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디스 마셜:(손수건 흘끔 보고 만다.) 됐습니다, 이제 귀 기울여주는 사람한테 뭘 더 말하겠어요?
(허리 숙이더니⋯⋯)
오늘 여기서 시간 좀 보내주면 얘기해줄게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곧 잔에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데⋯.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새로운 손님 유입법인가? (다시 한번 깜박⋯) 오늘은, 음. (말끝 흐리다가도 수려한 얼굴 보니 흥미가 동한 건지.) 그래요, 제가 당신의 시간을 살 테니 이야기를 내어줘 보세요.
글로디스 마셜:(!) (눈에 띄게 얼굴이 밝아진다. 입꼬리가 샐쭉 올라가는 듯 하더니 헛기침을 두어 번 한다.) 아, 좋아요. 확답은 이미 들은 것 같으니 두 번은 안 물을래요. 마음이 변하면 어떡해⋯⋯
그나저나, 지금 몇 시죠?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저기, 본인 표정이 열린 책같다는 말 안 들어봤어요? (시선이 입꼬리로 흘러갔다가 피식 웃는다.) 뭐⋯. 그러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거지.
한 7시 됐나? 퇴근을 그쯤 한 것 같은데. (손목시계를 차고 왔나?)
손목시계의 바늘은 8시 반을 가리킵니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흐릿⋯⋯) 내 두 시간 반이 방금 증발한 것 같은데. 8시 반이네요.
글로디스 마셜:바쁘게 살다보면 시간이 증발도 하고 그러는 거죠. 뭐⋯ 술까지 마시지 않아도 드문 일은 아니니까.
글로디스 마셜:서비스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굳이 단어를 빼앗아 붙여야겠어요⋯ (어깨가 한 번 으쓱였다.) 생각 이상으로 협조적이네⋯⋯ 마찬가지로 외롭기라도 하셨어요?
(농담이라는 듯 손을 내젓는다.) 글로디스 마셜. 편하게 불러요. 따로 애칭 같은 건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외롭기보다는, (눈동자 굴리다가 스푼을 쥔다.) 뭐라 반박할 틈을 안 줘서. 요즘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나봐요. 그리고 어차피 진짜도 아닌데⋯⋯. 큰 의미 담을 필요 없지 않나요?마셜 씨.
글로디스 마셜:사람 대하는 직업 가지고서 밥벌이를 하다 보면 이런 기술도 생겨요. 아마 당신이 바빠서 정신을 놓은 게 아니라 제가 잘 흔들어버린 것이리라는 소릴 하는 거예요,애쉬.
좋아하는 음식 종류는 따로 없어요? 역으로 장단 맞춰주는 사람 귀하거든요, 이런 장소에서.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이 일을 제법 오래 했나 봐요, 기술이 생길 정도면. 그런데 잘 흔든다는 사람이 어쩌다가 그런 일을 당하셨을까. (본론은 이쪽인데. 낯익은 호칭을 낯선 이가 부르니 기분이 새롭네. 고개가 기울어진다.)
이런 것도 괜찮아요. 음식 선호도가 크게 없어서, (애플 크럼블을 입에 넣는다.)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뭔데요?
글로디스 마셜:진심이란 건 비즈니스랑은 다른 거니까?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얼굴로 잠시 눈이나 끔뻑인다. 기울어지는 고개를 바라보다가 아무렴 좋다는 듯 마티니 글라스에 레몬 슬라이스를 얹는다.)
따로 고민해본 적은 없는데. 뭐든 정어리 파이보단 좋아요. (웃음기 섞인 어조다. 잔을 앞으로 밀어주고 제 몫의 잔 위에도 슬라이스를 무심하게 얹었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음, 그렇구나. (쉬이 납득하고선 주억거린다.) 그러니까 이 짓도 비즈니스 같은 거죠. (밀어진 잔을 내려다보더니 스푼을 손가락 사이로 빙글 돌린다.) 같이 마실려고요? 일하는데 그래도 돼요?
글로디스 마셜:진짜였으면 좋겠어요? 긍정적으로 고려해볼게요. (능청스럽게 받아친다. 빙글 돌아가는 스푼을 눈에 담다 고개나 끄덕였다.) 한 잔 가지고 취하는 사람처럼 보일 인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잔을 부딪치자는 듯 흔들거린다.) 싫어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초면에 그런 소리를. 저도 직장에 치여 사는 입장이라 진심보다는 비즈니스가 편해요. (웃음소리가 잘게 부서진다.) 취한 게 문제가 아니라 혈중 알코올 농도가 문제인데, 여하튼⋯.
싫다는 소리는 아니고. (잔을 쥐고 앞으로 기울인다.) Cheers.
글로디스 마셜:이번 생의 초면은 전생의 인연으로 만드는 건데, 몰랐나 보네.초면에 애칭 알려주길래 낭만가인 줄 알았는데요. (혈중 알코올 농도? 다른 시각에서의 전문가인 모양이지. 알코올엔 일가견이 있었으나 말하길 관뒀다.)
Cheers. (청명한 음이 난다! 직후 가볍게 몇 모금 삼켰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낭만가는 그쪽 같은데. 전생을 믿어요? 초면에 애칭을 알려준 사람이 이미 수십이 넘는다고 하면 어느 애인 씨께서는 서운해하시려나. (퍼지는 파동을 시선에 담다가 작게 한모금을 삼킨다.) 잘흔들었네요.
알코올 향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자몽 맛이 과하게 달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홍차 향이 납니다.
정말 잘 흔들었네요.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갑니다.
직업을 묻는다거나, 퇴근을 원래 이 시간대에 하냐거나⋯
⋯⋯ 직장인의 비애를 모를 수도 있는 거죠, 뭐.
글로디스 마셜:음식 취향이 뚜렷하지가 않으면 추천을 하기도 모호하고⋯
서운할 건 없는데 덮어쓰기 정도는 해야겠네요?
