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티오 바시움:(감정도 표정도 사라진 네 모습은 낯선 것이었으나, 200일이라는 시간은 그것에도 느리게 적응시켜주었다. 옅은 숨소리만이 아직 네가 온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으나, 그 어떠한 말도 감정도 내비치지않는 네 모습에 차라리 말상대를 구한다면 시리가 나을 정도였다. 저를 보고는 있는 건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시선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떠올려본다.)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글쎄요, 반 년 넘게 듣지 못한 목소리가 생각나봐야 뭐 하겠어요.
오늘도 사화를 깨워야 합니다.
3달이 조금 넘은 뒤로는 당신이 일어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눈을 뜬 채로 침대에 누워있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인형처럼 살아내고 있는 사화를,
오늘도 살려내기 위해 당신은 문을 엽니다.
온기 없는 방은 한산합니다.
최소한의 가구만을 들여놓았으니까요.
솔직히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사화가 누워있는 침대와 가끔 환기를 위해 여는 창문뿐입니다.
사화를 깨우기 전에 환기를…….
상사화:일렉티오 바시움.
사화는 너무나도 또렷한 목소리로 당신을 부릅니다.
창문을 자신의 손으로 열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지난 날의 199일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한 투입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그렇게 열기 어렵게 느껴지던 이제는 익숙하게 연다. 가장 먼저 환기를 하기 위해 창문으로 향하던 시선은 낯설게 들리는 목소리에 널 돌아본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는 생각보다 선명히 떠올랐다.) ...오늘은 알아서 일어났네. (약간의 놀라움이 평소의 무심한 어조에 묻혀 담담히 내뱉어진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는 네 모습이 마치 환영처럼 느껴져 빤히 너를 바라보았다.)
사실 거짓말일지도 몰라요.
그냥 아주 긴 꿈을 꾸었고 사화는 당신이 그 꿈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상사화:나, 나비를 잡으러 가야겠어.
사화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죠?
갑자기 한 첫마디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사화는 너무도 당연하게 당신이 함께 가 줄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손을 뻗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나비? (그 말에 그제서야 네게서 시선을 떼고 창밖을 본다. 지금 계절에 나비가 있던가? 생각해보고는 뻗어진 네 손을 잠시 내려다보다 잡는다. 이게 꿈인지, 그 시간들이 꿈이었는지, 네가 정말 상사화가 맞는지, 적어도 살아있는 존재는 맞는지 어느정도 확인이 필요했다.) 너 병원부터 가야할 것 같은데.
상사화:병원은... 아냐. (맞잡은 손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너를 올려다본다. 이전에 없었던 확고함, 그리고 간절함이 묻어나는 두 눈으로 널 담아냈다.) 나비만 잡으면 설명해줄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보다 그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말했다.)
심리학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어제까지 생기없는 눈으로 가만히 누워만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한 눈빛과 말에 이제는 어느 것이 꿈이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나비는 어떻게 잡을 생각인데. (분명 말투나 행동은 제가 알던 반 년 전의 네 모습과 같았지만, 이상하게 나비에 집착하는 네 모습은 낯설어 네 의도를 파악해보려는듯 빤히 본다.)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사화는 뭔가를 강하게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비를 잡으러 간다는 말이 정말 진심인 것 같습니다.
상사화:나랑 같이 잡으러 가주겠다고 말해줘. 가면 내가 알려줄게. 어렵지 않아... (어쩐지 불안하단 눈으로 창밖을 빤히 바라보며 네 손을 더 굳세게 잡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너를 올려다보며 애처롭게 부탁했다.) 응? 믿어주면 안돼?
그저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하는 사화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그는 조금도 환상을 보거나 헷갈려하는 눈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옛 기억 속의 사화처럼 확고하고 선명해보여요.
눈은 일순 빛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꼭 꿈을 찾아낸 사람처럼 희망의 흔적이 엿보여요.
그를 따라가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을까요.
일렉티오 바시움:(네 말을 들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네 부탁이 어려웠던 적은 애초에 몇 번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고 이렇게 네가 열의를 보이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 (마치 나비를 잡기 위해 해야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네 모습에 꽉 잡힌 손을 짧게 내려보고 말했다.)
사화는 당신의 대답을 듣고 못내 기쁜 표정을 짓습니다.
그 얼굴에 표정이 번지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다시 한번 갑작스러운 변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99일이라는 것은 당신과 사화에게 내려진 무의미한 시련, 같은 거였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신은 양날의 검 같은 것이죠.
자신이 선택한 이에게는 즉각적인 자애를 내려주지만 선택하지 않은 이는 영원이 가도록 내쳐버리는 것.
그리고 신의 범주에 아마 당신과 사화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다른 어떤 힘이 사화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꼭두각시처럼요.
사화는 창문 너머를 가리킵니다.
설마, 저 쪽으로 뛰어들자는 걸까요?
그 창문 너머를 바라보면…….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갑자기 깨어난 넌 꼭 누군가에 의해 조종이라도 되는 것 같았지만, 나비를 잡고 싶어하는 건 분명한 너의 의지로 표현되고 있었다. 네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기에 그것을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네 손끝을 따라 창밖을 본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알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분명히 창을 넘어서 가면 허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을 연 것처럼 아름다운 잔디가 펼쳐져 있습니다.
상사화:
(To GM)rolling 1d4
(
4
)
=
4
상사화:이 쪽으로 가자. 이 쪽에 나비들이 있어. (너를 제 쪽으로 끌었다. 네가 창문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나비를 잡으러 가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러 가자.
사화는 분명히 우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요.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당신과 사화를 하나로 칭했습니다.
한때 그것은 두 사람에게 일상이었는데 당신조차조 조금은 잊어버렸을지도 몰라요.
우리라는 말이 주는 무게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운명을 믿고 필연을 읊습니다만,
우리는 대개 아름다운 것들에게 그런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닥쳤던 것은 비극이었죠.
당신은 그 비극에 대해서도 아무렇지 않게 운명이나 필연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나요?
무책임한 신에게 탓을 돌리면서요.
그럴 순 없습니다.
신의 도움을 기대하지 맙시다.
그저 지금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 사화의 존재를 믿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사화는 잠시 당신을 돌아보고는 망설임 없이 창틀에 몸을 걸칩니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밉니다.
상사화:같이 가줄래?
아무것도 모르는 웬디를 홀린 무구한 피터팬을 닮았습니다.
