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티오 바시움:(몸이 크게 흔들리면 짧게 인상을 찡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내려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는 아무래도 국화꽃다발 이었나 봐요.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 충격 탓이었을까요?
순백색의 꽃잎 몇 송이가 바닥에 흐드러진 것이 보입니다.
<듣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떨어지며 모양이 흩어진 국화꽃이 보였다.)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바닥에 나뒹구는 꽃다발을 주워들던 그 순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짤막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마치 틴벨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방금 무슨 소리를 들었죠?
어쩐지 머리가 아파옵니다.
아,
그제야 흐릿한 의식 너머로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그렇지.
오늘은 상사화의 첫 번째 기일이었죠.
그러니 당신은 사화가 잠들어있는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이런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당신 답지 않네요.
거기까지 떠올리면 문득 버스는 인적이 드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탑승구가 열리고,
올라타는 승객의 모습에 당신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 버스 위에 올라탄 사람은,
...1년 전 죽었던 상사화였으니까요.
고즈넉한 빗소리가 귀를 먹먹히 울리는 텅 빈 버스 안,
죽었던 상사화와 조우하게 된 일렉티오 바시움.
[이성] 판정합니다. [SANc 1/1d3]
일렉티오 바시움:(빗소리만이 가득한 조용한 버스에 올라탄 이는 절대 여기에 있을 수 없는 너였다. 눈을 의심할 수 없는 상황 뻑뻑한 눈가를 문질렀다.)
SAN Roll
기준치:
38/19/7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 -1
맞붙고,
멎습니다.
맞붙는 것은 허공 위로 겹쳐진 두 사람의 시선.
일 순 멎는 것은 당신의 호흡.
그뿐입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때로 꿈보다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요.
그렇기에 지금껏 비현실적인 현실을 여러 차례 맞이해가며
이토록 불친절하고 잔인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비현실적인 현실이요.
사화는 분명 1년 전에 죽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
돌이킬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서요.
그래요.
나는 그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곁에 있지 못했고,
그렇기에 그의 부재를 부정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내 앞에 서 있는 저 사람은,
상사화가 아닌, 그를 지나치게 닮은 사람일 겁니다.
꿈보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나날 속에서도
실현될 수 없는 비현실이 있는 법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는 없잖아요.
혼란 속에 빠져있는 당신의 상태를 눈치챈 걸까요.
막 버스에 올라탄 상사화를 닮은 이는 당신의 생각을 부정하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 앉아있는 좌석 옆에 앉습니다.
상사화:안녕, 티오. 오랜만이네.
저 눈,
저 목소리,
저 얼굴.
아무리 부정하고 잊으려 애를 써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정차했던 버스는 오로지 두 사람만을 태운 채,
다시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당신은 받아들이고 맙니다.
상사화를 닮은 이는,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 아닌
상사화 그 자체라는 사실을요.
…….
당황했나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가슴속에 응어리로 자리 잡습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사화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당신과 눈을 마주합니다.
상사화:(무어라 말할까, 고민했었는데. 저를 보더니 눈가를 문지르는 것에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 묻는다.) 어딜 가는 중이었어?
일렉티오 바시움:(가슴 윗부근 까지 흘러내리는 곱슬거린 잿빛의 머리카락, 탁한 녹색의 눈, 하얀 피부까지. 1년 전 기억에 멈춰있던 네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너는 죽었을텐데.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그 사실만큼은 분명했기에 이 상황이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누군가 장난질이라도 치는 걸까 싶었는데,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까지 의심을 떨쳐내듯 분명해서 결국 실소를 내뱉는다. 지금이 현재라면, 분명 더러운 꿈일테니까.) 글쎄... 널 보러 가던 중이었는데.
당신의 답변을 들은 사화는 어떤 대답에도 그저...
군더더기 없는….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이쪽을 응시할 뿐입니다.
덜컹.
다시 한번 방지턱을 밟고 지나간 버스가 얕게 흔들립니다.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마주한 시선이 버스를 따라 흔들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얕은 진동 탓에 시야가 갈라짐과 동시에,
문득 운전석 쪽으로 시선이 꽂힙니다.
...이상합니다.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버스 기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버스는 그저 운전사도 없이 홀로 비가 내리는 도로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이성] 판정합니다. [SANc 0/1]
일렉티오 바시움:
SAN Roll
기준치:
37/18/7
굴림:
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변동없음
일렉티오 바시움:(운전기사가 없이 운행하는 버스를 보면 오히려 꿈이라는 확신이 들어 오히려 안심이 들었다.)
상사화:(네 대답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살짝 키우고 말한다.) 진짜? (그리고 네 시선을 따라, 운전석을 바라보지만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다시 너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묘한 웃음기가 담겨있다.) 당황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일렉티오 바시움:네가 있다는 말은 꿈이라는 말이니까. (생각보다 덤덤하게 말이 튀어나온다. 납골당을 가던 길에 다시 만난 넌, 지금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니 놀랄 건 없었다. 그저 이 더러운 꿈에서 빨리 깨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이다.) 당황할 것도 없지.
상사화:…그럼 그렇게 생각해. (궁금한게 있다면 대답해줄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궁금한 게 많아졌다. 그러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아버린다.) 그건 너답네. (네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네 옆에 있던 버스의 벨을 누른다. 삑- 소리가 들리고 빨간 불이 켜진것을 확인하면 시선을 밖으로 향한 체 말한다.) …이제 내리자. 도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네가 가야 할 목적지까지 바래다 줄게.
그 말을 끝으로 버스는 곧 첫 번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
–
「첫 번째 정류장」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협소한 간이정류장 지붕 아래로 들어섭니다.
빗줄기는 여전히 이 세상을 침수시킬 것만 같이 맹렬합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처리된 정류장 지붕 아래,
양옆으로 담장 형식의 벽면이 기둥처럼 세워져 있고
그 중앙에 원목으로 만들어진 나무 벤치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버스 그림이 새겨진 표지판 또한 눈에 띕니다.