그가 메뉴판을 건넵니다.
저녁도 못 먹었고⋯
거절할 이유는 없지 싶어요?
메뉴판은 나무판자에 덧대어진 링 바인더 형태로 제법 고급스럽게 생겼습니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추천은 보통 본인 입맛에 맞는 걸 하지 않나요? 추천일 뿐인데. 상대가 같이 좋아해 주면 금상첨화고, 아니면 조금 아쉽고. (메뉴를 훑어본다.)
칵테일은 정말 좋았거든요. 우선 크래커랑 크림치즈로 부탁드릴게요. 메뉴판은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되죠?
글로디스 마셜: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당신 입맛은 좀 맞춰보고 싶어져서요. (바를 손으로 짚은 채 메뉴를 훑는 모습을 바라봤다⋯ 곧, 다시, 아주 투명하게도 얼굴이 다시 밝아진다.) 하핫, 뿌듯해라.
갖고 있어요. 금방 내올게요. (등을 돌렸다가 다시 고개만 휙 돌렸다.) 음악 취향도 모호한 편인가, 혹시?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어렵네⋯. 이제까지 특별히 거부했던 음식은 없었거든요. 정어리 파이 마저도요. 차라리 당신 입맛을 각인시키는 게 더 빠를걸. (고개를 들면 순간 시선이 맞물린다. 거의 반사적으로 미소가 번졌다.)
단박에 떠오르는 밴드 이름이나 작곡가가 없는 걸 보니 모호한 편인 것 같네요. 이번에야말로 추천해 줄 셈인가요?
글로디스 마셜:사람이 그렇게 흐릿하게 살면 재미가 없어요. 개성 있게 사는 것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취향 한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겠어요? (한켠에 걸려있는 LP판을 집어들고 축음기에 올렸다. 분위기가 약간 환기될만한 모던 재즈가 흘러나온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해서 가능하면 의견을 반영해다 올리려고 했죠.
곧 문가가 소란스럽더니 정장 입은 남자가 셋 들어옵니다.
평범한 직장인 같군요.
그들은 애쉬가 앉은 카운터의 뒤쪽 테이블에 앉습니다.
셋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어이, 바텐더. 마시던 걸로 세 잔 내와봐."라며 주문을 하고⋯
저들끼리 신나게 떠듭니다.
글로디스 마셜:네, 네⋯ 데시벨만큼 팁 받아간다고 저번에 말했을 텐데?
말은 그리 하지만 꽤 살가운 어조입니다.
사회생활 한 번 잘하는군요.
애쉬에게 크래커와 크림치즈를 먼저 내어준 그가 곧 락 글라스 두 개와 샷 글라스 하나를 꺼냈습니다.
수상한 분위기의 칵테일 바 치고는 평범한 손님들입니다.
인상들이 조금 험악해 보이는 것 같긴 한데, 그건 그냥 넘어가자고요.
아까 마신 칵테일 때문인지 몸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글로디스는 아까 애쉬에게 만들어주었던 것을 다시 만드는 듯 익숙한 색의 음료를 제조하고 있습니다.
글로디스 마셜:보통 시그니처를 자주 찾아요. 스칼렛 루비라고 하는 건데, 아까 당신이 마신 것도 같은 거예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흘끗 본다. 벌써부터 기가 빨리는 기분이⋯.) ⋯아까 메뉴판의 가장 상단에 있던 이름이네요. 마셜 씨가 직접 만든 메뉸가요?
글로디스 마셜:네, 뭐. 이런 거리 귀퉁이에 있는 가게로서는 캐-치한 메뉴 하나둘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요? 연구 꽤 했죠.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나름 직업에 정을 붙이고 계신 것 같네.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칭송받아야 응당하지. (웃기나⋯.) 왜, 나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가게인데요. 음료도 그렇고, 바텐더도 그렇고.
글로디스 마셜:말은 이렇게 해도 사람과 대화 좀 덜 하고 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하고 바랄 때가 많아요. 이건 그럼 가짜 열정인가. (칵테일 위로 위스키를 흘려 막을 만든다.) 음료야 그렇다 쳐도. 바텐더? 수작질이 유감이란 소린가? (입꼬리가 샐쭉 올라갔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아주 흔하디 흔한 직장인 신드롬 입니다. (진지한 투로 답했다가 신기하다는 듯 손끝을 빤히 쳐다본다.) 하하, 수작질이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수작질이었어요? 것보다 여럿 손님 울려봤을 것 같은 인상이잖아요.
글로디스 마셜:⋯⋯ 그렇구나? 당신 의사였어요? (사뭇 진지한 투에 눈이 잠시간 동그래졌다. 잔을 전달하러 일어나고는 뒤를 스치며 작게 흘리듯 말한다.) 마음 좀 고쳐달라는 소린 진부할 테고.
(금방 돌아오면서 손을 가벼이 털었다.) 그럼 마음에 들지도 않는 사람한테 그런 걸 부탁할까 봐서요? 손님 여럿 울려봤을 것 같단 말은 또 뭐람.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덩치 큰 남자:아니, 그런데 그 때 그 자식이 딱 줄을 끊고 도망가더라니까! 애새끼가 도망가는 건 어찌나 빠르던지.
수상한 낌새를 느껴서 가보니까 창고에 잡아둔 놈들이 반절 없어졌더라고. 그 망할 놈이 손을 써둔 거야!
마른 남자:그건 자네가 일처리를 확실하게 하지 못한 탓이고, 이 사람아.
마른 남자가 괜히 한 마디 거들다가 덩치가 큰 남자의 따가운 눈총을 맞습니다.
싸우는 거 아냐? 조마조마하게 대화를 엿듣습니다.
그건 둘째치고 대화 내용이 살벌한데요?
이 칵테일 바, 마약상의 암거래 지역이라거나 그런 곳은 아니겠죠?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고민됩니다.