웬디, 이 너머가 신을 불신하는 자들의 지옥이라도 피터팬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었나요?
그림자를 잃어버릴 수도, 혹은 웬디 자신을 놓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저 끝이 없는 잔디의 끝 어렴풋이 느껴지는 또 다른 문을 열 준비가 되었으면 손을 맞잡으세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도망쳐도 좋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기이한 창 밖 풍경에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 그 사이 당기는 네 손길에 순순히 끌려간다. 네 입에 담긴 '우리'라는 단어가 어색했다.) 우리? 우리가 잃어버린 게 뭔데. (잃어버렸다는 건 원래는 갖고 있었다는 말과 같았다. 비현실적인 창밖의 풍경 그곳에 걸쳐있는 너보다 네 웃음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네 손을 바로 잡지 못했다.)
상사화:나도 잘 몰라, 그렇지만.... 저쪽 너머로 같이 가주면 설명해줄 수 있어. (그건 어린아이가 자신이 사랑하던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모습과도 같았다. 다만 지금 그것을 잃어버렸으니 네게 보여줄 수 없어 아쉽고, 조급할 뿐.) 제발.
일렉티오 바시움:(네 간절함을 보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메마른 네 얼굴은 빠르게 잊혀졌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네 표정에 잠시 멍하니 그것을 보다 네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올린다.) 그래, 가자.
당신은 사화의 손을 잡습니다.
사화는 더없이 익숙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창틀을 넘어갑니다.
두 사람이 창틀을 넘어가자마자 거짓말처럼 뒤에서 창이 닫힙니다.
그리고는 마치 동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소멸해버립니다.
잔디는 꼭 우리가 사는 곳에서 본 적이 없는 색을 띄고 있습니다.
푸르기도 하고 눈을 깜박이면 흰색인 것 같기도 하고, 노란색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우주의 별을 팔레트에 흩뿌리면 생길 것 같은 색들의 향연입니다.
동화에 들어온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그렇다면 두 사람은 지금 동화의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네요.
잔디가 끝없이 깔렸던 정원 끝에서 희미하게 무엇인가 보이는가 하더니 순식간에 거대하게 크기를 불립니다.
그것은 꼭 잔디처럼 오로라의 빛을 담은 문입니다.
사화는 문으로 다가가서는 당연한 것처럼 그것을 밀어젖힙니다.
그리고는 동시에 당신을 돌아보며 무구하게 웃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는 저토록 하얗게 웃을 수 있는 걸까요.
상사화: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여기는 바로,
02. 나비의 정원, 영원한 아침
그 문을 넘어가는 순간 세상이 뒤집힌 것 같습니다.
거센 바람이 일고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뜨면 사방이 무채색으로 탁 트인 공간입니다.
오로라처럼 찬란하던 잔디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색을 빼앗긴 것처럼.
그리고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정말로 숫자를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나비들이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같은 색이라고는 없지만 유일한 공통점은 꼭 투명한 것 같은 날개가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큰 나비도, 손톱만한 작은 나비도 존재합니다.
사화는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사방이 날갯짓의 향연입니다.
아, 이건 정말로…….
나비의 정원이네요.
꽃도 무엇도 없이 빛나는 나비만이 날아다니는 곳은 이질적이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습니다.
꼭 다정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화가 저토록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요.
하늘은 두 사람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의 세계처럼 꼭 푸른 아침입니다.
끝없는 정원에서 맞고 있는 아침은 왠지 모르게 꼭 끝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구름은 하릴 없이 노니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태양은 따갑지 않은 빛을 쏟아줍니다.
두 사람의 일상과 닮았죠.
과거의 그 시간을 한낱 신기루가 아닌 일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요.
상사화:이곳에서 찾아야 해, 나비를.
일렉티오 바시움:(네 손을 잡고 넘어선 풍경은 그림같다라는 말이 어울릴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가장 그림같은 건 네 미소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거센 바람만 아니었다면 아마 한참을 멍하니 네 웃음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감긴 눈에도 망막에 네 모습이 진득하게 새겨진 것 같았다. 나비를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눈을 뜬 곳에는 정말 수없이 많은 나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나비의 날개는 보통의 나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오히려 돌아와야할 곳으로 온 것 같은 편안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리고 옅은 웃음을 그렸을지도 몰랐다.) 네가 찾는 나비는 어떤 나비인데? 나비라면 여기 널려있는 게 나비인데.
나비를 찾아야 한다뇨?
이곳의 사방이 나비가 아니었던가요.
하지만 사화는 꽤 굳건한 눈빛입니다.
당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올립니다.
상사화:들어 봐. 부르고 있잖아.
듣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무슨 소리냐고 따져묻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일단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해본다.)
듣기
기준치:
62/31/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아주 미약하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
일렉티오 바시움:(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는 꼭 누군가의 목소리같았다.) 저 소리?
상사화:(네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은 체 네 손을 잡고 이끌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나비들 속에서도 향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보면 은빛의 투명한 나비가 가만히 허공에 떠 있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한 번마다 투명하게 빛나는 가루 따위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빛을 뭉쳐 가루로 만든 것 같습니다.
사화가 천천히 손을 뻗습니다.
그러다 문득 멈추고는 잠깐 웃으며 그 손을 그대로 당신에게 내밉니다.
상사화:같이 잡아야지. 함께해 줄 거잖아.
일렉티오 바시움:(네가 의뭉스럽게 구는 것도 오랜만이라 딱히 거부없이 따라간다. 너는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정확히 알고 그곳으로 움직였다. 나비를 잡으려는 네 모습을 지켜보다 같이 잡자는 말에 고민없이 손을 잡는다. 잠깐 사이 네 손을 잡는 건 제법 익숙해졌다. 이유를 물어도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아 굳이 입아프게 묻지도 않았다.)
당신이 사화의 손을 잡자 그대로 빈 손을 나비를 향해 뻗습니다.
나비는 기다렸다는 듯 사화의 손 위로 내려앉고 일순 빛으로 화하여 사라집니다.
아니, 사라진다기보단 빛이 되어 두 사람을 감쌌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요.
견딜 수 없는 격렬한 빛에 눈을 감았다 뜨면 두 사람은, 정원이 아닌 다른 곳에 서있습니다.
사화가 풍선이 가득한 벽 앞에 서있습니다.
이곳은 유원지인가요?
그가 손을 뻗자, 풍선들 사이에서 커다란 곰인형이 나옵니다.
1m는 되는 것 같은데요.