벽면과 표지판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내 목적지는 너였는데. (그저 네가 있는 납골당에 도착하기만 하면 될텐데, 넌 꼭 다른 길이라도 있는 것처럼 안내를 해준다고 말한다. 말을 마치면 흘러내리는 비로 가득한 세상, 정류장 지붕을 따라 떨어지는 빗소리가 투닥거리는 사이로 담장 형식의 벽면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담장을 연상시키는 정류장의 벽면에는
흰색 장미 무더기가 덩굴을 내리고 자리합니다.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흰 장미 꽃잎을 따라 투명한 빗물이 고였다 떨어지는 것을 잠시 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 아래 피어있는 것은...
흰색의 국화.
당신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흰색 국화꽃입니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린 채 한들한들 흔들리는 국화꽃은
물기를 머금은 탓에 아주 생생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흠뻑 빗물에 적셔져 생기있게 피어낸 국화꽃이 흰장미 아래 소복히 피어있는 것을 본다.)
상사화:(네가 나를 먼저 찾은 적이 있기는 했던가. 평소라면 조금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의 이 상황의 너의 대답은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그게 네가 가고 싶은 목적지는 맞고? (그렇게 물으면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네 손에 들린 국화꽃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묻는다.) 국화꽃의 꽃말을 알고 있어?
빗소리에 파묻힌 탓일까.
사화의 목소리는 어쩐지 막연하고 얕습니다.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글쎄...(짧게 고민을 해본다.)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글쎄요, 사화의 질문에 답해주고 싶어도
안타깝게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달리 없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잘 모르겠는데.
상사화:...그럼 국화꽃의 색에 따라 꽃말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모르겠네. (그렇게 대답하면 벤치에 앉는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는 시간이 남은 것 같아.
사화에게 [심리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넌 알고 있어? (고개를 돌려 그제야 다시 널 시선에 담아본다. 벤치에 앉은 널 조금 비스듬하게 내려보고, 곁에 앉지는 않았다.)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상사화:(너를 가만 올려다보다가 입꼬리를 조금 당겨내고 웃으며 어깨를 한번 으쓱이곤 대답한다.) 글쎄?
대화를 나누다가 보면 표지판이 눈에 띕니다.
간략한 버스 그림이 새겨진 정류장 표지판입니다.
아래에는 버스 노선도가 붙어있습니다.
노선도를 확인하면...
평범한 노선도가 아니네요.
아니,
이를 노선도라고 칭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버스 노선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노선도 대신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 ”
흰색: 감사함, 진실함, 성실함
분홍색: 정조
보라색: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
...색: …………………….
맨 아래 적혀있는 국화꽃의 색상과 색상별 의미는 칠이 벗겨져 있어 읽을 수 없습니다.
[관찰]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빗물에 따라 흐려진 글씨는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봐야했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8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칠이 벗겨진 자국 을 통해 국화의 색상이 ‘붉은색’이라고 적혀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꽃말의 의미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시한번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겨우 붉은색이라고 적힌 글씨를 읽고나면 뒷부분까지 꼼꼼히 살펴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4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흐려진 글씨는... 당신을 ....합니다, 라고 적혀있는 것 같아요.
더이상은 읽을 수 없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겨우 흐릿한 글씨를 읽어내지만, 그마저도 전부 읽히지 않았다.)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보면,
벽면 상단에 고정되어 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을 발견합니다.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광판 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지만,
약한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흘러내린 비로 채워진 세상이 전광판에 그대로 옮겨진 것 같았다. 흐릿한 글씨를 읽으며 생각해본다.)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상사화:(네 시선을 따라 전광판을 읽는다. 그리고 네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듯 너를 빤히 바라본다.)
일렉티오 바시움:(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맞물리면 입술이 열린다.) 왜.
상사화:(짧게 대답하는 것에 시선이 가늘어지고. 조금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입을 연다.) ..일렉티오 바시움.
...왜, 였을까요.
나지막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화는 목소리는 어딘가 한구석,
차게 식은 빗물에 젖어 번지는 것만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물에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아요.
일렉티오 바시움,
당신을 바라보는 한없이 가라앉은 것만 같은 사화의 두 눈동자에서 무엇을 읽어냈나요.
[심리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드물게 담기는 풀네임이 네게 흘러나오면, 젖어있는 공기에 흘러나온 글자를 따라 물방울이 달라붙는 것 같았다. 수분을 모두 머금어 흩어질 것 같이. 빗방울 사이로 시선이 얽힌다.)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58
판정결과:
실패
...알수없습니다.
[지능]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고 보니,
사화의 입술 바깥으로 터져 나온 ‘나’의 이름은 이번이 최초이지 않았던가요.
사화는 버스에서 조우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으니까요.
무어라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장대비의 포화를 가르고 라이트가 번쩍입니다.
곧 버스 한 대가 정류장 앞에 정차합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1022번’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상사화:(버스는 이미 도착할지 예상했다는 듯, 버스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버스 왔네. 가자. (그리고 벤치에서 일어나 먼저 걸어간다.)
일렉티오 바시움:(네가 일어나 버스쪽으로 향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향한다. 어떻게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네가 입에 담은 제 이름이 무언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짐작했을 뿐이다.)
두 사람은 버스에 올라탑니다.
올라타는 순간,
[듣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버스에 올라탄다.)
어쩐지 단말마와 같은 이명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빗소리 탓에 명확한 사고가 서지는 않지만요.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
「두 번째 버스[1022번]」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는 천천히 빗길 속을 뚫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버스는 첫 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오로지 당신과 사화,
두 사람 뿐입니다.
운전석을 살피면 첫 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기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버스는 그저 운전기사 없이 홀로 굴러갈 뿐입니다.
두 사람은 의자 두 개가 붙어 있는 2인용 좌석에 착석 합니다.