키가 큰 남자:그러는 너도 이번에 보석 경매인지 뭔지 하는 거 경호 맡아선 다 털렸다며? 하하하.
마른 남자:이보게, 그건 어쩔 수 없었다고. 거기서 그 자식이 나올 줄 알았나?
결국 키가 큰 남자에게 한 소리 듣고 마네요.
키가 큰 남자:말도 마, 수습하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썼어. 마시기나 하자고!
분위기는 얼마 안 가 풀어집니다.
그들이 외칩니다.
"어이, 바텐더! 한 잔 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슬쩍 글로디스의 표정을 살핀다.) 신고해 드릴까요?
글로디스 마셜:(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다.) 직접적 위해는 없으니까 괜찮아요.
주변을 더 둘러보면 가장 먼저 바텐더의 뒤쪽에 있는 진열장에 눈길이 갑니다.
나무로 된 선반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병들이 정돈되어 있습니다.
최상단에는 위스키, 브랜디, 럼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각 칸막이의 위에서 비추는 조명에 유리병의 빛이 반사됩니다.
특별히 이목을 끄는 것은 주홍빛 액체가 담긴 병이군요.
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당신이 괜찮다면야. 음, 저것도 럼인가요?
글로디스 마셜:응? (뒤돌아 본다.) 아, 저거. 벌꿀술이에요. 구하기 엄청 힘들기도 한⋯ 시그니처에 쓰이는 술이기도 하고.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벌꿀술은 또 처음 들어보네. 저기, 혹시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어요? 옛날 폰이 되서 먹통이네.
글로디스 마셜:술에 취향이 없나 봐요? (눈 깜빡.) 먹통? 왜요, 인터넷이 또 맛이 가기라도 했나?
옛날 기종이라도 와이파이는 되겠지. 줘봐요, 연결해드릴게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럼을 주로 마셔요. 다른 술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핸드폰을 내민다.) 번호 저장할 기회를 이렇게 놓치네.
글로디스 마셜:(의미심장한 미소나 가득 띄워둔 채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곧 그가 다시 휴대폰을 내밉니다.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있지만 여전히 인터넷 연결은 없어요.
묘하게 싱글벙글한 얼굴을 보자니⋯⋯
⋯⋯ 연락처란에 새 항목이 추가되었군요!
'Cariño'?
타국의 언어지만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뻔뻔스럽다고 해야 할지!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아, 하하. (새로운 연락처에 전화를 건다.)
글로디스 마셜:(구석에 눈길을 준다.) 무음이라 소리 안 날 텐데.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연결음을 듣고만 있는다.) 보이스메일에 자리가 남아있으려나.
글로디스 마셜:듣고 있어도 제 목소리 같은 건 안 나와요,Cariño.따로 설정해둔 게 없거든요. 공적인 연락을 자주 할 일이 있어야지.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그건 좀 아쉬운데, 안 들으면 제 목소리를 까먹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 연결음은 자연스레 보이스메일로 넘어간다.) 좋은 밤입니다,Cariño.덕분에 아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쪽은 어때요? 기다림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전화를 툭 끊는다.)
글로디스 마셜:선수가 따로 없네. 바텐더를 앞에 두고 이렇게 능숙하게 구는 손님은 처음이네요. 혹시 짜고 치는 판인가? 저 실연 당한 거 미리 알고 왔어요? (부슬부슬 웃는 꼴이다. 느긋하게 덧붙이듯 말한다.)아쉬울 것 하나 없는 시간이에요.(스페인어로 내뱉어진 문장이었다.) 오래 기다리셨나?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알코올의 힘을 조금 빌렸죠. 게다가 실연당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렇게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걸. 그래서 언제 알려줄 셈인지? (그리고선 영문 모르겠다는 양 어깨를 으쓱인다. 직후에 상체가 앞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알아들었을 리가 없는데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인내한 만큼의 일이었으면 좋겠네요.
글로디스 마셜:흠? 고마워요, 미스터. (실실 웃는다⋯) 암기를 요하는 건 이것뿐이 아니죠. 사람 근육을 통으로 외우는 사람들에게도 찬사를 보내줘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시선이 입가로 옮겨간다.) 머리를 안 쓰다 버릇하면 자주 까먹는데도. 그런데 그 벌꿀술은 대부분의 메뉴에 들어가는 건가요?
글로디스 마셜:과별로 역할이 다르니까요. 개흉을 주로 하는 서전이면 다리는 잊기 마련이죠. 하지만 말해주면 떠올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머리를 기울인다. 시선을 의식한 듯.) 아무래도 넣으면 맛이 꽤 좋아지니까, 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그럴지도요. 떠올릴 수 있으려나⋯. (조금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바텐더 씨, 꽤 좋은 표본이 될 것 같은데. 손 한번 이리 줘볼래요?
글로디스 마셜:(노골적인 시선이 닿으면 눈이 잠깐 가늘어졌다가 돌아온다. 분간하는 것 같이 굴다가 역시 노골적으로 쳐다본다⋯) 호칭이 갑자기 섭섭해졌는데요? 주기 싫게. (장난이나 치며 손을 순순히 내밀었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취객 상대 처음 해본 것도 아니면서. (잔을 내려놓고 눈앞에 내밀어진 손을 짚는다. 언뜻 보니 사이즈 자체는 제 손과 비슷하구나 싶었다.) 인체란 신비하죠, 눈앞에 드러난 작은 정보만으로도 몸속에 숨겨진 많은 비밀들을 알 수 있으니까. 구차하게 칼이나 가위를 들 필요도 없이⋯. (손가락 셋으로 손목의 맥을 집는다.)
빈맥이 좀 있나요?