사화가 대형인형을 품에 한가득 안습니다.
신이 난 듯, 인형을 들고 위아래로 흔드네요.
"재밌어?"
당신에게는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기억일지도 모릅니다.
그야 저 말을 한 건….
당신이 아니었던가요?
두 사람의 소중한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 기억에서는 도무지 사화에게 말을 건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상을 찌푸려서 자세히 보려고 해도 얼굴이 유독 뿌옇게 보입니다.
“이것봐, 소원을 이루어주는 나무래.”
그렇게 말한 사화가 당신을 이끌고 여러 종이가 달린 나무로 데려갑니다.
고뇌하는 표정 끝에 사화가 펜을 들어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합니다.
한 번 정하기 시작하니 마음을 굳힌 것처럼 펜 끝이 거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글자들 마저 흐릿하게 보입니다.
오히려 종이는 찢겨나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뭐라고 썼어?”
더없이 상냥한 표정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사화가 문득 얼굴에서 표정을 거둡니다.
너무나도 차가운 표정으로 바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 무표정한 얼굴을 당신은 알고 있잖아요.
199일이나 보아온 얼굴이니까요.
너무나도 차가운 목소리로, 꼭 적대적인 이를 대하는 것처럼 사화는 입을 엽니다.
"넌 누구야?"
이성 확인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손에 내려앉은 나비는 빛으로 변하고 빛은 새로운 풍경으로 인도해주었다. 익숙한 기억이었다. 곰인형을 안고 있는 너와 소원을 적는 모습까지도. 낯선 것이 있다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모습 그리고 그 끝에 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니 그보다 적대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SAN Roll
기준치:
72/36/14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눈을 깜박, 하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다시 나비의 정원으로 되돌아와 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사화는 조금 머리가 아픈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답을 해야하나 고민하는 순간 눈을 깜빡이면 다시 정원으로 돌아와있었다.) 머리 아파?
상사화:(인상을 찡그리다가 네 질문에 너를 올려다봤다. 속이 거북했다.) 조금 기억이 난 거 같아. 상사화, 22살...
일렉티오 바시움:(네 말에 그제서야 평소와 네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 이름도 모르고 있었어? 그것말고 기억하는 건 뭔데. 내가 누군지는 알고 데려왔어?
이상한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22살이라뇨?
사화의 나이는 이제 23살이 아니었던가요?
상사화:22살 예전의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도. (갑작스럽게 밀려온 기억들은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꼭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남의 인생을 훔쳐본 기분이야. (마지막의 네 말에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여전히 네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일렉티오 바시움:(네 말에 너의 시간이 22살에 멈춰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마저도 남의 기억같다는 말과 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말에 간만에 좋았던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잘도 데려왔네.
상사화: (네 눈치를 살피다 손을 조금 더 꼬옥 붙잡아봤다.) 왜, 기분이 나빠? 그냥 의지가 될 만한 사람인 것 같아서 그랬어.
일렉티오 바시움:(온전하게 기억하지 못해도 느낌은 가지고 있는건지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네 모습에 낮게 숨을 뱉어낸다.) ..그래. 다른 나비 또 찾아야하는거 아니야?
잠시 대화를 나누다보니 환하던 하늘이 조금 붉은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해가 지기 직전의 시간과 닮은 것 같습니다.
만약 이곳도 우리가 있던 곳처럼 정상적으로 시간이 흐른다면요.
대화를 멈추고 하늘을 한참 바라보던 사화가 조용히 입을 엽니다.
상사화:다시 가자.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두 사람이 찾아내야 하는 것은,
03. 나비의 흔적, 순간의 황혼
듣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듣기
기준치:
62/31/12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조금은 또렷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번에는 사화의 것이 아닙니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사화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이지만요.
사화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옮깁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니까요.
일렉티오 바시움:(아까보다 선명한 낯선 목소리는 상사화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는 널 따라 간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 보면 일전의 것보다는 조금 작으나 노을의 색을 닮은 나비 한 마리가 조용히 유영하고 있습니다.
그 나비의 곁으로 다가가보면 이제 하나가 아닌 수어 개, 수십 개의 목소리가 사화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사화 씨, 사화야, 상사화!
부르는 호칭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수많은 목소리는 하나같이 사화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한참 그것을 바라보던 사화가 당신에게 손을 뻗습니다.
이번에도 그를 잡을 건가요?
일렉티오 바시움:(나비가 기억이라면, 기억을 갖고 있지 않는 너와는 어차피 대화도 무엇도 할 수 없기에 이번에는 좀 더 고민하다 네 손을 잡는다.)
당신이 사화의 손을 잡는다면 당연한 순서처럼 나비가 사화의 빈 손 위로 내려앉습니다.
이번에는 일몰의 빛처럼 붉게 타오르는 빛이 두 사람에게 쏟아집니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뜹니다.
그러면 세계는…….
두 사람은 어느 검은 공간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수십 개의 스크린이 사방으로 떠 있습니다.
모든 스크린들은 붉은색 실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꼭 그것들이 모든 것의 인연이라는 듯.
그 실들은 모두 나비가 앉았던 사화의 손에 묶여있습니다.
그곳에는 각각 다른 얼굴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목소리로 사화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쏟아냅니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그 모든 스크린은 흑백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람들이 있는 곳은 오색찬란할 것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무채색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가워요, 사화씨.”
“제법 웃긴 사람이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화. 편히 대해주셔도 괜찮아요.”
“회색 머리 남자분에게 키스해도 될까요?”
“노래 불러줘.”
“뭐야, 내 생일인 건 어떻게 알았어? 감동인데. 이리와, 뽀뽀해 줄 게.”
“그를 왜 사랑하는 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리고 개중에 딱 하나, 꺼진 스크린이 있습니다.
조금은 지직거리는 목소리로 애처롭게, 애타게, 사화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온 붉은 실은 사화와 당신이 맞잡은 손의 손가락에 묶여 있습니다.
그것만이 특별하다는 것처럼.
한참을 그곳을 응시하던 사화가 입을 엽니다.
상사화:이 스크린 중에서 너만 없는 거 같아. 그러면……저 안 보이는 스크린은 너인 거지?
일렉티오 바시움:(꺼져있는 스크린과 연결된 붉은 실을 보고서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듯 덤덤하게 말한다.) 그런 것 같네. 왜 꺼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사화:(덤덤하게 말하는 네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너를 올려다봤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줄래? (그러면 이 의문감이 조금 해소되지 않을까 싶어서.)