[관찰]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이제는 기사없이 움직이는 버스가 놀랍지도 않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살펴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품에 안고 있던 국화가 일전보다 생기를 잃었음을 눈치챕니다.
마냥 하얗던 꽃 잎 끝이 짓밟힌 듯 옅게 시들어 있습니다.
상사화:(옆자리에 앉으면 빤히 바라보다가 먼저 묻는다.) 그간 어떻게 지냈어? (나를 보고 싶지는 않았냐, 그 질문이 혀끝을 맴돌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다.)
일렉티오 바시움: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억세게 내리던 빗방울에 상했는지, 뭉개진 꽃잎에 시들한 국화를 손 끝으로 느리게 매만진다. 네 안부는 묻지 않았다. 죽은 이에게 안부를 묻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을테니까.)
상사화:(네 손끝을 가만 바라보며 툭 묻는다.) 그래도 가끔 내 생각은 했나봐? 이렇게 찾으러 와주기도 하고?
일렉티오 바시움:(손 끝으로 문지를 때마다 꽃잎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차피 이 꿈 속에서는 네게 주지 못할테니 쓸모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해본다. 꽃에게 줄곧 닿아있던 시선이 천천히 네게 옮겨진다. 흐릿한 녹안을 마주하고 생각보다 순순히 수긍한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지. 그게 널 찾아온 이유는 아니지만. (가만 널 제 시선에 담아두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올 건 알고 있었나봐?
상사화:(순순히 수긍하는 것에 더 묻지는 않고 대신 네 질문에 대답했다.) 그야 이 버스는 내가 빌린거니까.
짧은 대화를 이어나가던 와중,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오릅니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는 그 언젠가의 평범한…기억.
당신의 옆에는…사화가 자리하고,
우리는 조용하고도 한적한 버스에 앉아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상기해낸 평화로움도 잠시,
당신은 갑작스러운 서늘함을 느끼게 됩니다.
글쎄,
‘서늘함’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두려움,
공포,
슬픔,
당황스러움.
모든 불안정한 감정이 한 데 뭉쳐 숨통을 억세게 짓누르던 그때.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요동치듯 크게 흔들립니다.
무언가에 머리를 강하게 맞는 충격과 함께
일순 힘이 빠져나간 몸이 앞으로 쓰러집니다.
와락.
고꾸라지는 몸을 지탱하듯 누군가가 나를 강한 힘으로 끌어안습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 지을 필요도 없잖아요.
그야 지금 당신의 곁에 존재하는 사람은 사화뿐인걸요.
상사화 입니다.
사화가 억센 힘으로 당신을 끌어안습니다.
어째서?
그런 의문을 던지기도 전,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품에 안고 있던 국화꽃다발이 바닥을 나뒹굴고,
마치 눈송이 같은 국화 꽃잎은 시야를 긋고 흐드러집니다.
나를 꽉 끌어안은 사화의 체온은 어쩐지 전혀, 따듯하지가 않아서.
그게 또 어쩐지 너무나도.......
…….
괜찮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야속하게도 사화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시야가 수몰되고 맙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눈앞에 왈칵 쏟아집니다.
왜인지 생경하지 않은 순간입니다.
정신을 잃기 직전,
[듣기]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시선이 어지럽다. 갑작스런 흔들림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도, 절 끌어안은 온기 하나 느껴지지 않은 네 몸도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무엇하나 분간하기 어려웠다.)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삐―.
의식과 함께 낙하하는 머릿속에 이명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이명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지러운 의식을 잠재우 듯 귓가에 익숙하고도,
목이 메인 목소리가 섞여 들던 탓입니다.
“괜찮아.”
...하고.
–
–
「두 번째 정류장」
...깜빡.
당신은 눈을 뜹니다.
제일 먼저 들려오는 것은 무겁게 낙수하는 물방울 소리.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품 안에 안겨있는 백색의 국화꽃다발입니다.
꽃다발은 아까 전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시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시들면 안 될 텐데.
당신은 생각합니다.
그야 오늘을 위해 준비한 꽃다발이니까요.
상사화:깼어?
꼭 빗물에 익사할 것만 같이 무겁던 정신을 흔드는 것은
잔잔하고도 담담한 사화의 목소리.
이곳은 버스 정류장인 것 같습니다.
꼭 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만 같이,
끊임없이 펼쳐진 도로 한가운데 마련된 간이 정류장입니다.
어느 틈에 하차한 걸까요.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어지럽던 정신을 겨우 붙잡으면 정류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손에 쥐고 있던 순백색의 국화는 어느새 많이 시들어 이 상태로라면 네게 주지도 못할 것 같았다. 잘라낸 것 같은 기억이 불쾌감을 주기도 전에 네 목소리가 들리면 시선을 돌린다.) ...언제 내렸어?
상사화:(네 질문에 시선이 가늘어진다.) 아까. 꿈이라도 꾼 거야? 피곤하면 더 자던지.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은 것 같으니까. (아까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지쳐있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주위를 살펴봅니다.
[관찰]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분명 기억이 없는데. 어긋난 기억조각을 찾는 대신에 주변을 둘러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을 발견합니다.
전광판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습니다.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첫 번째 정류장에서 보았던 전광판에 비해 노이즈가 덜합니다.
「인도자...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인도자, 라는 글씨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버스 사고의 충격 탓이었을까요?
어쩐지 께름칙한 기분이 듭니다.
상사화:(네가 전광판을 읽는 것을 본다. 조금 뜸을 들이다가, 살짝 목이 메인 목소리로 네 이름을 부른다.) 일렉티오 바시움.
무겁게 허공을 가르는 상사화의 목소리는,
어째서 이만큼이나 빗물에 수몰될 듯 참담히 젖어 있는지.
사화가 당신의 이름을 호명하고
얼마 있지 않아 세 번째 버스가 저 멀리서 빗속을 헤치고 다가와 정차합니다.