글로디스 마셜:딱히 아주 취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리 믿고 싶지도 않고. 이게 다 술버릇이라고요? (정말 서운하다는 기색을 아주 잠깐 내비쳤다. 맥 짚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가 살아있는 건 딱히 숨겨둔 사실이 아닌데요⋯
(거짓말처럼빈맥증세가 스스로에게까지 느껴질 지경이 된다.)
걱정은 고맙지만 건강해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참 고약한 술버릇이네요, 그쵸? (그걸 빌미로 아주 눈치 못 챈 것처럼 굴고 있었다. 눈매가 휘어졌다. 뺨에는 홍조가 조금 올랐나⋯.)
오래 두면 무력감이나 두통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손가락이 느릿느릿 떨어진다. 아쉬운 양.)
글로디스 마셜:(손가락이 느릿느릿 전부 떨어질 때까지도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손등으로 괜히 제 뺨을 눌러본다. 열감이 있다. 알코올 때문이라도 치부한다⋯) 참고할게요. (무력감으로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이게 뭐야. (제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 거린다. 거울 속의 모습은 따라할까?)
애쉬가 이질감을 눈치챈 듯 굴면 거울 속 인영은 씩 웃습니다.
인영:아하하, 너 재밌다! 마음에 들었어.
무언가가 거울 안에서 쑤욱 나옵니다.
사람의 모습 같은데, 나오다 말고 세면대에 부딪히네요.
엄청 아파합니다. 코미디하나⋯⋯
나타난 것은 보라색의 곱슬거리는 머리칼에 연두색 눈을 가진 여자입니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깜짝.)
옷은 멀끔하게 입고 있습니다.
다만 어디서 수영이라도 하고 왔는지 머리 끝이 축축하게 젖어있고, 신발 밑창에 묻어난 보랏빛 액체가 바닥에 자국을 냅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반갑다는 듯 잡은 손이 축축합니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인상 찡그린 채 한걸음 물러섰다.)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
슬라임?:진짜? 몰랐어! 그런데 문제될 게 있을까? 재밌을 것 같아서 그만⋯⋯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마술 하시는 분인가봐요. 조금 전에는 상당히 당황스러웠어요. (나름의 이해를 하고 나니 곧장 그려낸 미소를 짓는 것이다⋯.)
슬라임?:그렇다고 해두자!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마술을 하는 손님이라니, 흐흐. (기분 좋은 듯.) 바텐더한테 말해서 고용해달라고 할까?
아, 그런데⋯ 여기 손님들은 다 너무 개성이 강해. 차원 한두 개 연결된 게 아닌지라 보통 마술론 안 되겠다. 취소!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차원? (한쪽 눈썹을 지켜세운다.) 아까 다른 손님은 미래에서 왔다고 하던데⋯. 무슨 바 테마인가요?
슬라임?:테마라니? 다 짜고 치는 것 같아서 그래? 이걸 순수하다고 해야 돼, 찌들었다고 해야 돼!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현실적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만.
슬라임?:나도 현실적인데?! 내 말은. 다 현실이야! 진짜고.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거울에서 나온 게 마술이 아니라구요? (깜박⋯.)
그럼⋯. 당신은 몇년도에서 오셨어요?
슬라임?:(제 볼을 톡톡 친다. 눈동자가 구르는 걸 보니 고민하는 모양이다.) 으-음. 몇 년도⋯ 라.
이 차원에선 시간축이 직선 모양이었지, 맞아⋯ (중얼거리다 말았다.) 고차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예상은 해봤어? 아, 말 나온 김에 하려고 하진 말고.
대충 특정하기 힘들단 얘기야!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정말 당혹스럽네. ⋯⋯ (갑작스레 서랍을 열어재껴 본다. 왜 기시감을 이제야 알아 쳤을까.)
여자의 발끝과 연결된 것처럼 자연히 흘러 질척거립니다.
기시감이 그냥 느껴지는 건 아니었나 봐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액체 한번 봤다가, 여자 한번 봤다가⋯.) 혹시 치우는 것을 도와주실 생각이 있으신지?
슬라임?:뭘 치워? (눈 깜빡⋯⋯)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이 액체 같은 거요.
슬라임?:(발치를 바라봤다.) 아. (그리고 한참 웃는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흔적도 없이 치울 테니까! 그나저나⋯ 어지간히 마셨나 봐? 평소엔 내 모습만 보고 도망가는 사람이 참 많던데.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바텐더 솜씨가 좋은 탓에 평소보다 많이 마시긴 했어요. (만들어진 듯한 미소를 유지한다.) 숙녀 분도 드셔보셨나요? 벌꿀술이 들어간 특제 칵테일이라고 하던데.
슬라임?:바텐더 솜씨가 아주 좋긴 해. 윗대가리들도 자주 찾지, 대단하다니까⋯ (이쪽은 아까부터 자연스럽게 방긋방긋 웃는 중이다.) 물론! 손님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까. 따지고 보면 단골일걸?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윗대가리⋯. 아까부터 여럿 손님들이 계속 위대한 누구를 언급하던데, 혹시 동일인물인가요? (머리가 느리게 돌아간다. 정말 취하기라도 한 건지.)
슬라임?: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게 또 말하자면 복잡해. 혹시 신경정신과 쪽으로 아는 거 있나? 뭐라고 하지, 이걸. 다중인격? (음.) 다 같을 수도 있긴 한데 달라. 아, 됐다. 뭘 설명한담⋯ 어차피 이해 못할걸.
너 호기심 참 많네! 재밌었어. 그래도 너무 많은 걸 알려고 들진 마. (기지개를 켰다.) 난 이제 술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낯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단순한 술기운으로 치부하기에는 여전히 납득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저기, 돌아가기 전에. 바텐더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단골이라면서. 오래 봤을 것 아니에요. 그 사람이 사귀었던 사람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요?
슬라임?:바텐더? (눈이 끔뻑인다.) 말했잖아?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질문의 의도를 다시 파악했다.) 사귀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XXXXX를 아주 좋아하는 인간이었나. 아, 윗대가리 중 하나야. 위험한 놈이지! 그 놈을 부를 때 쓰는 게 있었는데⋯ 되게 예쁜 보석처럼 생겼어.