일렉티오 바시움:(네 질문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기억하고 있다면 절대 그런 얼굴로 그렇게 물을 수 없을테니까. 너와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항상 어려웠다.) 글쎄... 지나치게 특별해서 보통의 정의로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지금은 동거인 아니면 애인정도겠네. 너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가벼운 혹은 옅은 비꼼이 있는 어투였다. 네게 불만을 표현하기보다는 이 관계 자체가 새삼 얼마나 불완전했는지 다시 한 번 와닿아 스스로에게 내뱉은 비아냥이었다.)
상사화:(두 눈을 두어번 깜박였다. 네 대답을 듣고 나서도 머릿속에는 온갖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그래서 네가 지금 내 옆에 있구나. 그건 이해가 가. 그런데, 애인이라면 서로 사랑했던 사이라는 거 아냐?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거야? 너는 날 사랑하지 않았어?
일렉티오 바시움:(사랑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렇게 사랑을 원하던 네가 사랑하지 않았냐고 직설적으로 묻는 질문에 짧은 헛웃음을 뱉는다.) 그렇게 물어보는거 보니 정말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나보네.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본 적 없어? 예를 들어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던가. (어차피 넌 기억하지 못할테니 뻔뻔스럽게 말했다.)
상사화:내가 널 사랑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화가 난 거야? (네 행동은 화가 났다, 그렇게 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해서? (그러고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가설.) 너, 날 많이 좋아했구나.... (멋대로 확신하고 측은한 눈빛으로 널 바라본다.)
(손도 꼬옥 잡아준다...)
일렉티오 바시움:(멋대로 추측한 결과로 안쓰러운 눈빛까지 보내는 네 모습에 어이가 없어 오히려 실소가 새어나온다. 이런 너에게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 이야기한다해도 듣지도 않을 것 같아 잡힌 손을 놓고 말한다.) 마음대로 생각해.
상사화:(잡힌 손이 놓아져도 딱히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네가 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게 되었고, 그러면 조금 더 자신에 대한 것을 찾을 거란 확신이 들게 되었으니 웃음을 지어냈다.) 내가 노력해볼게. 그래, 이러면 어때?
사화는 붉은 실이 묶인 소지를 내밉니다.
약속을 하자는 뜻일까요?
상사화:이제는 잊지 않을게.
일렉티오 바시움:(네 새끼 손가락을 빤히 본다.) 이게 무슨 뜻인데.
상사화:약속하자고. 내가 널 잊지 않겠다고.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네가 안 할 것 같으면 빈 손으로 네 손을 잡고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엄지로 도장을 꾸욱 찍어준다.) 자, 약속!
일렉티오 바시움:(네가 기억을 잃은 게 이번만 있었던 일도 아니었다.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제 손가락을 끌어와 기어코 약속을 했다. 그 모습조차도 낯설면서도 장난스러운 네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죽은 것처럼 숨만 내뱉던 때와 비교하면 차라리 지금의 모습이 훨씬 보기 나았다. 그래서 어쩌면 네게 가만히 손을 내어주었을지도 몰랐다.) 그 말을 네가 잘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 했으면 놔.
그 이후에 하나씩 스크린이 꺼집니다.
하나둘씩 목소리가 줄어들고, 열, 다섯, 셋, 하나…….
마지막 스크린이 꺼집니다.
또 다시 깜박, 나비의 정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사람을 스크린의 세계로 보내주었던 나비만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직후입니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네요.
하늘은 금방이라도 빛이 거두어질 것처럼 빨갛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세계가 저물면 저런 색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와 동시에 사화의 몸이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것처럼 그대로 쓰러집니다.
세상의 색이 돌아오는 대신 사화를 보내버린 것처럼요.
무력하게 늘어진 사화는 당신이 불러도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마치 인형이라도 보는 것 같아요.
방금까지도 멀쩡했던 거 같은데요.
이성 확인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언제나 좋지 않은 일은 안심할때 찾아오곤 했다. 정원으로 돌아와 붉어진 색을 바라본 사이 네 몸이 기울어졌다.) 상사화! (쓰러진 널 흔들어도 보고 이름도 불러보아도 마치 어제처럼 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SAN Roll
기준치:
71/35/14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
아, 아닙니다.
다시 보니까 사화는 고르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잠에 빠진 것 같아요.
놀랄 뻔했네요.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마냥 시간을 보내기에는 주위 풍경이 너무 노골적일 만큼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급속도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원래 노을이 이렇게 빠르게 지는 것이었던가요?
하늘을 마지막으로 올려본 것이 언제인지도 살짝 가물거리는 것 같습니다.
노을이 어떻게 지는지,
그런 시간에 사랑하는 이와 손을 잡고 걷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문득 하늘이 부서질 듯 비가 내릴 때 우산을 들고 달려가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러니까 소중한 이와 보았던 수많은 하늘들의 형태를 아주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검은 것으로 가득 찰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듭니다.
이런 곳에도 별이 뜰까요.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지만요.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갑자기 일어나서 그런건지 그저 숨을 쉬며 자고 있다는 사실에 미묘한 안도감이 깃든다. 변화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소한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었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하늘에 떠있는 저것이 별일까요?
아주 아름다운 흰빛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시선을 빼앗겨버릴 것 같아요.
아…….
아니에요.
저것은 별이라기에는 선명하게 움직이고 있잖아요.
살아있는 것 같아요.
당신은 이제 어렵지 않게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곳은 나비의 정원이니까요.
어딜 보아도 나비가 아닌 것은 당신과 사화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으나 하늘은 하루의 흐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시계추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순간을 경험한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오로지 하루를 전부 다 쓴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요.
이런 것은 사실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세상이 두 사람만 두고 흐르기 시작하다뇨.
아니지.
지금 사화는 너무나도 무구한 얼굴로 잠들어버렸으니까…….
결국은 당신의 시간만 흐르고 있는 거네요.
199일을 혼자만의 시간을 흘려오지 않았나요.
당신의 이름이 붙은 시계가 있다면 초침 정도는 너덜거리며 반쯤 꺾였을 정도로 긴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무채의 나비 정원에서 홀로 색채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일렉티오 바시움,
이제 어떤 것을 해야 할까요?
하늘에 빛나고 있는 저 은빛의 황홀한 나비의 빛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한 번 깜박, 감았다 뜨자
진정한 흰색이라는 것은 이런 것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더없이 깨끗한 흰빛의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사화를 들어보면 아무런 무게가 없는 것처럼 지독하게 가볍습니다.