버스는 지금까지 승차했던 버스와 달리 커다란 2층 버스입니다.
두 사람 앞에 멈춰선 버스의 탑승구가 입을 벌립니다.
타고 싶지 않아요.
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다는 근원 모를 충동만이 내 안에 가득합니다.
상사화:(버스가 온 것을 확인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쪽으로 걸어간다.) 가자.
일렉티오 바시움:(제 이름이 불리고 버스가 도착하면 기시감이 든다. 분명 이건 세 번째 버스이고, 아까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썩 내키지 않았다. 네가 버스를 타자고 재촉해도 가만히 정류장에 서 있는다.)
상사화:(네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깨달으면 다시 뒤를 돌아본다.) 뭐해? 어서 와. 설마 무서운 거야? (미간 사이가 좁아지고, 입꼬리가 조금 위로 당겨진다.) 손이라도 잡아줘?
일렉티오 바시움:설마.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타고 싶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너와 가만히 시선을 마주한다.) 상사화, 정말 탈거야?
상사화:너를 데려다 주기로 했으니까, 타야지. (그럼 네게 잡으라는 듯, 손을 뻗는다.)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그 이유 모를 낯선 충동은
빗물보다도 잘게 흐드러져 떨어지는 사화의 목소리에 녹아 사라집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숨통을 조르고 익사시킬 듯,
나를 쥐고 흔들었던 불안감마저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뻗어진 하얀 손 위로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본다. 손바닥 위로 작게 빗물이 고였을쯤 발걸음을 옮겨 버스 위로 올라탄다. 네 손은 잡지 않았다.)
상사화:(먼저 버스 위로 올라타는 것을 빤히 바라본다. 갈 곳잃은 손은 대신 빗물이라도 잡으려는 듯 꾸욱 주먹을 뒤어내고. 평소라면 투덜거리기라도 했을텐데, 지금은 딱히 그러고 싶지 않아서 별 다른 말 없이 네 뒤를 따라 버스에 올라탄다.)
두 사람 은 세 번째 버스에 올라탑니다.
1109번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1109번’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듣기]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어쩐지 흐릿하게 이명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빗소리 실패 탓에 명확한 사고가 서지는 않지만요.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
「세 번째 버스[1109번]」
일렉티오 바시움:(빗소리 사이 어떤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다. 곧 털어냈지만)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가 움직입니다.
차창 바깥으로 온통 습기뿐인 세계가 스쳐 지나갑니다.
버스는 지금까지의 버스와 마찬가 지로 텅 비어있으며,
기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그저 당신과 사화,
두 사람뿐입니다.
버스 내부에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이지만, 입구가 닫혀있습니다.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관찰] 판정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2층 입구의 자물쇠를 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안고 있던 국화가 일전보다 훨씬 더 생기를 잃었음을 눈치챕니다.
갓 생명을 피워낸 듯 하얗고 투명하던 꽃잎은,
이제 그저 계절을 잃은 이름 모를 들꽃처럼 보여요.
단지 몇 송이의 국화만이 처량히 바래진 꽃잎의 색을 발할 뿐입니다.
사화가 먼저 창가 좌석에 앉습니다.
그를 따라 옆좌석에 앉습니다.
사화는 어쩐지 묘하고 멍해 보이고,
지친 듯, 혹은 침체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리고 나면... 좌석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을 한권 발견합니다.
책이라기보다는 얇은 책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푸른색의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회전목마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하고도 쓸쓸한 푸른 대낮의 회전목마네요.
제목은 《merry go round》
...메리 고 라운드.
회전목마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사람이 생을 마감하며, 막망자를 위한 길로 들어서기 직전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흔히 인생의 주마등과 마주하곤 한다.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이 눈앞에서 한 차례 영화처럼 펼쳐지는 현상을 주마등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죽음의 끝에 당도한 산 자여,
그대의 삶이 적어 내려간 필름의 길이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책자의 내용을 살핀 직후 당신은 강한 현기증과 함께 정신을 잃습니다.
빛도 한줄기 들지 않는 맨 밑바닥의 어둠 속에서,
당신은 환각을 마주합니다.
환각 속에 삶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가장 슬펐던 순간,
죽어서도 잊지 못하리라 여겼던 반짝이던 삶의 조각,
어느 순간 그 삶에 뿌리를 내리고 침범한 사화와의 첫 만남.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함께 쓸쓸한 겨울바다를 거닐던 시간,
자동차를 몰고 도로 끝을 달리던 날,
달콤한 술을 마시던 밤,
사화가 당신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순간들.
한동안 빠른 속도로 영상이 스쳐 지나가고
잠시간 필름이 뚝 끊기며 말간 어둠이 지속됩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다시금 빛처럼 터져 나오는 영상이 하나.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일렉과 사화,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차창 바깥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어떤가요?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사화를 내려보지는 않았나요?
아니면 그가 당신 옆에 없는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나요?
사화가 당신이 저를 바라봐주기만을 빤히 기다리며,
당신을 그의 눈 속에 담으려고 하던 것은 알고 있나요?
…….
…….
고즈넉한 빗소리의 향연도 잠시,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쉼 없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어두운 화면 사이로
그런 당신을 한 점 망설임 없이 끌어안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강한 힘으로 끌어안깁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사화입니다.
사화가 억센 힘으로 일렉티오 바시움,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
암전하는 버스의 내부를 어둡게 띄우며 필름이 또 한 차례 뚝 끊겨 나갑니다.
떠오르는 영상의 날짜는...
1년 전의 오늘입니다.
아,
그제야 지금까지 서리가 내린 듯 희뿌옇기만 하던
기억 하나가 마치 퍼즐 조각처럼 달라붙습니다.
1년 전의 사고가 떠오릅니다.
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현장에 존재하던 것은 사화만이 아니었습니다.