이 이상은 나도 몰라. 사적인 일엔 관심 크게 안 두기도 하고⋯ 뭐, 왜? 차였대?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앓는 소리 한번⋯.) 말씀대로 그건 사적인 일이라서 직접 들으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배웅해 드릴까요?
슬라임?:됐어, 됐어. 여기서 둘이 같이 나가면 엄청 수상할걸? (키득키득 웃고 손을 흔든다.) 이왕이면 재밌게 놀다 가! 난 이미 충분히 재밌어졌어, 고맙게도.
여자는 문을 열고 나갑니다.
음, 남자 화장실의 문을요.
이미 수상한 행색인데 더 수상해졌겠어요⋯
잡혔던 손을 내려다 보면 보라색 액체가 진득하게 묻어납니다.
기껏 씻은 손을 다시 닦아야 하게 생겼어요.
손을 도로 닦아내고 물기를 털고 있자면 후문이 열립니다.
채 닫히지 않은 화장실 문밖으로 보여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몸을 돌린다. 또 누구지.)
카우보이?:이보게! 자네 오랜만이야. 한 잔 내주시게!
문 사이로 본 그는 높은 모자를 눌러 쓰고, 금속 뱃지가 달려있고 가죽으로 만들어진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영락없는 서부 개척시대 카우보이의 모습이군요. 기른 수염 하며, 정교한 퀄리티의 코스프레일지도 모릅니다.
바의 후문은 온전히 닫히지 않아 비스듬히 열려있습니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후문 쪽으로 다가간다. 바깥바람이라도 잠깐 쐬고 와야 할 것 같았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그러면 이 바 문은 닫는 건가요? (물을 한모금 마신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려고요?
글로디스 마셜:떠나있는 동안에는요. (여행지를 떠올려 본다.) 추천하는 지역이 있나요, 혹시?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닌지라. (눈동자를 굴린다.) 아까 말한 프라하는 익숙한 곳인가?
글로디스 마셜:나도 아주 자주 다니진 않아요. 기회가 많지 않은지라. (일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익숙하고, 로망이 아주 큰 데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요. 암호로 달아두면 왜인지 출근할 때마다 프라하인 기분이라서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이렇게 찾아주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그럴만도 하네요. (아하. 가벼운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것 참 재치있네요. 역시 낭만가라니까. 이번 기회에 한번 다녀오는 건? 비행기도 타보셨어요?
글로디스 마셜:아무래도요. 하루이틀만 쉬려고 해도 문 열라고들 화부터 낼 것 같다니까⋯ (따라 입매를 올렸다.) 낭만가는 별로인가요? 좀 껍데기 같나? 말 나온 김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어요. 비행기야 이따금씩 타봤지만⋯
아.애쉬.조금 더 불편한 질문 한 번만 할게요? 안 하면 좀 미련 남을 것 같아서.같이 갈래요?(듣고 넘기라는 의도에서 앞문장이 먼저 뱉어졌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어느 인기쟁이는 피곤하겠어. (느긋하게 턱 괴고 바라본다. 사람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 데엔 벌꿀술이나 화려한 테크닉 이외에도 무언가가 있지 않으려나, 그런 감상과 함께.) 전 낭만 좋아해요. 딱딱한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잖아요. 지긋지긋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종 필요한 요소지⋯.
음?
저랑요? (반문이 앞선다. 불편한 질문이라기 보다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인 까닭에.)
그래요, 애인 행세도 하는데 여행 한번 같이 못 갈까. (평이로운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왕 휴가인데 하고 싶은 거 못하면 속상하잖아요.
글로디스 마셜:그런 인기쟁이에비춰지길 로맨티스트인 사람도 가끔은 제 스스로의 낭만이 필요한 법이라. 감이 와요? 무슨 뜻인지. (지긋지긋한 현실을 살고 있는지⋯ 눈을 맞춘다.)
(반문까진 예상한 반응이다. 손을 내저을 때쯤,)
⋯⋯가겠다고요? (평정을 잃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니, 어⋯. (눈동자가 굴렀다.) 하고 싶은 게 맞긴 한데 당신이 아니라면 억지로는 그러지 마세요. 강요하고 싶지 않거든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당신이 제 인생에 있었던 유일한 로맨스라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잇새로 바람 빠진 소리 비슷한 게 흘러나왔다.)
아, 한 번은 튕길걸.
강요는 무슨. 당신은 제안을 했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거죠. 프라하를 가고 싶은 것도 맞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게 만든 당사자와 같이 가는 게 이왕이면 좋을 것 같아서.
글로디스 마셜:인생에 있었던 유일한 로맨스라면서요? (지나치게 능청스럽다는 말이다! 손부채질을 두세 번 하다가 푸른 눈을 바라봤다. 먼저 제안해놓고 모양 빠지게⋯⋯)
아뇨!
(목소리가 잠깐 커졌다. 약간 정적이 찾아오면 주위를 살핀다. 고개를 숙이고 잔이나 뽀득뽀득 닦는다⋯⋯)
기념품점 알아볼게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바람둥이는 아니니까 염려 마시죠⋯.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음. (당신도 만만찮던데? 뒷말은 혼잣말에 가깝다. 아무렴. 한참 새하얀 정수리를 새파란 눈빛에 담았던 것 같다. 정적을 끝맺은 건 한결같이 샛말간 웃음소리다.) 그럼 저는 표지물을 알아볼까요. (퍽 즐겁다는 투로⋯.)
신선한 얘길 해서 그런지⋯
술 깨는데는 손 좀 씻고 바깥 바람 맞는게 제일 좋다는데,
이야기를 하다 혀가 꼬이진 않았나요?
글쎄요.
