 월 일
침대에 누웠다
어제부터 룸메이트가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선생님도 내 친구도 지나가는 학생도
하다못해 청소부 아주머니도
교실에 앉아있어도 출석으로 나를 부르지도 않는다.
이제 내가 보이지도 않는건가?
사감 선생들은 나를 봐도 모르는 체 하는 것 같다
그들은 경멸에 찬 낯짝들을 하고서 날 본다
내 선택이 그렇게 어리석었나
그들에게 나는 그런 꼴로 여겨지는 건가
내일은 룸메이트가 바뀌는 날
어서 알레아를 만나고 싶다
그 아이는 나를 똑바로 볼 수 있겠지
그걸로 충분해
페이지를 넘길수록 탄 내가 짙어집니다.
그러던 중... 중앙의 페이지에서 불에 그을린 자국을 발견합니다.
이노레오가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가요?
그런 것 치고는, 무척이나 기이한 형태입니다...
알레아 에스트, 지식 판정.
알레아 약타 에스트: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4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 기억났습니다.
"프나코티카"에 기록된 주술입니다.
"권속 계약".
근처에 형태 없는 권속이 있으면 자동으로 성공합니다.
이 주문을 걸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제단이 있는 신전이나
사방이 탁 트여 방해될 것이 없는 평지,
새까만 어둠을 뒤덮은 검은 심연의 입구입니다.
접촉할 권속에 따라 정해진 마법진과 주문이 필요합니다.
소환에 성공한 술자는 권속과 결코 깨어지지 않을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갖게 해 달라', '죽음조차 죽여달라' 라는 주문들은 불가능하지만,
합리적인 대가를 원칙으로 한 주문은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육신을 바치고 권속의 호흡이 되어 영원히 살아가는 것.
.......
이노레오는 그것을 이뤄낸 걸까요.
뭘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알레아 약타 에스트:(잔잔한 표정으로 공책을 읽습니다. 어느정도는 예상했던 감정들과 고민들, 그리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기이한 자국.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였기에,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었던 걸까요.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것 뿐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바란 적이 없었습니다. 이노레오와 알레아는 완전한 타인이었으니까요. 읽기 전과 동일한 표정으로 공책을 다시 닫습니다. 일기와 앙크를 챙깁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노레오에게 유일한 사람이었나봅니다.
친구들의 죽음을 하나씩 목도하면서도,
그 존재 앞에 무릎꿇으며,
자신의 육신을 바쳐 당신을 지켜내고 싶었던 그 사람.
그런 그에게 당신은 질투와 사랑을 불러일으킨,
단 하나뿐인 존재였겠죠…….
자,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앙크를 잃어버리지 않게 단단히 챙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 이뤄낼 미래를 그려내며.
그리고 굳게 다짐하며.
스태그필드 스쿨로 향합니다.
.......
도착한 학교는 여전히 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교내는 짐가방을 든 학생들로 가득합니다.
여행에서 가져온 선물을 나눠주는 학생들,
벌써부터 단어장을 보며 공부 중인 학생들,
피곤함을 견디지 못해 엎드려 자는 학생들......
당신은 그들과 그들이 속한 일상을 천천히 지나쳐갑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학생들에게 인사를 나눕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노레오는 어디에 있을까요?)
친구들은 당신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겨줍니다.
방학 때 무얼 하고 지냈나. 무슨 일을 했나.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불현듯 고개를 창가로 돌리면,
그가 복도 끝에 당신을 보고 서 있습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복도 끝으로 다가가 너를 맞이합니다. 늘 너에게 보여주었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웃음으로.)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이노레오 오르비타:안녕, 알레아. (기둥에 몸을 기대고 서 있다가 두 발을 앞으로 쭉 뻗어 완전히 네 앞으로 섰다.) 방학 잘 보냈어?
알레아 약타 에스트:(당당히, 굳게 선 자세로 너를 바라봅니다. 단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요.) 조금 바빴어요. 당신은요?
알레아 약타 에스트:(이미 충분히 변해버린 네 모습은 마지막 남아있었던 친구의 우애라던지 정을 떨쳐내도록 말하는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인정합니다.) 당신은 내가 알던 피세아가 아니군요. (한치의 떨림도 없었습니다. 내가 하기로 정한 일이니, 두려움이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앙크를 들고 괴물을 영구적으로 추방하기 위해서 정신력 대항을 합니다.)
기회는 세 번입니다.
민첩 판정을 진행합니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
민첩
기준치:
85/42/17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노레오?: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괴물이 빠른 속도로 당신을 벽으로 밀쳐냅니다.
이노레오?:소용 없어, 알레아. (바닥으로 나자빠진 당신을 향해 달려온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이럴 줄 알았으면 몽둥이같은거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인상을 짧게 쓰며 재빠르게 일어나서 너를 피해봅니다.)
이노레오 오르비타:(괴로움에 발버둥치던 괴물은 이내 몸을 잔뜩 웅크린 이노레오의 모습으로 변한다. 허약하고, 보잘것없는 몸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부르는 것은 너의 이름이다.) 알레아. (살아남으려는 일말의 발버둥이라도 쳐 보려는 건지, 네 이름을 부르는 그 눈빛은 무척이나 애처롭다.)
알레아 약타 에스트:(진흙으로 나뒹구는 너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꽤나 애처로운 모습으로, 저에게 구원이라도 바라는 듯 이름을 부르지만 흔들릴 리가 없었습니다. 너는 나의 장벽. 내 앞길을 막는--나를 도리어 잡아먹으려고 하는. 마침내 그것을 밟고 올라섰으니, 슬픔이 아니라 승리의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아, 당신의 바이올린을 가져올 걸 그랬어요. 아니면 음악실에서 보자고 할 걸. 당신에게 들려줄 노래가 많이 남아있는데. (안타까운 말투입니다. 당신이 이제 없어질 거라는 것에 대한 슬픔보다, '내'가 네 옆에 있어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지독히 이기적인 말입니다. 한쪽 무릎을 굽혀 네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조심히 쓰다듬어 줍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피세아. 당신 하나로 이 세상이, 제가, 구원받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