그를 데리고 가도 되겠지만 정 걱정이 된다면 이곳에 재우고 가도 괜찮을 겁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순간 별이라고 착각할만큼 밝은 나비를 가만히 올려보며 고민을 하고 있으면 이곳이 환영과 같은 공간임을 잊지 말라는 듯 계단이 나타났다. 200일이라는 시간 동안 네가 제 시선에 닿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 때문일까, 너를 이곳에 놓고 혼자간다는 것은 꺼림칙했다. 그래서 너를 안아들면 지나치게 가벼운 무게에 마치 아무것도 들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짧게 인상을 찡그린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이대로 네가 깨어나지 않거나 사라질 것만 같아서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너를 내려다보거나 낮게 네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다.)
크게 무겁지도 않은데 안고 가도 괜찮을 겁니다.
사화는 세상 모르고 당신의 품 안에서 잠들어 있어요.
그를 안은 채로 계단을 한 칸씩 오릅니다.
몇 마리의 나비가 당신을 따라오는 듯하다가 얼마 안 가 멀어집니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계단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04. 나비의 별, 잊혀진 밤
나비라고 생각했던 것은 별이었습니다.
아니죠, 과학적으로 생각했을 때 별은 이렇게 작고 차갑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별의 조각의 모방한 얼음일지도 몰라요.
나비 모양의 그것은 당신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천천히 날아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당신을,
…… 꿰뚫고 지나갑니다.
정확히 심장 부근을 꿰뚫고 지나간 나비는 순식간에 당신의 몸을 차갑게 만듭니다.
손끝부터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가득합니다.
몸에 하나하나 얼음이 차오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점점 머리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갑니다.
기억, 감각, 사고, 꿈, 감정…….
그리고 깜박, 하고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정신을 차립니다.
잃어버리던 것들을 다시 주워 담고 정신을 차렸어요.
실제로 손끝을 보면 순간적으로 하얗게 얼어버리는 것 같은 환영이 보였다가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이성 확인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별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나비로, 나비로 착각했던 것은 다시 별로 돌아선다. 지나치게 작고 차가운 조각은 천천히 다가와 방심한 사이 저를 꿰뚫었다. 몸이 얼어붙는 느낌과 함께 모든 것이 매몰되는 것 같았다. 인식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고 다시 눈을 깜빡이는 순간 다시 차오른다. 그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일어나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순간마다 세상이 뒤밖였다.)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변동 없습니다.
방금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
가진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꼭 인형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199일 사이의 사화가 되기라도 한 것 같네요.
순간적인 감각이지만 그렇게 모든 것이 새어나가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쌓아온 것들인데요.
억만금을 주어도 다시 채우지 못할 유일한 모래시계가 아닌가요?
그렇게 잠시 그 차가움을 되새기고 있었을까요.
그 탓에 잠시 한눈을 판 것일까요.
눈을 한 번 깜박하기 무섭게 주위의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이곳은……
사화의 방이 아닌가요?
분명 여기서 창문을 열고 나비의 정원으로 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왜…….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차가움이 남아있는 것 같은 손끝으로 널 고쳐 안는다. 방금 느꼈던 감각이 어쩌면 지난 시간 동안의, 지금의 네가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념들 속에서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다시 시작점으로, 네 방으로 돌아와있었다. 느린 시간들 속에서 지나치게 빠른 공간변화는 행동을 멈칫거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가만히 서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부지런히 시선을 옮겼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들어올 때는 아침이었던 거 같은데.
지금 창밖은 검습니다.
방에 불이 켜져 있네요.
단조로운 방의 풍경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책상, 침대를 볼 수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창밖을 보다 방의 불을 켜두고 갔었던가? 하는 생각을 짧게 하고는 일단 안고 있는 널 침대에 내려두며 침대를 살펴본다.)
평범한 침대입니다.
아무런 꾸밈도 없이, 새하얀 이불과 배게만이 존재합니다.
한 때는 사화가 침대 머리맡을 사진으로 꾸며놨었는데....
일렉티오 바시움:(벽지에 남아있는 테이프의 흔적을 눈으로 좇아보고는 익숙하게 네 코 아래로 손을 대본다.)
사화는 얌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물론 숨도 쉬고 있구요.
일렉티오 바시움:(숨을 쉬고 있고 그저 잠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몸을 돌려 책상을 살펴본다.)
책상 위에는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쓰던 것인지 반쯤 뜯겨진 흰색 편지지가 보입니다.
일렉티오 바시움:(편지지를 들어 읽어본다.)
분명히 어떤 것을 적었던 것처럼 검은색 펜의 자국이 남겨져 있는데 무엇인지는 정확히 읽히지 않습니다.
이 세계의 글씨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상하네요.
챙겨가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려나요.
책상 아래에는 두 단의 서랍이 있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이해되지 않는 글자로 적혀있는 편지를 일단은 챙겨두고 책상 아래 첫번째 서랍을 열어본다.)
이곳에는….
홍삼 엑기스?
예전에 사화가 당신에게 선물로 보냈다가 한번도 먹지 않아 결국 사화가 먹던 것 아니던가요.
말문을 닫은 이후로 당신의 앞에서 좀처럼 먹지 않았는데.
일렉티오 바시움:(밥 대신 먹은게 이건가 싶어 괜히 침대에 누워있는 너와 홍삼 엑기스를 번갈아 흘끔거리고는 서랍을 닫고 두번째 서랍을 열어본다.)
사진들 입니다.
처음 바닷가에 놀러가 찍었던 사진,
야경을 보며 키스하던 사진,
커다란 곰인형을 들고 해바라기 꽃밭에서 함께 찍었던 사진.
당신이 고른 웨딩드레스를 입고 함께 찍었던 웨딩 사진까지.
한 때 사화가 침대 머리맡 위에 붙여 놨던 것들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길래 버린 줄 알았더니,
이런 곳에 두었군요.
일렉티오 바시움:(사진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너덜거리는 테이프만 남아있어 당연히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서랍 안에 남아있는 사진들을 보면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행복한 순간들만 뽑아 모은 사진들이, 그 사진 속에 있는 네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창가에 걸터 앉아있던 네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서랍을 닫고 다시 네게 돌아가 말한다.) 상사화, 일어나봐.
사화를 깨우러 다시 침대로 돌아서면....