둘 다 술김에 막 뱉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술에 취해 소리칩니다.
취객:세상의 주인이 될 건 바로 XXXXXX님이시다.
또 다른 취객:아니지, 뭘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이 사이비 새끼. 네가 아직 XX님을 못 봐서 그래.
무슨 중세시대 판타지 만화에서 나올 법한 대사입니다. 사이비 교주인지 뭔지의 이름은 잘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종교 논쟁을 '유행하는 드라마 속 여주와 엮일 남주' 논쟁처럼 하고있군요.
그들은 이어서 ‘우리는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이런 일까지 하고 있음’을 서로 자랑합니다.
가령 고층 건물 테러라거나, 이상한 병을 퍼트리려는 시도를 했다는 등의 것 말이에요.
둘다 술에 취해 자기 할말만 열심히 늘어놓고 있군요. 대판 싸울 것 같지는 않지만?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요즘은 사이비가 유행인가⋯.
(입을 가린 채 몸을 앞쪽으로 기울인다.) 저런 이야기들 자주 들어요? (속닥이는 목소리.)
글로디스 마셜:꽤 자주? 낯선 주젠 아니에요, 확실히.
그런데, 뭐⋯⋯ 제가 나서서 막을 스케일도 아닌 것 같고. (어깨를 으쓱인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신고할 수도 없고? (그래도 대화가 걱정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아, 그냥 취객 신고한 꼴이 되려나. (멋쩍은 표정⋯.)
글로디스 마셜:빙고. (빙그레 웃는다⋯)
하지만 당신은 여기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취객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희망사항이기도 하고. 윙크한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깜빡⋯. 도로 상체를 물린다.) 질문이 있는데.
바텐더 씨는 만들어진 행복도 행복이라고 생각하나요?
글로디스 마셜:생각해본 적이⋯⋯ (한 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왜 조금 익숙한 질문이라는 느낌이 들지.)
가짜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눈이 한 번 느리게 깜빡였다.) 하지만 충분히 정교하다면야⋯ 진짜와의 비교 정도는 고려해볼 수 있죠.
왜요? 만들어주시려고요? (하하.)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내가 선택한 가짜인데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익숙한 근육의 당김이 느껴진다.) 못할 것도 없다만, 행복의 기준이 맞을지 안 맞을지 확신을 못 하겠네요.
만들어놨더니 행복이 아니라 다른 것이면 어떡하려구요?
글로디스 마셜:(애쉬의 입꼬리를 빤히 바라본다.) 그건 아주 진짜 같아요. 그래서 난 진짜라고 믿어버리기로 했거든요. 일단 나부터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고, 타인이 거짓말을 할 때의 심리도 잘 모르겠고⋯ 늘.
작품은 늘 작가의 의도에 따른 해석도 존중이 되어야 하는 법이에요.
난 청중으로서의 내 안목을 딱히 믿으려 들지 않고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당신은 사기꾼을 조심해야겠어. (시선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아차린다. 얼마 가지 않아 눈꺼풀이 내리감긴다.) 하하, 저도 거짓말과 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해요. 왜, 종종 빈말뿐인 칭찬이 좋게 들릴 때도 있지 않나요? 어쩌면 그냥 거짓말을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
Fake it till you make it.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 중 하나거든요⋯.
(조만간 다시 눈꺼풀을 밀어올린다. 한결같은 녹음이다.) 왜, 손님들 대하는 모습 보니까 당신의 안목도 꽤 나쁘지 않은 것 같던데요.
글로디스 마셜:어떤 사기꾼들은 인생과 신념을 걸고 거짓말을 치죠. (애쉬의 눈꺼풀이 내리감기면 가게를 둘러본다. 어쩌면 가장 거짓말 같은 장소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할 법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중이면서도⋯) 그럼 좀 믿어줘도 되지 않을까. 절박한 것 같잖아요. 이건 좀 알량한 동정심 같아서 별로인가요?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가끔 하나씩 존재하죠. 이건 경험담에 조금 더 가까워요. 그래서 저는 열한 번 찍으면 넘어갈만큼만 단단하기로 했어요.
(다시 눈을 마주친다.) 청중으로 존재하는 데에 소질이 있나 봐요, 내가?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좀 절박해서 어느 누군가의 알량한 동정심마저도 바라는 사기꾼들이요. (그리고 그는 눈앞에 펼쳐진 현상을 믿는다. 아니면 이 모든 게 거짓이라도 상관 없다는 식이거나⋯.) 당신은 출근하기 전에 거울 보면서 '넌 잘할 수 있어' 같은 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나요? 몇 주 반복하다 보면 없던 자신감이 생기던데, 저는.
이런. 그랬다가는 나무가 많이 아파하겠어요. (눈썹 축 늘어뜨리고 웃는다. 의식적으로 주제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작가가 좋아할 것 같은 청중이에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청중의 존재가치가 소실하는 건 아니지만. 저기, 무대 위로 올라오고 싶지는 않아요?
글로디스 마셜:동정심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은 걸로 알지만.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마셜은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당연히 타인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자존심이 그렇게 드세리라고.) 여러 번 하죠. '글로-리! 이름값을 해야지!' 아, 말 안 했던가요? 제 이름의 뜻. (잘게 웃었다.)
한 번도 찍어내리는 입장이었던 적이 없었어요. 그건 몰랐네요, 찍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려나. (눈을 가늘게 떴다. 고민하는 꼴이었으나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무대 위로 올라가기엔 하자가 조금 많아요. 이건 신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요. 말했잖아요, 거짓말을 못한다고⋯ 자연히 연기도 못하니까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그게 보편적이기는 해요. 저는 크게 신경 안 쓰는 편이고.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고마워하거든요. (키득거리는 목소리. 안타깝게도 자존심이란 보이지 않는다.) 하하, 이미 하나는 이룬 것 같네. 이곳에서 당신을 만난 걸 영광으로 여기고 있어서요. (이건 좀 진심 같으려나. 문득 호기심을 품어 버린 모양이지.)