상사화와 일렉티오 바시움.
두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나’를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던 그 참담한 사고의 현장에서,
상사화는 당신을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오로지 당신을 살리기 위해,
본인을 희생시켜서요.
이건...
주마등인가요?
그래요.
이건 주마등입니다.
[이성] 판정합니다. [SANc 1d2/1d4]
일렉티오 바시움:(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이어진 기억은 잊은 시간만큼 강렬히 박힌다.)
SAN Roll
기준치:
37/18/7
굴림:
41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4
(
1
)
=
1
이성 -1
일순 강한 충격과 함께 주마등이 돌아가던 공간이 산산이 부서져 내립니다.
[듣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61
판정결과:
실패
꼭 말단부위부터 심장까지 강한 전기가 흘렀다 사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
이윽고 모든 것이 바닥까지 묵직하게 가라앉고 맙니다.
끊임없이 퍼붓는 빗소리에 한데 뒤엉켜 있던 환각들 또한 함께 수몰됩니다.
귀를 먹먹히 침수시키는 낙수음.
당신은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은 채 눈을 떠올립니다.
기억났습니다.
떠올렸습니다.
1년 전의 그 날,
사화는 나를 끌어안고 대신 죽었던 겁니다.
고개를 돌리면 사화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덜컹.
버스가 방지 턱을 밟고 흔들립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에 맞춰,
짤그랑.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약한 금속음이 들려옵니다.
바닥을 살피면 회전목마 고리가 달린 작은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주워든다.)
어쩌면, 아까 보았던 2층의 출입구의 열쇠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이건가 보네.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려본다.)
자물쇠에 아까 얻었던 열쇠를 끼워 넣으면
금속이 맞물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버스 2층이 개방됩니다.
–
–
버스의 2층으로 들어서면,
그 장소는 이상하게도 단출한 방과 같은 형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차창에서
물기를 머금은 탁한 빛이 터져 나와 내부를 은은히 비추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침대 하나가 놓여있네요.
책상과 책장, 침대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좌석이 아닌 방에 조금 놀란 것도 잠시, 책상부터 살펴본다.)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 위에는 그 흔한 필기도구도,
책도, 사용감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흔한 먼지 하나조차 쌓여있지 않네요.
말끔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는 책상 한가운데 반으로 접혀 있는 쪽지만을 한 장 발견합니다.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
죽음이 머지않은 영혼의 길을 인도하는 사자는
생전 그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자의 얼굴로 나타나 여로를 안내한다.
일렉티오 바시움:(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내용의 쪽지를 살펴보고 책장을 본다. 책상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책장에는 책이 한가득 꽂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당신이 읽을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검은색의 책등만이 마치 밤하늘처럼 빼곡히 즐비합니다.
[자료조사], 혹은 [관찰] 판정이 가능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책들을 가만히 살펴본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책들 사이에 꽂혀있는 쪽지를 한 장 발견합니다.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의 이름은 곧 다음 생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한다.
그 안식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자는 산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른다.
세 번의 호명 끝에 산 자는 비로소 망자가 된다.
일렉티오 바시움:(이름... 흘긋 상사화를 살펴보고는 침대로 향한다.)
꼭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병실용 침대입니다.
다가서면 커튼이 반쯤 쳐져 있습니다.
커튼 위로 핀이 꽂힌 명찰 하나가 매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찰에는 ‘일렉티오 바시움’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문득 당신은 뼈를 치고 사라지는 기시감에 휩싸입니다.
조금 급한 손길로 커튼을 완전히 걷어내면 드러나는 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병실의 매트리스 침대.
침대 주변으로 즐비한 온갖 의료 장치들...
그사이에 푸른색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사람은
입가에 산소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제야 당신은 형용할 수 없었던 기시감의 정체와 마주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당신이잖아요.
병상에 누워 끊임없이 즐비한 갖가지 의료 기계들 틈 사이에서,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쓴 채 실낱같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일렉티오 바시움, 당신입니다.
[듣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삐―.
문득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터져 나옵니다.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기시감으로 가득찬 공간이 미시감까지 느껴지게 한다.)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듣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지금까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이명을 떠올립니다.
이제야 확신합니다.
당신을 감싸 안고 죽어버린 상사화의 희생이 무색하게,
당신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버스는 무언가요.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이성] 판정합니다. [SANc 1d2/1d4]
일렉티오 바시움:(그렇다면 이제 목적지는 어디일까. 네가 있는 곳일까 아니면 네가 존재하는 곳일까)
SAN Roll
기준치:
36/18/7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rolling 1d2
(
1
)
=
1
이성 -1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연속입니다.
아니,
이제 이건 현실이 아니겠지요.
이 버스는,
스스로가 수몰되어가는 버스.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있는 것은 바로
일렉티오 바시움, 당신 입니다.
......어쩐지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눈을 감았다 떠올리면,
흐릿하고 침침한 시야 너머로 희기만 한 천장이 들어옵니다.
삐.
삐.
삐.
벨이 터지는 소리,
장치에서 갈라져 나오는 다급한 기계음 소리,
위급한 환자의 위치를 알리는 병원의 방송 소리,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뭉개지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당신은, 다시 눈을 감습니다.
–
–
「마지막 정류장」
…….
쏴아아.
고요하고 적막하게 수몰하는 세상을 울리는 빗소리.
낙수하는 빗물은 봄의 끝물에 삶을 모두 피워내고 낙화하는 벚꽃을 닮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뺨에 내려앉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정류장입니다.
품에 안고 있는 국화꽃은 이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시들어 있습니다.
일어났어?
귓가에 내려앉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들어 올리면 아주 자연스럽게도,
정류장의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전광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의 노이즈도 끼어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온전히 모든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전광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도자가 인도를 받을 자의 이름을 호명할 때, 마지막 버스가 도착합니다.」
그래요.
그랬던 겁니다.