누군가가 앉아있습니다.
얼굴이 살짝 구분이 가지 않아요.
시력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벗기라도 한 것처럼 앞이 뿌연 느낌이 듭니다.
사실 이 침대에 앉아있을 사람은 명백합니다만,
저건 사화가 맞는 건가요?
아침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아침의 모습보다 배로 익숙하고, 또 그것의 몇십 배로 절망스러운 모습이죠.
199일 동안 질리도록 보아온 저 공허한 눈.
그래요, 모든 걸 잃어버린 듯한 인형 같은 사화입니다.
…… 꿈이었던 걸까요?
아침에 웃으면서 나비를 잡으러 가자고 한 모습이나,
당신에 대해 물어보거나,
기억하겠다고 해주던 사화의 모습이 너무나 그를 그리워한 당신의 환상이었던 걸까요?
갑자기 허탈함이 밀려옵니다.
그의 기억을 되찾으면 그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 순간, 갑작스럽게 사화의 방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당신입니다.
이성 확인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침대에 앉아있는 이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그리고 익숙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짧은 사건은 지난 시간동안 감정없는 인형처럼 행동하는 네 모습에 지친 제가 환영이라도 그려낸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를 마주한다.)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변동 없습니다.
지금의 당신과는 옷이 다릅니다.
왠지 지금의 당신보다 조금, 어린 것 같네요.
그리고 당신을 못 본 것처럼 그대로 지나쳐 갑니다.
그의 목적지는 오로지 사화라는 것처럼 침대에 걸터 앉아서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불을 빼앗아 보기도 하지만, 사화는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익숙한 풍경일 수도 있겠네요.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어제까지의 일상이기도 했으니까요.
비극적이지만 그 비일상이 어느 순간 당신의 하루 그 자체가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되었잖아요?
아마 저 때의 당신은 사화의 목소리도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습니다.
듣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자신이 보이지도 않는건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듣기
기준치:
62/31/12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조금은 중얼거리는 말이 귓가를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이 목소리가 확실히 익숙한 거 같은데요.
귀를 웅웅 울리고 있는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그렇습니다.
사화의 것이네요.
정신을 차려보니 말없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당신에게 사화가 중얼거리는 듯 말을 걸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야?"
"오늘도 왔네. 지겹지도 않은 걸까."
“네가 그랬지. 네 이름은 일렉티오 바시움, 나는 상사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며.”
“왜 날 찾아오는 거야?”
“기억하고 싶지 않아. 잊어버렸다면 이유가 있었겠지.”
당신은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사화의 얼굴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 199일 간의 사화의 무의식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공허함 속에서 무엇인가를 간절히 찾고 있던 이의 목소리를.
하지만 이것은 당신 기억의 사화와는 조금 다르네요.
그리고 그 목소리는 어느새 다른 말투로 바뀝니다.
아, 이 말투입니다.
당신의 사화의 말투입니다.
기억 그대로.
티오, 있잖아. 넌 내 소원이야.
내 소원이자 꿈의 정원에, 내 정신이 묶인 이 곳에 너를 데리고 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근데 아직은 나를 깨우고 싶지 않아.
내가 멀리, 아주 멀리 갔을 때 네가 나를 찾아와 주었으면 했거든.
나의 기억을, 마음을, 나의 너를, 너의 나도.
나비의 정원에서.
그리고 그곳에 누운 사화는 문득 고개를 들더니 당신을 바라봅니다.
착각이 아닙니다.
정확히, 당신이 서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리고 더없이 환하게 웃어줍니다.
그 미소에 홀렸을지도 몰라요.
그야, 얼마만에 보는 웃음인데요.
그 미소 끝에 사화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갑니다.
상사화:너를 찾았어.
그 순간 방이 무너져 내립니다.
벽도, 사화의 손을 잡고 있던 또 한 명의 당신도,
그리고 당신을 보며 더없이 무구하게 웃어주던 사화조차도 한 줌의 빛무리가 되어 사라집니다.
무채색의 세계에 오로지 빛만이 형형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화가 입술로 무엇이라 말한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이 빛으로 가득 차서 눈을 감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은 나비의 정원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 그렇네요.
방금의 그 순간도,
나비 정원도,
꿈의 세계도 꿈이 아니었네요.
그리고……
당신의 앞에 가만히 서있는 사화도 거짓이 아닙니다.
상사화:티오.
한없이 아름답게 웃으며 사화가 당신의 이름을 호명합니다.
어느새 밤이 가시고 보라색으로 저 너머에 해가 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 숨을 들이킨 사화가 말합니다.
상사화:있잖아, 나 모두 기억났어. 너는,
05. 나비의 종착지, 새로운 여명
상사화:내가 사랑하던 사람이었지, 아주 많이. 아주… 끔찍하게. (들을 이가 존재하지 않는 혼잣말처럼 내던져진 말들은 거의 고해에 가까웠다. 너를 훑어보는 시선이 아주 잠깐 네 손가락에 머물렀다.) 네가 날 사랑한 게 아니었구나.
일렉티오 바시움:(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너를 깨우는 것도 대답없는 네 옆에 앉아 말을 건내는 것도 지난 199일동안 익숙해져있던 일상이었다.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은 대답이 제게 들리지 않았을 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져 들리는 목소리와 마주한 시선에 순간 숨을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다시 네가 환하게 웃는다. 자주 볼 수 없었으니까 이미 오늘 한 번 본 적이 있었으니까 다시 보게 된 웃음이 제게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모든 착각을 무너뜨리듯 이번에도 멍하니 그 웃음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문득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제가 앗아간 웃음이면서도 그런 우습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방이, 세상이 다시 순식간에 무너지고 눈을 뜨면 다시 정원이었다. 이제는 이 정원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는 것도 의미없었다. 제 의지로 서 있는 네가 제 이름을 부르면 시선이 마주한다. 시선이 마주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네 기억이 돌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형태를 가진 말들이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기억은 확실하게 돌아왔나보네, 상사화. (작은 혼잣말도 듣기 어렵지 않았다. 끔찍했다는 말에 널 빤히 바라보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관계의 비틀림과 불완전함을 생각한다면 끔찍했다는 표현조차 순화된 표현일지도 몰랐다.) 널 안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시선이 차례로 너와 네 손가락, 보라빛으로 물든 하늘을 향했다.)