그건 찍혀본 적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아, 경험담이 있다고 했나? (흐응. 손가락으로 입가를 두드린다. 언젠가처럼 흥미가 생긴 낯짝이다.)
연기를 하라는 뜻은 아니고.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그래⋯.
글로디스 마셜:(깜빡. 자존심이란 게 잘 보이지 않는다. 시력이 좋지 못해서인가? 흉터 있는 눈가를 살살 비벼내고 머리를 기울였다. 호기심은⋯ 저 역시도 이 물러보이는 사람에게 꽤 많이 품게 된 것 같다. 이름값을 하게 됐네, 몇 주 또는 몇 년 반복한 끝에.) 그래도 필요할 때엔 뻣뻣해질 줄 아셔야 할 텐데요. (가볍게 웃는다.) 당신이 비굴할 정도로 작은 사람이 아니란 것 정돈 알지만.
(눈동자가 한 바퀴 돌았다.) 열 번까진 안 찍혀봤어요. 충분히 아픈 적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랬다면 사람이 정말 싫어졌을지도 모르고.)
내 이야기?
(허리를 숙인다.) 시기를 좀 지정해줄래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시선이 흉터를 스쳐 지나간다. 통증은 없어 보이는데. 버릇처럼 살피려 손을 뻗으려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것으로 그친다. 어떤 다정은 동정이 될 수도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이 제동을 걸어버린 까닭이다.) 뻣뻣하게 굴었다가 꺾이는 게 더 고통스럽잖아요. 그리고 이왕이면 겸손한 거라고 해주시지.
다행이라고 해둘까요. 안 아픈 게 좋잖아⋯. 많이 베인 사람이 더 날카로워지기도 하더라고요. (누구 좋으라고⋯.)
역시 어린 시절이 가장 만만하려나. (별 고민 없이 답한다. 뭐든 상관없다는 양.)
글로디스 마셜:(익숙한 시선이다. 외눈이 신기하다는 듯한. 그러나 동정처럼 느껴지진 않았던 탓에 손끝을 톡톡 두드렸다. 머리가 기울어진다. 진단해보겠냐는 듯이.) 그건 유연한 걸 선택한 말이라고 믿을게요. 처음부터 꺾여 살길 자처한 게 아니라. 맞죠? 겸손한 사람.
아픈 건 질색이긴 해요. (실없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베이는 것과 제련하는 건 또 다르려나. 안 그래 보일진 몰라도 난 자연물보다 인공물과 더 친하거든요. 목제보다 철제가 좋을 때도 잦고⋯⋯ (그러니까 달려드는 행위의 목적은 하나다. 나 좋으라고!)
(흐음.) 손재주 좋아요?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아버지랑 타코 만들다가 다 찢어먹었죠. 열 개. 이런 에피소드는 당신이 원한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미스터.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이미 닫힌 상처를? 먼저 손을 뻗었던 건 본인이면서도 눈이 동그래진다.) 잘 믿는다더니. 이것도 그 연장선이에요? (이어진 질문에 금방 답하는 대신 눈썹 늘어뜨려 웃었다.) 생각하기 나름 같아요. 어찌 되었던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후회하고 싶지는 않으니 좋게 생각하려고⋯.
(천천히 입가를 두드린다. 속뜻을 연결 지으려다가 조금 안 가 그만두었다.) 인공물이라는 건 단순한 취향인 거죠? 그렇다면 인공건축물 중심으로 여행 동선을 짜야겠다.
손은 제법 쓸 줄 아는데, 재주라고 할 것까진 없어요. 실력 좋은 바텐더 앞에 있으니 왠지 더 겸손해져야 할 것 같아. (머릿속으로 조그만한 두 손으로 찢어먹은 타코를 그리고는 미소를 짓는다. 퍽 산뜻한 기분이다.) 가장 먼저 떠올린 기억이 그거예요? 전 소소한 이야깃거리도 좋아해요,Cariño⋯.연인이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고 들었는데요.
글로디스 마셜:(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첫 번째로, 어떤 연장선이냐고 묻는 질문에 답한다.) "생각하기 나름 같아요." (능청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리고, 그 뒤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후회하는 게 옳은 선택에 대해서는요? 외면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입가 두드리는 손을 바라본다. 손목을 부드럽게 끌어와 손 끄트머리에 정중하게 입을 대고 도로 놓았다. 마저 두드려요⋯) 아마도요. 취향은 잦은 노출로 생기기도 하니까.
아주 오랜 도전과 오류trial and error들을 통해 도달한 실력이에요. 재능은⋯ 음, 이렇게 말할까요? 없으면 완성이 안 되긴 하겠지만 아무렴 모양은 갖출 수 있었을 테니까. 재능은 칵테일 위에 올리는 레몬 슬라이스 같은 거예요. 생각보다 비중이 크진 않더라고. (계산을 곧잘 했으나 이제 계산기 없이 정산하는 정도로만 활용하고 있으니 말은 다했다.)
(이쯤 시간을 흘긋 본다.새벽 3시 반쯤이다.) 하나만 더 물을게요. 지금 있죠,얼마나즐거우세요?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을 정도로? 입매가 호선을 그린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한쪽 눈썹을 지켜 세우더니 손을 뻗는다. 다만 눈가에 닿는 게 아니라 왼쪽 볼에 닿더니⋯.꽈악.) 거울이 되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아무래도 스스로가 찔린 모양이지! 조금 아프게 꼬집고 놓아줬다.) 후회하는 게 옳은 선택이라는 게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행동을 안 했겠죠. (이건 희망사항이다만⋯.)