이름의 불러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상사화였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사화가 각 정류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러고 보면, 꼭 사화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뒤에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던가요.
그야 당연하잖아요.
저 메시지에 따르면...
인도자는 상사화.
인도를 받을 자는, 망자의 길에 들어선 자.
죽음의 여로에서 가장 먼저 버스에 올라타 있던 자.
바로 일렉티오 바시움, 당신입니다.
그렇지만 왜일까요.
한참이 흘러도 사화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이걸로 마지막일 텐데요.
당신은 첫 번째 버스에서 조우한 직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상사화의 표정을 마주합니다.
그는...
기뻐 보입니다.
동시에 슬퍼 보입니다.
한편으로 어딘지 홀가분해 보이는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사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펼친 우산을 당신에게로 기울입니다.
사화의 어깨가 젖어 듭니다.
그제야 그가 입고 있는 옷차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까만 정장.
꼭, 세상이 말하는 인도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산을 당신에게 기울인 채 처연히 떨어지는 비를 맞던 사화는 나지막이 입술을 엽니다.
눈물 같은 목소리가 허공을 가릅니다.
“좋은 밤이야.”
사방은 어느새 컴컴해져 있습니다.
상사화:...목적지가 바뀌었어. 처음에 했던 말 기억 나? 도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네가 가야 할 목적지까지 내가 바래다주겠다고 했잖아. 건너편 정류장으로 넘어가자. 전해야 할 말이 있어. (그렇게 말하면, 네게 잡으라는 듯 손을 뻗는다. 하지만 네가 잡을 리가 없겠지. 잠시 바라보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네 시선을 마주하고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 낸다.) …손은 안 잡아줘도 되지?
일렉티오 바시움:(고즈넉한 밤, 빗소리만이 세상을 고요히 덮고 있었다. 손을 내밀고 다시 거두는 순간까지 시선에 담담히 담아내고 가만 네 목소리를 듣다 말한다. 이제는 국화꽃이라 말할기도 부끄러운 꽃을 내려다본 채로. 네가 기울여준 만큼 장마를 피할 수 있었다.) 목적지가 왜 달라졌는데.
상사화:걸어가면서 얘기해. (네가 기억을 되찾았다는 것은 아직 몰랐다. 그래서 걸어가면서 설명해줄 생각이었다. 제 목적지는 확실했지만, 너의 목적지는 이제 바뀌었으니.)
일렉티오 바시움:말해봐. (제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우산을 다시 네게 기울게 하고는 성큼 먼저 걸음을 옮겨 앞서 나간다.)
상사화:1년 전 오늘, 너와 내가 함께 타고 있던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진 트럭과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어. 그 사고에서 나는… 너를 끌어안고 죽었고. (너를 다시 만나고,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 몇 번을 연습했을까. 그래서 그런지 허무함으로 가득찬 얼굴에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너는 곧장 병원에 옮겨졌지만 1년째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이야.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너의 영혼은 삶의 경계를 벗어났고, 네 영혼을 노리는 존재가 있었어. 나는 그런 너의 영혼을 안전한 안식으로 이끌기 위해 신적인 존재와 계약을 했고 너를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과 힘을 얻게 되었어. 그 공간이 지금까지의 버스들이고.
내가 각 정류장에서 한 번씩 너의 이름을 불렀던 건, 너를 죽음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네 이름을 더 부르지 않아도 돼. (네 표정이 문득 궁금해졌다. 너를 위해서, 죽었다. 그에 너는 어떻게 반응할까.)
일렉티오 바시움:(빗물을 밟으며 옮겨지던 걸음이 순간 멈춘 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히 옮겨진다.) 이유를 모르겠네. (죽어서도 저를 꽤 곤란하게 만든다 싶었다. 망설임없이 끌어안던 네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지만,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무엇하나 궁금하지 않았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저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분명 한 번의 호명이 더 남아있을텐데,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도착한 정류장에 멈춰서 널 돌아본다.) 이제 안 데려가려고?
상사화:(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에, 헛웃음을 내뱉는다. 이렇게 목숨과 영혼까지 받쳐서 널 살려내면, 네게서 동정이나 죄책감이던, 비슷한 것이라도 얻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장난감이 아닌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아주 조금은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말까지 네게 전하고 나면 제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해질 것을 알기에 말을 삼켜낸다.) 생각해보니까, 네가 저승까지 따라와서 괴롭히는 건 좀 너무한 것 같더라. (내가 왜 여기까지 널 데리러 왔을까. 완전히 소멸하기 전, 네 얼굴을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서일까. 조금만 더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일까. 아니, 난 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때까지 당했던 것만큼 때리고, 욕설을 퍼부어줄 생각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몸, 네가 위협될 리가 없었고 네가 나를 버리겠다고 협박한들, 나는 이미 네 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런 것에 만족할 리가 없지. 난 네가 고통받았으면 좋겠다. 오만하고 뻔뻔한 너에게 이 세상은, 너와 나의 삶은, 네가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비웃어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비를 베풀어서 너를 삶으로 인도할 것이니, 그것에 감사하고, 후회하고, 또 네 자존심이 망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널 위해 죽었고, 널 다시 만나러 왔다고 믿고 싶었다.) 신이 도와주기로 해서. 널 다시 삶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되었어. (웃기는 일이지. 신이라는 작자가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고 이제 와서야 사실 낙원으로 이끌기 위해서 였다며 도와주겠다, 라니. 그렇게 생각이 들면 실소가 흘러나온다.) 네가 들고 있는 국화는 네 생명 그 자체야. 곧 이 정류장에 너를 삶으로 돌려보낼 버스가 도착할 거고 꽃다발을 들고 버스에 오르면 넌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
두 사람은 천천히 반대편 정류장을 향해 이동합니다.
발끝을 적시는 빗물은 차가울까요.
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화가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두 사람은 건너편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어떤가요, 일렉.
혼란스러운가요.