상사화:(이름 모를 꽃들 속에 나비처럼 서있는 널 보고 있자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꽃들은, 시간은 딱 한순간만 아름다울 수 밖에 없을까. 어차피 한낱 피고 난 다음 시들어 버릴 텐데. 그럼에도 왜 ‘나’는 봄을 그리워하는 걸까. 왜 지나간 나날들을,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미래를 그리워하는 걸까.) 기억이 확실하게…. 그래. (지금 단 한가지 빼고 돌아온 그 무거운 기억들을 둘러보며 느껴지는 이 이질감의 정체가 그리움일지도 몰랐다. 지금의 저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는. 네 대답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때까지 주어진 정보와 일치하지 않은 말이었다. 네 얼굴을 말가니 들여다 봤다.) 사랑한다고 한 적도 없었지.
일렉티오 바시움:(네가 바라는 대로 몇 번 사랑을 읊은 적은 있으나 진심이 담겼다고 느낀 적은 없었을테니 그 말에도 변명을 굳이 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설명은 언제 해줄건데. 나비를 찾으면 해준다고 했잖아.
그때 어떤 나비가 사화에게 날아옵니다.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왠지 나비는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날갯짓이 허약하네요.
어디 안 좋은 걸까요.
뭐가 됐건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투명한 색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라져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 나비는 조금 사화의 곁을 돌다가 다시 멀어집니다.
그 모습을 약간은 슬픈 눈길로 바라보던 사화가 천천히 입을 엽니다.
이제는 당신에게 말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그러고 보니, 아침이 되어가면서 나비의 숫자가 부쩍 줄어든 것 같기는 하네요.
아침에 이곳에 들어왔을 때에 비해 확실히 한적합니다.
대신 아무것도 없었던 바닥에 이름도 모를 꽃들이 자라 있습니다.
같은 형태의 꽃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비들이 쉴 곳이라는 건 명백합니다.
많은 나비들이 꽃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앉을 곳을 찾지 못하는 나비 또한 존재합니다.
사화는 아무런 예고 없이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조금 대화를 해보아도 되겠네요.
사화는 드디어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상사화:(믿어달라고 한다면 믿어주었을 수 있었을까. 말을 돌리는 너를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정원으로 돌렸다.) 나비는 기억의 조각이야. 나처럼 모종의 이유에 따라 정신적인 큰 충격을 받은 이들의 것. 왜, 유리가 충격을 받으면 파편이 되어 흩어지잖아. 그 파편들이 이 곳으로 모인 거야.
일렉티오 바시움:(정원을 훑어보며 남아있는 나비의 수를 가늠해보고는 말한다.) 저 나비들이 남아있다는 건, 네 기억도 아직 다 돌아오지는 않았다는거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 피어난 꽃들로 시선이 옮기고 묻는다.) 그럼 저 꽃들은 뭔데.
상사화:그건, 음... 일단, 저 나비들은 다른 이들의 것일 거야. 꽃은 각 기억들이 매달리는 가장 큰 연결고리고. 정신이 붕괴하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 기억들은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게 가려는 본능이 있거든. 살아있는 것들은 자라며 맺는 많은 관계나 선택들에 삶과 기억이 좌우되는 거라고 보면 될까.... 그 관계와 선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이가 꽃으로 형상화 되어 있는 거야. 밤에는 별이, 새벽에는 꽃이, 낮에는 나비가. 뭐, 형태라는 건 추상적인 거니까 외견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일렉티오 바시움:(여러 형태로 남은 기억들을 느리게 훑어본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시간동안 백치라도 된 줄 알았더니 묻는 질문에는 제법 답을 잘하는 네 모습을 빤히 보다 챙겨왔던 편지를 보인다.) 그럼 네 책상 위에 있던 이것도 설명해봐.
편지를 본 사화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습니다.
당신도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글자가 구분이 가지 않았는데요.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되어 있었거든요.
정말 기이한 일이죠.
하지만 이곳이 정말로 꿈의 세계라면 이 정도는 일어나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분명 읽을 수 없던 문자로 적혀있던 글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바뀌어져있었다. 당황한 네 얼굴을 뒤로 하고 편지에 적힌 내용부터 읽어본다.)
다시 한번 본 편지는...
관찰 판정합니다.
일렉티오 바시움: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반쯤 썼다가 지운 흔적이 보입니다.
네가 원한다면 현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나는 네 안에 있고 불완전한 나는 너를 따를 거야. 이 곳은 꿈 속의 세계잖아. 영혼의 수명은 유한해. 다만 나는 아직 불완전해서, 흩어지기 쉽다는 것만 알아둬.
그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던 사화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미 그 방식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분명한 눈치입니다.
일렉티오 바시움:(네가 쓴 편지를 천천히 읽고 다시 널 마주한다.)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네가 여기 적은 말에 따르면 네 남은 기억이 내 심장에 있다는 말 같고. 맞아, 상사화?
상사화:(네 눈치를 살피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나로써의 기억은 다 찾은 거 맞아.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들도 선명하고. 그냥, 내가 나에 대한 감정이 아무것도 안 들어.
(그래서 네 앞에서 멀쩡히 서있을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기억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무서웠는데.)
일렉티오 바시움:하긴 기억을 다 찾았다면 네가 절대로 날 이렇게 보고 있지 않았겠지. (기억으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해도 그 기억에 담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온전한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늘을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나비, 꽃 위에서 휴식하는 나비들을 차례로 보다 다시 너와 시선을 마주한다. 피하지 않고 올곧게 마주하는 녹안에 제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어쩌면 네게 감정을 돌려주지 않는 게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대로 돌아간다면 너는 다시 방문을 닫지도 않을테고 지금처럼 뻔뻔하게 혹은 장난스럽게 행동할 수도 있을텐데. 네 입으로도 말한 그 끔찍한 감정을 위험부담까지 감수하면서 굳이 네게 돌려주어야하는 건지 그런 고민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그 기억과 감정이 우리의 관계를, 시간을 그 무엇보다도 분명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네 말대로 네 기억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 있는 것이 저고, 저와의 추억이라면 네 감정이 가장 기뻤던 순간만큼 가장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이 너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시간일테니까. 199일이라는 시간은 절대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대답없는 너와 보내며 저 또한 아무런 변화없이 보내지는 않았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상사화. 그 감정들 찾고 싶어?