⋯⋯. (손끝이 움츠러든다. 장갑을 꼈는데도 피부가 홧홧한 느낌이 든 탓에. 정착지를 잊은 손이 허공에 부유한다. 자꾸 곤란하게 해?) ⋯어쩌면 저도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겠죠. (검지로 입가가 아닌 스스로의 아랫입술을 지긋이 눌렀다가 뗀다.)
재밌는 비유네요. 그러니까 실력은 여러 요소의 합산물이라는 거지⋯. 아, 오랜 다져진 노력을 재능이라는 단어로 납작하게 누르려고 한 소리는 아니에요. (그리고 아주 느리게 눈을 깜박인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즐거워요.
글로디스 마셜:(아야야야.곧장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자아성찰은 중요한 건데요! (이런 말이나 한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철학적인 문장이다⋯ 손이 떨어지면 제 뺨을 괜히 문질렀다. 인과응보라고 할 것도 없는데? 애쉬의 뺨을 아주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았다.) 모든 일이 수월할 수 없단 건 잘 아시잖아요. (희망사항이라는 이야길 돌려 했다.)
그 새로운 취향이 구체화될 날이 조금 기대되네요? 그땐 메뉴 추천을 더 매끄럽게 해줄 수 있을 것 같고⋯ (⋯) (아랫입술에 오래 머무르는 검지를 목격하고 말았다. 마셜-씨는 정말 곤란해졌다.아버지, 이럴 때의 행동 가이드는 알려주지 않으셨잖아요⋯)
네에, 그렇죠. 그리고 난 당신이 내 말을 납작하게 눌러버렸어도 크게 화가 나진 않았을 거예요. (곧 환하게 웃었다.)
내기 한 번 할래요?이기면 원하는 걸 하나 들어줄게요. 반대의 경우에도 이행하는 걸 조건으로⋯ 유리한 쪽으로 선택할 기회를 줄 테니까. 어때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지금 자아성찰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건가? (짓궂은 소리를 해댄다. 뺨을 문지르는 모습에 조금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정말 후회하게 된다면? 과거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보라고 한다.)
그때가 오면 흐릿하게 살았던 때보다 더 많은 재미를 볼 수 있게 되려나. (곧 칵테일 글라스를 쥔다. 빙글 돌리고 남은 음료를 찰랑이다가 입가로 가져갔다.)
저기, 너무 좋게 봐주는 것 아니에요? (기대치를 높여버리면 떨어질 때 아플 텐데. 조금 오래 미소를 바라봤다.)
흠? (도로 글라스를 내려놓는다.) 제가 정말곤란한소원을 얘기하면 어떡하시려고. (어째서인지 스스로가 손해 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어떤 내기인데요?
글로디스 마셜:하핫. (대답을 회피한다. 얼얼한 뺨 때문이라고 책임을 넘겼다.)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그게 앞으로의 시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막을 수 있죠. (딱히 새롭진 않지만, 아무튼, 영광으로서 이런 희망을 제시했다. 영광은 오래될 수록 미화되기 쉽고 고이기도 쉽지만 이런 부분에선 이름값을 하지 않겠다고.)
네, 약속할게요.즐거울걸요.(다시금 잔을 드는 손이나 유리에 닿는 입⋯ 느리게 움직이는 목울대까지 눈에 담았다.) 지금도 흐릿해보이진 않고요.
너무 좋게 봐주는 중이죠. 날 너무 좋아해주는 것 같길래? (천연덕스럽게 굴고 어깨를 으쓱였다.) 똑같은 말 한 번 더 해줄까요? 난 당신이곤란한소원을 제시해도 아주 크게 곤란하지 않을 거라고?
글로디스는 똑같은 색과 모양의 주사위를 총 다섯 개 꺼내어 테이블에 올립니다.
글로디스 마셜:이걸 컵 안에 넣어 흔들고, 세로로 전부 세우는 거예요.
그가 시범을 보입니다.
컵에 주사위를 넣고 허공에 강하게 흔들더니 테이블에 내려둡니다.
컵을 열면 주사위가 세 개 서있군요.
안이 보이지 않으니 정말 '실력'의 문제겠어요.
글로디스 마셜:그럼⋯ 주사위 5개를 모두 세워볼게요.
모두 설 확률은 30분의 1인데, 5개 모두선다와서지 않는다중 어느 쪽에 걸래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 (시선이 허공에서 조금 오래 맞물리더니 얼마 안 가 주사위 위로 떨어진다.) 30분의 1이면 너무 유리하지 않나요? 오히려 그러면 의심이 가는데⋯.
(다만 고민은 오래 하지 않았다.)서지 않는다는 쪽으로 걸게요.
글로디스 마셜:현명한 선택이에요. 숫자로 나타난 확률은 언제나 투명하니까. (다시 주사위를 넣고 컵을 쥔다.)
이번엔 시범이 아니라 진짜입니다!
컵이 허공에서 강하게 흔들립니다.
탁,
글로디스 마셜:
손놀림
기준치:
80/40/16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는 어쩐지 아주 얄궂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뺀질거리며 컵을 열까 말까 약을 올리는 듯 하더니⋯
슥 들춰냅니다.
다섯 개가 제법 안정적으로 서있습니다!
글로디스 마셜:(그리고 휘파람을 불면서 하나를 밀어 툭 떨군다.)
⋯ 서있었습니다!
글로디스 마셜:축하해요?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날 너무 좋아해주는 건 당신 같은데⋯.
글로디스 마셜:흐음.
(윙크한다. 이 이상으로 뭘 더 말하지 않았다.)
프락시누스 "애쉬" 엑셀시어:(떨어진 주사위를 손에 쥔다.)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말했어요, 내 소원. (다시 주사위를 세운다.)
글로디스 마셜:(깜빡⋯⋯⋯⋯) 그러니까, 내가⋯ 지금, 또 차인 건가요?
(울상을 금방 만들어내고서⋯ 주사위와 컵을 치운다. 누가 봐도 아주 시무룩한 티를 팍팍 내려는 듯한 작위적인 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