황당한가요.
상사화:삶이 다른 이의 손에 쥐어져 흔들리는 소감은 어때? (너를 향한 그 질문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있을까. 원망인가, 슬픔인가, 기쁨인가. 알 수 없는 감정들은 뒤엉키고 뒤엉켜, 목구멍을 막아내서 더 말을 더 잇지는 못하고 입꼬리를 당겨낸다.) 궁금했어. 네가 어떤 반응일지. 네가 나같은 놈에게 목숨까지 빚지고. 눈물은 못 흘려줘도 상당히 자존심 상하지 않았을까, 생각했거든.
문득 사화의 어깨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는 전광판이 보입니다.
전광판의 메시지는 우리가 원래 앉아있던 반대편 정류장의 전광판 메시지와 그 내용이 상이합니다.
「삶으로의 귀환.
삶으로 인도받을 자가 인도자의 이름을 부르면,
삶으로 향하는 생환 버스가 도착합니다.」
상사화:(살아생전에는 네게 구질구질하게 붙잡고, 애원하고, 갈구하면서도 서늘한 네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했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제 목숨까지 버려가며 너를 살려내자 그제야 깨닫는다. 아, 나는, 나는 그냥… 네게서 사랑을 받고 싶었구나. 하지만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네게서 애정 비슷한 무엇이라도 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끝까지 네게 진심을 담아서 사랑해달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건 제 마지막 자존심이고 제 삶 평생을 함께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네가 내 이름을 불러야 할 차례야. 내 이름을 불러줘.
이제는 반대입니다.
이제는 반대로 당신이 상사화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일렉티오 바시움:(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일렉티오 바시움이라는 인간은 좋은 것보다 싫은 것이 더 많은 인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것이라고 가장 먼저 답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제 목숨이 쥐어지고 흔들린 기분은 더러운 꿈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것은 꿈이 아닐테니.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꿈처럼 헛된 것이기는 했지만. 생과 사의 경계에 아슬하게 발을 걸치고서 사에서 생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이제 서 있을 뿐. 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널 희생하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다시 널 만난다면 멱살이라도 잡히거나 주먹이라도 날라오거나 적어도 비꼼이라도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조각난 기억과 함께 잊고 있었지만. 다시 만난 넌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장마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너는 국화 꽃이 내 생명을 의미한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너와 같았다. 대신 죽어준 것에 대해서는, 절 살려준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감사도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었다. 그런 것을 네게 바란 적이 없었으니. 마른 입술이 달싹였지만, 쉽게 네 이름은 뱉을 수 없었다. 삶에 미련이 없어서도, 다시 만난 너와 감격스런 재회때문도 아니었다. 내리는 비가 무거웠다.)
상사화:(잔잔하게 마주하는 시선에 무거운 빗소리만 들려온다. 꼭 두 사람을 수몰시킬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더 이상 네게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무엇이라고 하면 네 부정이라서. 우습게도 이제 저에게 죽음은 무력했지만, 그것보다, 이 순간에, 너의 대답이 무서워서 네게 정말 해야할 말 한마디 못 하는 제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널 원망하고, 또 자신을 원망했다. 널 사랑하고 싶었고, 또 자신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해 하지마. 절대. 넌 이유도 모른 체, 내 죽음을 맞이하고 네 삶으로 돌아가. 너를 바라보는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눈물은 참아냈다.)
일렉티오 바시움:아니. (네게 할 말이 있을리가. 이해는 경험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배려이다. 경험도 배려도 없는 이가 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눅눅한 숨을 삼켜낸다.) ...상사화. (겨우 네 이름을 뱉어낸다. 그건 한숨같기도, 탄식같기도 해서. 빗방울에 쉽게 녹아내렸다. 꼭 네가 그간 제 이름을 부른 것과 비슷한 목소리였다. 차라리 쏟아내리는 빗줄기에 잠기고 싶었다.)
상사화.
당신은 낮은 목소리로 사화의 이름을 부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온전히 침체된 죽음의 여로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가 젖어 듭니다.
바람이 이렇게 세차게 불면, 우산도 소용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닌 빗물인 겁니다.
얼마 있지 않아 정류장 앞에 라이트를 켠 버스가 한 대 정차합니다.
버스의 번호는, 413번.
삶으로의 생환입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계속 그래왔듯 네 이름을 부르고 나면 버스는 빠르게 다가와 멈춰선다. 이 버스를 타면 이제 생으로 돌아가겠지.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저 비바람에 흐려진 시야에 널 조금이라도 담아본다. 손에 쥐어진 국화가 손가락 끝에 걸리는 느낌이 껄끄럽다.)
상사화:....이제 편히 쉴 수 있겠네, 네 괴롭힘이 없는 곳에서. (차분하게 말을 전하는것과 다르게 눈물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낸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는 이미 죽은 몸이고, 너를 죽음으로 인도해봤자 결국 소멸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차라리 네가 삶으로 돌아가서, 저를 기억해주길 바랬다.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할 때, 길을 걸어갈 때, 말다툼을 할 때, 사랑을 나눌 때, 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네 삶에 나의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다.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게 고통이던, 슬픔이던, 그냥 아주 작은 짜증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미치도록 불안했다. 이대로 너를 보내면 다시는 못 볼 거라는, 그런 불안감. 그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써 말을 이어간다.) 나보다 그 짓을 잘 하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겠지. 잘 찾아봐. 나보다 좀더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사람. 네 폭력적이고 괴팍한 성격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 (그제야 참고 참았던 눈물이, 애써 참았던게 쓸모가 없어진 것처럼, 하염없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울음 가득한 두 눈으로 너를 끝까지 노려본다. 너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가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다시 널 붙잡고 싶게 만드는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이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안기길 바라는지.....)