상사화:어, 기억을 잃기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널 보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하기야…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네 말대로 감정 또한 기억의 일부분이었으니 그것을 빼놓은 기억은 그저 정보, 그 이상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 정보들을 물려받은 저는 그릇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상사화를 닮은 기계는 네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 글쎄…. 무슨 감정들이 있었는지 모르니까 잘 모르겠네.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티오, 그러니까 이 몸의 주인은……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한가. 그러니까 나는, 아마도 너를 엄청나게 아끼고 있을 거야. 사랑할 수도 있지. 그래서 아마, 음……너에게 해코지를 하고 싶지 않아 할 거라고 생각해. 왜냐면 지금 내가 너를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날 것 같고,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거든. 그래서 기억을 되찾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일렉티오 바시움:(네 답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한들 감정을 모르는 너는 '상사화'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했다. 기억에 따라 상사화라는 존재를 흉내내고 모방할 수는 있지만, 기억에 담긴 감정까지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 너 스스로 가장 잘 느끼고 있을테다. 그리고 저는 욕심이 많은 존재였다. 가장 오롯한 형태로 너를 소유하고 싶다고 생각할만큼. 너를 망가뜨린 존재가 나라면 고칠 수 있는 것도 나일테니까. 울고 있는 것보다 웃고 있는 네 모습을 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무엇을 위해 왜 웃는지도 모르는 너보다는 차라리 선명한 감정을 드러내는 쪽이 나았다. 그리고 모든 기억을 다 찾게 되었을 때, 그 기억에 담겨있는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네가 지을 표정이 꽤 궁금하기도 했다. 하루종일 익숙하게 잡았던 네 손을 잡아 끌어 제 심장 위로 올려둔다.) 문제가 생기면 네가 책임져, 상사화. (네 모습을 선명히 두 눈에 담는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옅은 기대감에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던 것도 같다.) 너의 마지막 나비를 잡아왔어.
나비를 잡아왔어, 당신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선명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사화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던 가슴 아래로, 심장에 다시 얼음이 차오르는 듯 차가운 감각이 몰아칩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하고 몸이 휘청합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당신의 몸을 다급하게 사화가 받쳐냅니다.
누군가의 손이 심장을 꽉 쥐는 듯 숨이 막혀오고 시야가 흐릿해집니다.
기억이 뽑혀나간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요.
일렉티오 바시움, HP-2 마력-4
아득한 시야 너머로 무엇인가가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기억 속에 있던 수많은 사화의 모습입니다.
그러네요,
그 날 사화가 소원을 쓰던 종이 위로 당신은 분명히 그때 당신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수십 번,
수백 번,
혹은 수천 번 이상을 불렀던 상사화의 이름은 다 다른 감정이 담겨있었습니다.
한 발 앞서서 걸어갈 때도,
발을 맞출 때도,
한 발짝 더디게 있었을 때도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돌아보는 그 얼굴은…….
기쁨,
놀라움,
즐거움,
감동,
격앙,
분노,
슬픔,
괴로움,
외로움,
사랑,
혐오.....
세상의 모든 감정, 사화의 모든 감정이 당신의 심장 깊은 곳에 담겨 있었습니다.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갑니다.
티오, 일렉티오 바시움.
매번 다른 감정으로 당신의 이름을 호명하던 사화의 얼굴,
잠들기 전 졸음이 묻은 채 웃던 얼굴,
괴로움에 울며 잠들어 붉어진 눈가,
199일 동안 수도 없이 보아왔던 공허한 눈빛,
그리고 속삭임.
그리고 당신조차 듣지 못했던 그 시간 동안의 사화의 대답들.
그 모든 것들이 들려오며…….
정원이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주위를 날아다니던 모든 나비들이 희미해지고 두 사람이 서있는 바닥이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와중에도 사화의 손은 강하게 당신을 끌어안고,
고개를 돌려 아득한 시야로 그를 바라보면 그는 분명히,
울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끌어안은 사화가 느껴집니다.
계단을 마주하기 전만 하더라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웠던 사화의 무게가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이곳에 서있다는 것처럼.
두 사람의 발 아래는 수를 셀 수도 없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길 결심한 피터팬과 현실로 돌아가길 마음 먹은 웬디처럼, 세계로 쏟아집니다.
끌어안은 두 사람의 모습은 어느새 형태가 사라진 채 우주의 어드메로 흩어집니다.
이곳은 전갈자리 어딘가의 산개성단,
이름이 무엇이었죠?
아, 맞아요.
나비 성단입니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일어나세요.
꿈의 세계에서 추방된 인간이여.
눈을 뜹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고 정신을 차려보면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지난 날의 모든 것이 꿈인 것 같습니다.
설마요, 분명히…….
달력을 살펴보면 오늘은 200일 째의 아침입니다.
아, 정말로 꿈이었던 걸까요?
사화를 보러 가볼까요.
일렉티오 바시움:(기억이, 감정이 빠르게 지나간다, 네 이름을 부르는 순간마다 마주했던 그 모든 감정까지 마주하고 나면 무게만큼 온전해진 너의 존재감과 함께 꿈은 무너지고 현실로 돌아온다. 가장 먼저 확인한 달력을 날짜를 보고 그저 기이한 꿈이라 치부하며 자리에 일어나 익숙하게 네 방문을 연다.)
당신은 사화를 보러 가기로 합니다.
그 어느 때도 여는 것을 두렵지 않았던 문고리가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멀어보입니다.
그래도 문을 열어야죠.
더는 꿈을 꿀 수 없습니다.
그렇게, 문을 열면…….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사화가 있습니다.
바깥은 거짓말처럼 해가 뜨고 구름이 유영하고,
그 해의 첫 계절꽃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손 위에 꽃잎을 받아낸 사화는,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도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일렉티오 바시움:...오늘은 알아서 일어났네. (스스로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는 네 모습이 마치 환영처럼 느껴져 빤히 너를 바라보았다.)
한참 대답없이 창 밖만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내 당신을 바라봅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그 얼굴에,
절망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수많은 감정들이 내비칩니다.
당신을 향한 명백한 애정마저도.
그가 절박하게 묻습니다.
상사화:날 그냥, 좀. 안아줄래….
그러니까 이것은,
더는 비일상의 나비를 잡지 않아도 된다는 것.
END 2.
상사화 생환, 일렉티오 바시움 생환
사화는 완벽히 기억을 되찾고 일렉의 곁으로 복귀합니다.
엔딩 보상 SAN 1d5 회복
나비 오르골 - 회고하고 싶은 기억을 단 하나 보관할 수 있습니다. 오르골을 재생할 때 해당 기억이 재생됩니다.