일렉티오 바시움:(만약 제 기억에 남을 수작이었다면, 아주 잘 먹혔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기억을 안고 깨어난다면 분명 널 잊지 못할테니까. 시간이 흘러지나가면 가끔씩 생각나거나, 드문 떠올리겠지만 잊을 수는 없을거라고.) 너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너보다 얌전하고 말을 잘 들었다면 쉽게 질렸을테니까. 네 흘러내리는 눈물은 빗방울과 섞였을텐데도 선명히 보였다. 네 이름을 부르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던만큼, 그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한참 널 가만히 시선에 담아낸다. 그리고는 제 손에 생기를 잃어가는 빗방울에 젖은 수국 꽃다발을 네게 쥐어준다.) 너 주려고 했던거니까. (이제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네 품에 안겨주고는 붙잡을 틈도 없이 버스에 올라탄다.)
상사화:(자신보다 나을 사람이 없다는 말에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너를 바라본다. 이때까지 네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과 행동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게 분명했다. 무어라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서 입술만 달싹이고. 그리고, 네 손에서 벗어난 국화꽃은 금새 본연의 색을 잃는다. 짓밟힌 것 같이, 이제는 국화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 무언가가 제 손에서 흩어진다. 네 생명을 담았던 그 꽃은 제 손에 담기자, 제 손 안에서 바스러져간다. 그러면 순식간에 얼굴이 절망으로 빠져든다.) 일렉티오 바시움!! (갈라지는 목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짖는다. 버스에 올라타는 너를 따라 뛰어가지만 붙잡지는 못한다.)
한 철에나 간신히 피어나는 것들은 언젠가 싱그러웠던 본래의 모습을 잃기 마련입니다.
지금처럼요.
어떤가요?
지금 끊임없이 당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이명은 꼭,
꽃이 내 지르는 비명처럼 들리진 않나요?
어떤가요.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한 기분은.
어떤가요.
포화하는 빗소리,
먹먹한 눈앞에 보이는 다소 놀란 표정의 그 사람은 어때 보이나요.
네, 어떤가요 일렉티오 바시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 사람의 절망에 익사할 것만 같이 얼룩진 표정은요.
삐―――.
사방을 울리는 물줄기의 틈을 지긋지긋한 이명이 가릅니다.
숨 막히는 간극 속에서 그 사람이 입을 엽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눈가에 고인 빗물이 차가워 눈꺼풀을 한 번 감았다 떠올렸을 땐,
찰나의 꿈처럼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으니까요.
삐―――.
그리고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떠올렸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인지조차 없이,
잘게 찢겨 나가는 감각과 함께
모든 것이 수몰됩니다.
그저 바닥의 물길을 따라 빛을 잃은 꽃잎만이
정처 없이 흐르고,
흐르고,
또... 흐르고.
END4 낙화落花
일렉티오 바시움, 상사화 영구 로스트.
후기 + 로그
별 볼일 없는 후기:
네...........
아니....
네....
어.....
그....
어디서 시작해야하지. 일렉 사..사랑해?
일단 제 티알입문 시날을 이렇게 키퍼로 다시 와보네요. 기분이 새로워요.
늘 수위시날만 가던 애들이 수몰버스를 오다니... 신기하고... 또 일렉이 생각보다 시날에 적응 잘 해줘서... 고맙..다? 질문 많이 안 해줘서 고마워
제가 원래 시나리오 정리하면서 긴 지문들이나 쓰고 싶은 것들 몇 개는 미리 준비해놓는데 일렉 반응은 전혀 예상이 안가서 일단 사화 하고 싶은 말들만 엄청 적다보니 고백처럼 됐네? 무시하세요. 그런데 사화는 죽어도 일렉한테 사랑한다는 말 못하더라. (아들램 등 팍...) 그런데 애초에 준비할때 얘네는 해피엔딩은 절대 못 보겠구나, 싶었어요. 사실 저 엔딩이 차선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1번 엔딩 봐도 후속시날은 못 갈테니...
관오님한테 대충 설명은 다 해드렸지만 후기니까 또 써볼까요.
애들 관계가 뭐라하지... 애증..? 혐오...? 외사랑...? (전혀 모르겠음) 그런거라 시날 개변을 조금 해야했어요. 크게는 안 하고 스크립트에 사랑하는 kpc, 행복한 두 사람, 좋은 밤이냐 내 사랑 이런식으로 묘사된게 많았는데 그걸 많이 뺐어요. 딱 한군데 사랑하는--어쩌고 안 뺀곳 있는데 찾으면 제가 박수쳐드립니다. 그건 바꾸기 싫었다네. 특히 진상 나왔을 때 원래 탐사자가 슬퍼하는 묘사 스크립트가 많았는데 그거 다 못쓴 건 조금 아쉬웠어요. 제가 지문칠 때 조금 썼습니다.
그리고 1번 엔딩으로 계속 갔으면 국화꽃은 일렉이 사화 마음 알아채면 붉은색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로 변하고 모르면 노란색("실망, 짝사랑")으로 변하는 스크립트로 준비했었어요. 결국 둘다 안 썼지만. 그래서 노선도 색상이랑 꽃말 그거 안 보여줄려고 했는데 무슨 관찰을 3번이나 성공해. 심지어 그거 노선도 말고 다른거 (전광판) 보여주려고 한건데 자꾸 노선도만 보는거야 얘가.
그리고 일렉이 국화꽃 훼손하려고 하면 사화가 이름 먼저 부르게 해서 영구로스트는 막으려고 했는데........ 그냥 가버렸네........ 바보야....... (허공에 메아리치는 관캐이름) 진짜 버스 창문 열고 던져야하나 고민 많이 했다....
저 정말 탈통 각오하고 이번에 사화 안 잡으면 진짜 놓칠것처럼 묘사했는데 나중에 가서는 제가 붙잡아달라는 식으로 지문 치고 있었네요. 근데 내가 뭘 하려고 해도 사화가 너무 말을 안 들어. 너도 일렉 만만치 않게 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